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와 임윤찬, 그리고 교육에 대한 15가지 질문
더밀크 에세이. 더밀크 기자, 리서처, 서비스 개발팀의 교육에 대한 시각
허준이와 임윤찬 성과를 보고 사내 토론
[편집자주] 더밀크는 한국과 미국을 잇는 '크로스보더' 정보 플랫폼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많이 발견하고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 분야는 학제부터 방법까지 많이 다릅니다.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가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것이나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하고 이들이 한국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를 접하면서 한국의 교육과 미국의 차이점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틀에 갇힌 공교육은 세기에 나올까 말까한 인재를 가둬두는 것 같지만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지나친 경쟁심을 유도하고 정답을 찾는 것만 가르치는 교육 과정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더밀크의 기자, 리서처 및 서비스 개발팀 등 임직원(밀키웨이로 부릅니다)들은 한국과 미국에서 생활하며 양국의 교육 시스템의 장단점을 느끼고 있습니다. 더밀크의 밀키웨이는 허준이, 임윤찬의 성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어떤 시사점이 있을까요? 그리고 15개의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더밀크 내부에서 토론을 했습니다. 내부 문서였지만 더밀크 독자분들께도 생각할 꺼리를 줄 수 있다고 판단,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피드백은 support@themiilk.com 으로 부탁드립니다.
[교육에 대한 더밀크의 15가지 질문]
1. 평균적 인재를 만들 것인가? 스스로 질문하고 문제를 푸는 인재를 만들 것인가?
2. 재능의 발견, 일찍 발견하는게 좋은가? 늦어도 좋은가?
3. 왜 미국에서 세상을 바꾼 탁월한 인재들이 많이 나올까?
4.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과연 누구의 만족을 위해서 교육을 할까?
5. 교육 제도, 사회 특성의 반영 아닐까?
6. 대치동 시스템의 목적은 무엇일까?
7. 한국에서 학원 수업을, 선행학습을 안하고 따라갈 수 있을까?
8. 한국에서 스스로 질문을 하는 교육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9. 한국 교육 시스템은 '질문하는 법'을 왜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
10. 결과만 보려는 교육 시스템, 바꿀 수 있을까?
11. 한국 교육의 장점은 없을까?
12. 임윤찬, 허준이가 왜 국가의 자랑이 되야 할까?
13. 지리적 위치보다 교육방법에 대한 부모의 가치관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14. 모두를 만족시키는 교육이 존재할 수 있을까?
15. 교육의 관점을 성공에서 성장으로 바꾸는게 어떨까?
1. 평균적 인재를 만들 것인가? 스스로 질문하고 문제를 푸는 인재를 만들 것인가?
“석유와 가스 나오는 곳을 천재적으로 아는 아이가 있으면 동자부에서, 모내기 신동이 있으면 농림부에서 학교를 만들겠지만 그런 아이는 없지 않습니까. 문화에는 모차르트 같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인생 낙오자로 만들지 않으려면 학교를 세워야 합니다.”
고 이어령 전 장관이 1991년 국무회의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 얘기입니다. 고 이 전 장관의 마지막 국무회의 안건이었다고 해요. 한예종은 이렇게 세워졌고 김선욱, 손열음, 임윤찬과 같은 예술가들을 키워냈어요. (기사 참조)
예술에는 이런 엘리트 영재 교육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일반 교육은 그 반대가 아닐까 싶어요.
고등학교 때 공부를 못해서 중퇴한 뒤 하버드 교수가 된 토드 로즈(’평균의 종말’, ‘다크 호스’의 저자)에 따르면 이젠 제도권 교육이 천재들을 품을 수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똑같은 애들을 만들어 내는 교육 과정과 남들이 뭐 하는지 보고 있다가 그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는 학무모들은 이런 제조업이 되어버린 교육 시스템을 더욱 더 강화하고 있을 뿐이고요. 허준이 교수는 한국의 제도권 교육이 감당할 수 없는 학생이었던 거죠.
교육 상담을 하는 지인에 따르면 요즘 한국에는 공부를 잘 하는데도 자퇴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식이 학교는 마쳤으면 좋겠다고 생각 하지만 아이들이 우리의 교육 시스템보다 더 커져버린 셈이에요.
그러면 이런 제도권 교육이 품을 수 없는 아이들의 공통점은 무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건 자신만이 가진, 풀어야 할 의문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육은 아이들이 그걸 찾도록 돕고 그 의문을 해결해줄 능력이 없어요. 물론 그런 의문이 없는 아이들도 있어요. 사회에는 그런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은 그냥 학문만 안 하면 되요.
하지만 우리는 모두 똑같이 공부를 하고 학위를 받으라고 아이들을 똑같은 과정 속으로 밀어 넣죠.
김선우 더밀크 기자 (시애틀 거주) : 주요 저서로 40세에 은퇴하다, 지속가능한 삶을 모색하는 사피엔스를 위한 가이드 등이 있다.
제도권 교육이 품을 수 없는 아이들의 공통점은 무얼까요? 가장 큰 건 자신만이 가진, 풀어야 할 의문이 있다는 점입니다.김선우 더밀크 기자
2. 재능의 발견, 일찍 발견하는게 좋은가? 늦어도 좋은가?
허준이 교수님의 일대기를 읽어보았을 때 서울대 학부 4학년때 초빙석좌교수로 있던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수업을 듣고 수학 연구에 관심이 생겼다는 사실에 눈길이 갔습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수업이 전공서적의 정형화된 수업보다 자신의 연구가 많이 반영되어있는 수업으로 보입니다.
이런 수업은 허준이 교수의 흥미를 충분히 자극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이 두사람은 많은 소통을 하게 되고 이는 허준이 교수가 수학자로 성장하는데 큰 디딤돌이 되게 됩니다.
이 일화가 제 개인적 경험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 많은 공감이 됐습니다. 허준이 교수님과 저는 나이가 한살 차이로 비슷한 한국의 교육제도를 경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에선 이렇게 늦게 재능이 피어난 사람을 “late bloomer”라고 합니다.
저는 허준이 교수님 같은 대단한 교수는 아니지만 제 과거도 “late bloomer”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군대 가기전 A 학점을 한번도 받아보지 못하고 수업에 잦은 결석을 하는 등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복학 후 학부 2학년 때 우연히 들은 ‘작업관리’ 수업에서 제 첫 지도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인간공학/작업관리 라는 분야에 흥미를 느꼈고 그런 저를 알아본 지도교수님께 학부 연구실 인턴을 제안받았습니다. 그 후 학부 2학년부터 연구실에서 ‘인간공학’ 연구를 매진할 수 있었고 현재까지 같은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사실 저도 허준이 교수님처럼 전공 및 진로에 대한 뚜렷한 목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도교수님과의 개인적인 소통을 하고 무엇보다 A학점 한번 받아보지 못했던 저를 기억해주고 인정해 주는 모습은 대학에서 처음 느껴본 경험이었습니다. 그때가 대학와서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하는 “bloomer”의 순간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일리노이 네이퍼빌에는 IMSA(Illinois Mathematics and Science Academy)라고 한국의 과학고와 같은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작년에 있었는데요. 이곳의 선생님과 매니저들을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곳의 커리큘럼은 조금 독특했습니다. 실제 학생들을 대학교수들과 매칭을 시켜서 각자의 연구주제를 잡고 연구를 장기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 필수과정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린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누군가가 주의 깊게 들어주고, 인정해주고, 북돋아주는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런 고등학생들의 연구 경험은 IMSA 만 진행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끔씩 고등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연구에 멘토가 되어 줄 있냐는 의뢰를 받습니다. 한번은 고등학생들이 인간공학적 눈삽(Snow shovel)을 설계하는데 멘토로 참여한 적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어떻게 보면 허준이 교수님과 제가 학부시절에 겪었던 경험을 더 앞당겨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대학에서 교육자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다양한 문화 혹은 교육방식의 차이를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있는 학교의 학부생은 거의 미국인으로 구성돼 있지만, 대학원의 경우 미국, 인도, 방글라데시, 나이지리아, 중국, 네팔, 이란 등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있습니다. 수업에서 연구 중심으로 정답이 없는 열린 주제의 숙제나 프로젝트를 주는 경우 미국 학생들과 미국 외 학생들이 결과물은 다른 점이 많았습니다.
