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스탠퍼드 HAI 설립자 “한국, LLM 보다 ‘월드 모델’ 집중해야”
[빅인터뷰] 제임스 랜데이 스탠퍼드대 HAI 공동 소장 단독인터뷰
한국, 피지컬AI·월드 모델에 기회... 제조업에 AI 도입해 일자리 창출
AI 활용하는 법 반드시 익혀야 ‘AI 증강’... 하이브리드 교육 필요
AI, 낙상 발생 3~5년 늦출 수 있어... 중대한 질적 변화 일어날 것
서울에 스탠퍼드 HAI 코리아 센터 설립 의견도
“대규모 언어 모델(LLM) 다음 단계는 ‘월드 모델(Wolrd Model)’입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 중심 인공지능 연구소(HAI)’ 설립자 제임스 랜데이(James Landay) HAI 공동 소장은 더밀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월드 모델 분야에 주력한다면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월드 모델은 현실 세계의 물리 법칙, 공간, 시간, 인과 관계 등을 이해하고 내부적으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AI 시스템을 뜻한다. AI 기술·산업이 LLM에 이어 월드 모델 중심의 ‘피지컬 AI(Physical AI, 물리적 AI)’로 발전 중이며 대한민국은 파운드리(foundry, 반도체 위탁 생산), 배터리, 자동차, 조선, 로봇에 이르는 제조업 생태계를 갖추고 있어 이 분야에서 특히 경쟁력을 가진다는 분석이다.
그는 이어 “한국에 HAI 센터를 설립하고 한국 최고 대학들과 협업한다면 최고 AI 인재의 유출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 제조업에 AI 기술을 접목해 관련 일자리 상황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월드 모델과 피지컬 AI는 실리콘밸리 AI 석학들이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분야다. 메타 수석 AI 과학자를 지낸 얀 르쿤 뉴욕대(NYU) 교수가 월드 모델 개발을 위해 자신의 스타트업 ‘AMI Labs’를 설립했을 정도다. 랜데이 교수와 함께 HAI 공동 소장을 맡고 있는 ‘AI 대모’ 페이페이 리 스탠퍼드대 교수 역시 ‘월드랩스(World Labs)’라는 스타트업을 설립, 월드 모델을 개발 중이다.
랜데이 공동 소장은 15일 HAI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한 2026년 AI 전망에서도 한국을 언급했다. 국가 주도의 AI 데이터센터 투자 및 ‘AI 주권(AI Sovereignty)’ 강화 움직임 사례로 아랍에미리트(UAE)와 한국을 든 것이다.
그는 “2026년에 AI 주권 논의가 크게 가속할 것으로 본다”며 “2026년에도 AI 데이터센터 투자는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이 AI 3강을 달성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더밀크는 랜데이 소장을 화상으로 만나 한국의 AI 전략과 인재 양성 방법, 인간 중심 AI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랜데이 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한국, 피지컬AI·월드 모델에 기회... 제조업에 AI 도입해 일자리 창출
Q: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등 하드웨어 분야의 글로벌 강자다. 반면 미국은 모델 아키텍처에서 앞서간다. 두 나라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협력해야 한다고 보는가.
A: 우선 대규모 언어 모델(LLM)에만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LLM은 이미 ‘작년의 전쟁(last year's battle)’이다. 지금 LLM에만 모든 역량을 쏟는 것은 뒤처진 싸움을 하는 것과 같다.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고, 로봇 공학 및 제조에 영향을 미치는 월드 모델(World Models)이 다음 단계다.
스탠퍼드는 한국 정부, 기업, 대학과 이런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다. 한국은 하드웨어와 제조 엔지니어링에서 수십 년간 쌓아온 리더십이 있고, 스탠퍼드는 AI 모델과 인간 중심 AI에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서로 다른 강점을 결합해 협력하는 것이야말로 양국이 윈윈(Win-Win)하는 전략이다.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차세대 AI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Q: 한국에서는 AI 인재 유출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인재 확보를 위해 어떤 전략을 펴야 할까.
A: 인재 유출은 최고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 해외로 나가야만 한다고 믿을 때 발생한다. 이를 막기 위해 서울에 ‘스탠퍼드 HAI 코리아 센터’ 같은 기관을 설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연구자들이 고국을 떠나지 않고 가족과 문화, 음식을 즐기며 스탠퍼드의 교수진 및 학생들과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강점인 제조업에 AI를 도입해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KAIST,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한국의 명문 대학과 협력해 인재들이 한국에 머물면서도 세계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AI 활용하는 법 반드시 익혀야 ‘AI 증강’... 하이브리드 교육 필요
Q: 많은 젊은 세대가 AI에 의한 일자리 대체를 두려워하고 있다.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
A: 핵심은 사람들이 자신의 업무에서 AI를 활용하는 방법을 반드시 익혀야 한다는 점이다.
