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플렉시티는 어떻게 2년만에 ‘데카콘’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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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익 2025.04.24 14:44 PDT
퍼플렉시티는 어떻게 2년만에 ‘데카콘’이 됐나?
황유라 퍼플렉시티 APAC 파트너십 헤드 (출처 : 더밀크 박원익)

[엘캠프 실리콘밸리] 황유라 APAC 파트너십 헤드 강연
유니콘 10배 ‘데카콘’ 퍼플렉시티는 어떻게 일하나
‘탑 라인’ 성장이 먼저… ‘바텀 라인’으로 내실 갖추기
레인 메이커·브랜드 빌더가 성장 만든다… 한국도 벤치마킹해야

‘창업 2년 만에 데카콘으로’

실리콘밸리 AI 스타트업 퍼플렉시티(Perplexity)이 무서운 성장세를 설명하는 데이터다.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기업가치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 이상 유니콘 기업이 유니콘에 등극하는데 걸린 시간은 평균 6년. 한데 퍼플렉시티의 경우 3년이 채 안 된 시점에 유니콘의 10배인 데카콘(기업가치 100억달러, 약 14조3000억원)을 넘어섰다. 

어떻게 이런 속도의 성장이 가능했을까. 200명도 안 되는 조직이 무슨 방법으로 신한지주(약 24조원), 현대모비스(약 23조원), 카카오(약 17조원) 같은 대기업 시가총액 수준의 기업가치를 만들었을까. 

롯데벤처스와 더밀크는 21일(현지시각)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사업 진출을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엘캠프 실리콘밸리 4기’ 프로그램 연사로 황유라 퍼플렉시티 아시아태평양(APAC) 파트너십 헤드(총괄)를 초청해 자세한 노하우를 전해 들었다. 

스타트업 성공을 위한 이중 축 전략 : 탑 라인과 바텀 라인

황 총괄은 트랜스링크 인베스트먼트,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캐피털(VC)인 NEA, LA 기반 투자회사 팩토리얼 펀드 등을 거쳐 2024년 퍼플렉시티에 합류한 벤처 투자, 스타트업 전문가다. 퍼플렉시티에 합류한 이후에는 한국의 SK텔레콤, 일본 소프트뱅크 등 APAC 대기업과의 파트너십 체결을 이끌며 회사의 성장을 주도했다. 

황 총괄은 “비즈니스의 본질은 간단하다”며 “매출 및 성장을 의미하는 탑 라인(Top-Line)과 수익성을 뜻하는 바텀 라인(Bottom-Line) 두 가지의 밸런스를 어떻게 맞추느냐에 성패가 갈린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 성공을 위한 ‘이중 축 전략’이다.

모든 비즈니스는 탑 라인(매출, 사용자 수, 시장 점유율)과 바텀 라인(비용 절감, 수익성, 운영 효율성)으로 성공이 결정된다. 초기 스타트업은 탑 라인에 집중(시장 침투와 유저 확보 우선)하고 성숙 단계에서는 균형 조정, 불황기 또는 구조적 위기에서는 바텀 라인에 무게를 싣는다.

이 접근은 기업 내부뿐 아니라, 국가별 스타트업 문화와도 연결된다. 초기 기업은 실적을 뒷받침할 숫자가 없기 때문에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크게 성장할 수 있느냐를 보여줄 수 있는 ‘스토리텔링’ 중심의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황 총괄은 “제품이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는지 알아보는 PMF(프러덕트 마켓 핏, 제품 시장 적합성) 단계에서는 탑 라인을 무조건 잘해야 한다. 탑 라인 비중이 70% 수준”이라며 “외부 투자를 유치하려면 PMF가 증명이 돼야 하는데, 미국 스타트업이 특히 이 부분에 강하다”고 강조했다. 

황 총괄은 이어 “다만 불황기에서는 밸런스 조정이 필요하다. 지금을 불황기로 본다면은 탑 라인 비중을 20%로 내리고 바텀 라인을 80%로 올리는 전략으로 생존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 기업들 중에서는 창업 초기 탑 라인에 집중하며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지만, IPO(기업공개)를 준비하며 탑 라인을 낮추고 유료 제품 다양화 등으로 바텀 라인을 올려 수익성 지표를 개선하는 사례가 많다.

