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능력'이 사라진 아이들...PISA가 보여준 AI 시대, 교육의 대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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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정 2026.09.09 18:44 PDT
'읽기 능력'이 사라진 아이들...PISA가 보여준 AI 시대, 교육의 대전환
(출처 : 크리스 정)

OECD가 발견한 아이들의 ‘조용한 학력 붕괴’...문해력의 추락
OECD 최상위권이라는 착시: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읽기 능력
AI가 대신 읽어주는 시대…아이들에게서 ‘읽는 근육’이 사라진다
핀란드와 영국이 갈라진 15년: PISA가 다시 던진 ‘지식 중심 교육’
더밀크의 시각: AI 시대가 요구하는 하이브리드 인재란?

📌 더밀크의 핵심 브리핑

OECD가 2026년 9월 8일(현지시각) 선진국 15세 학생들의 학력 성취도를 측정한 PISA 결과를 공개했다. 특히 문해력 하락이 충격적인 수준으로 전 국가에서 목격됐다. 놀이 공부를 주창했던 핀란드가 처참하게 무너진 가운데 AI 시대 교육 시스템에 생긴 균열을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OECD가 발견한 아이들의 ‘조용한 학력 붕괴’...문해력의 추락

아이의 성적표에는 문제가 없다. 과제는 제때 제출이 됐고 발표 자료도 깔끔하다.

그런데 아이가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게 언제인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떤가? 이 장면이 과연 소수의 가정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일까? 안타깝지만 현재 다수의 부모가 같은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실제로 이 장면이 특정 가정의 일만이 아니라는 것이 국제적인 데이터로 확인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년마다 만 15세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측정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공개한다.

최근 조사는 팬데믹 직후 치러져 점수가 무너졌고 각국의 정책 당국은 이번 시험에서 반등을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일 정도로 정반대였다.

특히 선진국 아이들의 점수가 크게 떨어졌다. 문해력에서의 하락 속도는 심각할 정도였다.

이번 평가에는 전 세계 91개국에서 약 76만 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사실 점수의 하락 추세는 팬데믹 이후의 사건이 아니다. PISA에 빠짐없이 참여한 OECD 23개국의 평균 점수는 이미 2012년 정점을 찍은 뒤 계속 하락해왔다.

읽기와 수학 영역은 심각하다. 지금의 15세는 10년전 한 살 아래인 14살 학생이 받았을 법한 수준의 점수를 받고 있다. 학년 하나가 통째로 증발한 셈이다.

상위권은 여전히 아시아다. 2018년 이후 처음 참여한 중국이 과학과 수학에서 OECD 평균보다 무려 100점이나 높은 점수로 압도했다. 다만 중국은 가장 부유한 4개 성에서만 시험이 치러져 점수가 부풀려졌다는 비판을 받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 뒤를 이어서는 싱가포르와 마카오, 대만, 일본이 이름을 올렸다. 서방에서는 에스토니아가 최고 성적을 유지했고 영국은 세 과목 모두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다.

(출처 : 크리스 정)

OECD 최상위권이라는 착시: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읽기 능력

한국은 여기서 어느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을까?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수학과 과학, 읽기 과목들이 여전히 최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평균 점수도 과학 526점, 수학 522점, 읽기 501점으로 OECD 평균을 모두 한참 웃돌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의 경쟁국들을 상대로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다. 평균 점수 역시 일본에 이어 다음으로 위에 언급된 아시아 국가들 중 가장 낮다. 더 큰 문제는 추세다.

직전 평가인 2022년과 비교하면 과학은 528점에서 526점으로 2점이 빠졌고 수학은 527점에서 522점으로 5점, 읽기는 515점에서 501점으로 14점이 빠졌다. 교육부는 하락폭에 대해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추세는 유의하다.

한국이 PISA에 처음 참여한 2000년의 읽기 점수는 522점이었고 이번 501점은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역대 최고점이었던 2006년의 556점과 비교하면 무려 55점이나 아래다. 20점이 1년 학습량이라는 기준을 적용했을때 20년 사이 한국 학생들의 읽기 능력이 두 학년 이상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성취 분포도는 더 심각하다. 읽기에서 상위 성취수준의 학생 비율은 13.3%에서 10.3%로 줄은 반면 하위 성취 수준 학생 비율은 14.7%에서 17.8%로 늘었다. 수학 역시 마찬가지로 상위권 비율이 줄고 하위권 비율이 증가했다.

OECD 전체에서 목격된 상하위 격차 확대가 한국 안에서도 똑같이 재현된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처음 도입된 혁신 영역인 '디지털 학습 능력' 역시 한국은 538점을 기록해 중국, 싱가폴, 일본, 대만, 그리고 에스토니니아에 이어 다음을 기록했다.

(출처 : 크리스 정)

AI가 대신 읽어주는 시대…아이들에게서 ‘읽는 근육’이 사라진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부는 팬데믹의 여진을 꼽는다. 이번에 시험을 치룬 학생들은 팬데믹 당시 열 살 안팎이었다. 당시 학생들은 원격 학습등으로 인해 한 학년 수준의 학습 성취도를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더 구조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다.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은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일상이 되면서 아이들이 복잡한 텍스트를 해석하는 연습 자체를 하지 않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근거로 문해력 평가에서 지문을 빠르게 훓고 지나가면서 정작 답은 많이 틀리는 '성급한 독자'가 늘었다고 강조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에서 재미로 책을 읽는다고 답한 9세 아동의 비율은 1990년대 60%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37%에 불과하다.

