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국가자본주의의 서막… 인텔 지분 인수로 본 트럼프식 산업 전략
[시론] 트럼프식 자본주의와 한국의 선택은?
트럼프, 인텔 지분 10% 인수. 최대 주주로 등극, ‘정치 자본주의’ 본격화.
몰락한 인텔은 지정학적 필요 속에서 정치력으로 생명 연장.
자유시장 원칙을 흔들고 기업 생존에 ‘정치적 충성’ 강요할 수도
한국은 기회와 위기 모두 직면: 기술 초격차 유지, 전략적 헤징, 중간국 연대가 생존 전략의 핵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인텔 지분 10%를 미국 정부가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인텔도 이에 동의하면서 미국 정부가 기존 블랙록(8.9%)를 넘어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미국 반도체 지원법(CHIPS법, CHIPS and Science Act) 보조금 약 109억 달러를 지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지분은 '비의결권' 성격으로, 미국 정부가 인텔 경영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나 이를 믿는 사람들은 없다. 단순히 기업에 돈을 준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가 직접 주주로서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이는 자본주의의 운용 원리를 다시 쓰는 역사적 사건으로 해석될 정도로 뉴욕 월가(경제, 시장)와 워싱턴DC(정계), 그리고 실리콘밸리(기술)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몰락한 실리콘밸리 제왕의 생명연장... '시장원리' 아닌 '정치'로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정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해왔다. '정부는 승자와 패자를 고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보수주의의 핵심 원칙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제 "국가가 필요한 기업에 직접 자금을 투입하고, 경영에 개입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내세운다. 호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며 다른 산업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미국판 국가 자본주의'의 서막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인텔은 한때 '실리콘밸리의 혁신 엔진'이었다. 1968년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창립한 이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발명하며 PC 혁명을 이끌었다. 1990년대 중반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윈텔 시대'를 구축했을 때 인텔은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인텔은 AI, 스마트폰, 파운드리 혁명에 잇따라 뒤처지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07년 애플이 첫 아이폰용 칩 제작을 요청했을 때 폴 오텔리니 당시 CEO는 수익성이 낮다며 거절했다. 그 후 엔비디아가 GPU로 AI 시장을 석권하며 시가총액 4조3000억 달러에 달하는 동안, 인텔은 1080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한때 엔비디아보다 40배 큰 기업이었던 인텔이 이제는 40분의 1 수준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번 정부 지분 인수는 기술력보다는 정치력으로 생명을 연장받는 전형적인 사례다. 미국 정부가 인텔에 기대하는 것은 단순한 재무 회복이 아니다. 이는 '반도체의 전략 자산화'다. 지정학적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 안전망 구축인 동시에, 중국과의 기술패권 경쟁에서의 '버티기 전략'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과정이 시장 논리보다 정치 논리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립부 탄 CEO의 중국 투자 이력을 문제삼으며 사퇴를 압박했다가, 백악관에서 만난 후 태도를 바꾼 모습은 이미 "주주자본주의 이후의 시대"를 보여준다. 이는 경영진의 능력이나 기업의 실적보다 정치적 충성도가 기업 생존을 좌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의미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정치적 개입이 창조적 파괴라는 자본주의의 핵심 메커니즘을 왜곡한다는 점이다. 본래 자본주의에서는 혁신에 실패한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고 그 자리를 더 혁신적인 기업이 차지하면서 경제 전체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정부가 특정 기업을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이유로 인위적으로 살려내면, 혁신의 동력은 약화되고 기존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화된다.
인텔의 사례는 이런 딜레마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회사는 스마트폰 혁명을 놓쳤고, AI 혁명에서도 뒤처졌으며, 파운드리에서도 경쟁력을 상실했다. 시장 논리라면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어야 할 기업이다. 그런데 "미국 내 반도체 생산능력 확보"라는 지정학적 필요에 의해 인위적 생명 연장을 받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냉전 시대 소련의 계획경제에서 비효율적인 국영기업들이 정치적 이유로 존속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시장 원리보다 정치적 이익 우선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정치적 개입이 글로벌 경쟁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점이다. 이제 기업들은 단순히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치적 로비력, 정부와의 네트워킹, 국가 전략에 부합하는 포지셔닝 등이 기업 생존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이는 기업가정신과 혁신보다는 정치적 기민함과 줄서기를 중시하는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낼 위험성이 크다.
미국은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민간의 탈을 쓴 사실상의 '국영기업'을 비판하고 견제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식 모델을 따라가고 있다. 중국식 국가 자본주의를 비판할 명분이 없다.
이런 변화는 글로벌 기업들에게 새로운 딜레마를 안긴다. 과연 어느 나라의 정치적 요구에 부응해야 할 것인가? 미국 정부의 요구를 따르면 중국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고, 중국의 요구를 수용하면 미국에서 제재를 당한다.
기업들은 이제 순수한 경제적 합리성이 아니라 복잡한 지정학적 계산 속에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이는 궁극적으로 글로벌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혁신의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다. 기업에게는 '리스크' 요소를 높이고 불확실성을 키우는 계기가 된다.
자본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이 미국발 산업정책의 전환은 한국에게 상반된 메시지를 던진다.
우선 기회 측면을 보면, 미국이 반도체 자급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선택된 기업만 지원한다면, TSMC나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초격차 기업의 공급 안정성은 오히려 부각된다. 미국 고객사인 엔비디아나 애플 입장에서는 성능이 떨어지는 인텔보다 검증된 공급자와의 관계를 더 강화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텍사스에,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며 미국 내 입지를 다지고 있다.
