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95%는 실패한다. 우리는 5%에 들 수 있을까?" SF AI컨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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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섭 2025.10.09 06:50 PDT
[르포] "95%는 실패한다. 우리는 5%에 들 수 있을까?" SF AI컨퍼런스
AI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대체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한 스탠포드 대학의 Yegor Denisov-Blanch 박사 (출처 : 신익섭)

[SF AI 혁명의 현장에서] 불안과 흥분의 샌프란시스코
2025 SF AI 컨퍼런스 가보니 ‘AI 골드러시’ 분위기 속에 치열한 생존 경쟁.
AI 에이전트와 이를 통제하는 ‘가디언 에이전트’가 대세
화두는 ‘거대한 모델’이 아니라 ‘실제 수익’과 ‘신뢰성 확보’
95% 실패 속에서 AI와 협업할 수 있는 ‘르네상스형 인재’ 부상한다

샌프란시스코의 피어 48 전시장. 거대한 창고형 컨퍼런스 홀 안으로 들어서자 곳곳에 AI 서비스(제품)을 홍보하는 스타트업이 한눈에, 어지럽게, 보였다. 마치 19세기 골드러시 시대의 광산촌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듯한 풍경이었다.

명함을 나눠주는 CEO들, 특허 아이디어를 설명하려 안간힘을 쓰는 발명가들, 그리고 회사 로고가 새겨진 폴로셔츠 대신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으로 혼자 배낭을 메고 떠도는 실직자들까지. 모두가 무언가를 팔려 왔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지난 9월 샌프란시스코서 열린 AI 컨퍼런스 현장의 모습이었다.

"우리도 AI 하고 있습니다"

전시장 한편에는 각종 기업 부스가 미로처럼 펼쳐져 있다. 기업들은 방문객의 시선을 끌기 위해 갖가지 물건을 나눠줬다. 회사 컬러로 염색한 튜브 양말, 기라델리 초콜릿, 작은 인형, 루빅스 큐브, 휴대폰 충전기, 심지어 코코넛에 빨대를 꽂아 만든 음료수까지. 한 부스에서는 AI로 보정한 '멋진 헤드샷'을 찍어주는데, 락스타 콘셉트까지 선택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부스들의 양극화된 성격이다. 절반 정도는 기업의 업무 흐름에 AI '에이전트'를 추가할 수 있는 인프라와 소프트웨어를 판매한다. 나머지 절반은 정반대로, 그 AI를 감시하고 관리하는 '가디언 에이전트'를 파는 곳이다. AI가 언제든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설계된 제품들이다.

"가드레일이 필요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스타트업 트러스트3 AI(Trust3AI)의 마케팅 부사장 이비 라마니의 말이다. 그의 회사는 주로 보험사와 은행을 대상으로 AI '책임성' 플랫폼을 제공한다. AI는 예측 불가능하고, 잘못된 정보를 내놓을 수 있으며, 개인정보 보호 규정을 쉽게 위반한다. 인간 직원들이 관리팀에 알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AI 봇을 만들어 사용하면서 혼란은 더 가중된다.

"지금은 허니문 시기지만, 곧 현실이 닥칠 겁니다." 라마니는 침착한 어조로 경고했다.

또 다른 회사 마크업(Markup)은 AI가 생성한 콘텐츠를 검토하고 수정해 기업의 '톤, 품질, 정확성' 기준에 맞추는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CEO 매트 블룸버그(Matt Blumberg)는 설명했다. 샌마테이오의 스타트업 넥슬라(Nexla)는 여러 레스토랑이나 음식점의 주문을 하나의 배달 앱으로 통합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시스템의 데이터를 '연결'하는 일이 전문이다.

샌프란시스코의 Pier 48에서 열린 2025 AI Conference의 키노트 발표 시간에 AI Replit의 대표인 Michele Catasta와 Fast Company의 Sr. Writer임 Mark Sullivan 이 Agentic AI의 미래라는 주제로 토론을 했다. (출처 : 신익섭)

가장 인기 있었던 세션은... "95%가 실패한다는데"

MIT 연구 논문에 따르면 AI 파일럿 프로그램의 95%가 실패로 끝난다. 컨퍼런스 참가자들은 이 통계를 입에 달고 다녔다.

동료들과 함께 교육 목적으로 왔다는 의료 기술 회사 에이블넷(AbleNet)의 고객경험 이사 에이미 르페브르는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 95% 실패 통계를 계속 인용하더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컨퍼런스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세미나는 "왜 당신의 조직은 AI에서 실패하도록 설계되어 있는가(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였다.

청중은 기업을 어떻게 '재배치'하고, 그래픽이나 프로그래밍 분야에서 갑자기 쓸모없어진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재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조언을 갈망했다. 발표를 맡은 강연자는 강연 후 거의 한 시간 동안 몰려든 사람들의 질문 공세를 받아야 했다.

크기 경쟁은 끝났다: 이제는 '돈 버는 AI'의 시대

불과 1년 전만 해도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는 달랐다. 구글, 메타, 오픈AI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자동차 전시회에서 엔진 배기량을 뽐내듯 모델의 파라미터 수를 경쟁적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2025년의 화두는 완전히 바뀌었다.

"얼마나 크게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실제 매출을 늘리고 비용을 줄일 것인가"가 핵심 질문이 된 것이다.

세일즈포스는 10억 개 미만의 파라미터를 가진 소형 언어모델(SLM)을 고객 데이터에 맞게 미세 조정해, 운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95% 이상의 정확도를 유지했다고 발표했다. '모든 작업에 거대 모델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실용주의가 대세가 됐다.