퍼플렉시티 샌프란시스코 오피스 (출처 : 더밀크)

퍼플렉시티 데카콘의 비결: ‘작게, 빠르게, 크게 보이게’

퍼플렉시티는 탑 라인 성장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을 취했을까. 퍼플렉시티는 3년도 안 돼 데카콘(Decacorn) 기업이 됐다. 인도계 창업자가 설립한 이 기업은 구글의 대항마라는 포지션으로 시장에 자신을 각인시켰다. 팀 규모는 200명도 되지 않는다.

황 총괄은 탑 라인 성장을 위해서는 사용자 수를 빠르게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퍼플렉시티는 특정 카테고리(category, 영역)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다는 사용자 인식, 즉 ‘브랜드’를 키웠다는 설명이다. 

그는 “탑 라인은 스토리텔링이고 비전이다. 퍼플렉시티는 특정 영역에 국한된 검색이 아니라 AI 기반의 ‘종합 검색(horizontal search)’을 방향성으로 설정했다. 실리콘밸리 VC들의 심장을 뛰게 할 만한 카테고리를 잘 선정한 게 첫 번째 요인”이라고 했다. 이런 똑똑한 전략을 통해 구글과 비교되면서 자연스럽게 ‘구글 대항마’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고, 거대 브랜드를 등에 업고 회사 가치를 크게 키울 수 있었다.

황 총괄은 탑 라인 성장을 뒷받침할 내실을 쌓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칫 잘못하면 비전만 얘기하는 양치기 소년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퍼플렉시티가 내실을 갖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한 방법은 파트너십과 글로벌 확장 전략이었다. 

그는 “소프트뱅크, 통신사 등 대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신뢰와 내실을 다졌다”며 “기업가치 확대를 위해서는 글로벌 확장도 매우 중요하다. 차량 호출 앱 우버와 리프트의 사례를 보면 우버는 전 세계로 확장했고, 리프트는 미국 내에 머물면서 기업가치가 크게 갈렸다”고 했다. 

황 총괄은 아라빈드 스리니바스 퍼플렉시티 CEO가 ‘언더독(underdog, 열세에 놓여 있는 기업) 마인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언더독은 빠른 실행, 과감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강자인 탑독(Topdog)과 경쟁해야 승산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예컨대 최소 3개월 걸릴 대기업 파트너십 체결 절차를 ‘일주일 안에 진행해 보자’고 얘기하는 식”이라며 “일주일에 성사를 못 했더라도 1개월에 끝낸다면 다른 기업보다 앞서 성과를 내는 셈”이라고 했다. “AI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불필요한 인력을 최소화한다”고 말했다.

퍼플렉시티가 세계에서 빠르게 데카콘에 등극한 핵심은 여기에 있다. 작게 운영하되, 더 커 보이게 만드는 브랜딩이다. ‘구글의 대항마’라는 브랜드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추가되며 시장과 투자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밸류에이션을 높였다. 이 전략은 단순한 홍보가 아니라 탑 라인을 강화하는 정교한 설계였다.

2024년 9월 5일 오후 2시 더밀크-퍼플렉시티 공동 주최 <AI 검색의 미래> 밋업에 약 150명의 더밀크 유료 구독자, 퍼플렉시티 프로 이용자들이 모였다. (출처 : 더밀크)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한국은 위험 회피, 효율 및 품질 중심, 오퍼레이션 강조 문화가 강해 바텀 라인에 강점을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탑 라인 부분은 약해서 이 부분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황 총괄은 “탑 라인을 잘 못하면 스타트업의 생존이 어려워진다. 사실 스타트업은 탑 라인을 키우는 게임”이라며 “실패에 대한 낙인, 위계질서 같은 문화적 제한을 극복할 수 있는 DNA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제조업 하드웨어 중심의 산업 구조는 마케팅 보다는 품질 최적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탑 라인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녀는 “한국은 바텀 라인 최적화에는 세계 최고지만, 성장 서사(TOP Storytelling)를 만드는 데는 취약하다”고 말했다.

