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 해보면 누구도 AI가 일자리를 뺏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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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권 · 권순우 2025.08.13 14:00 PDT
"AX 해보면 누구도 AI가 일자리를 뺏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UKIS2025에서 박희덕 트랜드링크 대표가 투자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박희덕 대표, 스캇 벨 한화큐셀 부사장, 이승훈 조지아주경제개발국 매니저, 김재천 한미동남부상의 회장. (출처 : 더밀크 )

[UKIS2025 패널토의] 제조AI 전문가 대담
박희덕 트랜스링크 대표, 스캇 벨 한화큐셀 부사장, 이승훈 GA경제개발국 과장 패널
“AI·자동화로 기술 장벽 낮춰… 세대와 배경을 넘어 평등한 성장 기회 제공”
“AI가 재편하는 미국 제조업: 투자·인재·교육의 새로운 기준”
“미국 진출 성공의 열쇠는 기술뿐 아니라 ‘파트너십’과 비즈니스 역량 강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를 활용한 무역전쟁으로 인해 미국 시장은 글로벌 기업에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문턱은 결코 낮지 않다. 단순히 투자 뮤로 때문만이 아니다. 한국 기업들이 현지 진출 과정에서 마주하는 문화적·언어적 차이와, 한국이 강점을 지닌 제조 부문의 AI·자동화가 급속히 재편하는 산업 구조는 인재 확보와 조직 운영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준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현지화’와 ‘기술 혁신’을 동시에 추진하며 이 난제를 돌파하고 있다. AI와 자동화를 HR의 파트너로 삼아, 세대·성별·배경을 초월한 고용 구조를 만들고 생산성과 혁신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중이다.

인공지능(AI)과 자동화가 경기장(근무 환경)을 평등하게 만들고 있다.
스캇 벨 한화큐셀 파트너십 및 거버넌스 부사장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미국-한국 산업 쇼케이스(UKIS2025)'에서 스캇 벨 한화큐셀 파트너십 및 거버넌스 부사장은 AI와 자동화가 불러온 제조업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우리가 현재 운영하는 공장 주변은 과거 카펫 산업이 주를 이뤘던 저기술 기반의 지역이었다”며 “지금 우리가 제공하는 일자리는 접근성과 진입 장벽 면에서 과거와 수광년 차이가 난다”고 언급했다.

그가 말한 변화의 핵심은 다양성이다. 한화큐셀 달튼 공장에는 고등학생부터 은퇴 직전의 시니어까지 폭넓은 연령대가 근무하고 있다. 여성과 남성의 비율도 50대 50이다.

벨 부사장은 “조지아텍 등과 협업해 개발한 AI 도구 덕분에 직원들은 복잡한 과학 지식이 없어도 현장 운영이 가능하다”며 “경력의 황혼기에 있는 직원들도 신입과 동일한 발전 기회를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AI와 자동화가 배경이 다른 직원들에게 더욱 평등한 구조를 만들고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하는 '게임 체인저'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화큐셀 조지아 공장은 연간 6800톤의 순수 결정과 3억 2000만 개 이상의 웨이퍼, 460만 개의 상업용 태양광 패널을 생산한다. 벨 부사장은 “AI와 자동화가 없다면 카터스빌에서 이런 생산량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로봇이 단순 반복 작업을 맡아 직원들이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의 제조현장에서 AI와 자동화는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를 넘어 현장 구성원들의 업무 경험을 개선하는 협력자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벨 부사장은 “누구도 ‘로봇이 내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말하지 않는다”며 대신 “‘쓰레기를 치워줘서 고맙다’거나 ‘수십만 개 와이어 중 내가 점검할 몇 개만 알려줘서 고맙다’는 반응이 돌아온다”고 전했다.