미국 학생들은 포멧은 서툴러도 주체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작성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미국 외 국제 학생들의 결과물은 다른 소스들을 많이 의지하거나 다른 학생들의 자료를 많이 참고하고 비슷한 리포트들을 제출하는 적이 많았습니다. 물론 이를 모든 학생들에게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지난 5년간의 경험에 따르면 그랬습니다. 이들에게는 정답이 없는 문제가 주어지는 것이 ‘불안감’ 혹은 ‘두려움’으로 인식되었을까요?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적으면 낮은 학점을 맞을지도 모른다고 느꼈을까요? 이러한 생각 및 태도는 초중고의 교육과정에서 영향을 받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혹시 허준이 교수님도 학생 때 남다른 시각으로 내놓았던 생각들이 정형화된 답에 가려져 버린적이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황재진 노던일리노이대 교수 (일리노이주 거주) : 저서로 쉽게 배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최신 기술 트렌드, 가볍게 떠먹는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 등이 있다.
저를 기억해주고 인정해 주는 모습은 대학에서 처음 느껴본 경험이었습니다. 그때가 대학와서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하는 '블루머'(bloomer)'의 순간이 시작됐 것 같습니다.황재진 노던일리노이대 교수
3. 왜 미국에서 세상을 바꾼 탁월한 인재들이 많이 나올까?
탁월함을 발견해 나가는 여정에 있는 한 사람으로 저의 생각을 짧게 나눠보고자 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일반 공교육을 받고 대기업 생활을 하다가 미국에서 연구원 및 대학원 생활을 이어가면서 느낀 여러가지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서 SOP를 준비할 때의 일과 제가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느낀점을 나누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SOP 에세이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Research Interests와 Motivation이 이 아닐까 합니다. 즉 학교에서 보는 것 중 하나가 정말로 인생에서 풀고자 하는 문제가 있는 학생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지금까지 어떤 관심과 노력을 가지고 이 여정을 걸어 왔는지에 대한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 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하고 직접 체험했던 경험들을 저의 SOP 리소스로 쓰면서, 지속가능한 문제 해결에 중심에 에너지 인프라/공급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고, 그리고 이것이 앞으로 지구온난화 문제와 어떤 연결이 있는지 제가 어떤 문제를 정말로 풀고 싶어하는지를 중요하게 적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누가 저에게 주어진 답이 아닌, 정말로 제가 경험하고 눈으로 보면서 느끼고 말한 투박하지만 진짜의 다듬어지지 않은 알맹이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제 삶의 이야기 위에 향후에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이야기 한 글을 통해, 아이비리그 포함 그리고 박사과정을 포함한 우수한 대학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고 장학생으로 선발 되었고, 이후 진행된 추가 인터뷰에서 질문에서.. 저의 개발 도상국에서 프로젝트 등 경험한 것들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학교가 단순히 우수한 학생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배움을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동기를 향해 있는 학생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고, 지원하고 있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걸어가고 있는 길에 대해서 작은 응원과 격려를 받았고, 계속해서 내가 풀고자 하는 문제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공부환경인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 눈치 보지 않고 언제든 편하게 질문 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학업 환경에서 사고의 틀이 깨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도 계속된 경험을 하고 있고, 제 전공분야안에서도 문제의 크기와 상관없이 중요한 문제를 찾고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배우며 실천하고 있습니다. 꾸준하게 그리고 끈기를 가지고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으로 하나의 문제를 접근해 나가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고, 미국 대학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잘 이어질 수 있도록 교수와 학교 인프라가 힘을 합쳐 잘 지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슈퍼인재는 한 분야에서 탁월한 (“extra-ordinary”: 평범하지 않은) 결과를 이루어낸 사람으로서 그 탁월함은 한 분야에 대해 오랜 시간과 관심 그리고 그 관심을 둘러싼 다양한 경험을 종합한 종합 예술의 결과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정말 그것을 즐기고 좋아하는 애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이런 특성들은 무엇인가에 깊이 심취한 취미가와 (aka 덕후) 비슷한 부분들이 많지만, 취미가와 분명한 차이점은 아주 중요한 문제를 포착하고 그 문제에 집중하고 풀어내는 능력인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탁월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은 단순히 학습지에 있는 주어진 수학문제를 잘 푸는 백점짜리 학생을 길러내는것과는 다른 종류의 일 인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학생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중요한 문제를 찾고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학생에게 많은 자율성을 주고, 주변에서 서포트를 하는 미국의 교육방식이 슈퍼인재를 키워내는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주예 더밀크 리서처 (미 카네기멜론 석사과정, 현 피츠버그 거주)
제가 생각하는 슈퍼인재는 한 분야에서 탁월한 (“extra-ordinary”: 평범하지 않은) 결과를 이루어낸 사람으로서, 그 탁월함은 한 분야에 대한 오랜 시간의 노력과 관심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경험을 종합한 "종합 예술의 결과"라고 생각을 합니다. 한편 이런 특성들은 무엇인가에 깊이 심취한 취미가와 (aka 덕후) 비슷한 부분들이 많지만, 취미가와 분명한 차이점은 아주 중요한 문제를 포착하고 그 문제에 집중하고 풀어내는 능력인 것 같습니다.김주예 더밀크 리서처
4.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과연 누구의 만족을 위해서 교육을 할까?
이 동네(미 산호세) 어머님들 게시판에 올라온 글입니다. 교육기관을 운영해 본 제 경험도 그렇고 위의 글, 임윤찬/허준이 사례 등 보면서 생각한 건 ‘누구’의 만족을 위해서 교육을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서로 많이 다른 거 같아요.
교육사업이 어려운 건 돈 내는 사람과 교육 소비하는 사람이 나눠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즉 교육 수요자가 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학부모와 학생. 양쪽을 다 만족시켜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르거든요.
한국의 교육시장은 학부모를 만족시키는 데 철저히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생각하기에 좋은 길, 그 방향으로 완벽하게 잘 따라줄 아이들을 키워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잘 사는 것’(인생을 잘 사는 것 또는 부자로 잘 사는 것 양쪽 다)에 대한 생각이 비슷하고 남의 이목과 본인 체면이 중요한 사람들이 많은 한국인의 특성상 비슷한 방향으로 우루루 다 움직이니까 교육도 다 그렇게 따라가는 거죠. 대입 기회도 한번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실패하면 망한다 주의.
반면 미국 교육시장은 상대적으로 학생 위주로 움직입니다. 여기도 학부모 만족도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요(수요자는 둘이지만 돈은 어쨌든 학부모가 냄). 왜냐면 인생의 성공 실패에 대한 정의가 훨씬 더 다양하고, 대학 잘 못 갔다고 인생 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별로 없죠. 잘 가면 물론 좋지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여러가지 옵션이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교육받는 사람(=학생)이 교육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본인이 필요로 하는 건 뭔지를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편이죠.
임윤찬 부모님 인터뷰는 본 적이 없는데(아마 의도적으로 안 하시는 것 같음. 그것만 봐도…), 허준이 교수 부모님 얘기들이 나온 것 보면 본인들 입장보다 아들의 입장과 생각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존중해 준 것인데, 한국에서 일반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는 없겠죠.
김홍석 더밀크 COO (산타클라라 거주, 전 미 실리콘밸리 코딩스쿨 '마카붐' 공동 대표)
미국 교육시장은 상대적으로 학생 위주로 움직입니다. 왜냐면 인생의 성공 실패에 대한 정의가 훨씬 더 다양하고, 대학 잘 못 갔다고 인생 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별로 없죠. 생을 살아갈 수 있는 여러가지 옵션이 있다고 생각하니까요.김홍석 더밀크 COO
5. 교육 제도, 사회 특성의 반영 아닐까?
