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상으로 보는 CES 3대 키워드… AI·지속가능성·인간안보
3000개 이상 출품… 40% 늘어 ‘역대 최대’
AI 부문 신설… 전체 응모작 7% 차지
지속가능성 부문 출품작 최대… 최고혁신상 비중도 커
인간안보 부문 처음으로 포함… “기술로 세계 문제 해결”
사이버보안·디지털 헬스 부문도 주목
세계 최대 테크 전시회 ‘CES2024’의 핵심 키워드는 무엇일까.
CES 주최 기관 CTA(미국소비자기술협회)가 발표한 혁신상 수상 제품, 배경 설명에서 발견한 핵심 키워드는 AI·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Eco-Design & Smart Energy)·인간안보(Human Security for All) 세 가지였다.
CTA가 1차로 공개한 ‘최고혁신상(Best of Innovation)’ 수상 제품 27개를 더밀크가 분석한 결과(중복 부문 포함) 지속가능성 부문에 포함된 제품이 3개로 가장 많았다. 인공지능(AI), 인간안보, 사이버보안에 속하는 제품 역시 각각 2개로 다른 부문에 비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CTA에 따르면 29개 부문에 걸쳐 총 3000개 이상 제품이 출품됐다. CES2023 대비 40%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AI 부문이 신설됐으며 지속가능성, 디지털 헬스 부문으로 제출된 제품이 가장 많았다는 게 특징이다.
CES 혁신상은 1976년에 제정됐다. CTA 전문가 그룹이 출품 제품의 기술력과 디자인, 소비자 가치 등 혁신성을 종합 평가해 수상작을 선정한다. 이번에도 웨어러블 디바이스, 임베디드 기술(내장형) 등 소형 제품부터 TV를 비롯한 가전, 헤드폰과 컴퓨터 주변기기, 자동차 및 로봇 관련 솔루션, 스마트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이 혁신상을 받았다.
삼성전자, LG전자, HD현대, 두산, SK에코플랜트, 아모레퍼시픽, 코웨이 등 대기업부터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국내 기업이 다수의 혁신상을 수상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특징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현재까지 공개된 CES2024 혁신상 수상기업 310개 중 한국 기업이 143개를 차지(46%)했다.
혁신상 수상작 전체 목록과 수상 기업은 CES2024 전시 기간 중 발표된다.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안 엑스포(Venetian Expo)’ 전시장에 마련된 이노베이션 어워드 쇼케이스(Innovation Awards Showcase)에서 수상작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혁신 제품을 실제로 만져보고 체험하길 원하는 전 세계 IT업계 관계자들의 이목이 라스베이거스로 쏠리고 있다.
1. AI 올인… CES2024도 지배하다
2023년은 생성형 AI 제품의 출현과 확산으로 어느 때보다 AI 기술이 주목받은 한해였다. 오픈AI가 개발한 AI 챗봇 챗GPT(ChatGPT)가 2022년 11월 30일 공개됐고, 2023년 3월 14일 최신 대규모 언어모델(LLM) GPT-4가 출시되며 AI 기술 및 제품 경쟁이 가속화됐다.
2024년의 문을 여는 CES2024에서도 이런 추세가 이어졌다. CTA가 최초로 혁신상 부문에 AI를 추가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게리 샤피로 CTA 회장 역시 이번 CES2024의 최고 화두로 AI를 꼽은 바 있다. AI 부문은 새롭게 추가됐음에도 전체 출품작의 7%를 차지했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그중에서도 CTA가 최고혁신상으로 선정, 주목한 제품은 보쉬의 총기 감지 시스템이었다.
보쉬의 총기 감지 시스템은 비디오와 오디오 AI를 결합, 학교에서의 총기 관련 사건을 사전 예방할 수 있도록 돕는 최초의 제품이다. 금속탐지기와 달리 기존 CCTV 카메라와 유사한 형태로, 수업이나 학교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총기를 감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총을 소지한 사람이 학교에 접근하면 이미지로 총기를 확인해 관련 직원에 즉시 경고하는 방식이다. AI 이미지 인식 기능을 활용하며 오디오로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추정할 수 있다. AI 처리를 클라우드가 아닌 엣지(기기)에서 수행, 개인 정보 보호가 가능하며 간단한 설치 및 통합 작업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평가된다. 보쉬의 총기 감지 시스템은 인간안보 부문에서도 최고혁신상으로 선정됐다.
한국 스타트업 스튜디오랩(STUDIO LAB)도 AI 부문에서 최고혁신상을 수상, 1차 수상작 발표 명단에 포함되며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수상작 ‘셀러캔버스(SellerCanvas)’는 상품 이미지를 바탕으로 상세 페이지와 커머스 콘텐츠를 자동 생성하는 서비스다. 이미지를 인식하는 비전 AI와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 의류의 색상·스타일·특징 등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품과 어울리는 디자인과 상품 설명이 있는 마케팅 콘텐츠를 제작해 준다.
스튜디오랩은 삼성전자 사내벤처(C랩) 스핀오프 기업이다. 서울 AI 허브의 지원을 받아 글로벌 진출을 준비하고 있으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술가치창출원으로부터 시제품 제작 지원 및 CES 부스 전시를 지원받았다.
