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캔바에 '엔젤투자' 빌 타이 "바보 소리 듣던 투자가 세상을 바꿨다"
[CEO포커스] 실리콘밸리의 전설적 투자자 빌 타이
34년간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 운영하며 '줌' '캔바'에 엔젤투자, 대박 일궈내
시장이 전부이며 나머지는 소음,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투자 철학 유지
AI는 빅웨이브. AI가 만들어내는 두가지 큰 웨이브에 올라타라.
빌 타이(Bill Tai).
실리콘밸리가 세계적 혁신단지가 아닌 채리와 딸기를 키우는 과수원(Orchard)이던 시절부터 이 지역에서 혁신을 경험하며 벤처캐피털 이라는 산업을 개척한 1세대 투자자다. 실리콘밸리 VC의 전설로 불린다. 빌 타이는 줌(Zoom)과 캔바(Canva)에 '엔젤'로 첫 투자, 대박을 이뤄냈으며 지금까지 23개 기업을 상장시켰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TSMC의 첫 번째 직원(Employee #001)이기도 하다.
그는 34년간 기술 주기의 파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만들어 실행했다.실리콘밸리에서 34년은 한 생태계가 태어나고 불타고 재가 돼 사라지기를 여러 번 반복할 수 있는 시간이다. 빌 타이는 그 모든 격동의 순간을 온몸으로 겪었다.
빌 타이는 지난 6월 6일 미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 플러그앤플레이(PnP)에서 아시아투지캐피털(Asia2G 캐피털)이 주최한 '비욘드 아시아 테크 서밋(BeyondAsia Tech Summit)'에서 그간의 투자 경험과 원칙, 그리고 AI 시대를 돌파하는 인사이트를 나눴다.
특히 인공지능(AI)라는 거대한 변화의 파도 위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을 공유했다.
"시장이 전부다. 나머지는 소음"
빌 타이가 처음으로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을 하게 된 계기는 전설의 투자자 돈 발렌타인과의 만남이었다. 돈 발렌타인은 실리콘밸리의 최고 벤처투자회사 중 하나인 '세콰이어 캐피털' 을 설립한 인물이다. 구글, 애플, 유튜브, 엔비디아, 야후, 시스코, 줌, 왓츠앱, 링크드인, 에어비앤비, 스트라이프, 로빈후드, 도어대시 등 오늘날 실리콘밸리를 상징하는 기업들은 모두 세콰이어 캐피탈의 투자를 받았다.
20대인 빌 타이는 비행기 결항으로 우연히 마주하게 된 돈 발렌타인에게 "이 업계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고 물었다. 발렌타인은 "세 가지만 제대로 하면 된다. 시장, 경영, 그리고 비싸게 사지 않는 것이다"'고 말했다. 돈 발렌타인은 특히 '시장'의 절대성을 강조했다.
그는 "만약 시장을 잘못 고르면 팀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세계 최고의 경영진과 무한한 돈이 있어도 매번 돈을 잃게 될 거야"라고 조언했다.
이는 공장 설비 같은 물리적 자산이 집중되던 시대의 제1원칙이었다. 빌 타이는 당시의 성공 공식을 "좋은 시장을 고르고, 팀을 투입한 뒤, 성공할 때까지 사람을 교체하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하지만 차이는 이 원칙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시대의 가장 큰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 인터넷의 급격한 발달과 모바일의 등장으로 기술이 평준화되자 핵심 자산의 개념이 땅이나 공장에서 '사람(인재)'으로 옮겨갔다.
빌 타이는 "이제 자산이 물리적 자산에서 인적 자산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먼저 올바른 사람들을 선택해야 했습니다"고 말했다.
시장이라는 대전제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시장을 현실로 만들 '사람'의 가치가 시대의 핵심으로 떠올랐음을 인정한 것이다.