저는 교육 제도 자체가 사회의 특성이 반영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예전에 노벨상 관련 콘텐츠를 만들때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기초과학 교수님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 중에 부산대학교 물리학과의 모 교수님이 전해주신 일화가 개인적으로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그 분은 서울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시고, 군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독일에서 물리학과 학부를 다시 다니셨는데요.
독일에 유학가서 담당 교수님에게 이 과정을 빨리 끝내야 한다. 군대도 가야하고 해야할 것이 많기 때문에 빨리 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하셨대요. 그런데 담당 독일 교수님이 하신말이 “공부는 평생하는거니, 천천히 너무 급하게 가지 말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교수님도 한대 맞은것 같았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랬어요.
우리 사회는 각각의 나이별로 해야할 일들 통과해야할 관문을 정해놓고, 그것을 통과하지 못하면 낙오자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요. 그런 사회의 모습이 교육 제도와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초 과학의 영재들중에 아인슈타인 같이 젊은 시절부터 재능을 뽐내는 사람도 있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오랜시간 연구와 경험을 쌓으면서 늦은 나이에도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 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특정 시기에 남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조금만 더 줄이면, 교육의 문제도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서00 더밀크 서비스/개발팀 엔지니어 (서울 거주)
우리 사회가 특정 시기에 남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조금 더 줄이면 교육 문제도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서00 더밀크 서비스/개발팀
6. 대치동 시스템의 목적은 무엇일까?
저는 2년 반 동안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여름 한국 사교육의 중심지라고 불리는 대치동에서 아이 둘(한국나이 10세, 6세)을 기르고 있는 엄마입니다. 제가 미국의 공교육&한국의 사교육 및 공교육을 겪으면서 느낀 점을 얘기하자면
1. 실태
미국: 제가 살던 메사추세츠주 캠브릿지 디스트릭트는 공교육 1학년때까지 교과서라는게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개별로 준비해온 프린트물로 교과과목(언어, 수학, 과학 등)을 지도했고 음악, 미술 등 예체능은 담당 선생님들이 따로 수업을 이끌었습니다. 영어는 1학년 때는 파닉스 위주로 배웠으며 숙제는 따로 없었습니다. 쓰기 역시 단문 위주로 나갔고 에세이 등 라이팅 교육은 전혀 없었습니다.
한국: 9살 하반기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학교에 갔습니다. 다행히 2학년으로 입학할 수 있었는데 한국 아이들과의 학습 격차가 어마무시했어요. 더하기, 빼기만 간신히 하고 왔는데 친구들은 이미 5, 6학년 진도를 모두 나가고 있었고 영어는 그나마 좀 낫겠지 싶었지만 그건 더 아니었습니다. 이미 5살부터 3년간 영어유치원을 다니고 8살부터 소위 말하는 대치동 빅3 어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회문제에 대한 자기 생각을 쓰고 말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죠.
I am a girl 정도만 쓰는 딸을 받아줄 학원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에세이는 0점을 받았죠. 그나마 스피킹은 낫겠지 싶었지만 스피킹 역시 한국에서 영유 다녔던 아이들이 객관적으로도 훨씬 더 잘하더라고요. 동네 공부방을 5개월 정도 보내면서 간신히 진도 따라잡고 그나마 이름 좀 들어봤다는 영어, 수학, 논술 학원에 들여보냈는데 사실 전 좀 충격이었습니다. 너무나 훌륭한 커리큘럼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촘촘히 짜여진 수업내용과 숙제, 선생님과의 피드백까지 같은 돈 내고 이렇게 좋은 사교육을 두고 헛돈쓰고 있었구나를 느꼈어요.
대치동의 사교육은 ‘교육'적인 면에서만 따지자면 대한민국 넘버1 아니 전 세계로 따져도 최상위권이란 생각이 드는건 사실이에요. 이곳 아이들은 봉준호 감독 통역사인 샤론 최가 다녔던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분야별(라이팅, 리딩, 스피킹) 학원, 과외를 따로 하는게 일반적이에요. 그렇게 해서라도 그 학원만 들어갈 수 있으면 평생 영어는 걱정없다.. 는 엄마들의 분위기를 잘 보여줍니다.
수학은 더 심합니다. 이 곳의 국룰은 유아기~초2,3까지는 영어를 마스터해놓고 그때부터는 수학만 파자는 거에요. ‘황소'라는 수학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또다른 준비학원을 다니고요. 5,6세부터 사고력학원을 다닌 후 초 2정도때는 교과학원을 병행합니다. 근데 사고력 학원이라는게 어려운 문제를 푸는 방법을 알려준다는데 전 경험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것부터 시작하지 않은 아이들은 나중에 수학이 어려워졌을 때 푸는 힘이 없다고(들 합니다)..초3인 딸 주변에 수학을 열심히 하는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중학교 진도를 나가고 다지기로 현행을 또 하고 연산도 따로 합니다.
연산도 우리가 아는 구몬이나 눈높이 같은 연산이 아닌 인도수학에 뭐에.. 다양한 방법으로 연산을 하고 있더라고요. 이동네 엄마들은 경쟁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있습니다. 학원 입학 테스트 자리를 잡는 것조차 요이 땅 하고 3초만에 마감돼 ‘금손'이라는 알바를 고용해서 입테 슬랏을 잡고요. 어떤 학원은 평생 입학 테스트 기회를 2번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학원은 기본적으로 수익을 내려는 목적이지만, 최상위 학원들은 반 인원도 몇 명 없습니다. 훌륭한 학생을 받아 제대로 키워보겠다는 교육철학을 가진 학원들도 많고요. 심지어 학교 선생님조차 미국에서 처음 들어왔을 때 학원을 잘 찾아 보내라는 조언(?)을 해주더라고요.
임윤찬, 허준이를 바라지 않는 대치동 부모들
대치동은 주말이 더 붐빕니다. 금요일이면 타 지역에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이 원정을 오기 때문입니다. 이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표정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엄마가 시키니까, 친구가 하니까 공부를 하긴 하는데 정작 왜 공부를 하는지는 모릅니다. 그 엄마들에게 물어보면 ‘좋은 대학에 가게 만드는게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좋은 대학을 나와서 기회가 많아지고 주변에 좋은 사람도 생기고 적당히 어느정도 수준 위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죠. 이들에게는 하버드보다 서울대입니다. 어차피 한국에서 자리잡을 거면 하버드 졸업장은 대학원가서 따도 되고 우선은 학부를 서울대를 나오는게 훨씬 더 유리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아이들이 가수를 하고 싶다고 하면 유명한 작곡가 박진영, 유희열, 방시혁도 모두 스카이를 나와서 저리 훌륭해졌다며 일단 공부하라고 하고요.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해서 우선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합니다. 모든 것의 기본이요 기초가 ‘공부'입니다. 이 곳에서 공부는 수단이 아닌 목적입니다.
하지만 1년 남짓 이 생활을 하다보니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아이들에게 ‘독립심'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초등학생 아이들과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 짐이 어디에 있는지, 자기 옷은 뭘 가져왔는지도 모릅니다. 미국 아이들은 초1때도 혼자 가방싸고 필요한 물건들을 스스로 챙기는데 이곳 아이들은 뭘 물어보면 전부 엄마에게 달려갑니다. 심지어 여유시간이 생길때도 “엄마 나 뭐해?”라고 자기 스케쥴을 엄마에게 물어봅니다. 자유시간을 스스로 계획하고 제어할 수 없는 이 곳 아이들이 참 안쓰럽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부터 스스로 자기 짐을 싸온 저희 딸도 친구들을 보며 언제부턴가 저한테 모든 걸 해달라고 해서 버럭하기도 했죠. 둘째, 공부를 할 때 ‘왜'를 묻지 않습니다. 그냥 합니다. 엄마가 시키니까 합니다. 근데 그걸 안하면 학원 레벨테스트를 붙을 수 없으니 합니다. 레벨테스트를 붙고 특정 학원에 붙었다는 사실이 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합니다. 아이들에게 공부 왜이렇게 열심히 하냐고 물어보면 “엄마가 좋아하니까, 칭찬받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합니다.