황 총괄은 이어 “하드웨어, 콘텐츠, 게임, 핀테크, 디지털 금융 등 아시아가 주도하는 분야에서 ‘숫자’를 만들어야 한다. 이 숫자는 글로벌 무대에서 그대로 인정된다”며 “한국이 바텀 라인에 강하기 때문에 탑 라인을 뚫을 수 있으면 기대 이상의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밀크와 퍼플렉시티가 주최한 AI 검색의 미래 밋업에서 아라빈드 스리니바스 CEO가 청중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출처 : 더밀크)

레인 메이커·브랜드 빌더가 성장 만든다… 한국도 벤치마킹해야

기업 경쟁력의 핵심인 인재를 어떻게 확보하고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핵심 인재를 레인 메이커(Rain Maker), 그로스 해커(Growth Hacker), 비저너리(Visionary), 브랜드 빌더(Brand Builder)로 나눠서 부족한 영역을 채우면 경쟁력을 올릴 수 있다는 조언이다. 

레인 메이커는 투자 유치와 비즈니스 개발을 주도하는 카리스마 있는 책임자, 그로스 해커는 데이터 기반의 제품 검증 및 성장 경로 발굴 전문가, 비저너리는 미래 시장과 트렌드를 예측해 기업 방향성 제시하는 리더, 브랜드 빌더는 스토리텔링과 일관된 이미지 구축으로 시장 인지도를 확보할 수 있는 인재를 의미한다. 

  • 레인메이커(Rainmaker): 세일즈 리더, 협상가, 투자자 설득가

  • 비저너리(Visionary): 미래 시장을 읽고 전략을 제시하는 창의형 리더

  • 브랜드 빌더(Brand Builder): 감성 지능 기반의 스토리텔러 및 커뮤니케이션 리더

황 총괄은 “글로벌 마켓에서는 레인 메이커, 브랜드 빌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한인 창업가 중에는 엔지니어나 관리형 CEO가 많기 때문에 레인 메이커, 브랜드 빌더를 고용하면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제품 중심의 실행형 CEO라면 비저너리를 영입해 큰 그림과 기회를 포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좋은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황 총괄은 “창업자라면 자신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자신을 보완할 팀원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진출은 ‘도전’이 아니라 ‘설계’다.

글로벌 무대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하지만 모두가 환영받는 건 아니다. 황 총괄은 “한국 스타트업이 미국에 올 때 데모데이 등 VC 미팅을 하려 하고, 이를 통해 건너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VC를 만나기 전 시장을 먼저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VC보다 먼저 고객을 설득해야 하는 건 당연한 과정인데, 이 과정이 생략 돼 있다”고 지적했다.

황 총괄은 “VC는 증폭기일 뿐, 본질을 설계해 주지 않는다. VC는 가능성에 베팅하는 사람이지 회사를 만들어주는 사람은 아니다. 따라서 미국에 오려는 한국 스타트업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실제 사용자의 반응을 확보하는 것이다. 클릭률, 리텐션(유지율), 전환율 등 시장의 데이터가 말해주는 스토리는 VC의 어떤 피칭보다 강력하다”며 “지표 없는 열정은 단지 열정일 뿐”이라고 했다.

황 총괄은 또 이너서클에 들어가려 하지 말고 이너서클이 주목할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많은 창업자들이 실리콘밸리의 인맥, 네트워크, 이너서클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ROI(투자대비수익률)가 낮은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론 머스크 옆에 앉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들어가는 전략보다 끌어당기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며 “강력한 제품, 뾰족한 고객 문제 해결, 놀라운 지표, 이 세 가지가 만들어내는 파급력은 실리콘밸리의 어떤 골프 네트워크나 스탠퍼드 졸업장보다 빠르고 강하다”고 말했다.

황 총괄은 브랜드와 성과를 결합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장과 투자자 모두는 ‘이 회사가 뭘 하는지’보다 ‘이 회사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민감하다고 실리콘밸리 분위기를 전했다. 브랜드 설계와 PR을 단순한 마케팅이 아닌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말도 안 되는 기업이 1조 기업가치를 부른다. 그런데 진짜 하나라도 잘 하면 그게 통할 때도 있다. 즉, 핵심은 하나라도 정말 잘하는 것이다. 이는 기술이 될 수도, 사용자 경험이 될 수도,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도 있다”며 “중요한 건 그 하나를 시장과 PR 전략으로 연결하는 일”이라고 했다.

미국 진출은 ‘도전’이 아니라 정교한 ‘설계’다. VC도, 언론도, 파트너도 결국은 결과와 설계된 스토리에 반응한다. 황 총괄은 “이너서클이 나를 찾아오게 할 성과를 만들라. 그 성과가 당신의 첫 번째 투자자”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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