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모든 변곡점에 있었던 남자’ 안드레 카파시, AI 판도 바꿀까
[글로벌 AI 리더 스토리] 안드레 카파시 오픈AI 공동창업 멤버
슬로바키아 이민자 소년, AI의 핵심을 관통하다
AI의 모든 변곡점에 있었던 남자
AI 업계의 교사, 세 개 개념으로 영향력 드러내다
미래는?... 앤트로픽에서의 새 역할, 클로드가 클로드 훈련한다
더밀크의 시각: 연구자는 최고의 무기… ‘AI가 만드는 AI’ 경쟁 대비하라
“앤트로픽에 합류했습니다(I’ve joined Anthropic).”
2026년 5월 19일(현지시각).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이 소셜미디어 X에 올라온 세 단어짜리 문장 한 줄에 멈춰 섰다.
작성자는 AI 업계 슈퍼스타인 안드레 카파시(Andrej Karpathy). 오픈AI 공동창업 멤버 중 한 명이자 테슬라 오토파일럿 개발을 이끈 현대 AI의 거장이 앤트로픽에 합류한다는 소식에 실리콘밸리가 들썩인 것이다.
그의 게시물은 올라온 지 한 시간 만에 조회수 300만 회, 사흘 만에 2650만 회를 돌파했다. 짐 팬(Jim Fan) 엔비디아 AI 부문 디렉터는 “구글 I/O보다 더 큰 뉴스”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노엄 브라운 오픈AI 선임 연구원 역시 “그가 어느 프런티어(frontier, 최첨단) 연구소에 합류하든 분야 전체를 진보시키는 일”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리콘밸리 전문 유튜브 미디어 TBPN은 “계약완료”라는 메시지와 함께 안드레 카파시의 ‘포토카드’를 게시, 마치 대형 스포츠 스타의 이적 뉴스처럼 이 소식을 보도했다.
업계에서는 엘리트 AI 인재를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에서 앤트로픽이 거둔 ‘최대의 쿠데타(major coup)'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오픈AI와 IPO 경쟁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오픈AI 공동창업자 출신 스타 연구자를 영입한 건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더 큰 시그널은 인재 이동의 방향이다. 이번 이적은 단독으로 벌어진 사건이 아니었다. 최근 워크데이(Workday) CTO, 인스타그램 CTO, 박스(Box) CTO 등 빅테크 최고기술책임자들이 잇달아 직함을 내려놓고 앤트로픽 연구직으로 합류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최고 AI 인재’를 끌어당기는 앤트로픽의 중력이 더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슬로바키아 이민자 소년, AI의 핵심을 관통하다
학계, 산업계, 대중 교육에 큰 영향력을 지닌 흔치 않은 연구자 안드레 카파시. 그는 어떻게 업계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구축했을까?
안드레 카파시는 1986년 체코슬로바키아(현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태어났다. 15세 무렵 가족과 함께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한 그는 새로운 환경에서 두뇌 게임, 컴퓨터 과학, 물리학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배드메피스토(badmephisto)’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루빅스 큐브 스피드큐빙 강좌를 올리기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큐브를 54개의 스티커가 아닌 26개의 ‘큐비(cubie)’로 쪼개 이해하는 방식을 가르쳤고, 약 17초 만에 큐브를 맞출 수 있었다. 작은 구조를 완전히 장악하면 더 큰 전체를 움직일 수 있다는 논리를 일찌감치 터득했다.
카파시는 토론토대학교에서 컴퓨터과학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교(UBC)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15년 스탠퍼드대학교에서 AI 분야 석학 페이페이 리(Fei-Fei Li) 교수 지도 아래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이미지와 자연어를 잇다(Connecting Images and Natural Language)’는 제목의 그의 박사 논문은 컴퓨터 비전과 자연어처리의 교차점을 탐구한 연구로, 이후 AI 발전의 핵심을 관통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 주제는 이후 10년간 AI 발전의 핵심 축이 됐다.
AI의 모든 변곡점에 있었던 남자
이후 카파시는 ‘AI의 모든 변곡점에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만큼 현대 AI 역사의 중요한 지점을 거쳤다.
오픈AI 창업 멤버 (2015~2017)
박사 학위 취득 직후 카파시는 오픈AI 창립 연구과학자 중 한 명으로 합류했다. 당시 오픈AI는 비영리 법인이었고, 창립 멤버로는 샘 알트만, 일리야 수츠케버, 일론 머스크 등이 포함됐다. 카파시는 딥러닝과 컴퓨터 비전 분야에 집중했다.