셋째, 자기 의견이 별로 없습니다. 미국 교육과정 중에 가장 좋았던 점은 아침마다 모여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데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말할 기회가 많다는 거였습니다. 심지어 도대체 이 시간에 왜 저런 쓸데없는 말을 하지?라고 느껴지는 말들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 그 이야기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경청하는 선생님과 적당한 피드백이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는걸 자연스럽게 만들더라고요. 하지만 한국교육은 여전히 정답만을 말해야할 것 같은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어릴 때부터 사교육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학원 다니기 싫지 않니?”라고 물으면 대답을 안합니다. 스스로도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는걸 알고 있는 듯 시키는 일을 하기에도 벅찬 아이들입니다.
이곳의 부모들은 스페셜원이 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대한민국에서 스카이에 들여보내기만 하면 목표달성입니다. 일단 그곳에 가기만 하면 조금 실수하고 넘어져도 어느정도 커버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렇기 시키다 사춘기때 애들 다 망가지면 어떡하냐고 해도 그 시기까지 감안해서 일찍 시키는 거라 합니다. 망가져도 영어는 해놨으니 그걸로 뭐라도 먹고 살겠지랍니다. 이 분들과 얘기하고 있다보면 한숨이 나오면서도 그런가??? 라고 고개가 끄덕여지는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송이라 더밀크 기자 (미 보스턴 체류 후 현재 서울 거주)
이곳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스페셜 원이 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대한민국에서 스카이에 들여보내면 목표달성입니다. 꿈이요? 모든건 대학에 가고 난 후의 일이죠.송이라 더밀크 기자
7. 한국에서 학원 수업을, 선행학습을 안하고 따라갈 수 있을까?
초등 5학년 아이가 사춘기가 오면서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영유도 안보내고 영어학원과 수학학원, 중간에 간간히 아이가 하고 싶은 피아노, 바이올린, 태권도, 수영 등을 보냈습니다. 아이가 하기 싫다고 하면 거의 그만둬서 이제 예체능은 하고 있는게 없는 상태죠. 수학하고 영어만 하는데. 다른 강남 아이에 비해 정말 안시키는건데도. 아이는 왜? 원기둥의 부피를 구해야 하는지. 살면서 원기둥을 부피를 구해서 사용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합니다. 사실 삶에 있어 원기둥의 부피를 구할 필요는 없죠.
1~3학년때까지는 주어진 숙제와 시험을 잘하는 아이었는데 4~5학년이 오면서 전혀 안하고 있어요. 6개월 동안 그런 아이를 기다려주고 당근과 채찍을 주며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 수록 더 어려워지는 과정인데다 초5아이들이 중학 과정을 하니 당연히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학원 선행 구조를 한국에서는 안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초5인데 초 5과정을 들으려면 초2,3 학년과 같이 들어야 합니다. 초5 학년 또래와 함께 수업을 하려면 싫어도 무조건 선행을 해야 하는 구조인거죠. 아이가 선행을 못 따라가도 그냥 두는 게 한국 현실입니다. 학원을 가야 친구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학원을 안가면 집에 혼자 외톨이가 됩니다. 모두 학원에 가 있으니.
지난 주말 수학학원 선생님께 면담을 신청해 본래 내주는 숙제의 절반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절반이라도 제대로 하는게 낫겠다는 판단에서 요청했습니다. 허준이 교수같이 뛰어난 아이가 아니어도. 스스로 궁금한 사안이 생기고 그걸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는 아이가 됐으면 합니다.
허준이 교수처럼 아이에게 뭔가 돌파구를 만들어줄 멘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부모가 기존 틀대로 아이를 묶어두려는 생각을 버려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 한국 시스템에서 교육 받은 부모가 아이에게 그렇지 않은 길을 열어주는건 참 어려운 일이네요.
김인순 더밀크코리아 대표 (서울 거주) : 주요 저서로 파괴자들 ANTI의 역습(공저)가 있다
허준이 교수처럼 아이에게 뭔가 돌파구를 만들어줄 멘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부모가 기존 틀대로 아이를 묶어두려는 생각을 버려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김인순 더밀크코리아 대표
8. 한국에서 스스로 질문을 하는 교육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후 미국에 박사학위를 받으러 갔을 때 제 관심분야와 지도교수님의 연구분야가 다소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한국 교육에서 배웠던 대로 지도교수님이 저의 연구분야에 대해 생각하는 방향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박사과정동안 제가 어떤식으로 연구를 하고, 어떻게 교수님을 서포트하면 되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때 지도교수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죠.
“This is your Ph.D.”
순간 할 말을 잊었습니다. 한국 대학 & 대학원의 생활은 내 의견도 중요하지만 최종 의견이나 결정은 교수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지도교수님의 저 한마디는 제가 그동안 갖고 있던 교육의 가치관이 흔들릴 정도의 임팩트가 컸던 말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한국 교육제도안에서 말 잘 듣는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공부를 잘 하는 것’이라는 프레임 안에 살았고 시험점수로 저의 학창시절을 평가했습니다. 말그대로 획일화된 제도 속에서 ‘지식’보다는 ‘성적’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시험 점수는 잘 받았을지 몰라도 지식의 깊이가 얕았고 사고가 확장되지 못한 식으로 공부를 한게 아닌가..란 생각을 하곤 합니다.
중,고등학교의 목표는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었고, 대학교 이후의 목표는 좋은 직장을 잡는 것이었지만 ‘공부를 하는 목적’,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했습니다. 고민을 하더라도 그 고민의 깊이가 깊어지면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성적이 떨어질까 이내 생각을 지워버리기가 일쑤였던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수년간 제도속에서 ‘착실하게’ 공부를 했던 학생이었기에 미국에 와서 들은 저 한마디는 저에게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고 그 이후 제 삶에서, 아이의 양육에서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은 저희때보다 아이들의 수준이 상향평준화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한글을 떼지 않은 아이들에게 영어를 먼저 가르치고, 모든 과목 선행학습을 위해 학원을 다니는 정도가 더 심해졌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이미 한국 교육이 과열화되어 있고 사회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는 상황에서 서양식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는건 옳지 않아 보입니다. 지금의 제도를 바꾸려고 하면 할수록 더 심한 사교육이나 획일화된 제도가 생길지도 모르거든요. 어떻게 생각하면 한국의 과열화된 교육과 상향평준화된 실력 덕분에 임윤찬을 비롯한 유명한 영아티스트들이 배출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공부를 잘 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공부 말고도 필요한 것이 많고, 즐거운 것이 많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예술 평론가인 존 러스킨은 영국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데생을 가르치려고 애를 썼던 사람입니다. ‘존 러스킨의 드로잉’이란 책을 집필하면서 그가 데생을 강조했던 것은 ‘그림을 잘 그리는 기술’보다 ‘사물을 관찰하고 이를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예술가들의 명작을 제대로 즐기게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잘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여줬으면 좋겠고 언론, 미디어, 교육, 다양한 기관의 사람들이 꾸준히 인생에 힘이 되는 가치들을 고민해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도적으로는 인서울에 편중된 인프라가 지방으로 확산되서 도시가 골고루 성장해야할 것 같은데 이건 과거 정권에서도 여러번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실패했던 부분이고 이런 정책을 낸 사람들도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또 멀리서 있기 때문에 이런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할 수 있지, 막상 제가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저도 한국의 시스템에 그대로 동요되어버릴 것 같단 생각도 듭니다.
김현지 더밀크 UX 콘텐츠 매니저 (미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산업디자인 박사, 현 아일랜드 거주) : 주요 저서로 '아이와 함께 런던'이 있다.
한국에서 서양식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는건 옳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공부를 잘 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공부 말고도 필요한 것이 많고, 즐거운 것이 많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김현지 더밀크 UX 콘텐츠 매니저
9. 한국 교육 시스템은 '질문하는 법'을 왜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칠 때쯤 “등급으로 평가되는 우리가 도살장에 갇힌 돼지 같다” 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한번 올렸다가 교무실에 소환 당한 적이 있었어요. 질문을 억압 받은 채 주는대로 먹어야 했던 지식들. 상대평가 시스템 안에서 줄세워진 1~9등급. 모두가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는 평가 구조가 아니었죠.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학생, 학부모, 교사)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걸 느끼고 있지만, 하나같이 묵인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라는 공부만 하는 게 맞는 걸까?’
