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교과서에 갇힌 한국 교육 ... 미국은 대대적 'AI 교육 전환' 실험 중
[현장 분석] 미국, AI 활용 교육 도입에 박차
오하이오, 유치원-고등학교 AI 활용 정책 수립 의무화 법안 통과
오픈AI, 미 최대 교원노조 AFT와 '전국AI교육 아카데미' 출범
트럼프 행정부도 행정명령 내고 AI 공교육 도입 속도
한국은 AI 교과서 논쟁에 갇혀 있어... 실질적 논의 시급
주(State) 내 모든 공립학교(유치원-고등학교)에서 인공지능(AI) 활용에 대한 정책을 내년 7월까지 수립하라.오하이오 주정부
인공지능(AI) 기술이 미국의 공교육 환경을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과거 노트북과 태블릿이 교실 한 켠을 차지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챗GPT와 구글 제미나이(Gemini) 같은 생성 AI가 학생들의 학습 파트너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미국 오하이오주가 대표 사례다. 오하이오는 지난 6월 8일 주 내 모든 공립 K-12 학교(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서 AI 활용에 대한 정책을 내년 7월까지 수립하도록 의무화했다. 챗GPT 등 생성형 AI 도구의 확산에 따른 교육 현장의 혼란을 줄이고, AI를 교육 혁신의 도구로 적극 활용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이번 조치는 미국 내에서도 선도적인 입법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여러 주가 교직원 및 학생의 AI 활용에 대한 가이드라인 수준의 권고안을 발표한 바 있지만, 실제 정책 수립을 의무화한 것은 이례적이다.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시 교육청의 크리스토퍼 록하트 최고정보책임자(CIO)는 지난 6월 교육위원회 회의에서 “AI는 다른 기술과 빠르게 융합하며 발전하고 있다"며 "지나치게 경직된 기준은 오히려 교육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다. 유연하고 실용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교육계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워싱턴주의 켈소(Kelso) 지역 중·고등학교는 올해부터 구글 제미나이를 활용, 학생들이 조사 과제나 글쓰기 활동을 수행하도록 했다.
또 뉴저지주 뉴어크의 초등학교에선 칸아카데미의 AI가 학생의 수준에 맞는 학습 그룹을 자동으로 편성하고 수업 중에는 실시간으로 학생 질문에 응답하는 ‘AI 조교’ 역할을 맡고 있다. 조사나 글쓰기를 넘어 아예 수업 디자인과 보조 역할까지 AI에게 맡긴 확장 사례다.
대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CSU) 시스템은 46만 명의 학생에게 챗GPT 접근권을 제공하는 계약을 오픈AI와 체결했다. 약 1700만 달러(약 230억 원) 규모다. 주정부의 예산 삭감 속에서도 대학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명확하다.
코딩, 디지털 아트, 에세이 첨삭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가 실질적인 학습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오픈AI, 미 최대 교원노조 AFT와 '전국AI교육 아카데미' 출범
AI를 공교육에 도입하려는 기술 기업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는 최근 교사들에게 AI 활용법을 교육하는 대규모 지원 프로그램에 수백만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단순한 기술 보급을 넘어 교실 운영 방식 자체를 AI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전략이다. 칸아카데미, 구글, 애플 등 주요 기술 기업들도 앞다퉈 ‘AI 교실’ 솔루션을 개발하고 학교 현장에 도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오픈AI의 행보가 가장 두드러진다. 오픈AI는 지난 6월 미국교사연맹(AFT)과 함께 ‘전국 AI 교육 아카데미(National Academy for AI Instruction)’를 출범했다. 이에 따라 오픈AI는 40만 명에 달하는 교사들과 함께 학교 내 인공지능(AI)의 미래를 함께 설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미국교사연맹은 전미교육자 협회(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 NEA)와 함께 미국의 양대 교원노조로 꼽힌다. NEA에는 평교사와 교육장·교장 등 교육행정가, 학교 직원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AFT는 초·중·고 교사만 정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전국 AI 교육 아카데미’는 오는 2030년까지 미국 전역의 40만 명 이상의 교사들이 실질적인 AI 활용 역량(AI fluency)을 기를 수 있도록 지원한다.