2. 지속가능성 부문 출품작 최대… 최고혁신상 비중 커
지속가능성, 친환경 디자인 및 스마트 에너지 부문은 CES2024 혁신상 부문 중 가장 많은 제품이 출품된 분야다. 대기업, 중견기업, 스타트업 가릴 것 없이 ‘기업의 지속가능성 추구’가 글로벌 거대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이터다. 환경을 해치거나 에너지를 낭비하는 기업은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는 올해 3월 공개한 연례 서한에서 “우리가 환경 경찰이 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면서도 “서 “수년 동안 블랙록은 기후 위기를 투자 위기(risk)로 간주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파키스탄, 유럽과 호주, 세계 여러 곳에서 자연재해가 더 빈번히 일어나고 있으며 이런 날씨 패턴 변화에 따라 이미 보험료가 상승하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투자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 등을 반영, 저탄소, 에너지 절감 기업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는 게 래리 핑크 CEO의 설명이다.
아이텐(I-TEN,SA)은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 대표 기업 중 하나다. 프랑스 기업 아이텐의 솔리드 스테이트 마이크로 배터리(SMD, 고체 전극, 전해질 사용) ‘ITX181225’은 이번 CES2024 최고혁신상 지속가능성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아이텐은 2011년 회사 설립 후 현재까지 1억2000만달러의 자금을 모금했고, 전 세계에 300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한 기술 기업이다. 이 마이크로 배터리의 크기는 4.5 x 3.2mm에 불과하며 8분 내 80% 충전이 가능하고, 100ms 동안 30mA 이상의 피크 전류를 흘려보낼 수 있다.
아이텐의 배터리는 특히 저전력 IoT(사물인터넷) 솔루션을 혁신할 제품으로 평가된다. 기존에 사용되던 배터리의 크기와 용량을 최대 1000배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탄소 발자국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 기업 inQs(inQs Co.)의 태양열 기반 발전 유리 SQPV도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속가능성 부문 최고혁신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 제품은 기존 제품과 비슷한 투명 유리 형태이지만, 태양광을 받아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inQs에 따르면 SQPV는 태양광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광원에서도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조명이 어두운 실내나 흐린 환경에서도 잘 작동한다는 설명이다. 두 개의 전도성 유리 시트 사이에 나노 물질을 배치, 빛을 전기로 효과적으로 변환하며 양쪽 유리 표면에서 모두 빛을 포착할 수 있다.
3. 인간안보 부문 처음으로 포함… “기술로 세계 문제 해결”
첨단 기술이 인간의 안전을 위해 활용되어야 한다는 원칙 ‘인간안보(Human Security for All, HS4A)’는 CES2023에 처음으로 도입된 주요 주제 중 하나였다. HS4A는 1994년 UN이 처음 도입한 개념으로 모든 산업, 모든 국가가 인간의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과 혁신을 촉진해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최근 전쟁, 환경 위기, 자연재해, 전염병 등 전 인류를 위협하는 위기가 계속되면서 기술업계에서도 이 문제에 공감하는 전문가들, 업계 관계자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유엔 산하 기관 WAAS(World Academy of Art and Science)의 게리 제이콥스 회장은 “COVID19 팬데믹, 지구 온난화, 높은 교육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식량 부족 등은 휴먼 시큐리티 문제 전반에 대한 혁신적인 솔루션 개발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CTA와 협력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CES2024에서도 인간안보는 주요 주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CTA는 혁신상 부문 중 하나로 인간안보를 신설, 이런 메시지를 더욱 강력히 전달했다.
게리 샤피로 CTA 회장은 이와 관련 “CES의 전반적인 주제는 지속 가능성, 그리고 기술을 통해 세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깨끗한 공기와 물을 확보하거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개념이 인간안보다.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강조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스타트업 미드바르(Midbar Co.)의 ‘에어팜(Air Farm)’은 CES2024 인간안보 부문에서 최고혁신상을 수상, 주목을 받은 대표 제품 중 하나다.
미드바르는 이스라엘에서 출원한 특허 기술 기반의 에어로포닉스 재배 시스템을 기반으로 친환경적이고 신선한 고품질 작물을 재배, 공급을 돕는 농업 스타트업이다. 에어로포닉스는 땅이 아니라 공기 중에서 식물을 기르는 기술이다. 지지대를 세우고 식물의 뿌리만 노출되도록 고정한 후 물과 영양제를 섞어 안개처럼 뿌리는 방식이다. 넓은 토지, 농장 없이 식물을 기를 수 있도록 해준다.
미드바르에 따르면 에어팜은 단위 면적당 설치 비용이 기존 스마트팜 대비 절반에 불과하다. 에어로포닉스 용법을 활용하면 기존 수경재배 대비 생장속도는 150% 빠르고 물 사용량을 최대 95% 줄일 수 있다.
플러스: 사이버보안·디지털 헬스 부문도 주목
사이버보안 및 개인 정보 보호(Cybersecurity & Personal Privacy)도 꾸준히 강조되는 부문이다. 생성형 AI 기술의 등장으로 무기화된 딥페이크 기술 및 피싱 공격 등을 통해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스타트업 로드시스템의 ‘트립패스’는 이번 CES2024 사이버보안 및 금융 기술 부문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트립패스는 모바일 여권으로 안전한 DID(Decentralized Identifier, 탈중앙화 신원증명) 신분인증 확인 솔루션을 제공한다.
‘디지털 건강(Digital Health)’ 부문은 지속가능성 부문와 함께 가장 많은 제품이 출품, 중요 트렌드 중 하나임을 입증했다. 뷰티테크 선두 주자인 로레알의 니콜라 이에로니무스 CEO가 화장품 회사 대표 최초로 기조연설을 맡았다는 점도 의미가 깊다.
게리 샤피로 CTA 회장은 “로레알은 기조연설을 통해 다음 세대에 필요한 비전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소비자들이 원하는 기술, 현재를 뛰어넘어 미래의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기술을 소개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