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치 < 개인가치... 조 단위로 거래되는 두뇌들
[시론] 실리콘밸리의 인재전쟁
AI 시대, 왜 한 사람의 가치가 기업가치보다 커지고 있어
평균 이상의 인재는 많지만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뛰어난 두뇌'는 희소한 자원
모델을 만드는 두뇌, 철학과 직관,하드웨어보다 창조적 통찰이 결정적 자산
한국이 배워야 할 것: 장비보다 사람, 하드웨어보다 영감
AI 시대, 왜 한 사람의 가치가 기업가치보다 큰가?
메기 효과.
조직이나 집단 내 강력한 경쟁자나 위협 요소가 등장,기존 구성원들이 자극을 받아 경쟁력이 높아지고 전체의 활력이 증진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지금 실리콘밸리의 메기는 메타다.
메타의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스케일 AI의 창업자 알렉산더 왕을 영입하기 위해 143억 달러(약 20조원)를 투자, 실리콘밸리 인재 전쟁을 일으켰다.
일리야 슈츠케버가 창업한 세이프 슈퍼인텔리전스(SSI)는 제품도 없이 ‘사람’ 만으로 320억 달러(약 44조원)로 가치를 평가받았다. 마크 저커버그는 일리야 슈츠케버가 인수, 영입을 거절하자 그의 SSI에 엔젤 투자한 투자자와 자본을 인수했다. 이에 앞서 오픈AI는 아이폰을 만든 조니 아이브의 스타트업을 65억 달러(약 9조원)에 인수했다.
오픈AI는 설립 9년 만에 기업가치 3000억 달러(409조원)를 돌파했다. 이 가치는 샘 알트만 CEO 등 몇몇 핵심 인물의 역량과 평판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메타의 인재전쟁도 대부분 오픈AI 직원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오픈AI는 스타트업(기업)이라기보다는 인물 기반의 인텔리전스 컨소시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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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슈퍼인재 영입은 HR이 아니다. 캐펙스(Capex, 시설투자)다.
AI슈퍼인재 ‘한 사람’이 제품, 서비스보다 중요하며 기업가치의 전부이거나 그 이상이란 뜻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전통 경제학에서 ‘가치’는 희소성에서 나온다. 산업혁명 시대, 석탄과 철이 희소했고 정보화 시대에는 반도체와 소프트웨어가 희소했다. AI 경쟁의 핵심은 컴퓨팅 파워와 모델 성능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보다 더 희소하고 전략적인 자원이 부상하고 있다.
'초지능 AI'를 추구하는 빅테크 기업들에게도 평균 이상의 인재는 많다. 하지만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뛰어난 두뇌' 자체가 가장 희소한 자원이 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른바 ‘파운데이셔널 마인드(Foundational Mind)’다.
이들은 단순한 개발자가 아니다. 차세대 초거대 모델의 설계, 정렬(Alignment), 멀티모달 인터페이스 등 AI 진화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극소수의 인물들이다. 이들의 가치 평가 기준은 매출도, 특허도 아니다. AI 기술의 핵심은 알고리즘과 데이터에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조합하고 어디에 적용할지는 한 사람의 창의성과 직관 그리고 경험에 달려 있다.
이들의 생각과 실행으로 GPU 수만장을 아낄 수 있다. AI는 예측 불가하고 왜 이런 결과를 내놓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AI 기술 혁신의 그 순간을 경험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암묵적 집단 지식(또는 부족지식Trival Knowledge)’이라고 한다.
일리야 슈츠케버는 메타의 인수 제안을 거절하고 독립을 선택한 직후 “우리에겐 컴퓨팅도 있고 팀도 있고,무엇을 해야 할지도 안다. 우리는 계속해서 안전한 초지능을 만들 것이다”고 말했다.
알렉산더 왕이 메타로 이직할 때 그가 가져간 것은 단순히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다. 스케일 AI가 구축해온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와의 모든 관계망, 그리고 AI 데이터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미래 전망이 함께 따라갔다. 조니 아이브는 아이폰을 만든 경험과 철학을 오픈AI로 가져왔다.