AI 활용 역량강화 교육 내용은
① 워크숍, 온라인 강의, 실습 중심의 교육 세션
② 교육 격차가 큰 지역의 학교들을 우선 대상으로 삼아 AI의 실질적인 혜택과 접근성 확대
③ 뉴욕시에 대표 캠퍼스를 개설, 전국적으로 프로그램 확산 등이다.
오픈AI의 지원을 통해 교육자 및 교육 콘텐츠 개발자들은 교육을 위한 오픈AI 기술 및 향후 개발될 도구에 우선 접근권 제공받게 되며 교실 맞춤형 AI 도구를 만들 수 있도록 토큰 및 API 크레딧 지원받는다. 여기에 아카데미 학습 플랫폼과 각 학교의 학습 시스템에 AI 도구를 통합할 수 있는 기술 지원을 제공받게 된다.
크리스 레한 오픈AI 최고 글로벌 담당자는 AI를 '네 번째 R'이라고 표현했다. 읽기, 쓰기, 산수와 함께 AI 활용 능력이 기본 교육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구식 교육의 기초는 오랫동안 읽기, 쓰기, 산수 등을 뜻하는 3Rs (Reading, wRiting, aRithmetic)로 인식됐는데 여기에 오픈AI는 네번째 R로 AI(인공지능 활용 능력)를 추가해 미래 교육의 기본 소양이 되야 한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행정부도 AI 교육기관 도입 속도... 행정명령 내고 "가이드라인 마련하라" 조치
이같은 변화는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민간과 정부의 공통된 인식에서 비롯됐다. AI가 모든 산업과 경제 시스템을 바꾸고 심지어는 '대학 졸업장도 필요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공교육 시스템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전 학년 교육 과정에 인공지능(AI)을 도입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과 관련, "미국이 기술 패권을 놓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정명령에 따라 ‘AI 교육 태스크포스’가 구성됐으며, 7월까지 교육 현장에서 AI 활용을 장려하기 위한 전국적 실행계획을 수립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각 주의 교육기관을 위한 연방 차원의 AI 리소스 목록이 마련될 예정이며, 교육부는 학생들에게 AI 교육 자원을 제공하기 위한 보조금 가이드라인을 7월까지 마련해야 한다. 백악관은 이 명령이 “모든 미국인이 교육의 초기 단계부터 AI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마이애미, 로스앤젤레스, 필라델피아 등 미국 주요 도시 학군이 K-12(유치원~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AI 챗봇을 도입하는 움직임과 맞물려 발표됐다.
존 베일리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에듀케이션 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AI 경쟁력 확보는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관심사 중 하나”라며, “최근 중국이 AI를 교육 시스템에 통합하려는 정책을 발표한 만큼, 미국이 이에 대응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연방 정부가 AI를 통해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AI 문해력(AI literacy)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식을 모색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미국의 주요 대도시 학군은 이미 K-12(유치원부터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AI 챗봇과 학습 도구를 교실에 도입하고 있다. 최근 갤럽(Gallup)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교사의 25% 이상이 AI 기반 학습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AI가 단순한 보조 수단을 넘어, 실제 교실 생태계를 바꾸는 변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AI 도입의 명분은 분명하다.
학생 맞춤형 학습, 교사의 업무 경감, 그리고 미래 노동시장에 대비한 AI 활용 능력 배양 등이다. 지난 2023년 교육심리저널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AI는 학생의 수준에 맞춘 피드백을 제공하는 데 효과적(전통적 일괄형 피드백 대비 AI 기반 피드백은 학생 성취도에서 평균 0.23 표준편차 향상을 보였으며 특히 저성취 학생군에서 효과가 더 크다)일 수 있으며 유엔도 2021년 보고서에서 AI 챗봇을 24시간 개인 튜터로 활용 가능성을 제시(AI 챗봇이 교사가 부재한 시간대에 학생들에게 24시간 개인화된 학습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보완 도구로 잠재력이 크다고 제안)한 바 있다.
미국 공교육의 AI 문해력 밀어부치기에 대해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는 오히려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카네기 멜론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AI 챗봇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기 때문이다. 브래드 스미스 마이크로소프트 사장조차 이를 우려스럽게 여겨 직원들에게 자주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학 교수들의 연구에서는 인기 AI 도구 3종이 법학 교재 요약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했으며 학습에 "용납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가 그럴듯해 보이는 잘못된 정보를 생성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 교육계에서는 더 근본적인 우려를 제기한다. 기업들이 학교와 교원 노조와의 AI 거래를 통해 학생들을 평생 고객으로 만들려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순수하게 교육적 목적이 아니라 젊은이들을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는 소비자로 만들려는 기업의 장기 투자라는 분석이다.
