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빅테크’는 코로나 이후 어떻게 될까?
갤러웨이 교수의 신간 '포스트 코로나'
코로나 이후 '빅테크'의 상황 정리
앞으로 주목할만 한 스타트업도 소개
아무래도 코로나는 쉽게 끝나지 않을 모양이다. 정부는 최근 ‘4차 유행 가능성’을 언급했다. 백신 접종이 비교적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미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 지역에서는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이후 느슨해진 사회적 거리 두기를 다시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찍이 기업 전망이 불확실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지만 코로나가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이후 그 불확실성의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업들은 더욱 불확실한 세계에 내동댕이쳐졌다. 모두가 궁금해 한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대체 어떻게 될까?
9개의 기업을 창업해본 경험이 있는 창업가이자 ‘플랫폼 제국의 미래’를 쓴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스콧 갤러웨이 교수가 이와 관련된 책을 내놓았다. 책 제목은 ‘Post Corona: From Crisis to Opportunity(코로나 이후: 위기에서 기회로).’ 갤러웨이 교수는 현재 영미권에서 가장 주목 받는 지식인 중 한 명. 책은 지난해 하반기에 발간돼 좋은 평가를 얻고 있지만 아직 국내 번역은 되지 않았다.
책을 관통하는 가장 큰 2가지 테마는 이렇다. 첫째,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은 이미 진행되고 있던 사회적, 경제적인 동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부익부 빈익빈 경향은 더 심해지면서 잘 나가던 기업은 더 잘 나가고 어려웠던 기업은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둘째는 위기 속에는 항상 기회가 있으면 위기가 클수록 기회도 크다는 점이다.
갤러웨이 교수는 이러한 큰 테마를 토대로 전작인 ‘플랫폼 제국의 미래’에서 다룬 4곳의 빅 테크 기업 아마존과 애플, 페이스북, 구글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또 빅테크 이외의 주목할만한 스타트업들은 어떤 길을 걸을지에 대해 예측한다. 코로나 이후에 찾아올 일반적인 변화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코로나가 부른 '분산'의 시대
1982년 9월 감기 증세로 타이레놀을 먹은 12세 소녀가 숨졌다. 소녀가 살던 시카고 교외 지역에서는 타이레놀을 먹고 숨진 사례가 더 나왔다. 엄밀하게 말하면 타이레놀을 만드는 존슨앤드존슨의 잘못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타이레놀 병에 독극물을 넣은 것이었다. 하지만 존슨앤드존슨은 타이레놀의 생산을 중단하고 3100만 병의 타이레놀을 전부 수거했으며 범인 검거에 1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어떻게 보면 조금 과잉대응을 한 셈이었다. 하지만 존슨앤드존슨의 이 방식은 지금까지도 위기대응의 교과서로 불린다.
갤러웨이 교수는 코로나는 위기이기 때문에 위기 관리를 하듯이 경영을 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타이레놀 사례를 들었다. 위기 관리의 가장 중요한 법칙은 바로 이런 과잉대응이다. 완벽한 대응을 위해 뜸을 들이기 보다는 한 박자 빠른 신속한 대응이 더 중요하다.
과잉대응을 해야 할 부분 중 하나는 비용절감이다. 필요하다면 임원들의 연봉을 삭감하고 직원들을 내보내야 한다. 로비에 비치할 잡지 구독을 줄이고 직원 간식 비용도 없애야 한다. 불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과감하게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 예를 들면 마이크로소프트(MSFT)는 팬데믹의 한 가운데였던 2020년 6월 4억6000만 달러를 들여 오프라인 상점 사업을 정리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스토어라는 이름의 이 오프라인 상점은 전 CEO 스티브 발머의 아이디어로 애플 스토어와 같은 소매점을 표방했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비용절감은 수동적인 방식이다. 능동적인 대응도 필요하다. 갤로웨이 교수는 고객 로열티를 측정하는 ‘순 추천고객 지수(Net Promoter Score)’를 높이는 등 사업을 효율화하고 모든 것을 백지상태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무엇보다도 디지털로의 ‘분산(dispersion)’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존이 오프라인 상점의 수요를 상당부분 가져왔고 넷플릭스는 영화관의 수요를 대체했다. 원격의료가 한 단계 발전했고 식료품과 음식 배달이 크게 성장했다. 물론 회사가 아니라 줌(ZM)과 같은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아무데서나 일하는(work from anywhere, WFA) 것과 같이 일하는 방식의 변화도 분산 트렌드의 큰 일부분이다.
