구글·시타델 떠나 창업한 두 청년 “넥스트 웨이브는 메타버스·혼합현실”
[뉴욕의 도전자들] 뉴욕 기반 유망 스타트업 ‘인뎁스 인터뷰 시리즈’ 3편
CMU 동문 의기투합… 디지털 패션 기술 스타트업 ‘에이폼(AForm)’ 창업
미래 세대, 다양한 메타버스에서 입을 수 있는 디지털 패션 원해
정세준 CEO “디바이스 나오면 2~3년 내 격변... 혁신 기술에 기여하고파”
2021년 5월. 구글에서 이미지 기반 패션 스타일 추천 도구(스타일 아이디어, Style Ideas)를 개발하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정세준은 대형 헤지펀드 ‘시타델(Citadel)’의 트레이딩 관리 시스템 개발자 우정한과 뉴욕에서 조우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San Francisco Bay Area), 시카고에서 일하던 둘은 그해 4월과 5월 각각 ‘세계의 수도’ 뉴욕으로 건너왔고, 마침내 맨해튼 한인타운에서 술잔을 기울일 수 있게 됐다. 두 엔지니어의 인연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위치한 명문 카네기멜론대에서 컴퓨터공학과 대학원생과 학부생으로 만난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당시 한 스타트업에서 정한이와 잠시 함께 일했는데, 너무 똑똑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하나를 알려주면 세 개를 아는 친구였죠.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꼭 같이 일해야겠다고 그때 마음먹었습니다.”
두 청년은 뉴욕에서의 만남을 운명처럼 느꼈다. 언젠가 꼭 함께 창업하고 싶다고 생각만 해왔는데, 실제로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창업 아이템은 메타버스(가상 세계) 및 혼합현실(Mixed Reality)에 모두 적용 가능한 디지털 패션, 디지털 웨어러블(wearble) 기술로 잡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박차고 지난 6월 스타트업 ‘에이폼(AForm)’을 공동창업한 배경에는 이처럼 굳건한 상호 신뢰가 있었다. 지난 10월 메타(Meta)가 혼합현실 기기 ‘퀘스트 프로’를 출시했고, 애플 역시 AR(증강현실) 헤드셋을 개발 중인 가운데 ‘현시점이 메타버스 기술 창업의 적기’라는 확신도 들었다.
“대중적인 증강현실, 혼합현실 기기가 출시되면 2~3년 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생각보다 더 빠르게 변화의 물결이 덮칠 것입니다.”
정세준 에이폼 공동창업자 겸 CEO, 우정한 공동창업자 겸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발견한 기회는 무엇일까. 메타버스 산업은 왜 유망하며 디지털 패션은 무슨 의미를 지닐까. 에이폼이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이며 이들의 최종 목표는 뭘까.
맨해튼 미드타운에 위치한 에이폼 본사에서 정 대표, 우 CTO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자기소개를 해준다면?
지난 6월 스타트업 에이폼을 창업한 정세준이라고 한다. 카네기멜런대학교(CMU) 컴퓨터공학과에서 가상현실(VR) 기술 관련 박사과정을 밟은 후 구글에서 일했다. 구글에서는 이미지 검색할 때 AI(인공지능) 기반으로 패션 스타일을 추천해 주는 기능을 개발했다. 메타버스 관련 연구 및 개발을 꾸준히 하며 한 우물을 파왔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
창업 계기가 궁금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언젠가는 창업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2012년 즈음 공동창업자로 스타트업 창업을 한번 했던 경험도 있다. 이후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박사과정까지 마쳤고, 구글에서 일하면서도 창업 기회를 살펴 왔다.
에이폼 창업 직전에는 제대로 된 팀과 함께 회사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뉴욕에서 우정한 CTO랑 만나 얘기를 나누며 아이디어를 구체화했고, 창업을 결심했다.
뉴욕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개인적으로 뉴욕이라는 도시는 매우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한 번쯤 와보고 싶어 하는 곳이며 문화·예술, 패션,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트렌드를 선도하는 곳이다. 인재도 많다.
에이폼의 사업 영역은 크게 패션과 메타버스·웹3(web3, 블록체인 기반 차세대 인터넷)라고 할 수 있는데, 뉴욕은 패션과 웹3의 허브 도시이기도 하다. 실제로 여러 파트너들과 이메일을 주고받거나 화상 회의를 하다 보면 사무실이 뉴욕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직접 찾아가 대면 회의를 진행한 적도 더러 있다.
메타버스를 택한 이유는?
일단 에이폼 창업 직전에 구글에서 패션 추천 기능을 개발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패션 쪽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메타버스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 분야에 내 커리어를 걸어봐도 좋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메타버스 시장이 커지는 것과 별개로 기술적으로 구현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여러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구현가능한, 즉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을 가진 디지털 패션, 디지털 웨어러블 솔루션을 제대로 제공하는 회사가 없더라. 이게 에이폼이 해결하려는 문제다.
메타버스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꿔왔는지 주목해 왔다. 개인 PC, 인터넷의 발명이 대표적인 예다. 인터넷 이후 찾아올 ‘넥스트 웨이브가 뭘까’라는 질문의 답은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혼합현실(MR)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무겁고 불편한 AR, VR 기기가 아니라 안경처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글래스가 개발되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스마트글래스는 공상과학 소재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점점 현실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스마트글래스는 인간을 ‘슈퍼 히어로’처럼 만들어 줄 것이다. 시선을 주는 것만으로도 정보를 얻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현실 위에 얹어(overlay) 볼 수 있다. 마치 투시 능력을 가진 것처럼 사물의 구조 혹은 뼈대를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아도 눈에 지도가 장착돼 길을 알 수 있다면 이게 초능력이 아니고 뭔가.
