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AI는 메모리 70%, 한국의 무기”… 손영권이 짚은 생존 전략
지난 1983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MIT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만 26세 청년 손영권(Young Sohn)은 5000킬로미터 떨어진 캘리포니아주에서의 새로운 삶을 앞두고 있었다. 1978년 퍼스널 컴퓨터(PC) 시대를 연 CPU(중앙처리장치) ‘8086’을 출시하며 빠르게 성장하던 인텔에 입사해 반도체 분야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것이다. 주무대를 실리콘밸리로 옮긴 그는 인텔 이후 퀀텀, 애질런트 반도체(아바고, 현 브로드컴) 사장, Arm 및 케이던스 이사회 멤버, 삼성전자 CSO(최고전략책임자) 사장 등 핵심 반도체 기업의 리더십을 거치며 업계를 이끌었다. 놀라운 건 40년이 지난 현재도 그의 열정이 식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각)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에서 열린 ‘K-글로벌(K-Global@Silicon Valley)’ 행사장에서 만난 손영권 하만(HARMAN) 이사회 의장의 발언에는 미래에 대한 강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무엇이 기술 업계에서 산전수전 겪은 그를 이렇게 들뜨게 만들었을까? 반도체 전문가이자 베테랑 경영인, 인텔의 립 부탄 CEO와 함께 실리콘밸리 VC(벤처캐피털) 월든 카탈리스트(Walden Catalyst)를 설립해 투자자로도 활동해 온 손 의장이 발견한 시그널은 무엇일까?핵심은 역시 AI였다. 손 의장은 AI 시대를 ‘거대한 쓰나미’에 비유하며 이 물결에 어떻게 올라타느냐에 따라 새로운 승자와 패자가 갈릴 것이라고 단언했다. AI는 단순히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며 산업 지형을 완전히 바꿀 거대한 파도라는 것이다. 과거 PC 시대 마이크로소프트, 모바일 시대 삼성이 승자가 된 반면, 노키아, 야후처럼 변화의 물결을 놓친 기업은 뒤처졌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AI 시대 초기 인프라 경쟁은 엔비디아가 주도하고 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대형 AI 데이터센터가 10만 개, 나아가 100만 개의 GPU(그래픽처리장치)를 필요로 하는 기가와트 규모로 확장되고 있어 한국에도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손 의장은 “한국은 기초 연구 역량을 강화하고, 스타트업을 넘어 ‘스케일업(Scale-up,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을 의미)’을 육성하는 집중적인 전략을 펴야 한다”며 “AI의 핵심은 데이터와 메모리다. 메모리 반도체 강국인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현재 엔비디아가 판매하는 4만달러짜리 모듈을 열어보면 내용물의 70%가 실제로 메모리다. 한국산 메모리를 높은 마진으로 판매하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메모리와 로직, GPU를 통합하는 새로운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모든 것을 직접 개발하려는 ‘NIH(Not Invented Here)’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하이퍼스케일러 등 글로벌 기업과의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하며 싱가포르의 GIC, 테마섹처럼 한국도 적극적인 글로벌 교류 및 과감한 투자를 통해 변화의 흐름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스케일업 기업을 길러내야 한다고 제언했다.AI 데이터센터 확장에 따라 폭증할 에너지 수요에도 주목했다. AI 시대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에너지원 창출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손 의장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한국이 가진 강점을 활용해야 한다”며 “한국의 원자력 우위는 우리가 활용해야 할 자산”이라고 했다.다음은 손 의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