하지만 위기 요소도 만만치 않다. 미국 정부가 특정 기업에 직접 지분을 갖고 자금을 배분하는 모델은 한국 기업에게 '정치적 충성'이라는 비경제적 변수를 요구할 수 있다. 향후 한국 기업이 미국 내 투자나 인허가, 기술제휴를 진행할 때 '정치적 고려'가 개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해치고, 규범에 따른 글로벌 비즈니스 질서를 약화시킨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불공정 경쟁 환경이다. 인텔이 정부 지원을 받아 파운드리 사업을 확대한다면, 이 분야를 양분하고 있는 TSMC와 삼성전자에게는 직접적 위협이 될 수 있다. 시장 경쟁력이 아닌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여전히 수출 의존형 경제다. 반도체, 2차전지, 조선 등 주력 산업 모두 글로벌 공급망에 깊게 얽혀 있다. 이 속에서 '미국의 손을 잡는 게 곧 안전'이라는 믿음만으로 전략을 세우기엔 위험하다. 한미 산업동맹을 설계하되, 기술력과 투명한 거버넌스를 기반으로 한 경쟁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K-뉴딜, 반도체 K-벨트 구상 등은 이미 한국 정부도 전략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에 얼마나 전략적으로 대응하느냐다. 우리는 미국의 산업정책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전략적 동맹을 유지하되 자율성과 기술경쟁력이라는 무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트럼프식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있다
트럼프식 자본주의는 신보호주의, 지정학, 산업정책, 국가안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수렴된다. 이는 WTO와 글로벌 가치사슬을 기반으로 한 '탈정치화된 자본주의'의 종말을 뜻한다. 세계는 다시 '정치가 자본을 고르는 시대'로 돌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중국은 이미 국가자본주의를 통해 급성장했고, 유럽연합도 '전략적 자율성'을 내세우며 정부 개입을 확대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면서 공급망 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도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했다.
이번 인텔 지분 인수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더 이상 순수한 시장 시스템이 아님을 보여주면서 트럼프식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시대가 개막됐음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자유시장과 공정경쟁의 원칙은 정치의 그림자 속에 들어가고 있으며, 그 영향은 한국과 같은 수출 강국에 직격탄으로 다가올 수 있다. 자본주의의 규칙이 바뀔 때 가장 먼저 휘청이는 것은 중간에 낀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생존 공식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기술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D램, 낸드플래시)에서 70% 이상의 글로벌 점유율을 갖고 있는 것처럼 특정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강점 분야를 더욱 공고히 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해야 한다.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차세대 메모리(HBM, CXL 메모리 등) 기술을 선점하고, 배터리에서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확보하며 조선에서는 친환경 선박과 해상풍력 연계 기술을 개발하는 식이다. 핵심은 대체 불가능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 것은 국가 생존과 직결되는 전략이다.
두 번째는 전략적 헤징(Strategic Hedging)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한국은 제3의 축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유럽연합, 일본, 인도, 동남아시아 등과의 협력을 강화하여 미중 양극 구도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유럽의 그린딜과 연계한 친환경 기술 협력, 인도와의 디지털 인프라 구축 협력, 동남아시아와의 공급망 다변화 등을 통해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이는 한 쪽에만 의존할 때 생기는 취약성을 줄이고 협상에서의 레버리지를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세 번째는 중간국 연합의 리더십이다. 한국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중간국들과 연대하여 규칙 기반의 다자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캐나다, 호주, 네덜란드, 스위스 등과 함께 WTO 개혁, 디지털 무역 규범 제정, 기술 표준화 등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강대국들이 자국 이익에 따라 규칙을 바꾸려 할 때 중간국들이 연합하여 기존 질서의 예측 가능성을 지켜야 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의 안정적 성장 환경을 보장하는 투자될 것이다.
다섯 번째는 가치 기반 경제 외교 정책이다. 한국의 문화적 소프트파워를 경제적 이익과 연결하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한류를 통해 형성된 긍정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국 기업과 제품에 대한 선호도를 높이고, 이를 경제 협력으로 연결해야 한다. 또 민주주의, 인권, 환경 보호 등의 가치를 앞세워 유럽 등 가치를 중시하는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서 장기적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토대가 된다.
이 과정에서 인적자본의 고도화는 국가 생존과 연결된 숙제다.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은 결국 인재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고 육성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실리콘밸리가 전 세계 인재를 끌어들여 혁신의 중심이 된 것처럼 한국도 아시아의 기술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의 혁신, 창업 생태계 활성화, 외국인 정착 지원 등이 필요하다.
더 근본적으로는 경제구조의 불균형을 해소 해야 한다 한국은 GDP 대비 수출 의존도가 40%에 달하는 초수출 경제다. 이는 글로벌 충격에 매우 취약한 구조다.
내수 시장을 확대하고 서비스업을 고도화하여 경제의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특히 디지털 서비스, 콘텐츠 산업, 바이오헬스 등에서 내수를 기반으로 한 생태계를 구축한 후 이를 해외로 확장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K-팝, K-드라마가 내수에서 검증된 후 글로벌로 진출한 사례를 다른 분야로 확장하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전략을 뒷받침할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의지가 필요할 것이다.
단기적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일관된 정책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중간국 한국의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생존전략이다.이처럼 미중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만의 생존 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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