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왜 AI 혁명의 주주가 되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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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권 2025.09.04 17:10 PDT
한국은 왜 AI 혁명의 주주가 되지 못하는가?
(출처 : Grok, 더밀크)

[AI혁명과 한국 자본] ① 오픈AI와 앤트로픽 투자라운드에서 보는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한계
오픈AI와 앤트로픽, 18조~83조원대 초대형 투자 유치
미국 중심 AI 인프라 생태계에 전 세계 전략 자본 총집결… 싱가포르·카타르·영국도 장기 투자 참여
한국 자본 존재감 없어… 구조적 한계로 AI 산업혁명 이해관계자에서 배제

올해 AI 업계에서 가장 큰 뉴스는 기술의 진보가 아니었다. 더이상 모델 업그레이드는 놀랍지 않다. 바로 오픈AI와 앤트로픽이 잇따라 발표한 '초거대 자금조달'이었다.

오픈AI는 83억 달러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3,000억 달러(417조원)를 돌파했고, 앤트로픽은 130억 달러의 시리즈F 투자를 유치해 비상장 기업 중 네 번째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문제는 이 ‘AI 역사서의 결정적 장면’에 한국 자본의 이름은 없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캐나다, 카타르, 영국 등은 국부펀드와 연기금을 앞세워 핵심 투자자로 참여했지만, 한국은 글로벌 AI 주도권 경쟁에서 전략적 소외를 자초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왜 한국은 AI 산업의 ‘사용자’일 수밖에 없고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가? 더밀크는 3회에 걸쳐 오픈AI·앤트로픽 투자 라운드에 나타난 글로벌 자본 지형과 그 안에서 사라진 ‘한국 자본’의 자리를 추적한다.

올해 AI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두 건의 거대 투자가 연이어 발표됐다. 지난 8월, 오픈AI가 83억 달러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3,000억 달러(약 417조원)로 평가받았고, 이어 앤트로픽이 130억 달러(약 18조원) 규모의 시리즈 F 투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기업가치는 1380억달러(약 254조원)에 달했다.

두 투자 모두 당초 계획보다 빨리, 그리고 더 큰 규모로 성사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창업 10년된 오픈AI의 기업가치는 삼성전자(약 400조원)를 넘었으며 앤트로픽은 스페이스X, 오픈AI, 바이트댄스(틱톡)에 이어 글로벌 비상장기업 가치 4위에 올랐다.

오픈AI와 앤트로픽 모두 시장경제 역사상 '전례없는 성장'을 증명, 기업가치 폭등을 정당화했다. 오픈AI는 연환산 매출(런레이트)이 130억 달러(18조 1233억원)에 달하고 챗GPT 주간 활성 사용자가 7억 명을 넘어서는 등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입증했다. 앤트로픽도 연 환산매출이 지난 1월 10억달러였는데 8월엔 5배인 50억달러(6조9490억원)을 돌파하며 폭발적 성장세를 증명했다.

양사 모두 '톱 티어' 투자자들이 뒤질세라 참여했다. 오픈AI에는 드래고니어 인베스트먼트에서 무려 28억달러를 투입하며 주도했고 블랙스톤, TPG 등 거대 사모투자회사들과 A16Z, 세콰이어, 피델리티 등의 전통 VC도 참여했다.

특히 앤트로픽의 이번 시리즈F 투자 라운드에 주목받는 사실이 있다. '한 라운드에 등장한 가장 다양한 글로벌 자금 라인업'이라는 평가가 그것이다. 다양한 글로벌 자본이 총집결했다.

미국에서는 아이코닉 캐피털, 라이트스피드, 블랙록, 골드만삭스 등 실리콘밸리와 월가를 대표하는 벤처캐피털과 자산운용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캐나다에서는 연기금(온타리오 교사 연금)이, 싱가포르에서는 국부펀드 GIC가, 카타르도 국부펀드(Qatar Investment Authority), 영국에서는 '테슬라'를 발굴한 것으로 유명한 장기 성장투자 전문 투자사 '베일리 기포드(Baillie Gifford)'가 참여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중동의 카타르, 아시아의 싱가포르, 유럽의 영국 등에서 국부펀드나 연기금 같은 국가 차원의 전략 자본이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오픈AI도 사우디 국부펀드,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전략적 투자한 바 있다.

이들이 '투자' 한 것은 '유망 기업'이 아니다. 이들에 대한 투자는 국가 전략자산 투자 및 안보 문제 해결의 성격을 띠며 단기 수익보다는 초장기 기술 패권 확보의 흐름으로 해석된다. 미국 중심의 AI 인프라 생태계가 전 세계 전략 자본을 끌어들이는 구심점이 되었음을 상징한다.

오픈AI와 앤트로픽 모두의 화려한 투자자 명단에서 한 가지 공통적으로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바로 규모에 있어 글로벌 수준으로 진입한 한국 자본의 부재다. 한국 자본은 찾아볼 수 없다. 현재 AI 혁명을 이끄는 기업에 한국 자본이 의미있게 투자했다는 소식은 눈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투자 기회를 놓친 문제가 아니라 ‘산업혁명’을 이끄는 AI 시대에 한국은 핵심 이해관계자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 국민들은 자본의 취약함과 유약함으로 인해 글로벌 AI 혁명의 주주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 한국 자본은 이런 역사적 기회들에서 계속 빠져있을까? 왜 한국 국민들은 글로벌 AI 혁신을 이끄는 기업에 '주권(주주의 권리)'을 행사를 기회를 놓쳐야 할까?

