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시대, 감각을 복원하라"... 트렌드쇼에서 마주한 인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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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진 2025.10.31 11:08 PDT
"기술의 시대, 감각을 복원하라"... 트렌드쇼에서 마주한 인간의 조건
(출처 : 챗GPT)

[기고] 김어진 파나타(Panatta) COO
"데이터 너머에 남은 것은 두려움과 경외로움"
"AI시대, 인간에게 느끼고 해석하는 고유한 영역 남아"
인간은 무엇으로 경쟁? "감각의 복원, AI 시대의 핵심"
롱제비티는 시간이 아닌 의미의 확장

프롤로그: "너무 많이 알지만, 너무 적게 느끼는 시대"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정보를 접하며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뇌는 쉴 새 없이 새로운 데이터를 받아들인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뉴스피드가 끝없이 업데이트되고, 점심시간에 확인한 기술 트렌드는 저녁이 되면 벌써 낡은 이야기가 된다. 퇴근 후 침대에 누워서도 우리는 또 다른 콘텐츠를 소비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너무 많은 것을 알지만, 너무 적게 느끼는 시대.

이 현상은 단순한 정보 과잉의 문제를 넘어선다. 정보가 많아진다고 해서 우리의 이해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더 많이 알수록 우리는 덜 이해하게 되고, 더 많이 접할수록 덜 기억하게 된다. 정보는 지식이 되고, 지식은 다시 데이터가 되어 우리 의식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것들 - 느낌과 감정, 그리고 의미는 증발해버린다.

눈을 뜨면 새로운 AI 모델이 발표되고, 뉴스를 넘기기도 전에 또 다른 기술이 등장하며, 식사 사이에도 세상은 몇 번이고 업데이트된다. ChatGPT가 출시된 지 2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우리는 이미 GPT-4, GPT-4o, o1, 그리고 곧 출시될 GPT-5에 대해 이야기한다. Gemini, Claude, Llama가 경쟁하고, 매일같이 새로운 AI 스타트업이 등장한다. 양자컴퓨팅,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합성생물학까지. 기술의 발전 속도는 이미 인간의 기억 능력을 훨씬 앞질렀다.

사유의 깊이는 효율성의 논리에 압도당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한 가지 주제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빠르게 소비하고, 천천히 음미하기보다는 다음 콘텐츠로 넘어간다. 북마크는 쌓여가지만 다시 읽는 글은 드물고, 저장한 링크는 많지만 실제로 적용하는 지식은 적다. 우리의 뇌는 정보를 저장하는 하드디스크처럼 작동하지만, 그 정보가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성찰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정보는 끊임없이 쌓이지만, 감정은 남지 않는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역설이다. 우리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된 듯 착각하지만, 정작 자신을 이해하는 능력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최신 논문을 읽어도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느끼지 못하고, AI의 작동 원리를 이해해도 기술이 불러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기대는 추상적으로만 남는다.

지식은 축적되지만 지혜는 멀어지고, 데이터는 늘어나지만 통찰은 희박해진다. 우리는 더 많이 알면서도 더 적게 느끼고, 더 연결되면서도 더 고립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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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Gemini)

트렌드쇼 2026에서 마주한 인간의 조건

더밀크가 주최한 트렌드쇼 2026은 이런 맥락에서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 이 행사를 즐기는 동안 수많은 데이터와 개념, 전망과 예측이 쏟아졌다. 윤송이 PVP 대표는 AI를 불과 언어에 이은 인류의 세 번째 혁명으로 정의했고, 김대식 교수는 노동 가치가 제로로 수렴하는 미래를 경고했다. 송길영 작가는 경량문명의 탄생을 선언했고, 오건영 단장은 트럼프 2.0 시대의 금융시장 변동성을 분석했다. 손재권 대표는 2026년을 혁명과 창조의 해로 규정했고, 하형석 대표는 K뷰티와 AI의 동시 부상을 설명했다. 이주환 대표는 에이전트 이코노미를 예고했고, 김미경 대표는 AI를 문명으로 재정의했으며, 신상훈 대표는 롱제비티 혁명을 통해 인간 수명의 재설계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모든 강연은 최첨단 데이터와 날카로운 분석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행사를 경험하는 동안 나에게는 데이터가 아닌 감정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과 경외로움이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듯 보이는 감정이 동시에 밀려왔고, 행사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가슴속에 머물렀다.