사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인류에게 비슷한 효과를 일부 제공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하면 되니 정보를 기억할 필요가 없어지지 않았나. 오감의 영역을 증강(augmentation)해 초능력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게 진정한 메타버스다. 발전된 MR 디바이스가 나오면 2~3년 내에 세상이 격변할 것으로 본다. 우리가 생각할 틈도 없이 이런 기술들이 우리 삶에 스며드는 미래가 도래할 것으로 믿고 있다.
메타버스에도 여러 분야가 있는데, 디지털 패션에 주목하는 이유는?
메타버스 시대에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질 것으로 본다. 인스타그램이나 스냅챗 같은 소셜 미디어를 보면 이미 AR 필터를 내 얼굴에 적용해 공유하는 패턴이 널리 퍼져 있다. 디지털 컨텐츠와 나를 융합해 소통하는 것이다.
MR 디바이스를 안경처럼 착용한 채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면 내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표현할까. 핵심은 디지털 패션이라고 생각한다. 구찌, 샤넬 같은 브랜드가 선보일 디지털 재킷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디지털 패션은 세탁할 필요가 없고, 재판매가 훨씬 쉬우며 닳지도 않는다. 디지털 패션 시장이 실제 패션 시장보다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에이폼이 제공하는 솔루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메타버스 플랫폼, 혹은 아바타의 형태에 영향받지 않고 어디에나 적용가능한 ‘유니버설 디지털 웨어러블(Universal Digtal Wearable)’ 솔루션을 지향하고 있다.
현재 메타버스 아바타를 보면 실제와 비슷한 아바타, 복셀(Voxel), 로우 폴리(Low Poly, 2D와 3D의 중간 영역), 2등신에서 8등신 아바타까지 등 다양한 형태다. 사용자가 나이키 후디를 디지털 패션 제품으로 샀다면 다양한 내 아바타에 입히고 싶을 것이다. 예컨대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 로블록스(Roblox) 혹은 제페토(ZEPETO)에서만 착용할 수 있다면 사용이 제한되기 때문에 수요도 줄게 된다.
메타버스 플랫폼을 벗어난 혼합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 사용자들의 체형, 신체 비율이 다양하기 때문에 사이즈에 관계 없이 입을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이 중요하다. 에이폼은 이렇게 다양한 사용자, 아바타에 자동으로 디지털 의류를 맞춰 변환하는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이 솔루션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는 누구인가?
가장 먼저 패션 디자이너를 떠올려 볼 수 있다. 패션디자이너가 만들어낸 3D 창작물과 메타버스 플랫폼에 넣을 수 있는 3D 오브젝트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보통 패션디자이너들은 물리적 제품을 제조할 때 참고하기 위해 3D 창작물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매우 고용량이다. 용량을 줄이고 호환성을 높여 이를 어디에서든 사용할 수 있게 바꿔주는 게 핵심 기술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중에서도 컴퓨터 그래픽스 분야 개발자는 많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론적으로 디지털 패션을 NFT(대체불가토큰)로 만들면 NFT 보유자가 소유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NFT를 여러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사용하지 못한다면 소유권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특정 게임에만 사용 가능한 게임 아이템과 차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에이폼의 기술력은 독보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업체들이 쉽게 따라 할 수도 없다. 관련 특허도 준비 중이다. 이 부분은 변리사님이 팀의 어드바이저로 도움을 주고 계시다.
대다수 기성세대는 메타버스를 생소하게 여긴다. 메타버스는 미래 세대의 전유물이 될까?
‘디지털 세상은 허구’라고 보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디지털 컨텐츠가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통해 누리는 경험까지 가짜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게임을 하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다른 이들과 교류하며 우정을 나눈다. 그런 경험들은 진짜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세상은 새로운 미디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Z세대 혹은 더 어린 알파 세대만 누리게 되진 않을 것이다. 스마트폰 보급률을 생각해보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얼리 어답터나 비교적 젊은 세대 중심으로 소비됐지만, 지금은 연령대에 관계 없이 모두가 누구나 사용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메타버스도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우정한 CTO의 역할은?
개발 분야에서 제가 잘 못하는 영역도 있는데, 우 CTO가 이를 커버해준다. 성격적으로도 서로 큰 보완이 된다.
우 CTO는 시타델에서 정말 집중적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트레이딩, 즉 거래 시스템 관리를 하려면 장이 열리지 않는 주말에 버그를 모두 해결하고 업데이트를 완료해야 한다. 시간적 압박도 매우 심한데, 그런 작업을 모두 소화해낸 실력자다.
향후 목표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늘 그랬듯이 기술자로서 혁신가로서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혁명적 기술에 기여하고 싶다. 가장 파급력 있게 이 목표를 이루는 방법이 창업이라고 생각한다. 훗날 성공을 거둔다면 교육재단을 만들어 내가 얻은 것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
CEO로서 목표는 구글 같은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구글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책임감을 갖고 각자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회사다. 내가 만든 회사가 이렇게 성장한다면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