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T로 쓴 과제 안 통한다"... 美 대학 '소크라테스' 구술시험 부활
AI가 만든 성적표, 무너진 학습… 대학 교육의 위기
과거에서 해법을 찾다... 소크라테스식 '구술시험'의 부활
AI로 AI를 검증한다... 뉴욕대선 'AI 구술시험' 등장
시간 대신 '역량'... '칸-테드 인스티튜트' 대안 될까?
4만5800명.
지난 3월 한 달 동안 미국에서 해고된 기술직 인력 규모다. 최근 2년 사이 최대치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가운데, 인력 감축은 산업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오라클과 스냅은 최근 몇 주 사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핀테크 기업 블록(Block)은 전체 인력의 40%에 달하는 4000명 이상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직원의 약 7%를 대상으로 자발적 퇴직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며, 메타 역시 약 8000명 감원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 충격이 산업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과 취업 시장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얼어붙은 고용 시장에 대한 불안에 직면했다. 재학생들 사이에서는 전공 선택 자체를 다시 고민하는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루미나 파운데이션(Lumina Foundation)과 갤럽(Gallup)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미국 대학생의 14%는 AI가 직업 시장에 미칠 영향을 이유로 전공 변경을 ‘매우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33%는 ‘상당한 수준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학생의 16%는 AI가 미칠 파장 때문에 이미 전공을 바꾼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응답자의 63%에 달하는 학생들이 실제로 전공을 바꾸거나 전공 변경을 고려하고 있다는 의미다. AI가 교육과 커리어 경로 자체를 재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핵심요약: 기사 한눈에 읽기]
빅테크의 대규모 해고 등 일자리 변화에 위기감을 느낀 대학생 중 16%가 AI의 영향을 우려해 기술 및 직업 훈련 분야 등으로 전공을 바꿨다.
학생들은 완벽한 과제를 내고도 내용을 전혀 설명하지 못하며, 대중의 우려대로 AI를 '학습 회피'에 남용하면서 대학의 기존 학사 규율이 무너지고 있다.
학생들의 인지 능력과 창의성 저하를 막기 위해, 주요 대학들은 전자기기 없이 교수 앞에서 직접 과제를 방어해야 하는 전통적인 '소크라테스식 구술시험'을 대대적으로 부활시키고 있다. 학생의 과제 무임승차를 잡기 위해 챗봇이 압박 질문을 던지는 'AI 구술시험'이 등장했고, 교사들은 교육용 AI 도구를 활용해 행정 업무를 줄이고 학생과의 교감에 집중하고 있다.
TED와 칸 아카데미 등은 수업 시간이 아닌 '실제 역량(competency)' 기반으로 진급하는 새로운 교육 기관을 출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의사소통과 비판적 사고 등 '인간 고유의 역량' 육성에 나섰다.
AI가 만든 성적표, 무너진 학습… 대학 교육의 위기
이 같은 변화 속에서 대학들도 교육 방식의 근본적 전환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기업들이 채용 규모를 줄이는 동시에 요구 역량을 빠르게 바꾸면서, 기존 커리큘럼이 산업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미스매치’가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대학 내 상경계와 인문계 교수들 사이에서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어떻게 취업으로 연결해야 할지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공통적으로 나온다.
아이러니는 다른 지점에서 드러난다. AI를 적극 활용하는 학생일수록 완성도 높은 에세이와 과제를 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는 학습 성과가 개선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해당 과제를 작성한 학생들이 자신의 논리와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교육계는 이를 ‘학습의 공백’으로 본다. 취업에 대한 압박이 커질수록 학생들은 성과 중심으로 움직이고, 그 과정에서 AI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실제 사고 과정과 인지 능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학사 규율 역시 사실상 통제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살만 칸(Sal Khan) 칸 아카데미 설립자는 “이미 대부분의 학생들이 AI를 활용해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며 “기존의 명예 규율(honor code)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 조사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확인된다. AI 사용을 금지한 대학에서도 학생의 10%는 매일, 17%는 매주 AI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은 생존을 위해 AI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아메리칸 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잠재적 고용주로부터 직장 내 AI 활용 능력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고 답한 학생의 비율이 단 1년 만에 12%에서 30%로 급증했다.
