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미 조지아주 ICE 구금 사태 한 달...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현장분석] 조지아주 ‘달래기 외교’ 한창… 잃은 인심 돌리기 쉽지 않아
한미 파트너십’ 외쳤지만… 구금 피해자 지원 논의는 없었다
“‘비자 문제’로 돌린 정부·기업… 근본 원인인 불법 고용 구조는 제자리
ICE 단속 여파로 인력난 심화… 조지아 한국 기업들, 불안 속 재가동
한미, 비자 제도 마련 시동... "B1으론 부족, E4 제도화 필요"
[핵심요약 읽기]
👉 ICE의 한국인 대규모 구금 사태 이후, 팻 윌슨 조지아주 경제개발부 장관이 개천절 행사에 참석해 한국 기업들의 투자에 감사를 표함.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도 한국 방문을 추진하며 '달래기 외교'에 나서
👉 구금됐던 직원들이 복귀하면서 겉으로는 사태가 일단락된 분위기. 그러나 피해자 보상 및 미 당국을 향한 법적 대응 여부는 제자리 걸음
👉 기업의 비즈니스 관행에 대한 해명과 조사 필요. 그러나 비자 제도의 모호함으로 프레임 전환. 불법 고용 반복 상황 규명하고 대안 찾아야.
👉 단속 이후 '한국 기업은 언제든 ICE가 급습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현지 기업 채용 지원자가 크게 줄어, 일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등 인력 운용에 어려움이 가중
👉 양국 정부가 'B1 비자 및 무비자(ESTA) 입국자도 공장 장비 설치·점검·보수 업무 수행 가능'하다는 점을 공식 확인, 단기적 제도 개선안 마련.
👉전문가들은 B1 비자가 단기 대응책, 10년 넘게 추진됐으나 좌초된 E4 비자(한국 전문직 종사자 전용 비자) 도입 성과 내야.
지난달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이민세관단속국(ICE)의 한국인 대규모 구금 사태가 한 달을 넘기면서, 조지아 주정부와 한국 정부가 관계 회복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구금됐던 노동자들의 피해 회복과 기업의 불법 고용 책임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과제로 남아 있다.
8일(현지시간) 애틀랜타에서 열린 개천절 기념행사에 참석한 팻 윌슨 조지아주 경제개발부 장관은 “한국 기업들은 조지아의 경제 발전을 이끄는 핵심 파트너”라며 한국 기업들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한국 기업들은 다른 어떤 외국인 직접투자 파트너보다 더 많은 일자리와 투자를 제공해왔다”며 “좋은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는 것보다 개인의 삶과 가족,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더 나은 방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는 조지아주 애틀랜타 총영사관이 주최한 개천절 기념행사로, 한국인 대규모 구금 사태 이후 처음 열린 대한민국 정부 주최 공식 행사였다. 그러나 윌슨 장관은 구금 사태의 구체적 내용이나 향후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조지아주, 한국 달래기 외교… "주지사 조만간 방한"
지난달 ICE 단속 직후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는 “조지아에서는 모든 주 및 연방 이민법을 항상 집행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내놓으며, 한국과 현지 한인사회의 공분을 샀다.