기업과 직원들은 승진을 위해 어느 정도는 필요한 사내정치와 원격근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사무실 간식 비용 대신 직원들에게 식료품 지출 비용을 주는 등 사내복지 정책을 바꿔야 한다. 줌의 화면에 비춰지는 집안 사무실을 꾸미기 위해 인테리어에 들이는 비용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변화가 불러오는 큰 화두는 브랜드의 시대가 저물고 상품의 시대가 떠오른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구글이 창업하기까지 기업들의 경영방식은 비교적 단순했다. 평균적인 제품을 만든 뒤 방송과 같은 대중매체를 통한 광고로 제품을 알리면 됐다. 맥킨지와 골드만삭스와 같은 서비스 기업이 이를 도왔다. 이 와중에 소비자의 마음을 파고 든 브랜드가 생겨나 성공을 거뒀다. 이게 브랜드 시대의 경영 방식이다.
요즘은 어떤가. 부유한 여행자가 숙소를 고르는 방식을 보면 변화가 느껴진다. 과거엔 공항에서 내린 뒤 택시 운전사에게 리츠 칼튼이나 메리어트 호텔로 데려다 달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여행자는 검색을 통해 이런 호텔들이 쓸데 없이 비싸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좋은 동네에 있는 고급스러운 부띠끄 호텔로 향한다. 브랜드보다는 상품 자체를 더 중요시 한다.
이런 변화로 인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건 광고를 통해 돈을 버는 전통 미디어 기업이다. 브랜드 시대에는 대기업들이 미디어에 광고를 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지만 제품의 시대에는 그런 광고가 굳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이런 광고는 더 줄어들 전망이다. 그리고 팬데믹이 끝나더라도 광고가 전통 미디어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19의 치사율은 0.5~1%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전통 미디어 기업의 치사율은 10~20%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이후의 빅테크
이 책의 테마 중 하나는 앞서 설명했듯이 팬데믹이 이미 진행되고 있던 사회적, 경제적인 동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잘 나가고 있던 아마존과 애플, 구글, 페이스북의 ‘빅테크’ 기업들은 더 잘 나갈 전망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를 집에 묶어 두고 컴퓨터 화면을 더 들여다 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팬데믹은 빅테크에게는 위기가 아니다. 각 기업 별로 알아보자.
아마존(AMZN): 아마존의 핵심 경쟁력은 비전과 스토리텔링이다. 기업들은 매 분기마다 실적을 통해 평가를 받을 때 아마존은 주주들을 설득해 단기 실적을 기대하지 않게 만들었다. 대신 제프 베조스의 비전과 빠른 속도의 성장을 보여주며 주주들이 장기적인 시각들 갖게 만들었다. 단기 실적을 포기하면서 아마존은 다른 기업들이 하지 않는 투자를 감행했고 ‘경제적 해자’를 만들었다. 남들이 적은 비용으로 경쟁우위를 만들어 나갈 때 아마존은 엄청난 투자를 통해 지속가능한 우위를 이뤘다.
그런 아마존에게 이번 팬데믹은 최고의 선물이나 다름 없다. 팬데믹은 아마존의 오프라인 경쟁사들이 문을 닫게 했고 사람들을 집에만 머물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부는 재난지원금을 사람들 손에 들려줬다. 연방정부의 재난 지원금은 사실 ‘아마존 주주 지원금’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아마존은 이 밖에도 다른 기업들이 외부에서 조달하는 (그래서 비용이 되는) 서비스를 내부에서 개발해 매출을 올리는 능력이 탁월하다. 비용이 될 부분을 매출로 바꾸는 마법에 가까운 능력인 셈이다. 클라우드컴퓨팅 부분인 아마존 웹 서비스(AWS)는 전자상거래 기업이 보통 외주를 주는 데이터센터를 자체적으로 발전시킨 대표적인 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갤러웨이 교수는 애플이 시가총액 1조 달러와 2조 달러에 가장 먼저 도달했지만 3조 달러에 가장 먼저 도달하는 건 아마존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아마존이 팬데믹 이후 건강보험 부분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애플(AAPL): 애플은 저가 상품을 프리미엄을 받고 비싸게 팔아 세계에서 가장 수익을 많이 내는 역설적인 기업이다. 예를 들면 토요타처럼 차를 많이 파는데 마진은 페라리만큼 많이 남기는 셈이다. 물론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제품, 아이폰 얘기다.
몇 년에 팬데믹이 찾아 왔다면 애플에게도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제조에 기반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애플은 반복적으로 매출이 일어나는 서비스에 많은 투자를 했다. 애플뮤직, 애플TV플러스, 아케이드가 대표적이다. 2019년 4분기 기준 애플의 서비스 매출은 이전 해에 비해 25% 상승했다. 하드웨어 매출에 비하면 적은 비중이지만 이로 인해 애플은 다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인식이 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내놓고 월정액을 받는 시험을 하고 있다. 이 역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매출이다.
