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고 300달러’ 스타트업, 어떻게 미국 뚫었나: AI 성공 플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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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익 2025.11.20 12:36 PDT
‘잔고 300달러’ 스타트업, 어떻게 미국 뚫었나: AI 성공 플레이북
김효준 앳 대표가 마루SF 개관 행사에서 자신의 미국 진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출처 : 더밀크 박원익)

영어 못하던 ‘아웃라이어’ AI 스타트업 앳(at) 미국 진출기
마루SF 입주 후 3개월 만에 YC 선정돼
교훈① 제품: “한국식 PMF, 미국에선 100% 실패한다”
교훈② 마인드셋: “글로벌은 없다… 미국은 ‘초지역적’ 사회”
교훈③ 물리적 거점: “출장 No, 그냥 미국에 머물러라”
더밀크의 시각: 나의 AI 액션플랜은? 4가지 실행안

“4개월 전만 해도 계좌에 300달러밖에 없었습니다. 망했어야 했죠. 그게 저희의 상황이었습니다.”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하며 미국 유학이나 근무 경력이 전무한 아웃라이어(Outlier,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

AI 미팅 노트테이커 ‘캐럿(Caret)’과 세일즈 AI 미팅 어시스턴트 ‘어사이드(Aside)’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앳(at)의 김효준 대표는 스스로를 아웃라이어라고 정의했다. 훌륭한 영어 실력, 빅테크 근무 경험, 미국 명문대 유학 경험 등을 토대로 실리콘밸리의 문을 두드리는 다수의 다른 스타트업과 비교할 때 정상 범주에서 속하지 않는 별종이었다는 것. 

놀라운 건 아무 연고, 연결 고리 없이 영어도 잘 안 되는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앳이 미국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지난 6월 아산나눔재단이 실리콘밸리에 마련한 스타트업 지원 공간 ‘마루SF’에 단기 입주, 실리콘밸리 진출을 시도해 약 3개월 만에 와이콤비네이터(이하 YC) 합격 및 투자 통보를 받았다. YC는 에어비앤비, 스트라이프, 코인베이스 등을 배출한 실리콘밸리 최고 액셀러레이터다.

계좌 잔고가 300달러에 불과해 “망했어야 했다”고 말하는 팀이 어떻게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인정받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있었을까? 지난 1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마테오 마루SF 개관 행사에서 김 대표는 자신의 경험과 이를 통해 터득한 미국 진출 팁을 공유했다.

(왼쪽부터) 이상훈 at CTO, 김효준 대표, 이찬희 공동 창업자

교훈① 제품: “한국식 PMF, 미국에선 100% 실패한다”

김 대표에 따르면 앳의 어사이드는 YC 내부에서도 가장 바이럴한 앱 중 하나로 꼽힌다. 극적인 반전의 중심에는 미국 시장에 대한 처절한 ‘재학습’ 과정이 있었다.

김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실패 원인을 명확하게 지적했다. 그는 “우리를 포함한 한국 창업자들이 PMF(제품-시장 적합성)를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한국식 PMF를 미국 시장에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미국 시장은 고객의 문제점(Pain Point)과 시장 구조 자체가 한국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아이디어, 문제 정의, 제품 설계까지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구축하지 않으면 100%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게 김 대표의 주장이다. 

이는 앳(at)이 직접 겪은 경험이기도 했다. 그는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수많은 미국 사용자를 인터뷰하면서 미국인들은 자막 읽는 것을 싫어한다는 문화적 차이를 발견했다. 

예컨대 한국 고객들은 AI 미팅 노트테이커 캐럿의 실시간 자막 기능을 좋아했지만, 미국 사용자들은 영어를 하는데, 왜 또 영어를 자막으로 읽어야 하느냐는 반응을 보인 것. 

미국 현지 상황에 맞춘 미국인들을 위한 제품이 필요했다. 그들이 선호하는 세일즈 어시스턴트 AI에 포커스를 맞추고, 세일즈 콜을 진행할 때 실시간으로 필요한 정보를 슬랙, 노션, 구글 드라이브, 지메일 등에서 바로 가져와 제공해 주는 형태로 어사이드를 고도화한 배경이다.   

김 대표는 “우리는 미국을 모른다고 인정하고, 미국 고객을 선택했다”며 “이 결정은 모든 해외 고객과 한국 사용자를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했다”고 밝혔다.

교훈② 마인드셋: “글로벌은 없다… 미국은 ‘초지역적’ 사회”

제품 전략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구축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건 마인드셋(mindset, 마음가짐)의 문제였다. 

앳은 9월 YC에 선발되기에 앞서 수차례 고배를 마셨는데, YC가 밝힌 거절 사유가 흥미롭다. “한국에서 너무 많은 트랙션(traction, 성장 혹은 관심)를 얻었다”는 점을 거절 사유로 든 것.

김 대표에 따르면 YC 측은 “YC는 현재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트랙션을 가진 기업에 투자하지 않다”며 “미국에서 직접 더 많은 트랙션을 확보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글로벌 확장’을 꿈꾸는 대부분의 한국 스타트업에게는 어쩌면 역설적인 요구다. 한국에서 잘 되는 제품이나 서비스 혹은 한국의 성장세를 기반으로 글로벌로 뻗어나가겠다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YC가 이런 요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YC 역시 미국에서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투자하는 미국 투자회사다. 미국 내 성장세, 미국 고객, 미국 시장 장악을 ‘우선 순위’로 놓고 경쟁하지 않으면 성공 확률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앳을 ‘한국 기업의 해외 확장’이 아닌 ‘이곳 미국 시장에서 제품을 판매하려는 기업’으로 간주했다. 이 관점에서 한국은 오히려 ‘미국 시장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소음(noise)이자 리스크였다. 