강연에서 자주 인용하는 질문이 있는데 “AI가 영상의학과 의사를 대체할까?”란 질문이다.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 올바른 질문은 “AI를 사용하는 영상의학과 의사가 그렇지 않은 의사를 대체할까”다.
직업은 단순히 하나의 ‘태스크(Task)’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업무 사이에는 사람 간의 소통, 맥락 이해와 같은 복잡함 요소들이 존재하는데, 이는 AI가 쉽게 자동화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기계는 공감하는 척을 할 수는 있어도 진정한 공감이나 지혜, 판단력을 갖추진 못했다. 우리는 AI를 활용해 인간의 능력을 증강(Augment)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증강 인간은 인간이 잘하는 것을 취하고, 기계가 잘하는 것으로 이를 증강해 둘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불가능한 더 나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그 방법을 알아가는 초기 단계에 있다. 단순히 인간을 AI로 대체하려고 할 때 종종 실패에 직면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Q: 다가오는 AI 시대, 교육 현장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가?
A: AI는 교육 시스템을 개선할 것이다.
만약 학교가 단순히 “AI 사용은 부정행위니까 아이들이 제대로 배우도록 AI를 배제해야 해”라고 말한다면 AI가 존재하는 업무 현장에서 실제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훈련 기회를 박탈하게 된다. 아이들은 더 나은 학습을 위해 AI를 활용할 때 얻는 이점도 배우지 못한다.
반대로 챗GPT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도 잘못된 접근이다.
AI 시대에 교육과 학습의 새로운 모델이 무엇인지, 아이들의 학습 방식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아직 답은 모르지만, 결국 우리는 AI의 복합적 활용을 보게 될 것이다. 예컨대 하루에 몇 시간씩 AI 맞춤형 튜터를 사용하는 학교들이 있는데,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은 개인 맞춤형으로 기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나머지 시간에는 그룹 활동이나 프로젝트 기반 과제를 수행하며 사회적 팀워크, 정서적 학습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이는 현실 세계에서 성공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하루 중 일부는 AI를 활용하고 나머지 시간은 팀워크와 프로젝트 기반 학습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이 많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스탠퍼드에서도 이런 방식을 시도해 보고 싶다.
AI, 낙상 발생 3~5년 늦출 수 있어... 중대한 질적 변화 일어날 것
Q: 고령화 사회 문제 해결에 AI가 기여할 수 있는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있다면?
A: 한국과 미국 모두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다. 10년 후 우리는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노년층이 자신의 아파트나 집에서 더 나은 삶의 질을 유지하며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AI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AI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감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동시에 인간 근로자들도 노인들을 지원한다. 예를 들어 “걸음걸이에 미세한 문제가 보인다. 이 운동을 하면 낙상 위험을 줄일 수 있어 건강 악화를 방지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 식이다.
이를 통해 낙상 발생을 3~5년 늦출 수 있으며 이는 삶의 질이 유지되는 기간이 연장된다는 의미다. 향후 10년간 AI를 통해 이러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장기적으로 돌아보면 상황이 개선됐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삶의 질에 대한 이러한 중대한 질적 변화는 3~5년이라는 기간으로 측정하기는 너무 짧다.
Q: 스탠퍼드는 연구 성과를 빠르게 제품화하고 창업으로 연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결은 무엇인가?
A: 구조적인 시스템보다는 ‘문화’가 핵심이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는 문화적 토양이 스탠퍼드 창업 생태계의 원동력이다.
또한 캠퍼스 바로 옆에 벤처캐피털(VC)이 밀집해 있어 연구실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투자자와 즉각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지리적, 네트워크적 이점도 크다.
만약 서울에 HAI 센터가 생긴다면 단순한 연구 협력을 넘어 오픈 소스 기반의 혁신을 돕고, 한국의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이 기술을 라이선싱하거나 스핀오프할 수 있도록 인큐베이터 역할도 겸할 수 있길 바란다.
제임스 랜데이 HAI 공동 소장은 누구?
제임스 랜데이(James Landay) 소장은 스탠퍼드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이자 인간 중심 인공지능 연구소(HAI)의 공동 설립자 겸 공동 소장을 맡고 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유비쿼터스 컴퓨팅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그는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증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주도해 왔다. HAI 공동 설립 이후에는 AI가 사회, 윤리,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연구하며 기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AI 개발을 주창하고 있다.
스탠퍼드대학에 합류하기 전에는 뉴욕 코넬 테크에서 1년간 정보과학 교수로, 워싱턴 대학교에서 10년간 컴퓨터과학 및 공학 교수로 재직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다양한 측면을 연구하는 선도적 연구소인 인텔 랩스 시애틀의 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04년 키노트 시스템즈(KeyNote Systems)에 인수된 넷레이커(NetRaker)의 수석 과학자이자 공동 창립자이기도 했다. 그 이전에는 UC 버클리에서 컴퓨터과학 부교수로 재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