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모르면 못 즐긴다? 이탈리아 오페라는?”... ‘KPOP’의 분노
브로드웨이 뮤지컬 ‘KPOP’ ‘인종차별’ 비평에 얼룩져
보수적 마케팅 방식도 문제… 개막 2주 만에 조기 종연
KPOP 조연출 맡은 김선재 디렉터 인터뷰
“신선한 오리지널 쇼 나오기 어려운 구조” 안타까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되는 오페라는 이탈리아어로 진행됩니다. 이를 두고 ‘영어가 아니라서 즐길 수 없다’고 말하는 평론가를 상상할 수 있나요?김선재 뮤지컬 KPOP 디렉터
브로드웨이 뮤지컬 ‘KPOP’의 조연출(Associate Director)을 맡은 김선재 디렉터는 “왜 뮤지컬 KPOP에서 언어를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1월 27일 보도된 뉴욕타임스 평론가 제시 그린의 비평에 문제가 많다는 주장이다.
그린은 비평에서 뮤지컬 KPOP이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즐길 수 없는 공연”이라고 평가했고, “지나치게 귀엽다, 눈을 작게 만드는 조명”과 같은 표현을 사용해 뮤지컬 KPOP 제작진과 배우, 팬들의 큰 반발을 샀다.
작품의 내용이나 형식, 예술성, 대중성에 관해서는 얼마든지 비평할 수 있지만, 그린의 비평에는 ‘백인 우월주의’에 입각한 인종차별이 깔려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 디렉터는 “현장에 공연을 즐기러 와주신 관객분들은 정말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줬다. 그린이 관람을 한 지난 금요일(11월 25일) 공연에서도 관객들은 소리 지르고 열광했는데, 왜 이런 현실을 부정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어를 모르는 분들도 함께 즐겁게 음악과 춤을 즐겼다”고 했다.
그는 이어 “그린은 무대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가 3명 밖에 없다는 점도 비꼬았는데, 이 부분은 케이팝의 특성을 잘 모르고 한 얘기”라며 “격렬한 춤과 일렉트로닉 댄스 사운드 중심의 케이팝은 원래 라이브 악기가 아닌 ‘MR(보컬을 뺀 악기만 녹음한 트랙)’을 주로 사용한다”고 강조했다.
안무가가 13살짜리 어린 연습생을 혹독하게 혼내는 장면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실제 케이팝 아이돌의 경험에서 나온 대사들이다. 한국의 교육 환경, 정서를 무시한 채 철저히 서구의 시각에서 비판의 잣대를 들이댄 것”이라고 반박했다.
케이팝을 즐기지 않는 백인 남성의 시각에서 기존 브로드웨이 문법을 따르는 뮤지컬이 훨씬 우월하다고 강조한 평론이었으며 새로운 시도 혹은 다양성의 가치는 철저히 무시된 채 인종차별적인 취급을 받았다는 게 KPOP 제작진 측의 주장이다.
27일(현지시각) 세계 공연 예술 중심지인 뉴욕 브로드웨이의 ‘서클인더스퀘어 시어터’에서 정식 개막한 뮤지컬 KPOP은 개막 2주 만인 오는 11일 막을 내릴 예정이다. 20일에 열린 프리뷰 공연에서 600석이 가득 차 기대를 모았으나 이후 마케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부정적인 리뷰까지 영향을 미치며 더는 공연을 계속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케이팝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면서도 케이팝 산업의 이면,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정서까지 포함한 특색 있는 스토리텔링 상품으로 승화시키려던 노력이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뮤지컬 KPOP팀은 11일 마지막 공연 직후 브로드웨이에서 AAPI(Asian American and Pacific Islander, 아시안 아메리칸) 문제를 논의하는 패널 토론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날 공연 좌석 200석은 아시안 아메리칸 청소년들에게 기부하고, 쇼가 끝난 후 토론을 진행한다. 토니상을 수상한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 극작가 헨리 황, 뮤지컬 KPOP의 작곡가인 헬렌 박 등이 참가하는 자리다.
김 디렉터는 “뮤지컬 KPOP은 새로운 유형의 뮤지컬이므로 기존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즐기던 분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 아니라 새로운 관객을 찾는 노력이 필요했는데, 전혀 그런 방식으로 마케팅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브로드웨이에서 고전 작품뿐 아니라 새롭고 신선한 오리지널 쇼를 보고 싶다면 이런 부분이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비평 분야도 메이저 매체는 모두 백인이 장악하고 있다. 유색 인종이 한 명도 없다”며 “세상이 바뀌었는데, 이런 보수적이고 틀에 박힌 비평 문화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