두려움은 변화의 속도에서 왔다. 2022년 말 챗GPT가 등장한 지 불과 3년 만에 세상이 이렇게 달라질 줄 누가 예상했을까.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일자리가 급감하고, 광고 밸류체인이 3개월 만에 단순화되며, 법률·교육·의료 분야에서 중간 단계가 사라지고 있다. 1인 기업이 대기업과 경쟁하고, AI 에이전트가 인간을 대신해 업무를 처리하며, 인당 시총이라는 새로운 기업 평가 기준이 등장했다. 이 모든 변화가 3년 안에 일어났다. 그렇다면 앞으로 3년, 5년, 10년 후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그 속도감 앞에서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5년 후에도 의미가 있을까. 내가 배운 지식이 10년 후에도 유효할까. 나는 이 변화의 물결을 타고 갈 수 있을까, 아니면 밀려날까.

경외로움은 인간 정신의 가능성에서 왔다. AI로 시작해서 롱제비티까지, 기술과 인간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기술이 아닌 인간의 불완전함을 떠올렸다. 무대 위의 연사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기술의 우월함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소중함이었다. 김미경 대표는 AI를 기술이 아니라 문명으로 보라고 했고, 신상훈 대표는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사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완벽을 향해 질주하는 기술의 속도가 빠를수록, 인간의 모순과 약함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인간만이 가진 아름다움이 빛났다.

트렌드쇼 2026 현장 (출처 : 더밀크)

완벽과 불완전함 사이... "느끼고 해석하는 고유한 영역 남아"

기술은 결함을 없애려 한다. 이것이 기술 발전의 근본적인 방향이다. 버그를 수정하고, 오류를 제거하며, 효율을 높이고, 정확도를 개선한다. AI는 편향을 줄이고, 로봇은 실수를 하지 않으며, 알고리즘은 최적해를 찾는다. 기술의 언어는 정확성과 재현성, 신뢰성과 안정성이다. 완벽을 향한 끝없는 여정, 그것이 기술의 본질이다.

반면 인간은 결함 속에서 성장한다. 우리는 실수를 통해 배우고, 실패를 통해 성숙하며, 좌절을 통해 강해진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완벽한 인생도 없다. 우리는 모두 상처를 안고 살며, 그 상처가 때로는 가장 큰 자산이 된다. 예술가는 고통에서 작품을 만들고, 작가는 결핍에서 이야기를 끄어내며, 철학자는 의문에서 사유를 시작한다. 인간의 언어는 모호함과 중의성, 해석의 여지와 감정의 깊이다.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인간다움의 본질이다.

AI가 정답을 제시할수록,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선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실존적 물음이다. AI가 모든 문제의 해답을 찾아준다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일한다면, 인간의 노동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AI가 예술을 창조하고 음악을 작곡한다면, 인간의 창의성은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들은 불편하지만 필수적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 자주, 더 깊이 이 질문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기계가 판단을 대신할수록, 인간에게 남는 일은 느끼고 해석하는 일이다. 이것이 AI 시대에 인간이 가진 고유한 영역이다. AI는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지만 그 데이터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다. AI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 패턴이 내 삶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는 판단하지 못한다. AI는 추천할 수 있지만 그 추천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는 인간이 결정한다. 느낌, 직관, 공감, 연민, 사랑, 두려움. 이 모든 감정은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만의 영역이다.

기술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인간다움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이것은 매우 역설적인 상황이다. 우리는 기술을 통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인간과 AI의 차이는 무엇인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 질문들은 더욱 절박해진다.

결국 기술이 완벽해질수록, 인간은 감정과 불완전함을 통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이것이 AI 시대의 인간 존재 방식이다. 불완전함은 결점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마지막 영역이다. 우리가 실수할 수 있고, 후회할 수 있으며, 변화할 수 있다는 것. 오늘의 선택이 내일 잘못되었다고 느껴질 수 있고, 그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기계와 인간을 구분하는 본질적 차이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멈추고, 반성하고, 다시 시작한다. 완벽한 기계는 멈출 필요가 없다. 설정된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나아갈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멈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가야 할 방향을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는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이 멈춤과 반성과 재시작의 과정이야말로 인간 성장의 본질이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 느리게 호흡하고, 더 깊게 사유하며, 완벽하지 않음 속의 완전함을 배워야 한다.

