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인턴십' 팔란티어가 코딩 대신 가르치고 있는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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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우 2025.11.07 04:10 PDT
'고졸 인턴십' 팔란티어가 코딩 대신 가르치고 있는 '이것'
대학교육 무용론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팔란티어의 고교생 인턴십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출처 : 제미나이)

팔란티어 인턴십 뭐가 달랐나? 서구 문명·미국 역사·정치철학·리더십 교육
기술 기업 경쟁력? "이제 ‘기술’이 아니라 ‘문명적 사고력’"
"코딩보다 윤리"...생명과 전쟁 다루는 팔란티어의 인재상 반영
미 10월 감원 20년 만에 최고... '노동력 비축' 시대의 종말

모두 미쳤다고 했죠. 친구, 선생님, 카운셀러까지 모두 '이건 아니다'라고 했어요.
마테오 자니니,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 중에서

미국의 데이터분석 기업 팔란티어의 고졸 채용 인턴 프로그램에 합격한 마테오 자니니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주변의 반응을 이렇게 전했다. 올해 9월 18세가 된 그는 명문 아이비리그인 브라운대학 전액 장학금을 포기하고, 인턴과정을 택했다.

자니니는 "주변에서 팔란티어의 펠로우십을 해야한다고 조언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어 인턴십 경험에 대해 "회사 미션에 매력을 느끼고 내가 맡은 역할과 의사결정권이 놀라웠다"며 "어떤 회사가 입사 3일 차 인턴에게 진짜 프로젝트를 맡길까?"라며 반문했다.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인한 '대학무용론'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팔란티어의 최근 고교 졸업생 인턴십이 프로그램이 주목받고 있다. '메리토크라시 펠로우십(Meritocracy Fellowship)'라는 이 프로그램은 500명이 넘는 고교 졸업생이 지원했고, 그중 22명이 1기 펠로우로 선발됐다.

팔란티어의 인턴십은 실리콘밸리에서도 이례적인 실험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부분의 테크 기업이 여름 인턴에게 제한된 프로젝트를 주고 멘토링 위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과 달리, 팔란티어는 4개월 풀타임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펠로우로 선발된 인턴들은 월 5400달러(약 780만원)의 급여를 받는다.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친 펠로우에게는 대학 학위 없이도 팔란티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대학은 고장났다" 팔란티어, 고졸인재 채용... AI시대 '학위 무용론'

팔란티어 (출처 : Shutterstock)

팔란티어 인턴십 뭐가 달랐나? "서구 문명·미국 역사·정치철학·리더십 교육"

팔란티어의 펠로우십 프로그램은 전통적인 인재 육성 방식을 뒤흔드는 실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학을 건너뛰고 지원한 10대들에게 코딩이나 기술 교육 대신 서구 문명·미국 역사·정치철학·리더십을 집중적으로 가르쳤기 때문이다.

게티즈버그 전투지를 방문하고, 1800년대 미국의 정치가이자 인권운동가였던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자서전을 읽히고, 즉흥 연기 발표 훈련을 제공했다. 일반적인 테크 기업 인턴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커리큘럼이다.

이런 파격적 구성은 알렉스 카프 CEO의 이력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하버드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에서 법학 학위를 받은 그는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창업자와는 다른 배경을 가졌다. "미국 대학은 더 이상 유능한 직원을 양성하지 못한다"는 그의 비판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직접 대안을 제시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팔란티어가 세미나에서 학생들에게 던진 핵심 질문은 명확했다.

'서구란 무엇인가?', '서구가 직면한 도전은 무엇인가?', '서구는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가?'

이는 효율과 성장에만 집중해온 실리콘밸리가 오랫동안 외면해온 질문이다. 철학자 출신 CEO는 기술 기업이 다루는 도구가 궁극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는지, 그 근본적인 물음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우리는 어떤 문명을 지키기 위해 기술을 만드는가?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CEO (출처 : 팔란티어)

"코딩보다 윤리"...생명과 전쟁 다루는 기업의 특별한 인재상

팔란티어의 주요 고객은 병원, 보험사, 제조업체뿐 아니라 미국 국방부, 나토(NATO), 그리고 정보기관이다. 지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팔란티어의 시스템은 핵심 역할을 했다.

국방·정보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팔란티어의 기술은 중립적 도구가 아니다. 인간의 생명, 국가 정책, 전쟁의 방향을 좌우하는 도구로 평가된다.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위해 사용되는가에 따라 자유를 확대할 수도, 억압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카프가 보기에 이런 기술을 다룰 인재에게 필요한 것은 코딩 실력보다 역사·윤리·국가관·민주주의에 대한 흔들림 없는 가치 기준 등이었다. 이런 철학이 펠로우십 프로그램 전체를 관통한다.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자서전을 읽히는 데도 이유가 있다. 흑인 노예 출신으로 독학으로 글을 깨우치고 링컨 대통령에게 노예해방을 건의한 인물, 여권운동가로도 활동하며 부통령 후보로까지 나선 그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운 선구자다. 팔란티어의 기술 역시 인간의 자유를 확대시킬 수도, 축소시킬 수도 있기에 인간 중심의 가치관이 기저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다.