금융 분야에서는 과거 월 수천 달러를 지불해야 하던 블룸버그 터미널의 데이터 분석 기능이 AI 에이전트로 대체되고 있다.

이제 개인 투자자도 나이키 분기 실적을 예측하는 맞춤형 리포트를 AI가 경쟁사 데이터, 소비자 리뷰, 할인율까지 분석해 즉석에서 받을 수 있다. 의료 분야에서는 브레인스톰 테라퓨틱스가 '뇌 오가노이드(미니 뇌)'와 AI를 결합해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했고, 이미 FDA 임상 2상 승인까지 받은 것이 화제가 됐다.

AI 에이전트는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팀의 동료가 되고 있다. 콜센터에서는 고객 기록을 즉시 분석해 맞춤형 답변을 제공하고, 영업팀에서는 고객 조사와 미팅 준비 시간을 90%나 줄였다. 개발팀에서는 심야 서버 장애 발생 시 로그를 분석하고 임시 패치를 자동으로 처리해, 엔지니어가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돕는다.

화려한 부스와 열정적인 CEO들 사이에서, 조금 나이 들어 보이거나 로고 없는 평범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배낭이나 무료 도시락 상자를 든 채 거대한 전시장을 혼자 배회하는 이들. 일부는 호기심으로, 일부는 발견되기를 희망하며 이곳에 왔다고 했다.

첫날 오후에는 AI 스타트업들이 자신들의 사업 모델을 발표 하고 투자가를 찾는 시간이 있었는데 각 회사에 주어진 시간은 4분이었고 오직 슬라이드 네 장만을 이용해서 발표를 하여야 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출처 : 신익섭)

르네상스형 노동자의 시대

AI 컨퍼런스 현장에서는 퇴행성 뇌질환 연구에 AI를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실직한 프로그래머들도 있었다.

한 컨퍼런스에서 다른 컨퍼런스로 떠돌며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들 처음 만나는 사이지만 점심 테이블과 정수기 옆, 부스 미로 속에서 AI가 삶을 얼마나 편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뒤처지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AI는 인간의 역할을 단순히 대체하지 않는다. 반복적이고 기술적인 작업을 맡아주면서, 인간이 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AI 활용 능력은 미래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요인이 될 것이다. 일부 연구는 2030년까지 상위 팀과 하위 팀 간 생산성 격차가 최대 10배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인재상이 등장한다. AI의 도움을 받아 핵심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인접 분야의 역량을 동시에 확보하는 '르네상스형 노동자'가 그것이다.

농부가 데이터 과학자가 되고, 영업사원이 분석가로 거듭나며, 엔지니어가 운영 전문가의 시각을 동시에 갖출 수 있다. 이는 얕은 지식을 가진 제너럴리스트가 아니라, AI라는 협력적 파트너와 함께 전문성과 다재다능함을 동시에 확보한 새로운 인재상이다.

전시 공간에는 많은 AI 업체들이 부스를 설치하고 제품을 홍보 했다 (출처 : 신익섭)
전시 공간에는 많은 AI 업체들이 부스를 설치하고 제품을 홍보 했다 (출처 : 신익섭)

갈수록 냉정해지는 질문들

샌프란시스코는 팬데믹 이후 AI로 인한 새로운 골드러시를 맞았다. 달력은 각종 컨퍼런스와 컨벤션으로 빽빽하다. SF AI 컨퍼런스는 그중 대표적인 것이다. 전시장을 배회하다 보면 기업가들이 관심과 투자금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많은 참가자가 AI의 미래에 대해 뚜렷한 흥분을 드러냈다. 우연히도 그것이 컨퍼런스의 주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열정도 밑바닥에 깔린 불안을 완전히 가릴 수는 없었다. AI가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과, AI 버블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2025 샌프란시스코 AI 컨퍼런스가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거대 모델 과시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 승부처는 '누가 더 안전하고 똑똑하게 AI를 실제 성과로 연결하는가'에 달려 있다. AI는 이미 산업 현장에서 매출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며, 인간에게는 창의성과 전략적 사고에 집중할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하지만 피어 48의 거대한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표정에서 읽히는 것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었다.

'불안한 흥분'이었다.

95%가 실패한다는 통계 속에서 자신이 5%에 들 수 있을지, 혹은 뒷골목에서 누군가의 눈에 띄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될지 확신할 수 없는, 골드러시 시대 특유의 긴장감이었다.

한국 AI 업계에도 분명한 교훈이 있다. 단순히 기술 성과를 과시하는 데 머물지 말고, 산업 현장에 맞는 실질적 적용 사례와 신뢰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결국 세계 AI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큰 모델이 아니라 더 현명한 활용일 수 있다.

그리고 그 경쟁의 최전선에는, 전문성과 다재다능함을 겸비한 '르네상스형 노동자'가 서 있을 것이다.

신익섭 (Ike Shin) 대표는 누구?

신익섭 대표는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면서 글로벌 브랜드 전략과 교육 기술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경영 전문가다. 현재 VIOL 메디컬에서 총괄 자문(Executive Advisor)으로 활동하며, 국내외 시장 전략 수립을 지원하고 있다.

이전에는 피어슨(Pearson Knowledge Technologies)에서 시니어 매니저로 근무하며 교육 기술 사업을 담당했고, 립프로그(LeapFrog) 아시아 마케팅 디렉터로서 아시아 시장 진출을 이끌었다. 또 코카콜라 코리아(Coca-Cola Korea)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근무하며 브랜드 전략과 마케팅을 총괄한 경험이 있다. 국내 최고 수준의 글로벌 브랜드 전략, 에듀테크, 아시아 시장 마케팅 전문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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