이 시기 그는 또 하나의 족적을 남겼다. 스탠퍼드에서 딥러닝 최초의 전문 강좌인 ‘CS231n’을 설계하고 직접 가르친 것이다.
2015년 수강생 150명이었던 이 수업은 2017년 750명 규모로 성장, 스탠퍼드에서 가장 큰 강의 중 하나가 됐다. 이후 강의 녹화본이 유튜브에 공개됐고, 전 세계 개발자와 연구자들이 이를 활용해 머신러닝의 기초를 닦았다. 그가 수많은 AI 개발자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다.
테슬라 AI 책임자 (2017~2022)
2017년 6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영입 제안에 따라 카파시는 테슬라의 AI 디렉터가 됐다. 머스크 CEO에게 직접 보고하는 자리였다.
그는 오토파일럿에 탑재된 모든 신경망을 책임지는 팀을 이끌며 데이터 레이블링, 신경망 학습, 테슬라 전용 추론 칩 배포까지 전 과정을 총괄했다. 수백만 대의 차량에 AI를 탑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현장 딥러닝 프로젝트를 주도한 것이다.
테슬라에서 일하던 시기는 그에게 AI 이론을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건 흔치 않은 기회였다. 현재 테슬라의 AI 기반 자율주행 기술은 전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기술로 평가받는다. 이런 이력을 바탕으로 카파시는 2020년 MIT 테크놀로지 리뷰 선정 ‘35세 이하 혁신가(Innovators Under 35)’에 선정되기도 했다.
오픈AI 복귀 (2023~2024)
2022년 테슬라를 떠난 카파시는 2023년 오픈AI에 복귀했다가 2024년 2월 다시 퇴직했다. 이와 관련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특정 사건이나 드라마의 결과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만 그가 퇴직하기 직전인 2023년 11월 샘 알트만 오픈AI CEO의 축출과 복귀가 이뤄졌다는 걸 고려하면 카파시 역시 오픈AI 내부에서 휘몰아친 소용돌이를 목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오픈AI에 머무는 동안 중간 학습(mid-training)과 합성 데이터 생성(synthetic data) 파이프라인을 연구했다. 모두 현재 모든 프런티어 모델 개발의 핵심 요소로 평가되는 분야다.
‘AI+교육’ 유레카 랩스 창업 (2024)
오픈AI를 다시 떠난 카파시는 2024년 AI 보조교사를 교육에 적용하는 스타트업 ‘유레카 랩스(Eureka Labs)’를 창업했다.
지난 20년 동안 AI와 교육에 열정을 가져왔던 카파시가 자신의 스타트업으로 AI와 교육을 접목한 아이템을 선정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교사 + AI의 상생 모델은 하나의 통합 플랫폼에서 전체 교육 과정을 운영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며 “만약 우리가 성공한다면 누구나 무엇이든 쉽게 배울 수 있게 돼 교육의 도달 범위, 한 사람이 배울 수 있는 주제 모두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번에 발표한 앤트로픽 합류 결정으로 유레카 랩스 프로젝트는 일시 중단 상태가 됐다. 카파시는 X 게시물에서 “교육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깊다. 때가 되면 작업을 재개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2024년 타임지(TIME)의 ‘가장 영향력 있는 AI 인물 100인(TIME100 Most Influential People in AI)’에 이름을 올리며 ‘자타공인’ AI 최고 전문가 반열에 올랐다.
AI 업계의 교사, 세 개 개념으로 영향력 드러내다
카파시가 업계 전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건 그의 화려한 경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개념을 정의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더 결정적이었다.
①소프트웨어 2.0 (Software 2.0)
카파시는 2017년 ‘소프트웨어 2.0’ 개념을 제시했다. 개발자가 직접 규칙을 코딩하는 ‘소프트웨어 1.0’ 시대와 달리, 소프트웨어 2.0에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경망 가중치를 최적화해 소프트웨어를 ‘작성’한다는 패러다임 전환을 설명한 것이다. 이 에세이는 AI 업계의 방향 전환을 선언한 글로 수없이 인용됐다.
②소프트웨어 3.0 (Software 3.0)
카파시는 이후 소프트웨어 3.0 개념을 추가했다. 소프트웨어 1.0은 명시적 규칙, 소프트웨어 2.0은 데이터셋을 통한 학습에 기반했다면, 소프트웨어 3.0은 LLM(대규모언어모델)에 주어지는 프롬프트가 프로그램 그 자체가 되는 패러다임이라고 설명했다.
