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에는 남미인 4명뿐이었다. 한국인 300명 체포, 과잉수사 논란

reporter-profile
reporter-profile
손재권 · 권순우 2025.09.10 08:01 PDT
영장에는 남미인 4명뿐이었다. 한국인 300명 체포, 과잉수사 논란
4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부지에서 미 당국에 의해 근로자들이 조사를 받고 있다. (출처 : ICE)

[수색압수 영장 분석] 영장에는 수사 대상은 히스패닉계 4명뿐
실제론 475명 연행 "합법 근로자까지 다짜고짜 범죄자 취급"
영장에는 현장 항공 감시 사진까지 첨부돼 미국 당국, 이번 단속 상당 기간 준비했음을 나타내
한국 정부 수습만 급급, 인권침해 항의는 뒷전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 건설현장에서 미 당국에 의해 300여명의 우리 국민들이 구금된 사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연방 법원이 발부한 수색·압수 영장'에는 남미 근로자 4명만 특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집행에서는 한국인 근로자 수백명이 무더기로 체포, 구금되면서 과잉수사이자 인권침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밀크가 입수한 연방법원 압수 수색영장(AO 93C, 사건번호 4:25-MJ-81)에 따르면 영장은 지난 8월 31일 오후 5시 5분 조지아 남부연방지법 크리스토퍼 L. 레이 치안판사가 발부했다. 수색 목적은 불법 고용 및 외국인 은닉 혐의(8 U.S.C. § 1324) 관련 '자료 확보'였다.

수색 대상은 현대차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캠퍼스 내 HL-GA 배터리 컴퍼니가 위치한 35에이커(약 14만1640제곱미터) 규모 건물과 관련 문서들이었다. 영장에 명시된 '표적 인물(Target Persons)'은 안드레이나(여성), 케빈(남성), 다비드(남성), 훌리오(남성) 등 히스패닉계 4명뿐이었다. 영장에는 한국인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토안보수사국(HSI), 이민세관단속국(ICE), 마약단속국(DEA), 조지아주 순찰대 등 당국은 수백 명의 요원을 투입, 공장을 봉쇄했고 현장에서만 475명을 연행했다. 이 중 300명 이상이 한국 국적 근로자였다.

국토안보수사국이 집행한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수색영장.

"이민단속 위헌 소지 있다"

연방 법원이 발부한 이번 영장에는 단순히 개인 불법 체류자가 아니라 고용 기록, 급여 자료, I-9 양식, SSA(사회보장청) 노매치(No-Match) 레터 등 조직적 고용 관리 문서까지 수색 대상으로 지정됐다. 심지어 현장 항공 감시 사진까지 첨부돼 있었다. 미국 당국이 이번 단속을 상당 기간 준비했음을 보여준다.

또 특정 장소(공장 부지)와 특정 인물(남미인 4명), 그리고 관련 고용·체류 기록을 대상으로 했다. 즉, 원칙적으로는 해당 4명 및 이들과 직접 관련된 자료에 국한해서 집행돼야 한다.

미국 이민 단속에서는 영장에 없더라도 '부수적 발견(Collateral Search)'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우연히 다른 범죄 정황이 '명백하게' 발견됐을 때 적용되는 관행이다.

이번처럼 처음부터 수백 명을 대상으로 일괄 조사·체포한 것은 '부수적 발견'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는 과잉 단속(Overreach)일 뿐 아니라 위헌 소지도 크다. 미국 헌법 제4조(4th Amendment)는 '불합리한 수색·압수'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단속이 '영장 범위를 명백히 넘어선 위헌적 단속'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민법 전문 이종원 변호사는 더밀크와의 통화에서 “판사가 서명한 영장은 형식상 유효하지만, 콜레터럴 서치 관행을 근거로 수백 명을 끌고 간 것은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ICE 담당자들은 설명조차 듣지 않고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했다. 이는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강조했다.

노동법 전문 김진혁 변호사도 “영장에 한국인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음에도 무차별 연행이 이뤄진 것은 합리적 의심이 결여된 과잉 집행”이라며 “헌법적 위반 여부를 따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체포된 한국인 중 상당수가 알려진 바와 같이 '불법 근로자'가 아니라 B1/B2 비즈니스 비자 등 합법 비자 소지자였다는 점이다. B1/B2 비자는 비즈니스 파트너와 협의하거나 상담, 미국 내에서 보수를 받지 않는 특정 사업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번에 체포된 300여명의 한국인들이 실제 공장 노동에 투입됐는지 아니면 비즈니스 활동을 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현장에서 구분 할 수 없다면 일단 '무죄'로 추정해서 수사 대상에서 제외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설명 기회조차 없이 연행됐다

한 이민법 전문가는 "영장에 명시되지 않은 대상을 무더기로 체포한 것은 수정헌법 제4조(불합리한 수색과 체포 금지)에 위배될 가능성이 높다. 집단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과 기록 말소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원 변호사는 "B1/B2 비자의 활동 범위는 8개 정도로 규정돼 있지만 해석에 논쟁의 여지가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과도하게 좁게 적용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인 형사법 전문 변호사 A씨 역시 "단속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구금된 근로자들의 신분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며 현장의 혼란을 전했다. 그는 "체포된 한국인의 최소 30%는 구금 사유가 전혀 없는 합법 근로자였다"고 밝혔다.

수십 년간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남동부 진출을 법률적으로 지원해온 이정화 변호사(넬슨멀린스법률그룹)는 "합법 신분을 유지하고 체류기한 내에 있던 한국 근로자들까지 무더기로 구금됐다. 죄 없는 이들이 며칠 동안 억울하게 수감된 사례만 수십 건에 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방법원 압수 수색영장(AO 93 Form, 사건번호 4:25-MJ-81)에 특정된 수사 대상 4명. 이 4명은 모두 히스패닉계 근로자다.

