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인] 구글의 실패를 통해 본 '브랜드 패밀리' 구축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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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 2021.09.11 23:52 PDT
[이상인] 구글의 실패를 통해 본 '브랜드 패밀리' 구축의 조건
Google logo (출처 : Shutterstock)

구글은 2021년 프로덕트 아이콘의 전반적인 패밀리 아이덴티티 리브랜딩을 단행했다. 한두 개의 서비스 아이콘을 바꾸는 것이 아닌 그들의 주력 사업인 지메일, 크롬, 구글 맵 등을 전반적으로 업데이트하며 하나의 브랜드 패밀리 아이덴티티를 강조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콘 패밀리 공개 이후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하나의 일관된 스타일을 강조하고자 도입된 여러 디자인적 요소들은 오히려 시각적으로 거추장스러운 사족이 되어버렸고, 기존의 구글 아이콘들이 지니고 있던 직관성을 잃어버렸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디자인 커뮤니티에서는 구글의 실력이 이제 떨어진 것은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브랜드 패밀리 시스템 구축은 디자인으로 유명한 구글 같은 회사에도 쉽지 않다. 성공적인 브랜드 패밀리 구축을 위해선 어떠한 점을 고려해야 할까?

첫 번째, 모두에게 일괄적인 룰을 적용할 필요가 있을까?

특히 색 사용에 있어 기존의 앱 아이콘과 이번 리디자인과는 거리가 있다. 과거 지메일은 희색과 빨강, 캘린더는 파랑, 구글 독스는 파랑, 행아웃은 초록만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번 구글의 아이콘 리뉴얼은 구글 브랜드와 프로덕트 그룹 그리고 개별 프로덕트 레벨까지 하나의 일관된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그들 브랜드의 기본이 되는 네 가지 색상(빨강, 파랑, 노랑, 초록)을 반드시 모두 사용하고 선과 면의 굵기를 비슷하게 유지하는 방식으로 앱 아이콘을 디자인하고 이를 흰색 바탕 위에 올렸다.

이 때문에 기존 아이콘들이 지니고 있던 직관적인 형태는 추상화되었고, 여러 컬러의 억지스러운 조합은 시각적 부조화를 만들었으며, 흰색 바탕은 앱 아이콘을 돋보이게 하기보단 거추장스러운 장치로 전락했다. 이는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는 크게 공감 가지 않는 업데이트일 수밖에 없다.

기존 로고(위)와 새로운 로고(아래) (출처 : Google)

직관성을 너무 잃어버리지 않도록 적용 가능한 다양한 디자인적 장치를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엄격한 룰을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하려고 하기보단, 차등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고 전반적인 디자인 디렉션을 잘 유지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브랜드, 프로덕트 패밀리, 프로덕트, 기능을 관통하는 기본 디자인적 맥락을 유지하면서도 각각의 레벨별로 일관성 유지를 위해 적용하는 장치의 종류와 개수를 다르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일관성을 위해 직관성과 스토리를 포기하는 것은 옳은 선택일까?

이번 구글 아이콘 개편의 가장 큰 호불호를 양산한 프로덕트 아이콘 중 하나는 구글맵이다. 기존에 그들이 사용해 온 맵의 모습을 기반으로 한 아이콘 대신에 하얀 바탕 위에 드롭 핀(Drop Pin)이 있는 아이콘으로 바뀌었다. 물론 드롭 핀은 구글맵의 시그니쳐이긴 하다.

구글의 새로운 맵 아이콘(왼쪽)과 구글의 과거 맵 아이콘(오른쪽) (출처 : Google)

하지만 구글의 'G' 아이콘도 빠지고 맵의 모습도 없어지는 바람에 업데이트된 이후 사람들은 구글맵 자체를 스마트폰 안에서 찾느라 시간을 쏟아야만 했다. 일관성을 위해 직관성을 상실한 경우다.

반대로 애플 맵 아이콘의 경우 여전히 맵의 형태를 유지하고 직관적으로 알아보기 편하다. 또한 아이콘 디자인 안에 일관된 스토리 텔링도 재미있다. 애플 맵 아이콘이 나타내는 곳은 애플의 헤드쿼터가 위치한 쿠퍼티노다. '280'이라는 숫자는 그 헤드쿼터 옆을 지나는 280 고속도로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 고속도로 옆에는 스티브 잡스의 유작인 원형의 애플 파크의 모습이 보인다. 바로 이러한 스토리와 직관성 때문에 프로덕트 자체의 퀄리티와 별개로 앱 아이콘만큼은 애플의 디자인이 더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애플 맵 로고 (출처 : Apple)

세 번째, 결정권자의 역할과 안목이 중요하다.

이번 아이콘 리디자인 실패의 책임이 디자이너들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구글은 여전히 전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들을 보유한 훌륭한 회사 중 하나다. 오히려 이번 사태는 리더쉽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구글이 아니더라도 세상 어떤 회사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디자인은 프로세스고, 언제나 시작할 때 의도가 최종 결과물로 성공적으로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프로덕트일수록 더 많은 변수가 생긴다. 그런 만큼 디자인 리드가 얼마나 디자인 결과물을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지가 중요하고 이를 리더십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판단하는지가 중요하다.

최종 결정권 레벨은 어떤 직군의 종류가 아닌 직급의 높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자리에 디자인에 대해 이해도가 높지 않은 사람이 위치할 시 디자인 결과물의 퀄리티는 더욱더 보장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많은 기업에서 디자이너를 시니어 리더십(Executive 레벨에서 Chief 레벨)에 기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더 많이 기용되어야 하는 이유다.

구글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브랜드 패밀리 아이덴티티 구축은 쉽지 않다. 하지만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중요하다. 특히 브랜드의 프로덕트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를 구조적으로 관리하지 않을 경우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어떤 스토리를 어떻게 일관성 있게 담을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회사의 프로세스와 리더쉽의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리더십의 잘못된 판단이 비단 그들의 회사 뿐 아니라 사용자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상인님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플랫폼 그룹의 디자인 시스템 스튜디오 총괄로 일하고 있습니다.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 디자인(Deloitte Digital)의 디자인 디렉터로 일했으며, 디지털 에이전시 R/GA에서 리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근무했습니다. 베스트셀러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2019년)'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뉴 호라이즌(2020년)'을 출간한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합니다. 페이스북유튜브(쌩스터TV, 디자이너의 생각법), 클럽하우스 등에서 독자들과 활발히 만나고 있습니다. 더밀크에서는 디자인으로 세상보기 칼럼을 연재하며 최신 디자인 트렌드를 독자들께 알기 쉽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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