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로 미국 AI 패권 강화: 트럼프 AI 액션 플랜, 한국의 전략은?
[AI 액션 플랜 분석] 백악관, 23일 발표
핵심①: AI 혁신 가속화… 바이든 AI 정책 폐기 및 오픈 소스 강화
핵심②: 미국 AI 인프라 구축… 데이터센터·에너지를 잡아라
핵심③: 국제 AI 안보 선도… 표준 설정·수출 통제로 중국 견제
더밀크의 시각: AI 기술 개발·투자 가속화… 수출 패키지를 기회로
“AI 지배력(dominance)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미국의 AI 액션 플랜(America's AI Action Plan)’을 발표합니다.”
스리람 크리슈난(Sriram Krishnan) 백악관 AI 수석 정책 고문은 23일(현지시각) X를 통해 “핵심 주제는 AI 혁신 가속화, 미국의 AI 인프라 구축, 국제 AI 안보 주도 세 가지”라며 이같이 밝혔다.
실리콘밸리 대형 벤처캐피털(VC) 앤드리슨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의 전 총괄 파트너 출신인 크리슈난 수석은 이어 “지난 6개월 동안 데이비드 삭스 백악관 AI·암호화폐 정책 책임자, 마이클 크라치오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 실장 등과 함께 많은 시간과 땀을 쏟았다”며 “오픈 소스 분야에서도 미국이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날 발표한 미국 AI 액션 플랜은 미국을 AI 분야에서 확고부동한 글로벌 기술 지배자로 만들겠다는 강력한 목표를 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AI 정책 기조를 완전히 뒤집고, 규제 완화와 혁신 가속화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글로벌 AI 산업의 지형에 막대한 파급 효과를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액션 플랜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25년 1월 23일 서명한 행정명령 14179호 ‘미국 AI 리더십 장벽 제거(Removing Barriers to American Leadership in Artificial Intelligence)’에 따라 180일 이내 제출된 결과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바이든 전 대통령의 AI 행정명령 14110호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 개발 및 사용(Safe, Secure, and Trustworthy Development and Use of Artificial Intelligence)’을 공식적으로 폐기하며 AI가 초래할 위험 감소보다는 산업 혁신 촉진과 경쟁력 강화에 중점을 두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바 있다.
AI를 글로벌 권력 균형을 재편할 혁명적 기술로 인식하고, 미국의 기술적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을 국가 안보의 필수 요소로 간주하는 정책 기조가 반영된 결과다. 성장과 패권에 집중한 미국의 새로운 AI 정책은 전 세계 AI 산업의 투자, 기술 개발, 인재 흐름, 국제 협력 및 규제 환경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핵심①: AI 혁신 가속화… 바이든 AI 정책 폐기 및 오픈 소스 강화
바이든 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AI 모델의 결함 및 편향성 점검 지침 마련, 상용화 전 안전성 테스트 결과 정부 의무 보고 등을 담고 있었다. AI의 위험을 줄이는 데 중점을 둔 행정명령이었던 것. 그러나 AI 업계에서는 이러한 조치가 과도한 규제로 작용해 혁신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번 액션 플랜 발표는 AI 개발 및 활용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접근 방식이 근본적으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위험 관리에서 혁신 가속화로의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이다. AI 혁신 가속화의 목표는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AI 시스템을 보유하고, 경제 성장, 새로운 일자리 창출,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창의적이고 변혁적인 AI 응용 분야를 선도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AI 기술 부양 및 지원 정책이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딥시크, 알리바바 큐원 등 중국 기업들이 선보인 AI 모델과 실리콘밸리 AI 모델의 성능 격차가 거의 사라짐에 따라 경각심이 커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규제를 완화하고,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제거하겠다고 밝혔다. AI 개발 및 배포를 저해하는 연방 규제를 없애고, 민간 부문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주 정부의 AI 모델 규제를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 주별로 파편화된 규제가 아닌 통일된 연방 프레임워크 구축에 나설 방침이다.
자유로운 표현 및 미국적 가치 보호도 포함됐다. ‘최고 성능 AI(Frontier AI)’ 모델 개발사가 시스템이 객관적인지, ‘톱다운 이념 편향(top-down ideological bias)’으로부터 자유로운지 확인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이른바 ‘깨어있는 AI(woke AI)’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비판적 시각을 반영한다.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의 AI 위험 관리 프레임워크에서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잘못된 정보, 기후 변화 관련 내용을 삭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러한 ‘이념적 편향 없는 AI’ 강조는 단순히 기술적 중립성을 넘어, 미국 내 특정 정치적, 사회적 담론을 AI 정책에 반영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AI의 윤리적 기준과 개발 방향에 대한 국제적 합의 형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을 전망이다.