루미나 파운데이션의 코트니 브라운은 “대학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경우 학생들은 AI의 편향성과 사회적 영향에 대한 이해 없이 이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며 “결국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과거에서 해법을 찾다... 소크라테스식 '구술시험'의 부활
이 같은 위기 속에서 일부 명문 대학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교육 방식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등장한 방식은 바로 '소크라테스식 구술 문답'이다.
소크라테스식 문답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년)가 활용한 대화법으로, ‘산파술(maieutics)’로도 불린다. 산파가 출산을 돕듯, 교사가 학생 스스로 진리를 ‘도출하도록’ 이끈다는 의미다.
핵심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질문에 있다. 교사는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 전제는 타당한가”, “반대 상황에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연속적으로 던진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은 자신의 논리적 허점을 발견하고, 사고를 확장하게 된다. 현대 교육학에서도 비판적 사고, 자기주도 학습, 메타인지 능력을 강화하는 효과적인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미 다양한 형태로 적용되고 있다.
코넬대학교 생명공학과의 크리스 샤퍼 교수는 지난 학기부터 ‘구술 심사’를 도입했다. 노트북이나 챗봇은 물론, 펜과 종이도 허용되지 않는다. 학생은 교수 앞에서 자신이 제출한 과제를 직접 설명해야 한다. 코넬대의 다른 수업에서는 기말시험 대신 30분간 교수와 ‘최종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 도입됐고, 180명 규모의 공학 강의에서는 학생 한 명씩 4분짜리 모의 면접을 진행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역시 평가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학교는 ‘대면 평가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서면과 구술을 포함해 교수 앞에서 지식을 직접 증명하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브루스 렌솔 교수학습센터 소장은 "부정행위 방지가 목적이 아니다"라며 학생들의 인지 역량과 창의성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대대적인 전환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미국 학부 교육에서 구술시험은 주류 방식이 아니었다. 반면 영국 옥스브리지(Oxbridge) 시스템에서는 교수와 학생 간 주간 토론이 교육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 왔다. 미국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온라인 시험 부정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일부 대학이 구술시험을 도입하기 시작했으며, 2022년 챗GPT 등장 이후 그 필요성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AI로 AI를 검증한다... 뉴욕대선 'AI 구술시험' 등장
뉴욕대학교(NYU)에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구술 평가가 등장했다. NYU 스턴 경영대학원의 파노스 이페이로티스 교수는 지난 학기 ‘AI 제품 관리’ 수업의 기말고사로 AI 기반 구술시험을 도입했다. 이를 위해 AI 음성 에이전트 개발사 일레븐랩스(ElevenLabs)와 협업했다.
이페이로티스 교수는 이 시도를 두고 “불로 불을 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I를 통해 학생들의 실제 이해도를 검증하겠다는 접근이다.
시험 방식은 비교적 간단하다. 학생들은 각자의 일정에 맞춰 온라인으로 접속한다. 화면에서는 경영대학원 교수의 목소리를 복제한 AI가 학생의 이름과 학번을 확인한 뒤 평가를 시작한다.
챗봇은 먼저 최종 그룹 프로젝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학생의 답변에 따라 세부 질문을 이어간다. 답변이 부족할 경우 힌트를 제공하고, 동시에 비판적·긍정적 피드백을 함께 제시한다. 시험 평가는 AI의 보조를 받아 교수자가 별도로 진행한다. 이페이로티스 교수는 “학생이 팀 프로젝트에 실제로 기여했는지, 무임승차는 없었는지, 혹은 AI에 과도하게 의존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경영학과 학생 안드레아 루이는 “챗봇의 목소리는 자연스러웠지만, 대화 흐름이 어색하게 끊기는 순간이 있었고, 한 번에 여러 질문이 제시돼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다만 교육 현장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했다. “AI가 존재하는 이상, 학생들이 이를 전혀 남용하지 않는 완벽한 환경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간 대신 '역량'... 고등 교육의 판 깨는 새 교육기관 '칸-테드 인스티튜트'
고등 교육의 근본적인 시스템 자체를 재편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비영리 단체인 칸 아카데미(Khan Academy), 테드(TED), 그리고 교육평가기관 ETS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TED2026에서 AI 시대에 맞춘 새로운 고등 교육 기관인 '칸-테드 인스티튜트(Khan TED Institute)'의 공동 출범을 발표했다.