빅테크 기업들이 개인에게 천문학적 투자를 하는 이유다. HR 차원이 아니다. 캐팩스 (Capex. 기업이 미래 이윤 창출이나 가치 취득을 위한 투자에서 지출하는 비용)란 판단이다. AI 시대에는 평균적으로 우수한 100명보다 독창적인 한 명이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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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인재 인플레이션’을 낳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은 문명 전환기마다 등장하는 창의적 두뇌를 둘러싼, 신(新) 패권 경쟁의 순간임을 알고 있다.
①누가 초지능을 설계할 수 있는가? ② 누가 인간과 AI의 관계를 재정의할 수 있는가? ③ 누가 새로운 기기의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할 수 있는가? 란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는 인재에게 조 단위의 자금을 아낌없이 베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투자 규모가 크고 '사람'에 투자한 만큼 리스크도 크다. 이들이 만든 제품이 시장에서 실패할 수도 있고, 천문학적인 투자가 회수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실리콘밸리의 판단은 명확하다. 모델이 아닌 모델을 만드는 두뇌, 알고리즘이 아닌 철학과 직관,하드웨어보다 창조적 통찰이 결정적 자산이 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르네상스기에도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로마(바티칸) 등 중세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시대적 인재를 데려오기 위해 높은 보수, 명예, 작업의 자유 등 다양한 혜택을 제시하며 경쟁했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 한 명의 이동은 밀라노, 피렌체, 로마의 권력 역학을 흔들었다. 그것이 르네상스의 본질이었다. 도시간 경쟁은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와 시장가치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고 수백년이 지난 지금, 그 혜택은 후손에 까지 이어지고 있다(지금도 다빈치 그림을 보기 위해 전세계에서 '다빈치 원본 보유 도시'로 관광객이 모여든다).
지금의 빅테크는 21세기의 다빈치를 영입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초지능AI, 휴머노이드 로봇, 로보텍시, AI 뉴하드웨어, 퀀텀컴퓨팅 등 미래 기술은 결국 몇몇 개인의 상상력과 실행력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그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실리콘밸리'다.
물론 실리콘밸리만의 현상이 아니다. 중국, 유럽, 중동 각국에서도 유사한 인재 영입과 육성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인재가 국적과 조직을 넘어 이동한다. 르네상스 시대 처럼 이탈리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초국경 인재전쟁의 시대다.
한국이 배워야 할 것: 장비보다 사람, 하드웨어보다 영감
이 순간 한국의 현실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개별 인재에 대한 파격적 투자는 '특혜'로 여겨진다. 입시라는 단일한 잣대로 모든 학생을 평가하고 표준화된 교육과정으로 '우수한 평균인'을 대량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조니 아이브 같은 창의적 천재나 일리야 슈츠케버 같은 독창적 연구자가 나올 수 없다. 오히려 이런 인재들은 '문제아'로 분류 돼 제거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 문화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연공서열과 집단 의사결정이 지배한다. 젊은 천재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경험이 부족하다", "검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묻어버린다. 개인의 독창성보다는 조직 내 화합을, 혁신적 아이디어보다는 검증된 방법론을 선호한다.
더 큰 문제는 실패에 대한 공포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가 학습의 과정이자 다음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 번의 실패가 평생의 낙인이 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인재가 나올 수 없다.
AI 3강을 위해 지금 필요한 건 평범한 다수가 아닌 비범한 소수에 투자하는 결단이다. 한국은 ‘사람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가장 두려워한다. 정해진 프레임을 넘어서는 인물을 부담스러워하고 시스템을 뛰어넘는 상상력은 '불안정한 변수'로 간주한다.
그러나 AI는 바로 그 변수에서 진화한다. 과거 산업화는 노동을 재편했고 디지털화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AI는 '사고하는 존재'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다. 이 기술이 위험한 이유이자, 기대되는 이유다.
한국이 진짜 AI 강국이 되려면 GPU 갯수를 무한정 늘리기보다 사람에 대한 투자 철학을 바꿔야 한다. 더 빠른 모델보다 더 깊은 비전이, 더 많은 서버보다 더 창의적인 두뇌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가 여전히 20세기 공장형 인재 양성 시스템에 매달린다면 한국은5년후에도 10년후에도 AI 빅3국가는 요원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