문제는 문해력은 하나의 과목이 아니라는 것이다. 잘 읽는 능력은 수학과 과학에서 진도를 나가는 전제 조건에 가깝다. 읽기 능력의 하락이 다른 과목의 점수까지 끌어내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AI가 개입한다.

지금까지는 'AI가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는가'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번 데이터는 그보다 앞선 문제를 제기한다.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고 AI가 요약해준 결론만 소비하는 습관이 계속되면 긴 텍스트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서 만들어지던 '읽는 근육'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치명적인 이유는 AI를 제대로 다루려면 AI가 내놓은 답이 맞는지 판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판별할 수 있는 재료는 결국 머릿속에 축적된 지식과 원문을 끝가지 읽어낼 수 있는 인내력이다.

번역기가 있다고 외국어를 몰라도 되는 것이 아니라 번역이 틀렸을 때 알아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교육의 미래' 시리즈에서 다뤘던 'AI 오케스트레이터'라는 인재상은 지휘할 대상을 검증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출처 : 크리스 정)

핀란드와 영국이 갈라진 15년: PISA가 다시 던진 ‘지식 중심 교육’

이번 시험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교육의 방향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 두 나라, 핀란드와 영국의 사례다. 2000년 첫 PISA에서 세계 1위에 오른 국가는 바로 핀란드였다.

하지만 핀란드는 이후 '놀이 중심'의 교육으로 방향을 틀었고 결과는 점수로 나타났다. 이후 핀란드의 점수는 그 어느 나라보다 가파르게 떨어졌고 이번에도 하락세가 이어졌다. 2000년의 고득점은 사실상 1990년대까지 학교에 남아 있던 전통적 교수법의 결과였던 것이다.

반면 그 반대편에 영국이 있다. 약 15년 전부터 영국은 세계적 흐름과 반대로 움직였다. 다른 나라들이 모호한 소프트 스킬을 강조할 때 커리큘럼을 지식 중심으로 되돌렸고 시험을 엄격하게 만들었으며 학교 감사를 강화했다.

효과는 극적으로 나타났다. 바로 옆 스코틀랜드의 경우 20년 전만 해도 잉글랜드 학생들을 앞질렀지만 지금은 뒤처져 있다. 학생 1인당 교육 지출은 스코틀랜드가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격차는 더 크다.

지금은 상황이 더 복잡하다. 현재 교육 시스템에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두 개의 방향이 있다. 하나는 아이들이 제출하는 결과물의 품질이다. AI 덕분에 결과물의 품질은 급격히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문제는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아이들의 기초 역량이다.

PISA 테스트 결과는 학생들의 역량이 무너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과적으로 미국 명문대들이 '시험 선택제'를 버리고 SAT/ACT 제출을 의무화한 흐름은 이 맥락 위에 있다. 학생들의 진짜 역량을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출처 : 크리스 정)

더밀크의 시각: AI 시대가 요구하는 하이브리드 인재란?

그렇다면 이 국면에서 '주입식 교육'을 강조해온 한국은 승자일까?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전 세계가 결과물에 대한 평가를 버리고 통제된 시험으로 평가의 기준을 바꾸는 지금, 한국은 이미 그 인프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이번 데이터가 실제로 증명한 것은 이 모델의 승리가 아니다.

핀란드식 자유 교육은 무너졌다. 지식의 뼈대 없이 탐구와 창의성만으로는 성취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이 20년 간의 기록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훈련과 시험으로 무장한 한국의 읽기 점수도 25년 만의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이는 두 모델이 스마트폰과 AI의 부상에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실패했다는 의미다.

AI 시대에는 지식과 창의성을 모두 결합한 '하이브리드 인재'가 필요하다. AI가 내놓은 그럴듯한 오답을 걸러내려면 머릿속에 대조할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암기는 창의성이 반대가 아니라 전제조건이 된 것이다. 반대로 지식만 쌓고 AI를 지휘할 질문을 스스로 설계하고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면 그 지식은 AI에 결국 밀리게 되어 있다.

반대로 중간 지대는 사라진다. 어설픈 코딩 캠프 수료증이나 얕은 데이터 분석 포트폴리오는 AI가 10초안에 만들어내는 결과물과 전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결국 확실한 지식을 기반으로 AI를 지휘해 압도적 깊이의 결과물을 만들거나 AI가 흉내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판단과 조정 경험을 쌓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

대한민국은 이제 OECD 평균에서 벗어나 최상위권에 있다고 안심해야 할 국가가 아니다. 한국의 경쟁자들은 중국과 일본 등 세계 최정상에서 경제를 움직이는 국가들이다. 이들보다 학업적 성취가 떨어진다는 의미는 미래 경쟁력에 대한 심각한 경고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당신의 아이는 지난 한 달 동안 아무도 요약해주지 않은 책을 끝까지 읽어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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