"기술은 스스로를 기반으로 쌓아 올리는 파도다"
빌 타이는 기술의 본질을 '파도'로 정의했다. 한 번의 혁신이 다음 혁신의 발판이 되는 끊임없이 중첩되고 확장되는 거대한 흐름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술은 스스로를 기반으로 쌓아 올리는 일련의 파도와 같다"고 말했다. 이는 그의 투자 전략의 핵심이다. 한 파도에 머무르지 않고,그 파도가 밀어 올릴 다음 파도를 예측하고 먼저 움직여야 한다. 이 파도는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다.
빌 타이는 "지난 25년간 기술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서 기회의 집합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철학 아래 그는 자신만의 '파도타기' 전략을 완성했다.
실제 그는 90년대 초, 자신이 투자한 반도체 회사들의 매출이 통신 분야에서 급증하는 것을 보고 통신 장비 회사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후 통신 장비 회사들의 고객인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90년대 중반, 대만에서 직접 시스코 라우터를 구해와 아시아 10개국에 데이터센터의 전신이 된 사설 ISP를 구축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모두가 닷컴 버블 붕괴의 후유증에 시달릴 때 그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봤다.
"과잉 설비 때문에 웹 2.0이라는 새로운 물결이 시작됐습니다. 마크 저커버그 같은 아이들이 기숙사에서 공짜로 코딩할 수 있었던 시대였죠." 그는 이 거대한 '잉여 자원'이 새로운 혁신을 낳을 것이라 보고 웹 2.0 기업들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파도타기'는 2010년대 클라우드와 모바일 시대로 이어져 줌, 캔바, 위시 같은 그의 대표적인 포트폴리오를 완성시켰다.
파도가 어디에서 부터 오고 어디로 파고가 치고 있는가를 미리 보고 그 흐름을 타고 서핑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120번 거절당한 열정에 투자한다"
빌 타이의 투자가 특별한 이유는 그가 시장의 주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명멸하는 벤처캐피털과 거리를 두면서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정립하고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이에 대해 빌 타이는 "매우 뻔하지 않은(very non obvious) 선택을 통해 역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재무제표나 화려한 경력이 아닌, 창업자의 눈빛과 열정, 그리고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캔바(Canva)의 멜라니 퍼킨스가 대표적 사례다. 빌 타이는 "그녀는 저를 만나기 전 120번이나 투자를 거절당했고, 기술 배경도 없었다"며 "하지만 캔바가 추구하려는 시장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열정을 사랑했으며 그녀가 어떤 문제를 풀려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120번 거절당한 열정에 투자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빌 타이는 3년에 걸쳐 구글 맵스 창업자를 캔바의 CTO로 찾아 연결해줬고 열정만 있던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데 결정적 조언을 했다. 캔바는 지금은 굴지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됐다.
줌(Zoom)의 에릭 위안도 빌 타이의 '엔젤' 포트폴리오다. 에릭 위안이 시스코에서 나와 줌을 창업했을 때 수많은 투자 거절을 받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실리콘밸리 주류 벤처캐털은 "시스코도 존재하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인이 있는데 규모도 작고 공짜인 서비스로로 경쟁하려는 당신은 바보다"라며 줌의 투자 요청을 거절했다.
하지만 빌 타이는 기존 화상회의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던 에릭의 열정과 클라우드 네이티브 아키텍처라는 명확한 비전을 믿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저는 어쨌든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옳았죠."
트레저 데이터(Treasure Data)도 빌 타이의 투자 철학에 기반한 회사다. CEO인 히로와 카즈는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빌 타이는 언어 장벽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빌 타이는 "카즈는 영어를 못했지만 그가 하둡 클러스터 구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고 15분 만에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올바른 기술 배경을 가졌는지 즉시 알 수 있었. 그리고 15분 만에 투자를 약속했다"고 투자의 순간을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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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성장보다 '지속가능한 수익'을 쌓아 올린다"
"나는 이 일이 정말 재미있다"
지난 34년간 빌 타이를 움직이게 한 것은 돈이 아닌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순수한 즐거움이다. 그래서 그의 투자 방식은 자금을 쏟아부어 단기간에 점유율을 높이는 실리콘밸리의 '공격적인(run and gun)' 성장 공식과 거리가 멀다.