이들 기업은 인터넷에서 무단으로 수집한 텍스트로 AI 모델을 훈련시키면서도 창작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미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저작권 침해로 고소한 바 있다.
AI 교실, 멈출 수 없는 흐름… 미국은 실험 중, 한국은 뒷걸음질
AI 활용 교육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한국은 이 분야에 앞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엔 AI 디지털 교과서 논쟁으로 AI 교육 전체가 갇혀 있는 상황이다. 현재 여야 정치권과 교육계, 민간 교육 업체들은 AI 교과서를 ‘교과서’로 인정할지, ‘교육자료’로 볼지에 대한 법적 지위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AI 교과서 도입 논쟁은 단순히 교육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본질, 형평성, 현장 수용성, 법적·윤리적 기준 등 복합적인 쟁점을 포함하고 있다. 혁신과 신중함 사이에서 균형 잡힌 정책 설계와 현장 의견 반영, 충분한 준비와 검증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신중함이 ‘정치적 공방’ 차원에 머무른다면 '타이밍'을 놓쳐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국가가 감당해야 한다.
미국은 이미 시행을 통해 문제를 드러내고 논쟁을 거쳐 방향을 조정하는 ‘실험의 길’에 들어섰다.
AI 공교육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중요한 것은 방향성과 실행 속도다. 더 늦기 전에 교사 연수 체계를 정비하고 윤리와 안전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며 단계적으로 AI를 공교육에 통합할 구체적인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 교실이 ‘AI 시대’를 따라가는 공간이 아닌, 주도하는 공간이 되어야 할 시점이다.
기술 발전은 멈출 수 없는 흐름이다. 중요한 것은 시행착오를 허용하면서도 책임 있게 제도와 기준을 정비해 나가는 것이다.
더밀크의 제언 : 'AI 교과서' 논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의 AI 교육'이라는 같은 숙제를 두고 한국과 미국은 처음부터 접근 방식이 달랐다.
지금 한국의 논쟁은 AI 디지털 교과서를 법적으로 교과서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형식적·법적 논점에 집중 돼 있지만 미국은 “AI가 교사의 역할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학생의 사고 능력과 정서 발달에는 어떤 영향이 있는가?”라는 실질적 교육 철학과 현장 효과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 중인 것이 다르다.
미국은 수많은 실패와 논란을 실제 시행 과정에서 발견하고 정책으로 조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때문에 미국은 연방 차원에서 일괄 적용하기 보다 '주' 차원에서 먼저 접근했다.
실제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시 교육청의 크리스토퍼 록하트 최고정보책임자(CIO)는 "우리는 이제 AI라는 마법을 다시 병 속에 가둘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앞으로 AI는 경쟁력 있는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AI 공교육 도입에 따른 우려가 존재함에도, 멈춰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반면 한국은 완벽한 제도 설계 전엔 도입 불가라는 ‘선-제도, 후-실행’ 프레임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또 미국은 ‘AI 교과서’라는 도구(툴)보다 ‘AI 교실 설계’과 AI를 가르치는 '교사'에 초점을 맞췄다. 아동 발달 심리학, 데이터 프라이버시, 알고리즘 투명성에 기반한 기준을 함께 마련했다.
한국에서도 AI 교과서를 처음부터 전국 단위가 아닌 지역 교육청 중심의 실험구 운영, 교사 자율 활용 사례 등을 통해 데이터 기반 정책 학습 시스템 마련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비영리단체 코드닷오알지(Code.org)의 팻 용프라딧 최고교육책임자도 “AI 문해력은 단순히 AI를 ‘사용하는 방법’을 넘어, AI와의 창의적 협업, 효과적인 관리, 책임 있는 설계 역량까지 포함돼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고품질의 교사 연수”라고 강조했다.
AI 교육의 미래는 법 조항이 아니라 실제 교실의 변화에서 결정된다. 특히 '추격형 인재'보다 'AI 선도형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 한국의 중등 교육은 학생들이 AI 시대의 소비자가 아니라 설계자가 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교육 실험 능력과 빠른 정책 적용 역량을 갖춘 나라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 논쟁의 소모가 아니라 현장 중심의 실행력 있는 시스템 구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