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TA 비자 고용, 노동법·세법·민권법 위반까지… 한국 기업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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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우 2025.09.08 16:06 PDT
ESTA 비자 고용, 노동법·세법·민권법 위반까지… 한국 기업의 교훈
이민세관단속국 직원들이 한국인으로 보이는 근로자들의 몸을 수색하고 있다. (출처 : ICE 동영상 캡처 )

[기고] 김진혁 변호사: 한국 기업들에게 바란다
ESTA 비자 악용? "단순 이민법 위반 아닌 복합적 범법 행위"
협력업체 고용 관행까지 책임지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필요해

최근 현대·LG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벌어진 불법체류자 단속은 충격적이었다.

수색영장에 기재된 대상은 고작 네 명의 남미인 근로자에 불과했지만 그러나 실제 단속 결과는 전혀 달랐다. 300명이 넘는 한인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된 것이다.

이는 범위를 넘어선 무차별 단속이며 미국 수정헌법 제4조가 보장하는 ‘부당한 수색과 체포 금지’ 원칙을 정면으로 훼손한 행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헌법적 권리가 이처럼 가볍게 무시된다면 이는 단순한 행정 집행을 넘어 법치주의 자체를 흔드는 문제다.

한국 정부는 강하게 항의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번 사태를 두고 한국 정부가 단순히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단속에 유감을 표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기업들 스스로가 미국에서 어떤 고용 관행을 이어왔는지 돌아보는 일이다. 단기 성과를 위해 법과 규범을 얼마나 존중했는지, 혹은 무시했는지 냉정히 평가해야 할 시점이다.

이민세관단속국 직원들이 한국인으로 보이는 근로자들의 몸을 수색하고 있다. (출처 : 이민세관단속국(ICE) )

"ESTA 비자 악용, 단순 이민법 위반이 아닌 복합적 범법 행위"

지난 2016년 처음으로 ESTA 비자를 이용해 조지아 주에서 일하던 한국인 근로자를 대변해 소송을 제기한 경험이 있다.

사건은 직장 내 상해 사건이었다. ESTA로 입국한 근로자 A씨가 업무 중 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회사는 신속히 치료를 받게 하지 않고 숙소에서 대기하도록 지시했다.

조지아 주법상 회사(고용주)는 단 3명만 채용해도 의무적으로 산재보험을 가입하고, 사고 발생 시 즉시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A씨는 불법으로 고용된 근로자였기에, 보험을 통한 간단한 상해 처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소송 과정에서 해당 기업의 하청업체들에 이미 ESTA 입국자한 수십 명이 고용 돼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에서 고용 광고를 보고 지원한 뒤 ESTA로 입국해 공장에서 몇 달간 일하고 돌아가는 구조였다.

이런 형태의 불법 고용은 2020년 SK배터리 공장 직원을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 사건에서 비로소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그 훨씬 이전부터 공공연히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일각에서는 "ESTA를 통해 몇 달 일하는 것이 그리 큰 문제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이민법 위반에 그치지 않는 심각한 문제다.

첫째, 근로자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합법적 고용 구조였다면 당연히 받을 수 있었던 산재보험 적용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A씨의 사례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둘째, 심각한 탈세가 발생한다. ESTA 근로자들은 대부분 급여를 한국에서 직접 받는다. 미국 내 근로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이로 인해 고용주는 고용세와 사회보장세를 납부하지 않고, 근로자 역시 소득세 신고를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일종의 '비용 절감 방법'으로 인식할지 모르겠으나 이는 미국의 조세 질서를 흔드는 중대한 범법 행위이며, 동시에 현지 기업들과의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명백한 불법행위다.

셋째, 출신 국가에 따라 차별된 채용을 하다면, 이는 미국 민권법(Civil Rights Act) 위반에 해당한다.

결국 ESTA를 이용한 불법 채용은 단순한 이민법 위반에 머물지 않는다. 노동법, 세법, 민권법 등 다양한 영역에서 민사적·형사적 불법 행위를 연쇄적으로 발생시킨다. 이는 개별 근로자의 안전과 권익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의 법적 질서와 공정한 경쟁 환경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조지아주 사바나 인근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미 당국 관계자들이 체류 신분에 문제가 있는 직원들을 체포하고 있다. (출처 : ATF(주류·담배·총기·폭발물단속국) X )

"대기업, 하청업체 책임전가 구조도 문제"

고용주들이 처한 현실적 어려움도 충분히 이해한다. 조지아주 사바나시와 같은 소도시에서 수천 명 이상을 고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현지 인력만으로 채용을 감당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어떤 이유도 불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노동시장의 한계는 공장 착공 이전부터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사실이다. 현대가 처음 자동차 공장을 건설한 앨라배마 몽고메리나 기아차 공장이 들어선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 역시 모두 작은 도시였다. 그럼에도 현대와 기아는 합법적인 방식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십여 년간 미국 남동부 지역에서 노동법 관련 소송을 담당하면서 느낀 점은, 미국에 진출한 한국의 대표 대기업들은 법을 잘 준수한다는 것이었다. 불법적이거나 부적절한 고용 관행은 대부분 대기업들의 협력업체에서 발생했다. 이번 단속에서 체포된 대부분의 근로자들도 LG나 현대차 직원이 아닌 다수의 협력업체 직원들로 확인된 바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협력업체들조차 직접 채용하지 않고 인력 공급업체를 통해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문제가 드러났을 때 대기업은 협력업체에, 협력업체는 다시 인력업체로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가 형성 돼 있다. 한국에서 '관행'이라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불법에 노출시킨 행위다.

하지만 원청 업체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아랫사람이 나도 모르게 한 일"이라는 식의 변명은 엄격한 미국 연방법 앞에서 결코 면책 사유가 될 수 없다.

조지아 엘라벨에 위치한 현대자동차그룹의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모습 (출처 : 현대차 )

불법 고용 방식은 ESTA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인 사회에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멕시코·캐나다 국적자들에게 발급되는 TN 비자도 종종 악용된다. 이 비자는 멕시코인 중 학사 학위 이상 소지자가 전문 직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 일부 한인 협력업체들이 멕시코에 취업 광고를 내면서 "미국에서 전문적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실제 입국 후에는 대기업 공장에서 단순 노동에 종사하게 되며, 급여도 현지인들보다 적게 받는다. 개인적 경험에 따르면 이러한 TN 비자 남용 사례도 적지 않았으며, 관련 당국의 조사가 진행 중일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문제를 예방하려면 결국 미국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들이 협력업체들의 고용 방식을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 협력업체가 고용한 근로자들이 근무하는 현장은 대부분 대기업의 공장이며 그 근로자들의 신분과 고용 형태를 관리·감독하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책임 있는 글로벌 기업이라면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내 투자와 공장 설립을 통해 현지 경제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불법적인 고용 관행을 묵인한다면 한국 기업 전체의 신뢰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우리 동포 사회에도 큰 상처를 남기게 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단순히 '값싼 생산기지'를 찾는 투자자가 아니라, 법과 윤리를 존중하는 책임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김진혁 변호사

김진혁 변호사는?

김진혁(Brian Kim) 변호사는 1990년부터 애틀랜타에 거주하며 조지아·알라바마주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조지아대(University of Georgia)에서 회계학을, 미시간주립대(Michigan State University)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미국 연방법원에서 50건 이상의 노동법 사건을 직접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임금 및 근로시간(FLSA), 고용차별(Title VII, ADEA 등), 보복 및 부당해고 소송 등 폭넓은 영역에서 기업과 근로자를 대리하고 있다. 현재 법무법인 Brian Kim PC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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