앤트로픽의 CEO와 사장을 맡고 있는 다리오와 다니엘라 아모데이 남매 (출처 : 앤트로픽)

1. 위험을 회피하는 구조적 투자 시스템

첫 번째 문제는 한국 기관투자자들의 구조적 한계다.

국민연금,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한국의 주요 공적 자본은 비상장 벤처기업에 대한 직접 투자 권한이 매우 제한적이다. 이들은 법적,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오픈AI나 앤트로픽과 같은 고위험-고수익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두 회사는 그나마 '안전한' 투자에 속한다. 3~4년전 기준으로 오픈AI, 앤트로픽 등이 될 잠재력이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는 없는 구조다.

이런 제약이 왜 생겨났는지 이해하려면 과거를 살펴봐야 한다. '정부'의 입김이 크고 눈치를 보야 하는 한국의 공적 투자기관들은 과거 크고 작은 투자 실패 사례로 인해 점진적으로 보수적인 투자 철학을 갖게 됐다. 공적 자금의 손실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비판을 피하기 위해 안전한 투자에만 집중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반면 오픈AI와 앤트로픽 투자에 참여한 해외 기관들을 살펴보면 상황이 다르다. 캐나다 온타리오 연기금(Ontario Teachers' Pension Plan)은 벤처투자와 사모투자에 매우 적극적이다. 이들은 전체 자산의 일정 비율을 고위험 투자에 할당하여 장기적으로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택했다. 싱가포르 GIC와 카타르 국부펀드 역시 국가 자본이지만 글로벌 혁신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이들의 투자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은 단순히 안정적인 수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산업 질서를 형성하는 데 참여하겠다는 전략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즉, 투자를 통해 자국의 경제적, 기술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 계열 벤처캐피털(CVC)들도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에 있는 CVC는 대부분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에 집중한다. 레이트 스테이지 사모투자에 집중하는게 사실. 오픈AI나 앤트로픽 같은 딥테크 기업의 초기 성장 단계 투자는 기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회피하는 경향이 강할 뿐 아니라 투자 여력도 부족하다. 대기업 본사의 보수적 투자 철학(본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면 투자를 못하는 한계)이 계열사까지 영향을 미치는 결과다.

결국 한국은 벤처투자에 있어 '책임 회피형 위임구조'가 만연해 있어 미래를 믿고 10년 단위로 베팅하는 철학적 투자자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밴처투자라고 하지만 사실상 제 4 금융권 마인드셋이 있는 것이다. 즉, 개별 기관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 자본시장 전체의 문화적, 제도적 문제로 봐야 한다.

(출처 : 더밀크)

2. 투자 리더십의 부재와 팔로워 문화의 한계

두 번째 문제는 투자 리더십의 부재.

오픈AI 라운드에서는 드래고니어가 28억 달러라는 거대한 규모로 라운드를 주도했고 앤트로픽 라운드에서는 아이코닉, 피델리티, 라이트스피드가 공동으로 리드했다. 이들은 단순히 자금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선도하고 투자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 규모의 자금을 주도적으로 투입하면서 해당 기업의 전략적 방향까지 함께 논의하는 진정한 파트너 역할을 한다.

이런 리더십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벤처투자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특히 오픈AI나 앤트로픽 같은 프론티어 기술 기업은 투자자들은 단순한 자금 제공자가 아니라 기술적 조언자, 사업 전략 파트너, 그리고 때로는 정치적 후원자 역할까지 해야 한다.

AI라는 민감한 기술 분야에서는 특히 투자자의 네트워크와 영향력이 기업의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이런 '판을 주도하는' 자본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국내외 투자처를 막론하고 '리드 투자'를 꺼려한다. 대부분이 "다른 곳에서 하니까 우리도 좀 참여하자"는 팔로워 구조에 머물러 있다.

이는 한국 투자 문화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다. 새로운 투자 기회가 생겨도 누군가 먼저 검증해주기를 기다리는 경향이 강하다.

심지어 정부 펀드나 출자기관도 직접적인 투자 판단보다는 민간 벤처캐피털과의 공모 절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구조에서는 글로벌 수준의 대형 딜을 주도하거나 참여하기 어렵다. 대형 딜일수록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실행력이 필요한데, 복잡한 위임 구조는 이를 가로막는다.

이는 투자 철학의 근본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해외 주요 기관들은 투자를 통해 미래 산업 생태계에서의 입지를 확보하려 한다면 한국 기관들은 주로 단기적 재무 성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언제 IPO 하느냐", "몇 년 안에 수익이 나느냐"는 질문에 매몰되어 있어서, 10년 후 산업 지형을 바꿀 수 있는 혁신에 대한 장기적 비전을 갖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프론티어' AI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도 없을 뿐 아니라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

샘 알트만 오픈AI CEO (출처 : Sequoia Cap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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