(출처 : Shutterstock)

감각의 복원, AI 시대의 핵심

역량AI가 사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시대에,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통찰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더 많이 아는 것이 곧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진다고 믿어왔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습득하고, 더 많이 축적하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이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AI는 이미 인간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빠르게 학습하며, 더 정확하게 기억한다. 정보량에서 인간은 AI를 절대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경쟁해야 하는가. 바로 감각이다. AI는 인간의 두뇌를 돕지만, 감각과 직관, 공감은 오직 인간만이 가진 기술이다. 이 문장에서 기술이라는 단어를 주목해야 한다. 감각은 단순히 타고나는 능력이 아니라 개발하고 훈련할 수 있는 기술이다. 직관은 연습을 통해 날카로워질 수 있고, 공감은 의식적 노력을 통해 깊어질 수 있다.

이 감각의 복원이야말로 우리가 기술의 시대를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핵심 역량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감각의 복원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우선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다시 듣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몸의 신호를 무시해왔다. 피곤해도 커피로 버티고, 배고프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먹으며, 졸려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몸은 계속 신호를 보내지만 우리는 그것을 무시하거나 억압한다. 감각의 복원은 이 신호들을 다시 민감하게 감지하는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감각의 복원은 또한 직관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데이터와 분석이 중요하지만, 때로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옳을 때가 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 이것이 맞다는 확신, 지금 결정해야 한다는 촉구. 이런 직관은 무의식적 경험의 축적에서 나오는 지혜다. AI는 명시적 지식을 처리하는 데 탁월하지만, 이런 암묵적 지식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다.

감각의 복원은 나아가 타인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AI는 감정을 분석할 수 있다. 음성의 톤, 표정의 변화, 단어의 선택을 통해 감정 상태를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분석일 뿐, 진정한 공감은 아니다. 공감은 상대의 처지를 내 것처럼 느끼는 능력이다. 그의 고통이 나의 고통처럼 아프고, 그의 기쁨이 나의 기쁨처럼 즐거운 것. 이것은 데이터로 환원될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이다.

기술의 언어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면, 인간의 언어는 감정을 기반으로 한다. 이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은 정량화할 수 있는 것들을 다룬다. 숫자, 패턴, 상관관계, 확률. 이 모든 것은 측정되고 비교되며 최적화될 수 있다. 반면 인간의 언어는 정량화할 수 없는 것들을 다룬다. 아름다움, 슬픔, 그리움, 경외감. 이것들은 측정할 수 없지만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결국 문명의 진화는 기술이 아닌 감정의 해석력에 의해 완성될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예측이다. 우리는 흔히 문명의 발전을 기술의 발전과 동일시한다. 더 나은 기술이 더 나은 문명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 기술은 도구일 뿐,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가치관과 감정이다. 핵 기술은 에너지를 만들 수도 있고 무기를 만들 수도 있다. 인터넷은 지식을 공유할 수도 있고 혐오를 퍼뜨릴 수도 있다. AI는 인간을 돕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감시와 통제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가치다.

(출처 : 나노바나나, 더밀크)

롱제비티, 시간이 아닌 의미의 확장

롱제비티 또한 같은 맥락에 있다. 이 개념은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니라, 얼마나 인간답게 오래 사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트렌드쇼에서 신상훈 대표가 제시한 롱제비티 혁명은 기술적 가능성만큼이나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100세까지 살 수 있게 되었다. 아니, 곧 110세, 120세까지 살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긴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채울 것인가.

기술이 신체를 관리할 수는 있어도, 삶의 의미까지 설계할 수는 없다. 이것이 핵심이다. GLP-1 약물로 체중을 조절하고, 웨어러블 기기로 건강 데이터를 모니터링하며, 유전자 분석으로 질병 위험을 예측할 수 있다. 세포 리프로그래밍으로 노화를 되돌리고, 세놀리틱스로 좀비 세포를 제거하며, 라파마이신으로 노화 경로를 조절할 수 있다. 이 모든 기술이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건강은 데이터의 결과가 아니라, 감각의 리듬과 관계의 질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것은 롱제비티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다. 우리는 흔히 건강을 숫자로 이해한다.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 BMI, 체지방률, 근육량. 걸음 수, 심박수, 수면 시간. 이 모든 지표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정한 건강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가벼운 느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 맛있게 식사할 수 있는 즐거움, 깊이 잠들 수 있는 평온함 속에 있다.