‘이렇게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면 난 더 행복해질까?’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모든 공부(수시, 정시)를 손에서 놔버렸습니다. 남들이 하라는 공부가 아니라 내가 진짜 궁금한 학문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학교에선 시, 철학 및 심리학 책을 읽었고, 방과 후엔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러 나갔습니다. 엄마, 선생님과 많이 부딪히고 싸워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외로웠지만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일이었던지라 홀로 부단히 공부를 이어나갔습니다.
이후 저는 대학교(학사)만 세 군대를 다녔는데요. K대(서울), DVC(미국), UC버클리(미국).
아쉽게도 한국 대학은 고등학교 4학년 같았습니다. 모든 수업이 그랬던 건 아니지만, 대체로 학생과 교수 모두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스피치 수업에서 내 생각을 잘 말하는 법을 배우기보다, 잘 정돈된 대답의 템플릿을 외워야 했습니다. 그렇게 2년만에 저는 중퇴를 결심하고 미국으로 떠납니다.
미국의 교육은 달랐습니다. 암기/주입식 교육이 기본이었던 한국 교육과는 달리 미국에선 ‘나의 생각’의 힘을 길러줬습니다. 어떤 수업이든 교수님은 자꾸 제게 ‘어떻게?’, ‘왜?’ 라는 질문을 많이 던지셨습니다. 질문 하지 않으면 답을 맞출 수 없었습니다.
20명이 넘는 학생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토론을 하고, 당연한 걸 되묻고 확인하는 동료 친구들과 팀이 되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과제 하나를 하기 위해선 ‘몸과 마음’이 집중해야 했습니다.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 내 진심을 쏟는 작업이었으니까요.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며 내 경험과 내 생각을 적어냈습니다. 제출한 종이엔 전공 서적 내용이 아니라 저의 시선이 담겨있었습니다.
저는 한국 교육엔 실패(?)했지만, 그 진흙탕 속에 직접 몸을 담가보면서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 수 있는 값비싼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보편 속에 저만의 개성이 만들어질 수 있었죠.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 환경 안에서 처음 질문을 던지는 용기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J 더밀크 기자
저는 한국 교육엔 실패 했지만,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 수 있는 값비싼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보편 속에 저만의 개성이 만들어질 수 있었죠.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 환경 안에서 처음 질문을 던지는 용기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J 더밀크 기자
10. 결과만 보려는 교육 시스템, 바꿀 수 있을까?
한 줄 요약: 한국교육은 결과 위주, 미국교육은 경험 위주. 인재는 만들어지는 것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것. 그러므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환경이 갖추어져야 한다.
한국과 미국의 공교육과 사교육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학생으로서의 입장과 어린 늦둥이 동생들의 교육에 참여한 학부모 같은 형의 입장으로서 저의 생각을 이야기해봅니다.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과 미국의 교육방식들은 누구를 위한 교육, 학교, 학원인지에 따라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누구를 위한 보다는 무엇을 위한 교육인지부터 생각해보았습니다.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철저하게 결과 위주로 디자인되어있고 나누어져 있습니다. 요즘은 어떤지는 모르지만 제가 한국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내신과 성적이 가장 우선시되어 있었죠. 고등학교 또한 등급으로 나뉘고 학생들을 피라미드에 올려놓습니다. 한국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는 이유 또한 이 순위를 매기고 결과를 중요시하는 시스템에 학생들이 낙오되지 않도록, 앞서가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다니는 것이지요.
제가 최근에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드리자면, 한국 일반고등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인터넷 강의를 보는 일이 흔하다는 겁니다. 제가 결정적으로 한국교육 시스템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 순간은 수원에서 일반 중학교에 재학중에 수학과 영어 수업들이 성적순으로 반이 나누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영어/수학을 더 잘하는 아이들끼리 같은 반에 있게 되면 더 효율적으로 진도를 나갈 수 있겠지만, 이게 과연 옳은 방식일까요? 대놓고 학생들을 실력순으로 나누고 더 많은 것을 아는 학생들이 성적이 조금 덜 나오는 학생들과 격리된 채로 공부한다는 건 제가 학교에 다니던 당시는 공교육 시스템 자체가 다양한 실력과 경험을 가진 학생들이 협업 하는 것보다는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우선시로 그 격차를 늘리는데 집중되어있다는 겁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성적이 잘 나오는 학생들은 발전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그 과목에 대한 자존감, 자신감이 하락하면서도 그 학생들의 포텐셜 자체가 뿌리째 뽑혀버립니다.
그럼 이제 허준이 교수님의 이야기를 보면, 허준이 교수님은 학창 시절 때 가장 못하고 자신이 없던 과목이 수학이었습니다. 시인이 되고 싶어 학교를 자퇴했었죠. 하지만 허준이 교수님의 중학교 때 체스 퍼즐에 대한 기억, 경험, 그리고 흥미에 더한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님의 멘토링과 격려가 허준이 교수님의 천재적 가치를 피울 수 있게 하였죠. 이처럼 제가 생각하는 미국 교육에서 중요시해지는 것은 결과가 아닌 경험입니다. 허준이 교수님의 실패한 수학 과목들이 아닌, 재미로 풀던 체스 퍼즐을 수학적으로 펼쳐볼 수 있도록 도와준 호기심과 그 호기심의 천재적 재능을 알아본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님의 관심이었죠.
제가 미국에서 공부를 할 수가 있게 된 계기는 저의 아버지의 경험을 우선시하는 철학 때문입니다. 군부정권의 불안정을 직접적으로 겪으면서 공부하며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이루었지만, 초청 스칼라로 시카고를 오게되고 노스웨스턴대학교 도서관을 들어서서 거기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자마자 이러한 환경에서 다시 공부와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과 자식들 또한 이러한 공부와 경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 덕분에 저는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철학을 이어받은 저는 무엇을 배우는지보다는 그 경험을 중요시했습니다. 제가 초중고 시절 착실한 학생이 아니어서 그런 거일 수도 있지만 전 선생님들의 인생 담과 친구들과의 우정이 제가 했던 공부보다 훨씬 가치 있는 요소들로 봅니다. 그래서 NYU에 와서도 하나의 전공과 커리큘럼에 제약받지 않고 제가 흥미를 느끼고 허준이 교수님처럼 저의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님을 찾아다니기 위해 자체 전공을 택했습니다. 제 어린 동생들의 과외선생님이기도 한 전, 학교 과목을 절대 도와주지 않았고 제가 좋아하는 시집을 읽어주고, 흥미 있는 세계의 역사, 문화, 신화를 알려주고, 어린아이들이 접하지 않는 세상의 이야기들을 해주고, 동생들의 사고와 창의력을 자극할 수 있는 숙제를 내어주었습니다.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자라나는 새싹들에 농약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크고 잘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옳게 자라는 것일까요. 먹는 것은 친환경을 추구하면서 교육은 왜 인위적인 방식으로 결과를 추구하는 것일까요.
반면 미국에서는 자라는 새싹들에 물과 햇빛만을 주고 어떻게 성장할지, 무엇으로 성장할지는 새싹들에 맡기고 다른 큰 나무들이 그 새싹들에 햇빛을 내어주며 다른 새싹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합니다. 물론 자라면서 트러블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트러블 또한 경험되고 그 경험 덕분에 더 튼튼히 자라고 원하는 방향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인재들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어느 부분에서는 천재적이고 슈퍼인재일 수 있는데 그걸 자각하지 못할 뿐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은 학생들이 성적이 안 좋으면 절대 인재일 수가 없다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대한민국은 폐허에서부터 꿈과 희망이 전세대들의 노력과 합쳐지며 이루어진 국가입니다. 하지만 꿈과 희망없이 노력만으로는 대한민국을 더욱 발전시켜나갈 학생들의 새싹을 키울 수는 없습니다. 인생에서의 결과물은 성적과 순위가 아닙니다. 살면서 느끼고 경험하는 것의 완전체가 우리가 모두 추구하는 진정한 결과죠. 경험이 우선시되고 따르면 결과도 결국 따릅니다. 결과, 성과, 비교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삶에 대한 경험과 만족도가 충족되어야 흙 속에 묻힌 인간이란 씨앗은 진정히 피어날 수 있습니다.