김 대표는 이 과정에서 미국은 글로벌이 아닌 ‘초지역적 사회(Hyper-local society)’임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미국인들은 생각보다 훨씬 폐쇄적이며 글로벌이라는 개념 자체에 관심이 없다”며 “신뢰나 추천 없이는 폭발적인 반응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런 미국 시장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 창업자들 역시 비슷한 마인드셋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이스라엘 시장과 글로벌 시장(미국)을 구분하지 않고 애초부터 미국 시장을 자신들의 시장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스라엘 스타트업에 글로벌 시장 공략 방법에 대해 물었더니 ‘글로벌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There is no such thing)’란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결국 앳의 YC 합격은 글로벌 확장(Expansion) 성공이 아니라 시장 전환(Market Shift)의 결과였다.

마루SF 본동 (출처 : 더밀크 박원익)

교훈③ 물리적 거점: “출장 No, 그냥 미국에 머물러라”

영어도 부족하고, 미국에 대한 경험도 없던 김 대표는 어떻게 이 험난한 과정을 진행했을까. 

김 대표는 이에 대해 “해법은 사실 간단했다. 그냥 미국에 가서 미국에 머무르는 것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직접 현장에서 부딪히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리서치, 계획을 세우더라도 현장에 오지 않으면 미국 고객과 시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빠르게 대응할 수도 없다는 의미다. 

문제는 미국에서 머무르기 위해서도 상당한 비용, 노력,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적당한 주거 공간, 사무 공간을 찾는데 시간도 적잖게 소요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 대표가 선택한 방법은 아산나눔재단이 제공하는 ‘마루SF’ 공간이었다. 

마루SF는 스타트업을 위한 단기 체류형 글로벌 커뮤니티로 실리콘밸리 산마테오에서 지난 12일 정식 개관했다. 멤버로 선발된 스타트업은 2년의 멤버십 기간 동안 연간 최대 16주까지, 한 번 체류 시 최소 2주에서 최대 6주까지 원하는 기간을 선택해 마루SF를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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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시범 운영 기간이었던 6월부터 마루SF에 머무르며 미국 고객, 시장을 위한 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주거와 업무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으며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샌프란시스코 시티와 가까워 현지 창업생태계와의 교류가 용이하다는 마루SF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김 대표는 “AI 기업이 밀집한 샌프란시스코에서 고객을 만난 뒤, 베이스캠프인 마루SF로 복귀해 외부 소음을 차단하고 오직 개발(Build)에만 몰입했다”고 밝혔다. 정해진 미팅만 소화하는 ‘관광객’ 같은 삶이 아니라 ‘현지인’ 혹은 ‘거주자'의 삶을 선택한 셈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모든 에너지를 한 곳에 집중한 결과 두드러진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앳의 어사이드는 YC 톱 100 세일즈 회사로 선정됐다. 미국 시장에서 어사이드 매출이 빠르게 성장 중이라는 사실을 반영한다. (출처 : 앳)

더밀크의 시각: 나의 AI 액션플랜은? 4가지 실행안

AI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됐고, 우리가 목격한 그 어떤 기술적 전환보다 더 큰 역사가 될 것입니다. 기회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고, 누구나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역사를 만들어 봅시다.
에어비앤비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

AI 시대, 어떻게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앳처럼 미국 시장 진출을 노리는 한국 스타트업 창업자라면 지금 무엇을 해야할까? 김 대표의 경험과 조언을 토대로 ‘나의 AI 액션 플랜’을 구성했다.  

①Define: 한국의 성공 공식을 버려라

액션: 

  • 한국 시장의 PMF(제품-시장 적합성)와 트랙션(traction)을 ‘제로(0)’로 간주한다 

  • 미국 고객의 문제점(Pain Point)을 ‘제로베이스’에서 재정의한다. 미국 고객들이 가진 문화적 맥락까지 고려한다

②Immerse: 출장이 아닌 체류를 실행하라

액션:

  • 행사, VC 미팅 투어 같은 ‘단기 출장’ 계획을 폐기한다 

  • 현지 거점 프로그램을 활용하거나 여건을 만들어 최소 4~7주의 ‘체류’ 계획을 수립한다

③Sell & Localize: 창업자가 직접 현지화하고 판매하라

액션:

  • 현지 직원을 채용해 현지화를 맡기지 않는다 

  • 창업자가 직접 미국의 AI 기업 밀집 지역(예: 샌프란시스코)에서 잠재 고객을 만나고 ‘더 이상 팔 수 없을 때까지’ 제품을 판매한다

  • 영어가 서툴러도 고객의 ‘거절 이유’를 직접 파악하는 것이 창업자 현지화의 핵심이다

④Build: 소음을 차단하고 개발에 몰입하라

액션:

  • 판매(Sell) 활동을 통해 얻은 고객 피드백을 제품에 최대한 적용한다

  • 링크드인을 비롯한 소셜 포스팅 등 ‘보여주기식’ 활동을 모두 중단하고, 집중을 방해하는 외부 소음을 차단, 오직 미국 고객을 위한 제품 개발(Build)에만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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