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원짜리 생산 수단이 모두의 손에” 트렌드쇼에서 배운 것들
[기고] 유호현 토블AI 대표
슈퍼파워의 민주화가 가져온 역설
10억원짜리 생산 수단이 모두의 손에
트렌드쇼2026이 보여준 문명사적 전환
21세기의 여름이 시작된다
딱 올해까지, 두 달 남았다
프롤로그: 슈퍼파워의 민주화가 가져온 역설
지난 10년간 나는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슈퍼파워를 가지고 살았다. 나의 한시간은 다른 사람의 한시간보다 월등히 많은 가치를 생산했다. 한줄 한줄의 코드가 전 세계 트위터, 에어비앤비 사용자에게 전달되었고, 내가 만든 백엔드가 수많은 결제를 처리했다. 나는 그렇게 같은 시간 동안 평균보다 많은 돈을 벌어왔다.
그런데 AI 시대가 오면서 나의 슈퍼파워에 두 가지 극적인 변화가 생겼다.
첫째, 내 슈퍼파워가 전에 비해 100배 이상 강해졌다. 이전에 10명이 1년동안 만들던 앱을 혼자서 1주일이면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여러 앱을 동시에 만들기도 하고, 음악도 작곡하고, 영상도 만들고, 책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상상도 못하던 능력들이 나에게 주어졌다.
그런데 둘째, 내 슈퍼파워를 누구나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의 가치는 급전직하한다. 내가 100억을 가지고 있어도 모두가 100억을 가지고 있으면 현금의 가치가 떨어질 뿐이다. 옛날에 다른 사람이 천만원씩 가지고 내가 1억을 가지고 있을 때에 비해 내가 가진 가치는 떨어지고 돈 자체의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김대식 KAIST 교수가 트렌드쇼2026에서 경고한 "노동 가치 제로의 시대"다. 그는 2022년 말 ChatGPT 등장 이후 소프트웨어 개발자 일자리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신입과 경력이 적은 개발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는 개발자들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그의 진단은 내가 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 그 자체다.
10억원짜리 생산 수단이 모두의 손에
지금 우리는 역사상 유례없는 시대의 눈 앞에 서 있다. 모두에게 10억원짜리 생산 수단이 주어진다. 이전 가치로 따지면 10억원의 가치도 넘을 것이다. 개발자 7명, 디자이너 1명, PM 1명, 행정 직원 1명을 고용하면 연 10억원 정도가 들었다.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AI가 몇십만원이면 내 손에 들어온다.
송길영 작가는 이를 "경량문명의 탄생"이라 명명했다. "개인이 AI로 무장하면 큰 조직과 경쟁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텔레그램은 30명, 미드저니는 40명, 커서AI는 20명, 베이스포리폼은 단 1명이다. 특히 1인 기업이 매출 50억 원을 내고 천억 원에 매각된 사례는 충격적이다.
"천재는 더 이상 대규모 조직에 들어가지 않는다. 성과급을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송길영 작가의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가 제시한 '인당 시총(시가총액 ÷ 직원 수)' 개념은 게임의 룰 자체가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작지만 효율적인 기업이 대기업을 앞서는 시대가 온 것이다.
👉"1인 기업이 조직 이기는 시대"…송길영의 생존 경고
하형석 미미박스 CEO의 목표는 직원 1명당 연 매출을 14억원에서 28억원으로 올리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이미 직원 1명당 50억원의 매출을 낸다. 이것이 새로운 기준선이다.
그 10억원짜리 생산 수단으로 100억원의 가치를 만들수도, 10억원의 가치를 만들수도, 0원의 가치를 만들 수도 있다. 심지어 돈을 잃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시대를 전에 겪은 적이 있다. 바로 2017년, "방송"이 민주화된 시간이었다. 슈카도 없었고, 삼프로도 없었고, Mr. Beast도 없었다. 유튜버라는 직업이 처음 생기던 시점, 인류는 처음으로 1인 방송이 가능한 시대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었고, 아주 극소수만 돈을 벌었다.
앞으로 앱 시장도 그러할 것이다. 수많은 것들이 엄청난 속도로 쏟아져나올 것이고 가치는 급락하며 대부분 사용자 없이 버려질 것이다.