현지 유력지 애틀랜타 저널-컨스티튜션(AJC)은 주지사실 내부 문건을 인용해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단속은 켐프 주지사조차 사전에 통보받지 못한 채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문건에 따르면 주지사실은 지난달 4일 단속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으며, 단속 사흘 뒤인 7일 트럼프 대통령과 연방 당국자들과 함께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배경에서 팻 윌슨 조지아주 경제개발부 장관의 이번 개천절 행사 참석은 이례적인 행보로 평가된다. 현지에서는 그가 한국 정부와 기업, 그리고 한인사회의 민심을 달래기 위한 의도로 행사에 참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ICE 단속 이후 조지아주 내 여론은 “커다란 망신”이라며 주정부에 대한 비판이 확산됐다. 한 한인 변호사는 “주정부가 미국 주요 언론의 불법 고용 보도에만 반응하고, 한국과의 관계 관리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에 조지아주는 한국 투자 위축을 우려해 이른바 ‘달래기 외교’에 나섰다. 켐프 주지사는 현대차 관계자 면담을 위한 공식 서한을 보냈으며, 윌슨 장관은 “몇 주 안에 켐프 주지사와 함께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지 시민단체 관계자는 “주정부가 한국 기업의 투자는 환영하면서도, 정작 그 기업들의 불법 고용 관행에는 눈감아온 것 아니냐”며 “이제 와서 관계 회복만 강조하는 것은 위선적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한미 파트너십 외쳤지만… 구금 피해자 지원 논의는 없었다
행사장에서는 “한미 파트너십 강화”라는 외교적 수사가 이어졌지만, 정작 이번 사태의 핵심인 구금 피해자 지원 문제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예년과 달리 올해 행사에는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참석이 눈에 띄게 줄었다. 한 한인 변호사는 “사태 수습 여파로 인해 참석률이 낮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행사장에서 만난 또 다른 한인 변호사는 더밀크와의 인터뷰에서 “구금됐던 분들 중 상당수가 여전히 심리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을 텐데, 기업이나 정부 차원의 심리 지원이나 보상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지 제조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구금됐던 직원들이 복귀하면서 겉으로는 사태가 일단락된 분위기지만, 기업들은 위로금 지급 등을 통해 사태를 신속히 마무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는 “미국 내에서 법적 대응을 하려면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현실적으로는 조속한 수습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지역 내 시민단체와 노동법 변호사 업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구금 피해자들이 법적 대응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동시에 불법 고용 구조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구금 사태를 겪었던 일부 직원들이 다시 현장으로 복귀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 사정을 잘 아는 또 다른 관계자는 “추석이 지나면 일부 직원들이 미국 공장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며 “심리적으로는 쉽지 않겠지만, 프로젝트 완수와 생계 문제를 고려하면 복귀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비자 문제’로 돌린 정부·기업… 근본 원인인 불법 고용 구조는 제자리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의 고용 관행에 대한 검증도 여전히 미흡하다.
조지아 내 일부 여론에서는 “현대차의 비즈니스 관행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한국 정부와 기업은 이를 ‘비자 제도의 모호함’ 문제로 돌리며 프레임을 전환했다.
노동법 전문 한인 변호사는 “물론 비자 제도 개선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기업들이 왜 적절한 비자를 가진 인력을 확보하지 못했는지, 그리고 하청 구조 속에서 불법 고용이 어떻게 반복돼왔는지를 먼저 규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지 한인 사회에서는 “대기업들이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비자 문제를 인지하고도 묵인하거나, 하청업체에 책임을 전가하는 관행이 이어져 왔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공식 조사나 기업의 명확한 해명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비슷한 문제는 과거에도 반복됐다. 몇 년 전 SK배터리 건설 현장에서도 하청업체의 불법 입국 사례가 적발되며 논란이 된 바 있다. 문제가 드러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유사한 고용 구조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업과 양국 정부 모두 문제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며 “그동안 감춰졌던 불법 고용 관행이 드러난 만큼, 이제는 양국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ICE 단속 여파로 인력난 심화… 조지아 한국 기업들, 불안 속 재가동
이날 기념행사에 참석한 한 기업 관계자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대규모 단속 이후, ‘한국 기업에는 언제든 ICE가 급습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며 “이 같은 분위기 탓에 채용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크게 줄면서, 조지아주 현대차를 비롯한 배터리 제조사들이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SK배터리 등 현지 진출 기업들의 사정을 잘 아는 또 다른 관계자도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사무직 직원 일부가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나는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체계적인 인사관리나 업무 분장이 장기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다 보니 주재원들에게 업무 부담이 집중되는 등 내부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점진적인 정상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행사에 참석한 일부 기업 관계자들은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프로젝트가 다시 궤도에 오르고 있다”며 “구금됐던 직원들이 한국으로 복귀하면서 급한 불은 껐고, 공장 완공을 위한 정상화 작업이 재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태도도 달라지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합법적인 인력 채용과 건설 프로젝트 추진을 둘러싼 절차에 한층 신중한 접근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조지아주 경제개발부 차관보를 지낸 김윤희 액킨스릴리스 수석상무는 “이번 사태 이후 건설 및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는 기업들의 문의가 꾸준히 늘고 있다”며 “그만큼 기업들이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조지아주 경제개발국 관계자 역시 “아직은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구금 사태 이후 주춤했던 한국 기업들의 투자 프로젝트가 점차 재개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애틀랜타 총영사관도 지역 내 한국 기업과 직원들의 비자 관련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민법 세미나 개최를 준비하는 등 후속 대응에 나서고 있다.