관계의 질도 마찬가지다. 하버드의 80년 연구가 밝혀낸 것처럼, 행복과 건강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계의 질이다. 얼마나 많은 친구가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가.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가. SNS 팔로워 숫자가 아니라, 힘들 때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이것들은 정량화하기 어렵지만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AI가 신체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다면, 인간은 자신의 몸이 들려주는 신호를 해석해야 한다. 이것이 롱제비티 시대의 핵심 역량이다. AI는 당신의 심박변이도가 낮다고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트레스가 어디서 오는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는 당신만이 알 수 있다. AI는 당신의 수면 패턴이 불규칙하다고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왜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무엇이 당신을 불안하게 하는지, 어떻게 해야 마음이 편안해질지는 당신이 스스로 탐구해야 한다.

그 감각이 곧 자기 이해의 시작이며, 지속 가능한 웰니스의 본질이다. 롱제비티는 단순히 오래 사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돌보는 예술이다. 내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이런 자기 인식 없이는 아무리 좋은 기술도 피상적인 해결책에 그칠 뿐이다.

(주)롱제비티 공동 창업자가 더밀크 트렌드쇼2026에서 강연하고 있다. (출처 : 더밀크)

방향을 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이다

기술은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키지만, 그 방향을 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이다. 이것은 AI 시대에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원칙이다. AI는 놀라운 도구다. 생산성을 높이고, 창의성을 자극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하지만 AI는 도구일 뿐, 목적은 아니다. 무엇을 위해 AI를 사용할 것인가,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가. 이 모든 질문에 답하는 것은 인간이다.

따라서 AI 시대의 경쟁력은 속도가 아니라 해석의 깊이, 지식의 양이 아니라 감각의 정확도에 달려 있다. 이것은 기존의 경쟁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집는 관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더 빠르고, 더 많이 아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AI가 이미 인간보다 빠르고 많이 아는 시대에, 속도와 지식량으로는 승부할 수 없다.

대신 우리는 해석의 깊이로 승부해야 한다. 같은 데이터를 보고도 어떤 사람은 표면적 패턴만 보지만, 어떤 사람은 그 이면의 의미를 읽어낸다. 같은 상황을 경험하고도 어떤 사람은 지나쳐버리지만, 어떤 사람은 거기서 통찰을 얻는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해석의 깊이다. 그리고 이 해석력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사유의 훈련에서 나온다.

감각의 정확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감각을 주관적이고 불확실한 것으로 치부해왔다. 객관적 데이터가 더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확할 수 있다. 숙련된 요리사는 맛을 보는 순간 무엇이 부족한지 안다. 경험 많은 의사는 환자를 보는 순간 직관적으로 진단한다. 뛰어난 투자자는 데이터 너머의 분위기를 감지한다. 이 모든 것이 훈련된 감각의 힘이다. AI 시대에 우리는 이 감각을 더욱 날카롭게 벼려야 한다.

더밀크 트렌드쇼 2026 현장 (출처 : 더밀크)

트렌드쇼 2026, 집단적 사유의 공간

트렌드쇼2026, AI와의 경쟁(Race Against AI)은 그 사실을 다시 일깨워준 자리였다. 이 포럼은 단순히 2026년의 트렌드를 나열하는 행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이 기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집단적 사유의 공간이었다. 무대 위의 연사들은 각자 다른 분야에서 왔지만, 모두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AI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술이 변화시킬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효율성과 인간다움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AI, 경량문명, 롱제비티, 시니어 테크 등 이 모든 키워드는 결국 기술의 진화에 더해 인간의 확장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키워드들이 서로 다른 영역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하나의 공통된 주제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AI는 인간의 지능을 확장한다. 경량문명은 인간의 생산 방식을 재편한다. 롱제비티는 인간의 시간을 연장한다. 그 모든 변화 속에서 우리는 묻는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인가.

