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관세 폭탄은 트럼프의 '아메리시트'... 노윈 게임 될 것
2025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전쟁은 미국이 지난 100년간 만들고 유지한 질서에서 탈퇴 선언
2016년 6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연상케 해
영국 EU 탈퇴 이후 통상 수출 내수 내리막길 걸어
미국, 중국, 세계 어느 누구도 승자 아닌 '노윈(No-win)' 게임 될 것
지난 2016년 6월 23일. 아직도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설마.." 했던 것이 현실이 됐다. 바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가 영국 국민투표에 의해 통과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당시 미국 실리콘밸리 특파원으로 갓 부임했을 때였다. 당시 미국의 반응을 신속하게 전달하느라 바빴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하던 미국도, 미국 언론도 모두 예상치 못한 결과에 우왕좌왕하고 있던 당시를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영국인들은 유럽연합에 속해 부여된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통제권'을 찾아오고 싶어했다(찬성 51.9%). 그것이 '대영제국'의 영광을 다시 찾아올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브렉시트 5년후(2016년 6월 국민투표 후 협상 끝에 영국의 실제 EU 탈퇴는 2020년 1월 31일 발표됐다) 어떻게 됐을까? 영국이 EU의 단일시장·관세 동맹에서 빠져나온 이후 무역은 부정적 영향을 받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영국 BBC에 따르면 브렉시트 뒤 EU에 대한 영국의 상품 수출이 EU 잔류를 가정했을 때보다 6%~30% 줄었다. 실제 런던정경대학교 경제실적센터에 따르면 EU와 교역을 하던 영국 기업을 조사한 결과 1만6400개 중소기업이 브렉시트 후 EU시장으로의 수출을 중단했다.
브렉시트 결정 이후 영국의 경제 성장률은 EU 회원국 평균보다 낮아졌으며 세계 무역에서의 입지도 약화됐다. 브렉시트 이전 영국은 세계 5위의 수출국이었지만, 현재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영국의 외교적 영향력 역시 감소했다. 브렉시트 이전 영국은 EU의 일원으로서 세계 최대 무역 블록의 규칙 제정에 중요한 발언권을 가졌으나, 이제는 EU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식적인 수단을 상실했다. 이후 여론은 나빠져 브렉시트를 이끈 보수당은 거센 '심판론' 속에 패배하고 2024년 7월 노동당이 집권하는 결과를 낳았다.
상호관세 폭탄은 사실상의 아메리시트
2025년 4월 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정책을 목격하며 2016년 '브렉시트'를 떠올렸다. 단순한 무역 조치가 아닌, 미국이 스스로 구축한 세계질서에서 이탈하는 '아메리시트(Amerexit)'의 선언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0년간 미국이 주도해온 국제 경제 시스템과 다자주의 질서에서 스스로 물러나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다. 아메리시트는 '브렉시트'처럼 미국(America)과 출구(Exit)의 합성어다.
트럼프의 상호관세 부과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해온 세계무역기구(WTO), 세계보건기구(WHO),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기후변화 협약 등 미국이 주도해 만든 국제기구와 협약 무력화 시도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 구호 아래 다자간 협력보다 미국 중심의 일방적 행동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유라시아 그룹의 이안 브레머(Ian Bremmer)는 미국의 글로벌 미디어 세마포(Semafor)에 "트럼프가 미국의 독립 선언으로 여기는 이 관세 정책은 전 세계적 규모로 확장된 브렉시트와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대니얼 스나이더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정책ㆍ동아시아학 교수는 한국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동맹국에 포커스를 맞춘 트럼프의 이번 공격은 미국이 만들고 주도한 전후(戰後) 질서에 대한 광범위한 해체 시도 중 하나다. 트럼프 개인의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 그리고 세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깊은 무지의 결과다. 트럼프는 미국이 구축한 세계 질서의 적이다"고 평가했다.
마이클 비먼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번 관세는 100년 전 미국의 관세 정책이었던 ‘보호 관세’ 개념을 불러낸 것이며, 무역의 판을 근본적으로 재설정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특히 1945년 2차 대전 종전 이후 미국이 만들어놓은 규칙 기반 세계 무역질서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완전히 단절하고 한국 등 개별 국가와 맺은 자유무역협정(FTA) 논리도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고 해석했다.
