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패권, 컴퓨팅 파워에서 나온다: 새로운 힘의 지정학
[위클리AI브리핑] 2025 상반기 결산① 총론
‘글로벌 AI 컴퓨팅 격차’ 프리즘으로 본 상반기
전문화된 AI 데이터 센터 보유국 32개국에 불과
미국과 중국이 대다수의 컴퓨팅 파워 보유
2022년 11월 챗GPT 출시 이후 AI 기술과 글로벌 산업 지형도는 정말 빠른 속도로 변해왔습니다. 2025년 상반기 결산 시즌을 맞아 쏟아지는 AI 이슈 속에서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시그널, 미래에도 영향을 미칠 만한 굵직한 이슈 10가지를 2025 상반기 AI 10대 뉴스로 선정했습니다.
‘글로벌 AI 컴퓨팅 격차’ 프리즘으로 본 상반기
이란-이스라엘 전쟁, 미국-중국 패권 경쟁 등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기술·산업 분야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핵심은 역시 AI입니다.
21세기의 새로운 권력이 석유나 자본이 아닌, AI 개발 및 운영을 위한 컴퓨팅 파워(Computing Power, 연산 능력)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증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2025년 상반기를 관통하는 AI 분야 핵심 사건 역시 ‘글로벌 AI 컴퓨팅 격차’라는 프리즘을 통해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새로운 디지털 분할선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구체적인 사례에서 더욱 명확해집니다. 오픈AI의 샘 알트만 CEO는 지난달 텍사스에 있는 600억달러(약 81조 6660억 원) 규모의 거대한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을 시찰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보다 크고 자체 천연가스 공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2027년 완공되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컴퓨팅 파워를 갖춘 ‘AI 컴퓨팅 허브’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면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엔비디아의 최신 GPU 하나를 들여놓기도 힘듭니다. 낡은 AI 칩과 부족한 전력망으로 AI 연산을 겨우 겨우 해내야 합니다.
AI 기술의 발전과 확산이 특정 국가와 기업에 집중된 컴퓨팅 인프라에 의해 좌우되면 새로운 형태의 지정학적 종속 관계가 형성될 조짐입니다. 옥스퍼드대학의 빌리 레돈비르타 교수는 이를 “석유 생산국이 국제 정치에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했듯 AI 기반 미래에서는 컴퓨팅 생산국들이 핵심 자원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며 비슷한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데이터센터 기반 AI 가용 자원 현황을 살펴보면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이 집계하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데이터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전문화된 AI 데이터센터를 보유한 국가는 단 32개국에 불과합니다. 이는 전체 약 200개국 중 겨우 16%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중 90% 이상을 미국과 중국이 운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기업들은 87개의 AI 컴퓨팅 허브를 운영하며 전체의 거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중국 기업들은 39개, 유럽 기업들은 고작 6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애플, 앤트로픽, 엔비디아, xAI 같은 빅테크, 프론티어 AI 기업들이 펼치는 AI 레이스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국가, 기업, 개인 차원의 대비가 필요합니다.
위 그래픽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마이크로소프트, AWS, 구글은 미국 기업, 알리바바, 화웨이, 텐센트는 중국 기업입니다. OVH는 프랑스, 엑소스케일(Exoscale)은 스위스에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 제공업체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대다수의 컴퓨팅 파워를 보유하고, 소수의 유럽 기업이 존재하는 구조입니다.
과거의 디지털 격차가 전화나 인터넷 접속의 문제였다면 오늘날의 AI 격차(AI Divide)는 현대 AI의 생명선이라 불릴 만한 고성능 칩에 대한 접근성 문제입니다. 이런 이유로 빅테크 기업조차 엔비디아(NVIDIA), AMD의 칩을 사용하는 동시에 TPU(텐서처리장치) 같은 자체 칩 제조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죠.