이 맥락에서 그는 “프롬프트가 새로운 코드(context is the new code)”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 표현이 AI 개발자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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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바이브 코딩 (Vibe Coding)
2025년 2월, 카파시는 X에 한 게시물을 올리며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냈다. 코드를 몰라도 원하는 것을 자연어로 설명하면 AI가 코드를 작성해 주는 새로운 방식의 개발을 묘사한 개념이었다.
이 단어는 IT 업계를 넘어 비즈니스 세계 전체로 퍼져나갔고, 콜린스 사전(Collins Dictionary)은 이 단어를 2025년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로 선정됐다. 기업들은 바이브 코딩을 적극 도입했고, 자체 AI 에이전트(agent, 대리인)를 개발하며 이른바 ‘사스아포칼립스(SaaSpocalypse)’ 논쟁이 촉발되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최초의 바이브 코딩 게시물에서 그가 언급한 모델이 바로 앤트로픽의 모델이었다는 점이다. 최첨단 도구(AI 모델)을 사용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그의 성향 자체가 그를 최첨단 연구소(앤트로픽)으로 다시 이끈 셈이다.
미래는?... 앤트로픽에서의 새 역할, 클로드가 클로드 훈련한다
카파시는 닉 조셉 앤트로픽 프리트레이닝(pre-training) 팀장 산하로 합류했다.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Claude)를 활용해 프리트레이닝 연구를 가속화하는 팀을 새로 구성할 것으로 관측된다.
프리트레이닝은 클로드(Claude)에 핵심 지식과 역량을 부여하는 대규모 학습 실행을 담당하는 부서다. 프리트레이닝은 AI 모델 개발에서도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연산(컴퓨팅) 집약적인 단계다.
이는 단순한 인재 영입 이상의 전략적 선언이다. 카파시는 LLM 이론과 대규모 학습 실전을 연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연구자 중 하나로 꼽힌다. 카파시가 이런 팀을 구성하는 것은 AI가 다음 세대의 AI를 개발하는 ‘지능 폭발(intelligence explosion)’의 시작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오픈AI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일리야 수츠케버 역시 비슷한 개념을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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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카파시는 AI 코딩 에이전트를 혼자 구동해 소규모 언어 모델을 이틀간 무감독으로 테스트·조정하도록 한 ‘자동 연구(autoresearch)’ 실험을 공개하기도 했다. 700회의 실험과 20가지의 자체 발견 최적화 끝에 같은 조정을 더 큰 모델에 적용하자 학습 시간이 11% 단축됐다.
그는 이를 “코드의 일부, SF의 일부, 그리고 약간의 사이코시스(psychosis, 정신증)”라고 묘사했다. 업계에서 ‘카파시 루프(Karpathy Loop)’라고 부르기 시작한 이 방법론을 앤트로픽 내에서 추진, 클로드 자체 개발에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현재 약 9000억달러(약 1360조원) 기업가치로 신규 자금 조달 협상을 진행 중인 앤트로픽이 AI 기술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경우 AI 패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더밀크의 시각: 연구자는 최고의 무기… ‘AI가 만드는 AI’ 경쟁 대비하라
카파시의 이번 결정은 AI 업계의 경쟁 구도와 연구 및 교육 분야에서 여러 층위의 함의를 던진다.
가장 먼전 눈에 띄는 건 ‘연구자가 최고의 무기’라는 공식이다. AI 경쟁은 종종 대규모 펀딩과 컴퓨팅 파워를 중심으로 논의된다. 그러나 카파시의 사례에서 보듯 최첨단의 경계선을 실제로 한발 진전시킬 수 있는 소수의 연구자를 확보하는 것은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이 다시 증명됐다.
더 중요한 시그널은 ‘AI로 AI를 만드는’ 경쟁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앤트로픽이 클로드를 활용해 프리트레이닝 연구를 가속화하는 시도를 계속 진행하고, 이 시도가 좋은 성과로 이어지면 더 나은 모델이 더 좋은 연구를 낳는 ‘플라이휠(flywheel)’이 작동하게 된다. 이 플라이휠을 확보한 기업은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나머지는 뒤처지는 미래가 도래할 것이다.
카파시는 스타트업 성공 신화 없이 박사 논문에서 시작된 기초 연구가 현대 AI의 핵심 기반이 됐음을 몸소 증명했다. 한국에서도 단기 성과에 치중하는 연구 환경에서 벗어나 기초 연구와 장기적 인재 육성 구조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가 포착한 소프트웨어 3.0과 바이브 코딩의 보편화는 기존의 컴퓨터 공학 교육 과정의 종말을 예고했다. 주입식 문법 암기와 알고리즘 규칙 모사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비즈니스 및 공학적 문제 정의 능력이 우수한 융합형 인재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국가 정보기술 교육의 패러다임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