연사들의 메시지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출발했지만, 모두가 한 방향을 가리켰다. 윤송이 대표가 AI를 경쟁자가 아닌 대화의 파트너로 보라고 했을 때, 김대식 교수가 AI 자체가 아니라 AI를 더 잘 쓰는 사람이 적이라고 했을 때, 송길영 작가가 개인이 조직을 이길 수 있다고 했을 때, 김미경 대표가 소수점 공부로 변화에 끼어들 수 있다고 했을 때. 이 모든 메시지는 결국 같은 진리를 말하고 있었다. 기술의 목적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휴머니즘이 아니다. 이것은 AI 시대를 살아가는 실용적 전략이다. 기술과 경쟁하려 들면 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술을 도구로 삼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존재가 될 수 있다. AI로 무장한 인간은 AI 없는 인간보다 강하다. 하지만 인간다움을 잃은 채 AI에 의존하는 인간은 결국 공허해질 것이다. 기술과 인간성, 효율과 의미, 속도와 깊이. 이 모든 것의 균형을 찾는 것이 AI 시대의 과제다.

윤송이 PVP 대표가 더밀크 트렌드쇼2026에서 기조연설 하고 있다. (출처 : 더밀크)

느끼는 힘이 세상을 바꾼다

기술이 아무리 완벽해져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느끼는 힘이다. 이것이 트렌드쇼 2026에서 내가 얻은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세상을 바꾼 것은 언제나 기술 그 자체가 아니었다.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을 만든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꿈꾼 사람들의 열망이 산업혁명을 만들었다. 인터넷이 정보혁명을 만든 것이 아니라, 지식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의 의지가 정보혁명을 만들었다. 기술은 도구였고, 방향을 정한 것은 인간의 감정과 가치였다.

AI 시대도 마찬가지다. AI가 사고를 확장시킨다면, 인간은 감각을 확장해야 한다. 이것은 대칭적인 관계다. AI가 논리와 분석의 영역을 맡는다면, 인간은 직관과 감정의 영역을 깊이 파야 한다. AI가 정량적 데이터를 다룬다면, 인간은 정성적 의미를 탐구해야 한다. AI가 명시적 지식을 처리한다면, 인간은 암묵적 지혜를 키워야 한다. 이렇게 AI와 인간이 각자의 강점을 발휘할 때, 비로소 진정한 시너지가 발생한다.

그 감각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마지막 언어이자, 다음 문명을 향한 우리의 가장 인간적인 방향이다. 존엄은 능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더 빠르고 정확하다고 해서 더 존엄한 것은 아니다. 인간의 존엄은 느낄 수 있다는 것,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에서 나온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대체할 수 없는 이 능력이 바로 우리의 존엄성을 보증한다.

트렌드쇼를 나서며 생각했다. 이 두려움과 경외로움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변화의 속도에 압도되지 않으면서도 안주하지 않는 법.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법. 효율을 추구하면서도 의미를 놓치지 않는 법. 그 답은 결국 감각의 복원에 있다. 몸의 신호를 듣고, 마음의 목소리를 따르며,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 데이터만큼이나 직관을 신뢰하고, 분석만큼이나 느낌을 존중하는 것. 이것이 AI 시대를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결국 우리는 기술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활용해 더 깊이 느끼고 더 온전히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더 많이 아는 것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이, 더 빨리 도달하는 것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 더 많이 성취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트렌드쇼 2026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메시지다. 기술의 시대에 감각을 복원하라. 그것이 인간으로 남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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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진 파나타(PANATTA) COO는?

피트니스 및 웰니스 산업의 브랜드 전략가이자 기획자다.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심리학을 공부했으며, 기업 심리검사연구소 연구원과 비영리단체 자기계발센터 센터장을 거쳤다. 당시 개인의 성장과 내면 회복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며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활동 영역을 신체로 확장해 이탈리아 프리미엄 피트니스 브랜드 '파나타(PANATTA)'의 한국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제주 '리빌드짐(Rebuild Gym)' 등 신체 건강 공간 프로젝트를 기획했으며, 기술과 인간의 균형을 모색하면서 몸과 마음, 그리고 사랑을 잇는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하고 있다.

김어진 파나타 COO (출처 : 김어진 C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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