자체 데이터 센터가 없는 국가는 외국 거대 기술 기업으로부터 컴퓨팅 파워를 빌려 써야만 하고, 이는 마치 전기가 필요할 때 외국 발전소에 의존하는 상황, 혹은 석유가 필요할 때 산유국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AI 기술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데이터 센터, 고성능 AI 인프라도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유엔 역시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전 세계 AI 분야 투자의 40%가 단 100개 기업, 그것도 대부분 미국과 중국 기업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며 소수의 빅테크 기업이 통제하는 미래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했죠.
150개 이상의 국가가 AI 시대 핵심 자원인 주권적 AI 인프라 없이 미래를 맞이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대륙의 격차가 가장 심각하며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국은 현재도 미국에 AI 핵심 기술과 자본에 있어 미국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앞으로 AI 컴퓨팅 원조를 내세워 개발도상국에 접근, 패권을 유지하려 할 것입니다.
AI 격차가 만들 미래
과거의 디지털 격차가 전화나 인터넷 접속의 문제였다면, 오늘날의 AI 격차(AI Divide)는 현대 AI의 두뇌이자 심장이라 불릴 만한 고성능 칩에 대한 접근성 문제입니다. 특히 엔비디아가 만들어내는 GPU칩은 수천 개씩 데이터 센터에 설치돼 최첨단 AI 모델을 생성하고 제공하는 컴퓨팅 파워를 제공합니다.
문제는 이 칩을 확보하는 것이 극도로 어렵다는 점입니다. 세계 각국의 대통령 및 고위관계자가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만나서 "GPU를 우리에게도 팔아달라"고 읍소하는 기가막힌 장면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해당 국가에 GPU를 기부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살 수 있게만 해달라"는 요구입니다.
수요가 증가하면서 칩 가격이 치솟았고 모든 기업이 주문 대기열의 맨 앞에 서려고 합니다.
칩을 확보한다 하더라도 끝이 아닙니다. 이를 수용할 거대한 데이터 센터가 필요한데 이는 어마어마한 양의 전력과 물을 소비합니다. 결국 자체 데이터 센터가 없는 국가들은 외국 거대 기술 기업으로부터 컴퓨팅 파워를 빌려 써야만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높은 비용, 느린 연결 속도, 법률 이슈를 야기하고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눈치를 봐야 할 것입니다.
미국은 AI 칩과 데이터 센터를 '지정학적 파워플레이'를 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민주당)와 트럼프 행정부(공화당)는 국정 철학과 정책이 상이하지만 AI 파워로 패권을 유지하는 데 있어선 대동단결했습니다. 미국은 중국 등의 국가에 대해 강력한 무역 제재를 통해 AI 칩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감시망을 피해 컴퓨팅 파워 자력갱생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하이라이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방문이었습니다. 이때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에 통 큰 AI 선물을 줬습니다. 오픈AI가 미국 외 국가로는 처음으로 아랍에미리트에 데이터 센터를 건설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들 국가에서 중국 기술을 배제한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는 석유를 달러로 결제하도록 하는 1974년의 '페트로 달러 협정'을 연상케 합니다.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에 달러 대신 위안화를 결제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하지만 AI 컴퓨팅 파워를 내세운 미국에 이 지역의 미래 패권을 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 주권(소버린) AI의 과제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애플, 앤트로픽, 엔비디아, xAI 같은 빅테크, 프론티어 AI 기업들이 펼치는 AI 레이스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AI 기술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데이터센터, 고성능 AI 인프라의 중요성도 커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 주권과 직결된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한국 역시 글로벌 AI 컴퓨팅 격차 이슈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AI 컴퓨팅 파워가 만드는 새로운 권력 구조의 변화를 정확히 이해하고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2025년 상반기에 발생한 규제 이슈, 새로운 모델 출시 경쟁, 경제적 파급 효과 등을 종합하면 결국 AI 패권과 컴퓨팅 파워를 둘러싼 글로벌 주도권 경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상반기 10대 AI 뉴스를 통해 거대한 지정학적, 경제적 변화의 구체적인 단면을 확인하고 미래를 준비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