조ㅇㅇ 더밀크 인턴 리서처 (뉴욕대 재학 중)
미국에서는 자라는 새싹들에 물과 햇빛만을 주고 어떻게 성장할지, 무엇으로 성장할지는 새싹들에 맡기고 다른 큰 나무들이 그 새싹들에 햇빛을 내어주며 다른 새싹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합니다. 물론 자라면서 트러블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트러블 또한 경험되고 그 경험 덕분에 더 튼튼히 자라고 원하는 방향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조ㅇㅇ 더밀크 인턴 리서처
11. 한국 교육의 장점은 없을까?
저는 과학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고 과학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KAIST에 입학한 후 반수 하겠다고 대치동에서 반수생 생활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 공교육과 사교육 최전선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학고 입시를 위해서는 고등학교 수준을 다 선행학습하고 경시대회 수상을 하기 위해 하루종일 학원에 있었고 과학고 입학 이후에도 아침 7시 - 저녁 12시 까지 이어지는 학습 스케줄을 소화했습니다.
이 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과학고 입학 혹은 대학교 입학을 목표로 정하고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왜 내가 이 학교를 가야하지?’, ‘이 과목이 왜 필요하지?’라는 고민을 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할 일이 쌓여있고 새로운 지식들을 습득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한국 교육의 큰 문제는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의 공부량이지만 이걸 해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쟤 봐 잘 하잖아' 라는 말로 학생들을 다그치고 일단 생각없이 나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문제도 많고 어떻게 보면 무식한 방법이지만 한 편으로는 완전히 못 따라오더라도 어느 수준의 지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한국 교육의 장점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한국 교육 탓에 학생들이 꿈이 없어진다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꿈이 없는 학생의 경우 혼자서 무언가 결정해서 하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그래도 훗날 무언가 하고싶어질 때 기초 지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좋을 수 있다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모두를 평범한 공산품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본인의 목표가 있고 창의적인 학생에게는 최악이지만 반대로 의지가 없는 학생에게는 그래도 어느정도의 기반을 제공해주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백승호 더밀크 서비스개발팀 엔지니어 (대전 거주)
제가 생각하는 한국 교육의 큰 문제는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의 공부량이지만 이걸 해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쟤 봐 잘 하잖아' 라는 말로 학생들을 다그치고 일단 생각없이 나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백승호 더밀크 서비스개발팀 엔지니어
12. 임윤찬, 허준이가 왜 국가의 자랑이 되야 할까?
고려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정규 교육(공교육)만 받아온 저로서는 ‘천재를 키우기 위한 교육 방식은 뭘까’라는 주제 자체가 잘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예술 분야의 경우 기초 수준의 국가 공교육 시스템으로는 엘리트, 수월성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긴 어렵다고 보고 있으며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입니다. 결국 ‘재력을 갖춘 부모만 사교육을 통해 지원이 가능하지 않나’라는 회의적인 시각을 떨치기 어렵네요. 한예종조차 입시 자체는 사교육(학원 시스템)화 돼 있는 게 현실입니다. 물론 일부 극소수 예외 사례는 존재하겠지만요.
근본적으로는 ‘왜 인위적인 천재 육성이 필요한가’도 모르겠습니다.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는 한 명의 천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고, 천재의 필요성도 절감하지만 이것이 국가 단위 혹은 민족 단위로 추구해야 할 ‘교육의 목적’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깁니다. 아이들을 천재로 육성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 가르치는 게 더 훌륭한 교육이라는 게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천재를 만들겠다는 목적’이 아이의 행복보다 우선되어선 안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피아노 치는 게 미치도록 행복한 아이가 있다면 그게 그 아이를 천재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천재를 만들기 위해 피아노를 치게 한다면 그 아이는 높은 확률로 불행해 하겠죠.
같은 맥락에서 임윤찬, 허준이 사례가 왜 국가와 민족의 자랑이 되어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들의 성과를 개인이 아니라 ‘한민족’의 성과로 바라보는 순간 민족주의, 국가주의라는 틀,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이런 인식은 그 테두리 안에 속하지 않은 타자를 ‘적’으로 인식하는 배타주의로 흐르기도 쉽고요. 지나친 국가주의, 민족주의는 한국인이 가질 수 있는 다양성을 저해함으로써 오히려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예술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그리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모범 시민’을 육성하는 목적이라면 저는 한국의 엘리트 공교육이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사교육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친구들이 부러워 직접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 해서 그 돈으로 학원을 잠시 다닌 게 전부였습니다. 이후 운 좋게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에 진학했는데, 그게 공립 특목고였던 대구외국어고였습니다. 학교에서 먹고 자는 기숙학교로, 24시간 주6일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밤에는 알아서 자율학습을 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공립이라서 학비가 거의 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중적으로 주요 교과 과정을 학습할 수 있었고, 친구들과 서로 가르쳐 주고 배우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 됐습니다. 공부만 한 것이 아니라 동아리 활동 등 취미활동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했었고요. 대구외국어고라는 공립 특목고가 아니었다면 학비 걱정 없이 어디에서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국외국어고의 교육 시스템은 한국의 일반적인 주입식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되돌아보면 ‘스스로 무언가를 열심히 해보려는 열정 있는 친구들’이 다른 점이었습니다. 이런 친구들의 존재 자체가 건전한 자극으로 작용해 다양한 상호작용이 일어났고, 훌륭한 교육 환경이 되어줬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부분이 지적 창의성, 다양성에도 도움을 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환경에 노출하는 것도 좋지만, 뇌에 도전적 자극을 줄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추정입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교육의 질과 경제적 여건의 상관 관계입니다. 이상적 교육이 무엇인지 그게 한국적 교육인지, 미국적 교육인지에 대한 답은 오히려 쉽습니다.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이 아닌,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교육 환경 환경에서 탄생하는 슈퍼 인재는 미국에서 더 나오기 쉽겠죠. 다만 그것조차 경제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미국에서도 좋은 학군의 부동산 가격이 비싸고,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냅니다. 돈과 관계 없는 천재 육성이 지금 시대에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요? 미국 대학교 학비, 대학원 학비는 또 어떤가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경제적 여건과 관계 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인재를 만들어 내는 건 한국의 공립 특목고, 한국의 서울대 시스템 등이 거의 유일한 모델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공립 특목고, 서울대의 입시 전형이 사교육에 영향 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존재하겠지만, 주입식 교육을 피하고자 하는 정책(교육부), 이른바 열린 교육이라는 추상적 명제가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기는 사례를 너무 많이 목도했습니다.
정리하자면 한국의 공립 특목고, 서울대 시스템은 경제적 여건의 영향을 덜 받고 우수한 인재를 만드는 거의 유일한 시스템이라는 점, 그러니 존치하는 게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견입니다. 주입식 교육, 획일화된 교육을 지지하는 게 아닙니다. ‘우수한 친구들’이라는 환경이 만들어내는 효과가 크다는 의미입니다.