또 즉흥 연기 수업과 토론 훈련 역시 데이터 분석보다 더 중요한 판단력·커뮤니케이션·리더십을 키우기 위한 장치다.

펠로우들은 입사 며칠 만에 실제 프로젝트에 투입됐다. 병원 데이터 시스템, 보험 리스크 평가, 공공기관의 정보 분석, 심지어 정부 관련 업무까지 경험한다. 이들은 '코드 잘 짜는 학생'이 아니라, 순간의 판단이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민-엔지니어'로 간주된다.

기술은 현장에서 배우면 되지만, 현장에서 나오는 가치 판단을 위해선 다른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 팔란티어 펠로우십의 핵심이다. 팔란티어가 원하는 인재는 코드를 잘 짜는 테크니션이 아니라, 회사 미션을 이해하고 민주주의적 가치를 지키며 기술의 사회적 영향까지 고려할 줄 아는 '문명 관리자(civilization engineer)'다.

미 기업들, AI 충격파에 20년 만에 최대 감원

팔란티어의 파격적인 고졸 채용 프로그램은 미국 기업들의 대규모 감원 물결 속에서 진행됐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는다.

AI가 산업을 재편하면서 미국 기업들은 20년 만에 가장 많은 감원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휴대전화 등장 때와 유사한 '파괴적 변화의 순간'이 도래했다고 분석한다.

아웃플레이스먼트 전문 기업 챌린저, 그레이 & 크리스마스(Challenger, Gray & Christmas Inc.)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지난 10월 15만3074개의 일자리 감축을 발표했다. 이는 작년 같은 달보다 거의 3배에 달하는 수치로, 기술 및 창고물류 부문이 주도했다.

이 회사의 최고매출책임자 앤디 챌린저는 "이는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산업이 변혁을 겪었던 2003년 이후 10월 기준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그는 "일부 산업은 팬데믹 때의 채용 붐 이후 조정을 겪고 있지만, AI 도입, 소비자 및 기업 지출 약화, 비용 상승이 긴축과 채용 동결을 유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초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감원은 100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는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다. 같은 기간 동안 미국 기반 기업들은 2011년 이후 가장 적은 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10월까지의 계절성 채용 계획은 챌린저가 2012년 추적을 시작한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챌린저는 "지금 해고된 사람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빨리 확보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으며, 이는 노동 시장을 더욱 완화시킬 수 있다"며 "금리 인하와 11월의 강력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현시점에서는 2025년에 강력한 계절성 채용 환경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몇 주 동안 타겟은 수년 만의 첫 대규모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총 1800개 직책, 전체 기업 직무의 약 8%를 감축할 계획이다. 아마존닷컴은 1만4000개의 기업 직무를 삭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CEO가 AI가 회사 인력을 줄일 것이라고 경고한 후 나온 조치다.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는 1000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스타벅스, 델타항공, 카맥스, 리비안 오토모티브 등도 감원 행렬에 동참했으며, 몰슨 쿠어스 비버리지(Molson Coors Beverage Co.)는 정규직 인력의 약 9%를 감축하기로 했다.

(출처 : 블룸버그)

더밀크의 시각: AI 시대, 기업의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사고력’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전환 속에서 한국은 어떤 변화를 모색해야 할까.

한국은 여전히 학벌 중심 구조가 강하다. 불확실성 속에서 인재들은 '의대 지상주의'로 향하고 있다. 이유는 역사적으로 쌓여진 성공 방정식이 ‘스펙→취업’의 선형 구조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명 재설계'급 변화가 예고되고 있는 AI 시대에는 기술(스킬)보다 판단력·윤리·정체성·역사적 이해 등 종합적 판단력이 인재의 수준을 결정하고 있다.

AI는 이미 우리의 일상, 행정, 국방, 금융, 교육에 깊숙이 들어왔다. 이때 필요한 사람은 기술이 가져올 사회적 영향을 예측하고 책임지는 사람이다.

한국의 대학·기업·정부도 이제 기술 교육의 양적 확대를 넘어 문명적 기준을 갖춘 인재를 키우는 체계를 고민해야 할 때다.

기업이 확보해야 할 핵심 역량은 정확한 질문을 던지고, 복잡한 상황을 읽어내며,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판단형 기술자’다. 이 핵심 역량을 갖춘 인재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를 위해 기업 내부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국내 기업 역시 기술 인력을 대상으로 문해력·윤리·산업구조·정책 이해를 아우르는 ‘코어 커리큘럼’을 구축해야 한다. 기술자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의 사회적·경제적 함의를 판단할 수 있는 사고 체계다.

또 하나 중요한 흐름은 대학 중심 인재 양성 체계의 약화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서, 대학 4년 교육만으로는 기업이 요구하는 실전 역량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앞으로 우수 인재는 대학 강의실이 아닌 기업·부트캠프·단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등 현장 중심 환경에서 길러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과 대학의 상생 협업을 통해 맞춤형 교육을 설계하고, 실전 프로젝트 기반 역량을 강화하는 모델이 보편화될 것으로 보인다.

팔란티어의 시도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의 기준이 기술 중심에서 ‘사고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한국 기업에게도 필요한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어떤 기술자를 키우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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