벨 부사장은 "자동화의 비밀은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공장에서 우린 로봇들이 그냥 교착상태에 있는 것을 수도없이 본다"며 "원인은 간단하게 렌즈가 더러웠기 때문이었다. 작업자의 역할은 여기서 온다. 로봇이 작동하지 않을때 로봇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할지, 프로세스를 어떻게 바꿀지를 고민하는 것이 인간의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조지아주에 있는 한화큐셀 미국법인 (출처 : 한화큐셀 웹사이트 )

AI·자동화가 바꾼 미국 제조업의 룰: 투자, 인재, 교육의 재편

더밀크와 한미동남부상공회의소가 공동 주관한 패널 토의는 ‘인공지능과 관세 전쟁이 가져온 미국 제조업의 변화’를 주제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스캇 벨 한화큐셀 파트너십 및 거버넌스 부사장을 비롯해 박희덕 트랜스링크 창업자, 이승훈 조지아주 경제개발국 과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사회는 김재천 한미동남부상의 회장이 맡았다.

패널들은 AI와 자동화가 인재 교육에서 불러온 변화를 공유했다.

AI와 자동화는 제조 현장의 ‘업의 개념’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승훈 과장은 “조지아에 진출한 많은 기업이 자동화를 도입하고 있다”며 “초기에는 자동화가 단순히 인력을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 현장을 가보면 더 높은 임금과 더 숙련된 교육을 요구하는 일자리로 대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지아주의 직업 교육 프로그램인 ‘퀵스타터(Quick Start)’ 사례를 들며, “(현대차 전기차 공장이 들어선) 사바나 지역에서는 멀미 극복 훈련까지 포함된다. 너무 많은 로봇이 빠르게 움직이고 VR 등 첨단 장비가 활용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I와 자동화가 직업 훈련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변화는 인재관리의 복잡성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벨 부사장은 "카터스빌 공장에서는 영어, 한국어, 말레이어, 중국어 등 다문화권 직원들이 종사하고 있다. 또 박사학위 소지자부터 고교졸업생까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혼재되어 있다"며 "문화·언어 차이에서 비롯된 소통의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결국 구성원들이 문제를 인정하는 것에서 솔루션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규모를 막론하고 모든 것은 투자 대비 수익(ROI)으로 귀결된다”며 “어떤 가치가 ROI를 높일 수 있을지 구성원들이 일치한 생각을 갖고 해결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정의선 현대차회장이 브라이언 캠프 조지아 주지사와 사바나 소재 현대차 메타플랜트 공장 준공식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 공장은 전면 자동화를 내세운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출처 : 현대차)

미국 진출? "기술만큼 중요한 요인은 ‘파트너십’"

패널들은 “AI와 자동화 시대에도 결국 성패를 가르는 건 기술이 아니라 파트너십”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승훈 조지아주 경제개발국 매니저는 “파트너십은 조지아주가 중시하는 가치”라며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유틸리티 파트너뿐 아니라 주 환경당국, 서비스 제공업체 등 다양한 파트너가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이 현지에 안착하는 과정에서 주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인다”고 덧붙였다.

한화큐셀 역시 미국 진출 과정에서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체감했다고 전했다. 스콧 벨 한화큐셀 파트너십 및 거버넌스 부사장은 “카터스빌에서 현재와 같은 규모의 공장을 건설하려면 90메가와트 전력, 즉 작은 도시 수준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며 “물과 노동시장 접근성까지 고려하면 파트너십은 모든 영역에 걸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이러한 관계를 구축하고, 손상되면 복구하며, 모두가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그 문제란 제조업을 미국으로 되돌리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며, 일자리 성장을 창출하고, 미국 태양광 산업의 전략적 에너지 독립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AI 시대에 협력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희덕 트랜스링크 대표는 “실리콘밸리와 한국 투자 부문의 가장 큰 차이는 투자 패턴에 있다”며 “한국은 여전히 수직적인 구조가 강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기업과 1~3차 부품사 관계에서도 수직적 관행이 뚜렷하다”며 “AI와 자동화 시대에는 수평적인 파트너십을 통한 협력이 필수”라고 말했다.

