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기술 발전'엔 항상 그늘이 있었고 대가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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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2021.05.07 05:50 PDT
[새책] '기술 발전'엔 항상 그늘이 있었고 대가를 치렀다
2차 세계대전 떄 폭격을 감행하는 B-17 폭격기. (출처 : 셔터스톡)

피해를 최소화 하는 정밀 폭격
전쟁을 빨리 끝내는 융단 폭격
뭐가 맞는 걸까?

베스트셀러 제조기, 말콤 글래드웰의 새책 '바머 마피아(Bomber Mafia)'

1945년 1월 6일 이었다. 미국 공군 장성 로리스 놀스타드(Lauris Norstad)는 태평양에 있는 섬 괌에 착륙했다. 지금은 관광지로 알려져 있지만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었던 당시 괌에는 일본 폭격을 담당하는 공군 21 폭격부대 사령부가 있었다. 인근의 다른 섬, 사이판과 티니안에는 당시 기준으로 세계에서 제일 큰 비행장이 건설돼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두 일본 영토였지만 미국은 1944년 여름 전투를 통해 이 섬들을 손에 넣은 뒤 일본을 폭격하기 위해 비행장을 건설했다.

놀스타드 장군을 맞은 건 그의 직속 부하이자 폭격사령부 지휘관 헤이우드 한셀(Haywood Hansell) 장군. 42세의 한셀 장군은 미국 남부 출신의 이상주의자다. ‘돈키호테’를 좋아하고 시를 쓰며 부하들에게 노래도 부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먼 길을 온 상관을 모시고 섬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해변에서 바다도 한번 보고 비행장을 둘러보고 앞으로의 전술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놀스타드 장군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네의 방식이 잘 먹히지 않는 것 같네. 이 일에서 손을 떼게.”

헤이우드 장군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을 대체할 지휘관은 다름아닌 독일 폭격의 영웅이자 38세의 젊은 커티스 르메이(Curtice LeMay) 장군이었다. 미 공군 장성 중 당대에 가장 잘 알려진 인물로 엄청난 파일럿인 동시에 아주 무자비한 군인이었다. 한셀과 느메이는 유럽에서 함께 근무한 적이 있어 잘 아는 사이였지만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전략상의 인사 이동이 아니었다. 한셀에 대한 견책이었다.

한셀 장군에게는 열흘이 주어졌다. 그는 괌에 남아 르메이 장군을 도울 수도 있었지만 그건 죽기보다도 싫었다. 열흘 뒤 르메이 장군은 B-29 폭격기를 직접 조종하고 괌에 도착했고 한셀은 섬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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