이번 프로그램의 가장 큰 변화는 평가 기준이다. 기존 대학 교육의 핵심 지표였던 ‘수업 이수 시간(seat time)’을 과감히 폐기하고, 학생의 ‘실제 역량(real competency)’을 기준으로 진급과 졸업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각자의 속도에 맞춘 개인화된 학습을 진행하며, 개인의 기술과 이전 학업 성과에 따라 3년 이내에도 학위 취득이 가능하다. 주최 측은 누구나 접근 가능하도록 향후 12~18개월 내에 지원 신청을 받고, 학비 역시 약 1만 달러 수준으로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첫 번째로 신설될 교육 과정은 '응용 AI 학사 학위(bachelor's degree in applied AI)'다. 교육은 수학과 역사 등을 아우르는 '핵심 지식', 둘AI 앱 개발 및 에이전트 구축을 다루는 '응용 AI 기술', 그리고 AI가 대체할 수 없는 동료 튜터링 및 대중 연설 중심의 '의사소통 및 리더십 기술' 등을 가르친다.
이 교육 프로그램에는 구글(Google),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액센추어(Accenture), 맥킨지(McKinsey) 등 글로벌 주요 기업들이 파트너로 참여했다. 고용주가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실무 역량과 교육 내용이 일치하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급변하는 기술 속에서도 '인간 고유의 역량(uniquely human skills)'과 판단력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밀크의 시각: 한국 교육 현장에 던지는 질문... 우리는 무엇을 평가하고 있는가?
미국 대학 강의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대학이라는 제도 자체가 더 이상 기존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그렇다면 한국의 고등교육은 지금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까? 지난해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이 생성형 AI로 작성한 수행평가를 제출했다가 부정행위로 판단된 사건이 논란이 됐다. 이를 계기로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수행평가 과정에서의 AI 활용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관리 기준을 마련했다.
문제는 ‘관리’가 아니라 ‘학습’이다. AI가 과제 수행을 대신하는 상황에서 단순한 통제 장치만으로는 교육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미국 교육계의 시도와 다른 지점이 여기에 있다. AI 사용 제한에 초점을 두기보다, 학생들의 인지 역량과 창의성을 어떻게 유지하고 강화할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AI 리터러시 확대에 맞춰져 있다. 교육부는 ‘모두를 위한 AI 인재 양성 방안’을 통해 AI 중점학교를 2028년까지 2000개로 확대하고, 비전공 대학생을 포함한 전반적인 AI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술 활용 역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에 상응하는 사고 훈련이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한국은 여전히 직업교육 영역을 제외하면, 정규 학부 교육에서의 역량 기반 평가 전환이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교육 정책의 방향은 결국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을 중심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교육은 무엇을 평가하고 있는지’, ‘AI 교육이 활용 능력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학생들이 지식을 자신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정책 설계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
[안내] 더밀크, 아카데미 멤버십 플랜 론칭
더밀크가 대학 및 연구기관 소속 교원, 석·박사 과정 재학 중인 대학원생, 학부 재학 중인 대학생을 위한 '아카데미 멤버십 플랜'을 새롭게 론칭합니다. 대학 이메일 계정으로 더밀크닷컴에 가입한 사용자분들이 이용하실 수 있는 플랜입니다.
AI가 직업을 바꾸고, 기술이 산업을 재편하는 속도는 교과서가 따라갈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 변화의 실체는 강의실이나 캠퍼스 안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더밀크는 변화의 중심, 실리콘밸리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며 그 답을 추적해왔습니다. 아카데미 멤버십은 그 인사이트를 학계에 계신 분들이 가장 먼저 접할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