더밀크의 시각: 비자 협의, 근본 해법인가 임시방편인가
ICE(이민세관단속국)의 한국인 구금 사태 이후, 한미 양국이 기업 인력 문제 해소를 위한 제도적 해법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사태로 위축됐던 한국 기업들의 현지 투자와 인력 운용에도 점차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날 김대환 주애틀랜타 부총영사는 구금 사태와 비자 문제를 공식 언급하며 “HL-GA(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단속은 우리 사회에 매우 힘든 순간이었다”며 “현재 한미 양국 정부와 관련 기업들이 비자 절차와 법규 준수 방안을 두고 진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태가 오히려 한미 간, 그리고 한국과 조지아주 간 파트너십을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발언은 구금 사태 이후 한국 정부 관계자가 공식석상에서 처음 사안을 직접 언급한 사례로, 양국 간 제도적 협의가 본격화됐음을 시사한다.
이 같은 흐름은 지난 9월 30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상용방문 및 비자 워킹그룹’ 1차 회의로 이어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양국은 이번 협의에서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과정에서 활용 가능한 비자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 결과, 미국 측은 B1(단기상용) 비자 소지자도 투자 기업의 공장에서 장비 설치(install), 점검(service), 보수(repair) 등 공장 가동 및 건설 관련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공식 확인했다. 또한 무비자 프로그램(ESTA) 입국자 역시 동일한 범위의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양국은 이 내용을 담은 ‘팩트시트(Fact Sheet)’를 조만간 공식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조치는 조지아주 ICE 단속 이후 위축된 한국 기업들의 현지 활동에 제도적 안전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일부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인한 불법 고용, 비자 범위 해석의 모호함으로 인한 단속 사례 등이 반복돼 왔다. 이번 합의는 이런 불확실성을 줄이고, 현장 인력의 합법적 활동 범위를 명확히 한 조치로 평가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단기적 처방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B1 비자는 단기 상용 목적에 한정돼 있어, 장기 프로젝트나 생산 인력 운용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더밀크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 차원의 E4 비자 도입 논의가 재점화됐다”고 밝혔다. E4 비자는 한국 전문직 종사자를 위한 별도 비자 카테고리로, 2012년부터 추진돼 왔으나 미 의회 내 정치적 갈등과 반대 여론으로 번번이 좌초됐다.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와 민간 로비단체가 E4 비자 추진에 투입한 비용은 550만 달러(약 77억 원)에 달하지만, 가시적 성과는 아직 없다.
이번 사태는 양국 모두에 중요한 교훈과 과제를 남겼다.
한국에는 해외 진출 기업의 인사·비자 관리 역량 강화 필요성을, 미국에는 핵심 산업 파트너와의 신뢰 회복이 곧 경제 안정이라는 현실을 일깨워줬다. 이민·노동 규제가 글로벌 공급망을 흔드는 변수로 떠오른 만큼, 비자 리스크는 더 이상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문제로 인식돼야 한다. 결국 이번 비자 협의는 단순한 절차 조정이 아니라, 한미 양국이 ‘투자-노동-이민’을 잇는 제도적 파트너십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구금됐던 노동자들은 어떤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기업들은 불법 고용 구조에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위로금’으로 조용히 덮는 것이 정당한가?
조지아주는 한국 기업의 투자는 환영하면서 노동법 위반에는 눈감아온 것 아닌가?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한미 관계’ 프레임에 갇혀 정작 피해자 권리와 기업의 책임 문제는 묻히고 있다”며 “진정한 해법은 투명한 조사, 명확한 책임 규명, 그리고 피해자 보상”이라고 강조했다.
조지아주와 한국 정부의 ‘달래기 외교’가 한창이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들은 여전히 답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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