AI 모델 개발자들이 특정 정치적 또는 사회적 가치관에 부합하도록 모델을 조정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으며 AI의 다양성과 포괄성을 저해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한국 주도의 자체 AI 시스템, ‘소버린 AI’ 구축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업계에서는 오픈 소스 및 오픈 웨이트(weight, 가중치) AI 장려 정책에도 주목하고 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오픈 소스 AI 생태계가 확산할수록 기술의 민주화, 혁신 가속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폐쇄적인 모델 제공업체에 종속되지 않고, 누구나 오픈 소스로 배포된 모델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을 위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며 “미국이 미국의 가치에 기반한 선도적인 개방형 모델을 확보해야 한다. 오픈 소스 및 오픈 가중치 모델은 전 세계 비즈니스 분야와 학술 연구 분야에서 글로벌 표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정학적 가치도 있다”고 밝혔다.
중국이 오픈 소스 모델, 오픈 웨이트 모델을 주로 개발, 배포하며 관련 생태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정책 방향으로 해석된다. 백악관은 이와 함께 AI를 활용한 과학 연구 및 세계적 수준의 과학 데이터셋 구축, AI 해석 가능성, 제어, 견고성에 대한 연구 투자 확대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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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②: 미국 AI 인프라 구축… 데이터센터·에너지를 잡아라
액션 플랜의 두 번째 핵심 축은 AI 혁신 속도에 맞춰 미국의 에너지 생산 능력과 전력망을 강화하고, 필요한 인력을 양성해 AI 지배력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AI의 폭발적인 성장은 막대한 전력 소비를 수반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정책을 넘어 국가 에너지 정책 및 환경 정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문제다.
백악관은 구체적으로 반도체 제조 시설과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허가 간소화 및 보안 보장을 내세웠다. 데이터센터 및 반도체 공장 건설 허가 절차를 신속히 처리하고 현대화한다는 목표다. 또한 국방부나 내무부가 관리하는 연방 토지를 AI 데이터센터 건설에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하기로 했다.
AI 혁신 속도에 맞는 전력망 개발도 중요한 이슈다. AI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수요가 2035년까지 30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관련 전력망 개발에 힘을 싣는다는 설명이다.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리쇼어링 정책의 일환으로 미국 반도체 제조를 복원한다는 목표도 밝혔다. 인텔 중심으로 미국 내 반도체 제조 역량을 강화하고, TSMC, 삼성전자 등 글로벌 파운드리 업체의 미국 생산 시설 구축으로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AI 인프라 숙련 인력 양성도 제시했다. 전기 기술자 등 고수요 직업군을 늘리기 위한 국가적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오픈AI, 소프트뱅크, 오라클 등이 참여하는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에 5000억달러(약 687조4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내 AI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구상도 계획대로 추진키로 했다. 실제로 빅테크의 AI 인프라 투자는 공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마존은 펜실베이니아에 200억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을 발표했고, 메타 역시 2026년 가동을 목표로 오하이오주에 대규모 AI 클러스터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를 건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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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생산 증진, 환경 규제 완화를 통해 AI 인프라 구축을 가속화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은 AI 시대에 필수인 ‘에너지 패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행보다.
AI 모델 성능은 GPU(그래픽처리장치)를 비롯한 AI 반도체, 컴퓨팅 자원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이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AI 업계에서는 이를 ‘스케일링 법칙’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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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적 역량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물리적 인프라, 즉 컴퓨팅 파워에 경쟁력이 달려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움직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과제는 AI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전력 소비가 탄소 배출과 같은 환경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센터 확장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 확보, 환경 오염 방지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주제다.
이와 관련,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는 전적으로 재생에너지로 가동돼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AI 인프라 구축 속도와 비용, 에너지 조달 방식 및 환경 문제는 국가 AI 경쟁력의 새로운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핵심③: 국제 AI 안보 선도… 표준 설정·수출 통제로 중국 견제
마지막 세 번째 축은 미국 AI 시스템, 컴퓨팅 하드웨어 및 표준의 전 세계적 채택에 있다. 미국 중심으로 글로벌 동맹을 구축하며 적대국이 미국의 혁신에 무임승차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목표다.