천재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하기 전 과연 그것이 누굴 위한 것인지 자문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차원의 천재가 필요하다면 인위적인 교육을 통한 천재 육성보다 ‘천재가 이주하고 싶은 국가’라는 환경을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박원익 더밀크 뉴욕플래닛장 (미 뉴욕 거주)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이 아닌,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교육 환경 환경에서 탄생하는 슈퍼인재는 미국에서 더 나오기 쉽겠죠. 다만 그것조차 경제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입니다.박원익 더밀크 뉴욕플래닛장
13. 지리적 위치보다 교육방법에 대한 부모의 가치관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최근 오랜만에 미국(뉴저지)를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가서 놀랐던 것은, 미국에서 구몬이 꽤 인기가 많아 진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는 2명의 조카가 있는데 그 중 큰 아이인 5살 조카의 경우 학습지 시스템을 미국 뉴저지에서 그대로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방법과 형식은 한국과 조금 다릅니다. 한국에서 하는 구몬은 학습지 선생님이 집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에서는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학습센터에 데려다 주고 20분 정도 숙제 검사를 합니다. 저의 조카 뿐 만 아니라 한국계가 아닌 미국 현지 학부모들이 구몬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뿐 만 아니라 캐나다 전역에서도 구몬이 학습지와 학습센터 운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학습센터에서 집으로 새로운 학습지를 가지고 와서 숙제를 하는데, 이 모습을 보고 저는 '아시아의 사교육 시스템 중 일부가 미국으로 잘 파고든 사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이 한국인이어서 학습지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100% 한국 공교육의 수혜를 받은 저와는 반대로 누나는 100% 미국식 교육을 받고 자랐고 매형 또한 한국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학습지 선택은 해당 동네의 트렌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카가 저녁마다 학습지를 하기 싫어 하거나, 한번에 몰아서 숙제를 해버리는 모습이 한국에서 학습지를 하며 하기 싫어 했던 과거 저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했는데요. 조카의 경우 학습지를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선택해서 시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숙제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보며 한국이나 미국이나 아이들의 행동과 특성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미국의 한 가정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을 24시간 동안 온전히 부모님이 돌봐 주는 것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학원, 학습지, 특별활동 등 외부의 힘을 빌리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당연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교육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죠.
조카의 경우 학교 수업 외에 학교 밖에서 태권도, 수영, 하프, 축구 수업 등 여러 가지 수업을 듣고 있는데요. 아이가 하고 싶어 하고, 배우고 싶어 해서 외부 활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합니다만, 미국에서도 한국에 있는 아이들처럼 방과 후에 너무 많은 활동과 숙제들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제가 쓴 사례들은 영재교육이나 자신의 탤런트를 발견하고 뒤 늦게 자신의 재능을 꽃피운 분들과는 또 다른 이야기 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냥 평범한 한 가정의 모습이었습니다. 미국의 한 가정의 학교 밖 교육 방법을 보고 한국과는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학교 밖 교육에 있어서는 미국 혹은 한국, 어느 지역이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부모가 어느 정도 아이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체력을 쓸 수 있는지,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를 바라는지 등 부모 개인과 한 가정의 가치관에 따라 학교 밖 교육 방법은 달라지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더 중점적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의 학교 내에서의 교육은 또 다른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이 주제는 더밀크의 다른 멤버들이 잘 짚어 주셨으니, 참고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김영원 더밀크 DGR팀 기자(서울 거주)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부모가 어느 정도 아이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체력을 쓸 수 있는지,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를 바라는지 등 부모 개인과 한 가정의 가치관에 따라 학교 밖 교육 방법은 달라지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더 중점적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14. 모두를 만족시키는 교육이 존재할 수 있을까?
#1. 피아노를 전공한 의상 디자이너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예원예고에서 전교1등을 놓치지 않던 피아노 유망주였는데, 대학에서는 의상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친구가 고등학교때 피아노를 전공한 것은 엄마의 강요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무대에 서면 떨리고 괴로웠지만, 무대에 서는 공포보다 엄마가 더 무서웠기 때문에 피아노를 계속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재수를 하면서 엄마가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됐고, 피아노를 그만뒀다고 했습니다. ‘대치동 타이거맘'이었던 친구 엄마의 눈에 그녀는 ‘실패자’였지만, 친구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습니다.
#2. 유학 첫 학기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친한 사람들끼리 밤늦게 모였습니다. 마침 제 생일이었어요. KAIST 모 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친구가 있었는데, 생일 축하를 해주겠다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3악장’을 연주해 주었습니다. 저 뿐 아니라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할 줄 아는 건 수학 문제 잘 푸는 것 뿐인 ‘널드(Nerd)’인 줄 알았는데, 피아니스트 수준의 연주를 하더라고요. 당연히 찬사가 쏟아졌고 질문도 쏟아졌어요. 그 친구는 부모님이 두 분다 교수님이신 집안의 외동 아들이었는데, 공부를 하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심심할 때마다 피아노를 쳤다고 합니다. 취미인 피아노도 수준급으로 치고 대한민국 최고 공대를 수석으로 졸업도 하고… ‘대한민국 특목고 최고다!’ 라며 감탄했습니다.
#3. 대학원 유학 시절, 기초 통계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요. 첫 시간에 교수님이 첫 챕터의 기본 원리와 공식을 설명해 주셨어요. 그리고 예시를 하나 풀어준 후, 학생들에게 ‘질문이 있으면 질문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이 ‘어떻게 푸는지 모르겠으면 물어보라'로 들렸는데, 미국 학생들(그 수업은 저 빼고 모두 미국인이었습니다)에게는 다르게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첫 질문은 ‘Why’로 시작하는 질문이었어요. 한 학생이 손을 들더니 “왜?! y가 wx+b 냐?”는 겁니다(회귀분석 공식: Y=wx+b). 지금까지 설명한 건 안듣고 저런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교수님 대답이 좀 충격이었어요. 공식을 한 번 더 설명해 주실 줄 알았는데, ‘굿 퀘스쳔!’을 외치더니, 각 조별로 토론을 해 보래요. 왜 y가 wx+b인지.
그 날 알았습니다. 나는 그제까지 교과서에 나온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정확히 푸는 훈련만 했지, 근본적인 질문은 별로 해본적이 없다는 것을요. 하지만, 토론을 해야하기 전까지는 문제를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한국에서 수업시간에 그런 질문은 저 뿐 아니라 아무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우리가 그 미국 대학원생들보다 더 열등하고 느끼지도 않았습니다. 아무튼 저는 통계 수업에서 A를 받았고, 그런 질문 없이도 잘 졸업했고, 좋은 기업에 취직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이 원하는 인재?
이 중 어떤 교육이 제일 좋은 교육이었을까요? ‘교육'은 무엇일까요? 학교는요?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대학교'는 국가의 목적과 철학이 철저하게 녹아있는 대표적인 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산성 있는 사회구성원을 길러내는 곳이죠. 그럼, ‘생산성 있는 사회구성원'이란 어떤 사람들일까요? 사람들이 흠모하는 ‘영재'일까요? 아니면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나와 돈 많이 벌어 세금 많이내는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최고 지도층을 위해 튼튼하게 서포트하는 적당히 똑똑한 착한 시민 일까요?
모든 시대의 모든 대학은 원하는 ‘인재상'이 다릅니다. 제가 사는 미국의 대학교육 역사를 잠시 살펴 보면 식민지 초기 시절, 미국은 영국 본토로 부터 ‘신학대' 설립을 승인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영국 왕과 왕비를 위한 담배나 옥수수 등 작물 재배나 연구하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영국은 똑똑한 리더십이 있는 식민지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청교도 출신의 개척자들은 학식있는 성직자들을 양성하고, 교육받은 시민 리더십을 키우는 것이 독립에 필수임을 깨닫고 대학을 설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비전으로 1636년에 세워진 대학이 그 유명한 하버드 대학입니다.
하지만 규모가 작고 범위가 제한된 다른 많은 식민지 대학들은 100명 이상의 학생을 등록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학위를 마친 사람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대학을 다닌 젊은이들은 정치 사상과 행동 모두에 역사적이고 특별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습니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대학들은 읽고 쓸 수 있고 책임감 있는 미국 엘리트들을 효과적으로 교육해 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1900년대를 전후로, 미국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많은 대학들이 설립됐고 팽창했습니다. 이 시대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대중들이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숭고한 학문적 추구보다는 사회 활동 및 다양한 전공등이 발전하게 됐습니다.