빌 타이는 "나는 조금 더 천천히 가는 경향이 있다. 높은 무결성을 가진 팀 구조를 만들고,자금 소진율을 매우 낮게 유지하며 많은 지출 전에 제품-시장 적합성(PMF, Product-Market-Fit)을 찾는 데 집중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워렌 버핏'에 비유했다. "한번에 대박을 만드는 회사보다 매일 아침 조금씩 더 가치가 오르는 회사"를 원한다고 말한다.
캔바와 줌은 그의 철학이 낳은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두 회사 모두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일찍부터 수익성을 달성했다. 특히 캔바는 "이제 8년 동안 수익을 내고 있으며, 연간 33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35~40%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폭발적인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증명하는 강력한 사례다.
AI가 헬스케어와 커뮤니티를 재창조한다
지난 34년간 기술의 변혁기 마다 생긴 '파도'를 넘어 즐겨온 빌 타이는 또 다른 거대한 파도인 AI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빌 타이는 "AI는 앞으로 수십 년간 기술과 사회를 형성할 거대한 혁신의 파도임에 분명하다"며 "향후 20, 30, 40년에 걸쳐 AI가 기술과 사회에 널리 퍼지게 되면 많은 것들이 창조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때문에 지금 빌 타이가 주목하는 스타트업도 이 파도를 탈 수 있는 스타트업에 집중 돼 있다.
그 중에서도 2가지 영역을 꼽았다.
먼저 빌 타이는 AI가 미국 헬스케어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재편할 것으로 봤다. 빌 타이는 "미국 헬스케어는 GDP의 19%를 차지하지만 너무나 엉망이다. 모든 파산의 60%가 의료 부채 때문에 발생한다"며 이 거대하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의 문제는 '데이터의 문제"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를 바꾸면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AI 기술, 특히 시맨틱 AI를 통해 이 복잡한 데이터 문제를 해결하고 시스템의 인센티브 구조를 바로잡는 도전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두번째는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그는 "줌과 같은 비디오 인프라의 다음 단계는 '그것의 추상화'가 될 것이라고 본다. 즉, 비디오가 단순한 회의 도구를 넘어 "커뮤니티의 더 나은 참여를 유도하는 도구"가 되는 '커뮤니티 우선 플랫폼'의 시대가 온다"고 말했다.
이어 "비디오는 텍스트나 음성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하고 더 나은 참여를 유도할 기회를 가진다"며 "AI와 결합한 차세대 비디오 플랫폼이 인간의 상호작용 방식을 바꾸고 새로운 소셜 시대를 열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줌과 같은 서비스가 단순한 화상 회의 도구를 넘어 비디오를 커뮤니티의 참여도를 높이고 즉각적인 연결을 유도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플랫폼으로 진화, 발전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AI와 비디오와 소셜이 결합되는 지점에서 '게임 체인저'가 나온다는 예측이다. 이는 소셜미디어의 미래에서 '빅씽'이 나온다는 것이며 소셜미디어가 단순히 소통 도구를 넘어 비디오를 통해 커뮤니티의 깊은 상호작용과 참여를 극대화하는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이 나올 것이란 예측이다.
'비욘드아시아 테크 서밋 2025'에서 빌 타이는 현장에 모인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의 스타트업 및 벤처투자자들에게 큰 메시지를 남겼다. 성공적인 투자는 유행을 좇는 기술이 아니라 변치 않는 시장의 원칙을 이해하고 그 위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사람'의 가치를 알아보는 깊은 통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계 실리콘밸리 투자사 아시아투지(Asis2G)캐피털과 일본계 투자사 '카바이드 벤처스(Carbide Ventures)'가 공동 주최한 '비욘드아시아 테크 서밋 2025'에서는 약 250명의 벤처투자자와 스타트업 대표 등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 특히 LG AI리서치, 트웰브렙스, CJ그룹 AI센터, SK디스커버리 등에서 각사의 AI 전략에 대해 공개, 큰 관심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