트렌드쇼2026이 보여준 문명사적 전환
오늘 함께했던 더밀크의 트렌드쇼는 이러한 세상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정말 화려한 라인업이었고, 다들 AI 시대의 깊이 있는 인사이트들을 전해주셨다. 그리고 그 지혜를 모아보면 엄청난 위기와 엄청난 기회의 시대가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이다.
윤송이 PVP 대표는 AI를 "대한민국의 세 번째 불"이라 규정했다. 불의 발견이 신체의 한계를 깼고, 언어의 탄생이 공동체의 한계를 바꾼 것처럼, AI도 인류의 진화 자체를 도약시킬 근원적 변화라는 것이다.
이주환 스윗 대표의 발표는 이것이 더 이상 미래 담론이 아님을 증명했다. 오픈AI와 스트라이프의 에이전트 커머스 프로토콜(ACP), 월마트의 에이전트 전환, 페이팔과 구글의 에이전트 페이먼트 프로토콜(AP2) 발표. "가장 보수적인 금융과 리테일 기업들이 에이전트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스윗 이주환 "AI 에이전트, 기업 협업툴 넘어 비즈니스 전환 핵심"
손재권 더밀크 대표는 이를 더욱 확장했다. "2026년은 에이전트 이코노미의 기점입니다. B2B, B2C가 아니라 A2A(Agent to Agent) 모델이 등장합니다." 인간이 수십 개의 에이전트를 보유하고, 에이전트끼리 소통하며 거래하는 새로운 경제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송길영 작가가 전한 현장의 목소리는 더욱 생생했다. "6월에는 1시간 촬영했는데, 9월엔 촬영 없이 AI로만 광고를 만들었습니다." 광고주-대행사-제작사-플랫폼으로 이어지던 밸류체인이 3개월 만에 단순화됐다. 메타는 광고주에게 AI 기반 제작 도구를 직접 제공하며 중간 과정을 제거하고 있다.
법률 시장의 변화는 더욱 충격적이다. 작은 로펌이 월 300만원 인턴십 공고를 냈는데 SKY 출신 50명이 지원했다. "패럴리걸과 어소시에이트가 사라졌습니다. ChatGPT가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계약서를 ChatGPT에 넣으면 독소 조항을 찾아내고 수정본을 3분 만에 뽑아낸다.
쿠팡의 채용 공고 변화도 의미심장하다. 작년엔 '3PL 프로세스 소통 담당자'였지만, 올해는 '물류 자동화 담당자'로 바뀌었다. 일을 하는 사람에서 일을 자동화하는 사람으로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송길영 작가의 직설적인 질문이 강렬하다. "여러분, 뭐라도 좀 하세요. 지금까지는 취직해서 돈을 벌었지만, 지금은 차리면 되는데 왜 아직도 조직에 있습니까?"
김대식 교수는 이것을 경제학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생산량은 노동량과 자본량의 함수입니다. AGI와 에너지가 충분한 시대에는 생산함수에서 노동의 가치가 제로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본의 가치는 계속 올라갑니다."
그의 해법은 명확했다. "AGI 시대에 노동의 가치는 떨어지니까 우린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최대한 돈을 벌어야 합니다. 자본을 축적해야 합니다. 노동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지만 자본의 가치는 계속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대안도 제시했다. "유한한 기본소득을 주거나 최저임금을 주는 것보다는,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중 한 사람당 GPU 지분을 나눠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 GPU를 여러 사람이 함께 모아서 스타트업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메시지가 모든 것을 정리한다. "AI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람 대 기계의 문제가 아니고, 나와 나보다 인공지능을 더 잘 쓰는 사람의 문제입니다. AI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 AI를 더 잘 쓰는 경쟁 회사 때문에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21세기의 여름이 시작된다
손재권 대표는 21세기의 여름을 이야기했다. "2025년이 끝나면 21세기의 1쿼터(25년)가 끝납니다. 2026년부터 2050년까지는 21세기의 여름, 가장 뜨겁고 변화가 큰 25년이 될 것입니다."
2026년생부터 '제너레이션 베타'로 분류되는 이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AI와 함께하는 최초의 세대다. "엄마가 AI로 20년 후 미래 모습을 생성하고, 응애 소리를 녹음해 음악을 만듭니다. 태어날 때부터 콘텐츠가 생성되는 세대입니다."