갤러웨이 교수는 이런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매출이 앞으로 애플이 가치를 높여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구글만큼 개인정보로 장사를 하지 않는다는 점도 애플의 강점이다. 애플 CEO 팀 쿡은 ‘프라이버시는 인권’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갤러웨이 교수는 애플이 홈트레이닝 업체 펠로톤을 인수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애플의 이런 ‘반복적인 매출’ 전략이 잘 들어맞는다면 3조 달러 시가총액을 먼저 달성하는 아마존이겠지만 애플도 곧바로 뒤를 이어 3조 달러 가치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구글(GOOGL)과 페이스북(FB): 둘은 기본적으로 광고회사다. 두 기업의 2019년 디지털 광고 시장 점유율은 61%에 이른다. 팬데믹 기간 광고가 줄어들 수는 있지만 전통적인 미디어 기업만큼은 아니다. 그리고 팬데믹이 끝나면 대부분의 광고주들은 돌아올 것이다. 특히 구글과 페이스북은 일부 대기업의 광고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페이스북의 경우 700만 광고주가 있는데 상위 100개 기업이 전체 광고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에 지나지 않는다.
관심 가질만한 스타트업
갤러웨이 교수가 자체적으로 만든 ‘T알고리듬’에 따라 관심을 가질만한 스타트업을 소개한다. T알고리듬은 인간의 본능에 대한 어필, 촉매제, 성장과 마진의 균형, 반복적 매출, 수직통합, 스토리텔링, 호감도의 8가지 요소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에어비앤비(ABNB): 경제적 해자의 정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위치에 있는 기업. 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 매출이 줄었지만 모기지에 대한 이자가 없고 유지비용이 들지 않는 점 덕분에 경쟁사인 호텔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 있다.
브루크리넨(Brooklinen, 비상장): 면 침대커버 회사. 면을 온라인으로 미리 소싱하기 때문에 경쟁 제품보다 싼 값에 면 침대커버를 제공한다.
카니발(CCL): 크루즈 기업. 코로나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업종 중 하나지만 코로나를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다면 주가는 3배로 뛸 수 있다.
레몬에이드(LMND):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와해적인 기술을 가진 보험회사. 지금은 규모가 작지만 잘 변하지 않는 보험업계에서 소비자 경험을 개선할 수 있다면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보험료 산정을 몇 분만에 할 수 있다.
넷플릭스(NFLX): 엄청난 스토리텔링을 통해 제로에 가까운 자본비용으로 성장 모델을 이익을 내는 마진 모델로 바꾼 불가능에 가까운 업적을 이룬 기업. 이런 성취를 이룬 기업은 아마존뿐이 없었다. 넷플릭스는 1달러를 내면 10억 달러 상당의 콘텐츠를 돌려주는 모델. 10달러를 내고 2시간 남짓 동안 1억 달러를 들인 영화를 보던 극장 모델과는 비교할 수 없다. 게다가 극장이 아닌 집에서 즐긴다.
원메디칼(ONEM): 전화로 의사와 직접 연결을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헬스케어 기업. 혁신적인 서비스 딜리버리가 강점.
갤러웨이 교수는 이 밖에도 펠로톤(PTON), 투자앱 퍼블릭과 로빈후드(비상장), 쇼피파이(SHOP), 스포티파이(SPOT), 테슬라(TSLA), 트위터(TWTR), 우버(UBER), 안경테 소매점 와비 파커(비상장), 틱톡(비상장)를 꼽았다. 또 퀴비는 콘텐츠 생태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주목할만한 실패 케이스라고 설명했고, 위워크는 아이디어는 유효하기 때문에 가치만 제대로 산정된다면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밀크의 생각
미래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를 예측하는 책은 많지만 ‘이거다’ 싶은 책은 찾기 힘들다. 갤러웨이 교수의 책도 심오한 통찰력이 깃들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읽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수준의 분석이 많고 논리의 명쾌함에 미소가 지어지는 책인 건 분명하다. 여기에 살짝 냉소적인 톤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코로나 이후의 기업을 분석하듯이 미국의 대학과 정부에 대한 분석도 들어있다.
갤러웨이 교수의 "잘 나가는 기업은 더 잘 나갈 것이고 어려운 기업은 더 어려워 질 것"이라는 분석이 너무 당연한 얘기고 암울한 설명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쩌면 방점은 책의 부제이기도 한 ‘기회는 위기에서 나온다’는 두 번째 테마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래는 하기 나름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