퀵스타트 프로그램을 통해 자동차 제조 교육을 받고 있는 교육생들. (출처 : 조지아주 퀵스타트 프로그램 )

더밀크의 시각: 'Made in Korea'에서 'Designed in Korea'로

한국 기업들은 그간 기술에만 집중했다. 이제는 비즈니스에 집중해야 한다.
박희덕 트랜스링크 창업자 겸 대표

AI와 자동화는 더 이상 미래의 위협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미국 제조 현장의 룰을 바꾸고 있으며, 단순한 효율 향상을 넘어 ‘누가 시장에 남을 수 있는가’를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기술 우위만으로는 이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다문화·다세대 인력 관리, ROI 중심의 의사결정, 파트너십을 통한 현지 생태계 편입이 새로운 경쟁력의 3축이다. 한국 기업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첫째, AI와 자동화를 '인력 대체'가 아니라 '역량 증폭 장치'로 재정의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인식 전환을 넘어 조직 운영 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다. 한화큐셀의 사례에서 보듯이, 로봇이 렌즈가 더러워져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이를 해결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과 AI가 각각의 강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역할 분담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현재 업무 프로세스를 AI 적합성 관점에서 재분석해야 한다. 어떤 업무는 AI가 더 잘할 수 있고 어떤 업무는 인간이 더 잘할 수 있으며 어떤 업무는 인간과 AI의 협업이 최적인지를 체계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직원들에게는 AI 도구를 활용한 업무 수행 능력을 기르도록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AI 도입이 직원들에게 위협이 아니라 기회가 된다는 점을 실제 경험을 통해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조지아 공장의 직원들이 로봇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처럼, 우리 기업들도 AI와 인간이 상호 보완하는 협업 문화를 의도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둘째, 기술 중심의 수직적 거래 관행에서 벗어나, 시장·정책·문화 네트워크를 아우르는 수평적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수직적 관계에 익숙해진 우리에게는 수평적 협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러한 수직적 관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특히 AI 시대에는 기술의 융복합이 핵심이 되면서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기업들 간의 크로스 인더스트리 협력이 필수다. 예를 들어, 제조업체가 소프트웨어 기업, 데이터 분석 회사, 현지 서비스 업체와 동등한 파트너십을 맺어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파트너십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 기존의 '갑을 관계'에서 벗어나 '윈-윈 관계'로 전환하고 단기적 이익보다는 장기적 가치 창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또 파트너십 구축 과정에서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와 적응이 필수적이다. 미국 기업들의 의사결정 방식,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비즈니스 관행 등을 깊이 이해하고 이에 맞는 협력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셋째, 현지 교육·채용·규제 대응까지 아우르는 풀 스펙트럼 경영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해외 진출 경험을 쌓는 것을 넘어 현지에서 지속가능한 사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조지아주의 퀵스타터 프로그램에서 멀미 극복 훈련까지 포함하는 것처럼 현지 교육 시스템과의 협력은 단순한 인력 확보를 넘어 지역사회와의 상생 관계를 구축하는 전략적 투자다.

한국 기업들은 이제 현지 정부, 교육기관,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인식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CSR 활동이 아니라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필수 요소다. 특히 AI와 자동화 시대에는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속적인 재교육과 역량 개발이 필수가 되었고, 이를 현지 교육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트럼프 2기의 무역·산업 정책 변화는 한국 기업에게 위기이자 골든타임이다. 하지만 이 기회는 무한정 열려있지 않다. 중국 기업들도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고 있고 유럽 기업들도 자체 기술력을 빠르게 확보하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기술 파트너'로서의 지위는 선점 효과가 강한 만큼, 빠른 행동이 필요하다.

기술은 이미 검증됐다. 한국의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조선 등 주요 산업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제는 이 기술을 글로벌 시장에서 돈과 영향력으로 바꾸는 '비즈니스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의미다. 즉, 단순히 영업이나 마케팅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글로벌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종합적 역량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함께 나서야 한다. 정부는 기존의 R&D 중심 지원에서 벗어나 해외 진출, 현지 파트너십 구축, 글로벌 표준 선점을 위한 통합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기업들은 개별적인 진출보다는 산업 생태계 차원의 집단 진출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 선택을 늦춘다면 AI가 만든 평등한 경기장 위에서 우리는 단순한 '참가자'로만 남게 될 것이다. 반대로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과감한 전환에 나선다면, 한국 기업들은 AI 시대의 새로운 글로벌 리더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고, 시간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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