냉전 시대에도 대학 등록자 수는 급증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직전, 대학 등록자 수는 두 배 가까이 급증했고요. 2차 대전 후에는 전쟁에서 돌아온 베테랑들의 사회 복귀를 위해 전문대학(community colleges)이 팽창했습니다. 대공황 시절에도 미국 대학 등록생 수는 늘었습니다. 특히 공대와 물리학 분야의 펀드는 오히려 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미국 대학은 어떨까요? 21세기 미국 대학들은 ‘경영혁명(managerial revolution)’을 이루었다고 평가받습니다. 대학이 대변하는 ‘고등 교육'의 정의가 순수 학문만 아니라 직업에 대한 전문성까지 확대됐고, 독립적 경영권이 거의 보장되었다는 뜻입니다. 정부의 정책보다 대학의 정책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전 세대와는 대학의 기능이 사뭇 달라 보입니다. 그 전에는 국가 독립이나 전쟁 전후 시민 재교육, 대공황 등으로 국가의 이슈를 해결하고 대중들에게 ‘접근성(accessibility)’을 높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정부가 엄청난 지원을 해주었고요.
그런데 21세기, 특히 최근 대학 운영권에 독립성이 부여되고 정부 지원금이 줄어들면서 일반인들에게 ‘접근성'에 이슈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정부 지원금이 줄어들면 대학들은 더욱 더 ‘우수성(excellence)’를 추구할 수 밖에 없게 되거든요. 돈을 스스로 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평등함(Equality)과 우수성(Excellence)을 모두 달성할 것인가?’는 미국 대학의 영원한 숙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2022년을 기준으로, 미국 대학은 어느 쪽에 치우쳐 있을까요? 제 생각은 우수성을 추구하는데 치우쳐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준이 교수님, 임윤찬님 모두 말할 수 없이 훌륭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대학이 추구하는 바가 더 많은 대중을 향한 접근성(accessibility)에 있지 않고, 엘리트를 위한 우수성(Excellence)에 있다는 뜻은 아닐까요? 평범한 사람들은 '공교육'만 받으면서, 얼마나 탁월한 인재로 길러질 수 있을까요? 그토록 중요하다는 '창의성'은 천편일률적인 공교육을 통해 길러질 수 있을까요? 탁월한 인재로 자라나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것은 아닐까요?
미국도 한국도 정부의 대학에 대한 지원금이 줄고, 대학이 스스로 존립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대학이 추구하게 될 자연스러운 메커니즘을 따라가면, 그 끝에는 대중을 향한 포용이 아니라 존립을 위한 탁월함의 추구가 남게 되지 않을까요? 그럼, 일반 시민들을 위한 좋은 대학 진학의 기회는 늘어날까요 줄어들까요? 내가 사회 1%에 속하는 리더층이 아니라면, 대학이 요구하는 인재상이 무엇인지, 그것이 일반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한연선 더밀크 리서치 리드 (산호세 거주, UCR 교육정책학 박사수료)
미국도 한국도 정부의 대학에 대한 지원금이 줄고, 대학이 스스로 존립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대학이 추구하게 될 자연스러운 메커니즘을 따라가면, 그 끝에는 대중을 향한 포용이 아니라 존립을 위한 탁월함의 추구가 남게 되지 않을까요?
15. 교육의 관점을 성공에서 성장으로 바꾸는게 어떨까?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 진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아하(A-ha) 모멘트'라고 합니다. 저는 그런 경험을 30대에 했습니다. 지난 2012년부터 1년간 스탠퍼드대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스탠퍼드의 학부 수업을 열심히 들었는데요. 수준 높은 강의와 토론은 저를 지금의 더밀크 창업으로까지 이어지게 했습니다.
수업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구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저는 '디지털 미디어 앙트러프러너십' 이란 강의를 들었는데 12주간의 미디어 스타트업 스프린트 수업이었습니다. 당시 수업에 적극 참여하면서 깨달은 바가 컸습니다. 기자는 '글로 말한다' '기사로 행동한다'란 불문율이 있는데 기사를 넘어 '기업'을 설립해서 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한 방법론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창업'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구체화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제 주변 환경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생태계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스탠퍼드에 개설된 다양한 학제간 융합 수업을 들었는데 '유연함'이 강한 것이다라는 사실도 느꼈습니다. 세계 최고의 교수진은 유능하고 사고도 유연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학문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었습니다. 학생들도 숙제에 허덕이면서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운동도 열심히 하는데 운동도 공부하기 위한 체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스탠퍼드여서가 아니라 미국의 유력 대학(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대학)은 대체적으로 교수와 학생들의 수준이 높고 밤낮없이 공부합니다. 미국의 경쟁력은 중고등학교가 아니라 '대학'에서 나옵니다.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 엘리트 학생들은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며 경쟁하려 합니다. 미국 대학이 바로 '월드 시리즈'인 것입니다(허준이 교수도 프린스턴대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죠).
한국은 (제가 대학다닐 때와 비교해 많이 개선됐지만) 중고등학교 때 '죽었다치고' 공부하고 '대학가면 (죽어라) 논다'는 사실은 크게 변하지 않아 보입니다. 세계 수학, 과학 경시대회에서도 여전히 한국 학생들은 최상위권에 입상하지만 대학에 가면 평범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직 노벨상 하나 타지 못했습니다. 한국이 이미 글로벌 반열에 올라온 분야가 많지만 '대학'의 수준은 글로벌 톱 레벨과 거리가 있다는 것에 많은 분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모든 기준은 '입학'에 맞춰져 있습니다. 입학 연도인 '학번'이 중요하죠. 연수원 '동기'. 회사 입사 동기 모두 어렵게 뚫고 '들어갔다'는데 의미를 둡니다. 하지만 미국은 대학 '졸업 연도'에 큰 의미를 둡니다. 그래서 '동기'는 같이 입학 연도의 학생보다 졸업식을 같이 한 친구들입니다. 미국의 학생들은 중고등학교 때보다 대학 때 많은 발전을 이루게 되고 이 것은 '연봉'에도 큰 차이가 나게 됩니다. 지역 칼리지에 먼저 입학하고 종합 대학으로 편입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제 주위에도 많습니다. 입학보다 졸업에 더 의미를 두기 때문에 이 같은 제도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분은 한국에서 소위 '듣보잡' 대학을 나왔는데요. 한국 교육이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 분은 미국으로 일찍 건너와서 커뮤니티 칼리지부터 종합대학, MBA를 나오고 각종 자격증을 따서 지금은 '평생 직업'을 가졌다며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이 분은 "나는 중고등학교 때 정말 공부를 안했다. 그래서 일찍 미국으로 건너왔는데 ... 이방인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지금도 할 일이 많고 이제 시작이다. 반면 한국에서 공부 잘했던 내 친구는 좋은 대학 나와 일류 회사 들어가고 임원도 일찍 했다. 승승장구했고 의기양양했다. 꽃길만 걸었다고 봐도 된다. 그런데 이 친구는 50대 중반도 안됐는데 벌써 은퇴해서 주말이면 산에 가고 닭집 해야 하나 걱정 하고 있더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엘리트 코스'가 가지는 의미가 있지만 그 결과도 의미가 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다양한 직업을 갖고 사람마다 다른 결말을 맺습니다.
교육의 관점을 '성공(Success)'이 아니라 '성장(Growth)'에 둔다면 많은 해결의 실마리가 나올 것이라 봅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무엇이 성공인가를 가르칠 것이 아니라 성장의 가능성을 키우는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대학 때는 성장을 단단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래야 나이가 들어서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실패해도 언제든 성장할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도 이제 (겨우) 40대 중반입니다만, 살아보니 인생이 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계속 성장할 기회를 만들고 얻은 것을 감사해하며 살고 있습니다. 자녀 세대들에게는 우리 세대(저는 X세대 입니다)보다 크게 성장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 (산호세 거주) : 주요 저서로 '파괴자들, Distuptors' '앱스토어 경제학' CES2022 딥리뷰(공저) 등이 있다.
교육의 관점을 '성공(Success)'이 아니라 '성장(Growth)'에 둔다면 많은 해결책이 나올 것입니다.손재권 더밀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