브렉시트와 유사한 궤적의 트럼프의 상호관세 선언
트럼프의 '해방의 날(Liberation Day)' 선언은 영국의 브렉시트 과정과 유사한 궤적을 보인다.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기 전후, 영국 유권자들이 수많은 종말론적 경고를 믿지 않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이번에도 미국내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트럼프의 무역 제한 조치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경제적 이유보다 세계 질서 설계자 및 지킴이로서의 '의무'를 벗어 던지겠다는 요구가 당장의 경제적 피해보다 더 큰 이익으로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세기 동안 미국은 브레턴우즈 체제, 세계무역기구(WTO),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세계보건기구(WHO) 등 수많은 국제기구와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개방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세계 질서를 구축했다. 이 질서는 미국의 이익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의 성장과 안정, 글로벌 안보와 공중보건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1기에 이은 2기 출범, 그리고 상호관세 밀어부치기를 통해 사실상의 '아메리시트'는 다자간 협력 체제에서 벗어나 일방주의적인 접근이 '뉴노멀'이 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WHO 및 기후변화 협정에서 탈퇴를 선언했으며 WTO의 분쟁해결 기구를 무력화시키고, NATO 동맹국들에 대한 방위약속을 재고하는 등 미국이 주도해 만든 국제기구들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일련의 조치를 잇취하고 있다. 이번 상호관세 부과는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미국이 세계무역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적 조치다. 트럼프의 '아메리시트'는 단순한 관세 부과를 넘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한 세계질서의 근본적인 해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브렉시트가 영국에 준 경제적 피해와 영국인에 준 고통처럼 미국인들도 스태그플레이션(스태그네이션, stagnation과 인플레이션, inflation의 합성어로, 거시경제학에서 고(高) 물가상승과 실직, 경기 후퇴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에 이은 리세션(경기후퇴) 등 경제적 피해를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상호관세 발표 이후 이틀 동안 미국 나스닥 지수가 10.3% 폭락하고 뉴욕 증시에서만 6.6조 달러가 사라졌다. 이는 '리세션'에 대한 시장의 공포를 반영한다. 예일대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물가가 1.3% 오르고 가구당 2100달러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미국의 GDP가 장기적으로 0.4% 줄어들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제적 영향과 미국의 위상 변화 불가피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상호관세 정책이 단기적으로 미국 내 일부 산업을 보호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세계 경제와 미국 경제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상호관세는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시키고, 인플레이션을 촉진하며, 무역 파트너들의 보복 조치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WTO 무력화는 국제 무역 분쟁 해결 메커니즘을 약화시켜 무역 관계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WHO 탈퇴는 글로벌 공중보건 대응 능력을 약화시키며, NATO에 대한 의문 제기는 동맹국들의 신뢰를 손상시킨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 스스로 구축한 국제 질서와 제도에서 물러남으로써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과 소프트 파워가 크게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브렉시트가 영국의 국제적 영향력과 발언권을 감소시켰듯 미국의 '아메리시트'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지도적 위치를 약화시키고 결과적으로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과 WTO, WHO, NATO 등 국제기구에 대한 무력화 시도는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주권을 되찾고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시도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는 미국이 지난 세기 동안 주도해 온 국제 질서에서 스스로 탈퇴하는 것이며 미국, 중국, 세계 모두가 승자가 없는 '노윈(No-win)' 게임이 될 것이다.
새로운 세계 질서의 형성과 권력 공백 .. 중국이 공백을 채우려할 것
트럼프의 '아메리시트'는 단순한 무역 정책의 변화를 넘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형성된 세계 질서의 재편을 의미한다.
미국이 WTO, WHO, NATO 등 국제 협력의 장에서 물러나면 특히 중국이 그 공백을 채우려 할 것이며, 이는 미국의 장기적 이익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실제 중국은 이미 일대일로(一帶一路) 이니셔티브,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을 통해 대안적 국제 질서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의 '아메리시트'는 특히 이번 관세로 큰 타격을 받은 베트남, 캄보디아 등 미국의 영향을 받아 개혁개방을 통해 세력의 균형을 맞추려 했던 사회주의 배경의 동남아 국가들을 급격히 '친중'으로 돌려세울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에 더욱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게 할 것이다.
영국의 브렉시트가 유럽 내 영국의 영향력을 감소 시켰듯 미국의 '아메리시트'는 글로벌 무대에서 미국의 소프트 파워와 협상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미국이 스스로 세운 규칙과 제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역설적으로 미국이 세계 무대에서 발언권을 잃게 만들고, 결국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심각하게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세계화된 경제와 상호의존적인 국제 관계에서 미국이 스스로 구축한 시스템에서 이탈하는 것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약화시키고, 중국이 그 공백을 채우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세계화된 경제와 국제 관계에서 상호의존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를 거부하기보다는 현명하게 관리하고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국제 질서를 이끌어가는 것이 미국과 세계의 지속적인 번영과 안정을 위한 길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