[영장에 적시된 압수 대상(압수 대상 문서(Attachment B)]

-2025년 3월 1일 이후 고용 기록 일체

-I-9 서식, 사회보장번호 불일치 통지서

-HL-GA 배터리, TK LLC, 오토리카 LLC, SBY 아메리카, 비욘드 아이언 컨스트럭션 LLC, 스틸 브라더스 개발 등 관련 업체 문서

-허위 신분증 제조·조달 관련 통신 기록

-전자기기 압수 범위

-컴퓨터 로그, 브라우징 기록, 이메일

-인터넷 프로토콜 주소, 검색 기록

-암호화 키, 접근 장치

한국 정부, 수습만 급급… "강력한 항의도 못해"

비판의 화살은 한국 정부로도 향한다. 외교 당국은 전세기를 띄우고 미국 당국과 협의해 조기 송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과잉수사와 인권침해에 대한 제대로된 항의는 하지 못하고 본국 송환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정화 변호사는 "오히려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할 상황인데, 한국 정부가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려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며 "근로자들의 권리 보호가 소홀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A 변호사는 "정부가 사건을 빨리 정리하려는 분위기여서 적법성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심사 절차가 사실상 무산됐다. 절차적 정의가 무너진 상황이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정부가 외교적 협의에만 치중했을 뿐, 법적 지원에는 소극적이었다. 결국 권리구제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A 변호사는 이어 "이번 사태는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대응 방식에 따라 유사한 사태의 재발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의미 부여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정부 내부에서도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조용히 처리하자'는 분위기가 강했다"며 "결과적으로 국민 보호보다는 외교적 편의를 우선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영사 면담을 통한 안전 확인과 조기 송환 협의에는 적극적이었지만, 단속 과정의 적법성이나 과잉 수사 여부에 대해서 공식 항의를 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 고용 단속을 넘어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의도와 한국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이 교차한 사건이다. 미국 정부는 불법 이민자 추방이라는 정치적 목표와 외국인 투자를 통한 경제적 목표가 충돌하는 모순을 드러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한국 정부와 기업이 근로자 권익을 적극 방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합법적 절차를 밟은 한국인 근로자들마저 잠재적 범죄 기록을 안고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번 사건은 한국 외교와 글로벌 기업 대응이 어디까지 한계를 드러냈는지 보여준다. 이제라도 정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강력히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다. 기업들도 협력사 근로자까지 포함한 포괄적 보호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그렇지 않다면 “한국인은 언제든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불안만 남길 것이다.

사건 직후 기자회견을 한 스티븐 슈랭크 미 국토안보수사국 특별 수사관(왼쪽)과 조현 외교부 장관 (출처 : 유튜브 캡쳐)

기업들도 "협력사 문제"로 거리두기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역시 "협력사 고용 문제"라며 거리를 두고,미국 법체계상 원청 책임을 적극적으로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단속에서 47명의 자사 소속 직원이 포함됐다고 밝혔지만 협력사 소속 인원 약 250명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고용 관계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A 변호사는 "현대·LG가 고용한 스태핑 업체의 문제가 근본 원인이지만, 미국 법 체계에서는 대기업도 고용 구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화 변호사도 "LG에너지솔루션은 적법 절차를 거친 직원들이 체포됐는데도 적극 대응하지 못해 졸지에 불법 고용주가 됐다"고 꼬집었다. 한 현지 한인 사업가는 "대기업들이 협력사를 방패막이로 삼으면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며 "결국 현장 근로자들만 피해를 보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지역사회와 정치권에서는 이번 단속이 명백한 표적 수사라며 규탄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시민단체 '아시안아메리칸 정의증진 애틀랜타'는 성명을 내고 "현대차 건설 현장에서 표적이 된 노동자들은 가족을 부양하고 지역사회를 지탱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샘 박 조지아주 민주당 하원의원도 "이번에 검거된 다수의 한국인은 조지아의 청정에너지 미래를 건설하는 주역들"이라며 "우리의 번영은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데 달려 있다"고 밝혔다.

투자 기업의 신뢰와 경쟁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정화 변호사는 "이런 분위기라면 주재원 비자나 E2 비자로 합법 입국한 한국인 직원들도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기 어렵다"며 "공장 완공 지연은 지역 고용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속내는? 배터리 공장 단속 사태의 정치경제학

韓 기업들 "어쩔 수 없었다" 지만... 미국서 '한국식'이 낳은 참사

美, 혈맹을 이렇게 대접하나... "3500억불 투자하고, 300명 체포"

ESTA 비자 고용, 노동법·세법·민권법 위반까지… 한국 기업의 교훈

국토안보수사국이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공장 수색영장에 첨부한 '목표 구역'

더밀크는 미국 현지에서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으로 사실을 전하고, 그 너머의 인사이트를 발굴합니다. 단순히 변화와 트렌드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번 조지아 현대차-LG 사건처럼 한국 기업과 한국인의 권리를 지키는 데 앞장서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더밀크 회원으로 가입하시면 매주 3~4회 발행되는 뷰스레터를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 프리미엄 회원으로 업그레이드하시면 더밀크의 모든 콘텐츠를 제한 없이 보실 수 있을 뿐 아니라 깊이 있는 스페셜 리포트와 독점 이벤트에도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의 목소리를 미국 현장에서 전하고, 동시에 글로벌 비즈니스의 미래를 가장 먼저 준비하는 더밀크와 함께하세요.

더밀크 회원 가입하기

이 기사와 관련있는 기사 현재 기사와 관련된 기사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