백악관은 이와 관련, 동맹국 및 파트너국에 미국 AI를 수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상무부와 국무부가 산업계와 협력해 하드웨어, 모델,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표준을 포함하는 ‘풀스택 AI 수출 패키지’를 전 세계 동맹국 및 파트너국에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마치 서방 국가들이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는 것과 비슷한 구조를 AI 분야에서도 만들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미국 중심의 AI 안보를 선도를 위해 국제 거버넌스 기구에서 중국의 영향력를 저지하겠다는 목표도 밝혔다. AI 및 신흥 기술에 대한 국제 표준 설정 기구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한다는 것. 기술 표준이 되면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미리 중국을 견제, 헤게모니를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AI 컴퓨팅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기존 반도체 제조 수출 통제 허점도 보완키로 했다. 최첨단 AI 기술이 적대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를 강화하는 차원이다. 이런 정책 기조는 바이든 행정부때도 유지됐던 내용이다. 최첨단 AI 모델이 초래할 수 있는 국가 안보 위험을 평가하는 데 정부가 앞장서도록 보장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런 정책은 기술을 넘어 AI를 국가 안보와 외교 정책의 핵심 도구로 활용하려는 명확한 지정학적 의도를 담고 있다.
풀스택 AI 수출 패키지가 확장되면 동맹국은 미국 중심의 AI 생태계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며 궁극적으로는 AI 기술을 통한 ‘소프트 파워’를 확대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과 긴밀한 기술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는 새로운 기회와 책임이 동시에 부여될 것으로 예측된다.
더밀크의 시각: AI 기술 개발·투자 가속화… 수출 패키지를 기회로
트럼프 행정부의 AI 액션 플랜 발표는 미국 내 규제 완화와 대규모 인프라 투자, AI 기술 개발 및 상용화를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안전성 테스트 의무화 등 규제 부담이 사라지면서 AI 기업들이 더 자유롭게 혁신적인 모델 및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같은 대규모 민간 투자와 아마존, 메타의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은 이런 투자 가속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액션 플랜의 주요 포커스가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 같은 AI 인프라 구축과 에너지 생산 증진에 맞춰짐에 따라 AI 산업의 전력 수요는 더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화석 연료 및 원자력 발전 확대를 추진하고, 환경 규제를 완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과정에서 AI 산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국제적 논쟁이 촉발될 가능성도 있다. AI 연구자 게리 마커스(Gary Marcus)는 AI 산업의 미래가 어둡다고 평가하며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의미 있는 규제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다. 생성형 AI는 단기적, 장기적으로 많은 위험을 수반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AI 액션 플랜은 특히 한국 AI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에 따르면 한국의 AI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6조3009억원 수준이다. 전년 대비 12.5% 증가,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25년에는 10조5000억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부가 ‘AI 3대 강국’을 목표로 내세운 가운데, 미국과의 기술 동맹 강화와 공급망 협력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이 풀스택 AI 수출 패키지를 통해 동맹국들을 미국 중심의 AI 생태계에 편입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반도체 제조 역량을 확보한 대한민국이 핵심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을 AI칩 수출 통제 예외국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점도 한국이 AI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지속할 환경을 제공한다. 한미 간 AI 협력은 인재 교류, R&D 협력, 사이버보안 분야로도 확대될 수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강자들은 이런 변화를 기회로 삼아 고대역폭 메모리(HBM), 컴퓨트 익스프레스 링크(CXL) 같은 차세대 AI 반도체 기술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글로벌 리더십을 공고히 해야 한다. 한국 내에 AI 데이터센터 구축, 운영 효율화 거치면서 AI 인프라 역량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AI 모델 개발 및 응용 측면에서는 범용인 소버린 AI 구축과 별개로 한국이 강점을 가진 제조업, 국방, 조선 등 특정 산업 분야에 AI를 접목하는 버티컬 AI 및 응용 AI 개발 분야가 유망할 전망이다. 제조업, 국방, 조선 분야에서 구축한 한국의 고품질 데이터는 미국 빅테크도 확보하지 못한 데이터다. 버티컬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기술 고도화를 통한 버티컬 에이전트 솔루션 등은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로 지목된다.
미국 기업들과의 기술 협력으로 최신 AI 기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동남아시아 등 신흥 시장으로의 AI 서비스 수출을 다변화하는 것도 실질적인 실행 전략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