그는 AI 버블 가능성도 경고했다. "1929년 대공황 전야와 현재 AI 시장의 유사성이 있습니다. 규제 완화, 신기술 과열, 느슨한 금융 환경, 과도한 낙관론." 하지만 동시에 기회를 강조했다. "구글이 2년간 노벨상 수상자 5명을 배출한 것처럼 과학의 르네상스가 시작됐습니다. 2030년까지 구글에서만 10-20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것입니다."
하형석 미미박스 CEO의 발표는 한국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2024년 기준 미국의 화장품 수입국 순위에서 한국이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점유율 22%로 프랑스(16%)를 6%p 차이로 제쳤다.
"AI 붐과 K뷰티 붐이 동시에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AI 인프라 진화와 K뷰티 인프라 진화가 같은 패턴입니다. AI도 1회고 K뷰티도 1회입니다."
그는 GPT 검색 최적화를 위해 웹사이트에 AI 크롤링 허용 코드를 삽입했다. "GPT야 들어와, 재밌어, 들어와라고 해서 문을 열어줘야 합니다." AI 에이전트에게 발견되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 된 시대다.
윤송이 대표의 메시지가 이를 확장한다. "AI는 한국인에게 축복입니다. 가장 창의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민족 중 하나인 한국은 AI 르네상스를 선도할 잠재력이 있습니다. 한국은 고령화 사회, 기술 혁명이라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습니다. AI 기술을 도입해 기업가 정신을 함양하고, 인구 한계를 지능 혁신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딱 올해까지, 두 달 남았다
우리의 가치는 급락할 것이고, 모두가 슈퍼파워를 가진 상태에서 새로운 출발선 상에 설 것이다.
구한말에 영어를 배운 사람처럼, 60년대에 기업을 세운 사람처럼, 80년대에 강남에 먼저 이사간 사람처럼, 2010년에 비트코인을 산 사람처럼, 2017년에 유튜버가 된 사람처럼 우리 앞에 새로운 출발선이 놓였다.
김미경 MKTV 대표의 집 냉장고 앞에는 "나는 1학년이다"라는 메모가 붙어 있다. 예순하나의 나이에도 매일 아침 이 문구를 보며 초심으로 배우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한다. 그는 월 40만원을 AI 서비스에 투자하며 공부하고 있다.
"우리가 살면서 이렇게 공평한, 그래도 이렇게 차이 안 나는 출발점에 언제 서봤어요? AI가 사람들을 다 똑같은 출발선에 세워놨어요. 살아오면서 출발선이 늘 달랐어요. 하지만 AI 앞에서는 남녀노소, 직업이나 경력을 불문하고 모두가 동시에 1학년 교실에 앉아 있는 겁니다."
👉김미경 대표 “AI는 문명”... 새로운 질서 속 설계자가 되는 방법
내년의 세상은 이미 격차를 벌리고 있을 것이다. 이 시간에 내가 주어진 슈퍼파워를 활용할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쓴다면 어디에 쓸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 지금이 인류에게 주어진 마지막 큰 리셋의 기회이지 않을까 싶다. 개인에게 이렇게 큰 격차의 능력이 한꺼번에 주어질 일이 있을까?
송길영 작가의 말처럼 "출발선은 공평하게 올해입니다."
세상은 변하겠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60년대 기업을 세우지 않고 재벌이 되지 않고, 80년대 강남으로 이사가지 않고, 2010년대에 비트코인을 사지 않고, 2020년대에 유튜버가 되지 않은 사람도 잘 살고 있다. 지금 AI에 올라타지 않아도 평범한 일상은 계속될 것이다.
다만 기회를 잡고 싶으면 지금 움직이자. 변화를 잡은 사람들에게 어떤 삶이 주어지는지 우리는 참 많이 보아왔다.
가능하면 Claude Code와 함께하는 코딩을 배워보자. 그것이 내 인생을 이미 크게 바꾸고 있다. 그리고 내가 Claude Code를 가르쳐 준 사람들 중 일부는 엄청난 것들을 이미 만들어내고 있다.
오늘 강연을 듣는 동안에도 내 Claude Code는 앱을 하나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