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틱AI, SW를 집어삼키다… 새로운 최상위 포식자의 등장
[AI에이전트 시대] 기술 패러다임의 대전환
먼데이닷컴 주가 30% 폭락 ‘왜?’... 기술 패러다임이 바뀐다
에이전틱 AI란? 단순 챗봇을 넘어… 일하는 기계의 등장
글로벌 리더들의 전망: AWS·MS·구글·엔비디아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모델 바꾼다
더밀크의 시각: 한국 기업의 길, 파도에 올라탈 것인가 휩쓸릴 것인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oftware-as-a-Service, SaaS)에서 소프트웨어형 서비스로(Service-as-a-Software).’
AI가 기술 산업의 거대한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 특히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 가장 유망하다고 평가했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변화의 핵심은 에이전틱 AI(Agentic AI).
AI 기술의 발달로 자율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수립하며 실제 행동을 통해 과업을 완수하는 ‘일하는 기계’가 가능해지면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11일(현지시각) 발표된 이스라엘의 SaaS 기업 먼데이닷컴(monday.com)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이 회사의 주가는 하루 만에 30% 가까이 폭락하며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다. 실적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전년 대비 27% 증가한 매출에 ARR(연간 반복 매출) 10만 달러 이상 신규 고객 수는 기록적으로 증가했고, CRM(고객관계관리) 제품은 출시 3년 만에 ARR 1억달러(약 1380억원)를 달성했다.
그러나 보수적으로 제시된 향후 성장률과 영업이익률 전망치가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여기에 에이전틱 AI 확산에 따른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가 SaaS 기업에 결국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오버랩되며 기록적인 폭락을 맞게 된 것이다.
먼데이닷컴뿐 아니라 CRM의 대명사 세일즈포스(Salesforce), 협업툴의 강자 아틀라시안(Atlassian), 크리에이티브 소프트웨어의 제왕 어도비(Adobe) 등 미국의 대표 SaaS 기업들의 주가가 동반 하락했고, 유럽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인 SAP 역시 12일 주가가 급락했다. 이는 이 현상이 보다 근원적인 공포에 기인한다는 걸 증명한다.
2011년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 투자자 마크 앤드리슨은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Software is eating the world)”고 선언하며 기술 산업의 부흥을 예고했다. 14년 후 이 유명한 명제는 “AI가 소프트웨어를 집어삼키고 있다(AI is eating software)”는 섬뜩한 명제로 뒤집혔다.
시장은 소프트웨어라는 포식자 위에 군림할 새로운 최상위 포식자의 등장을 직감했다. AI가 기존 소프트웨어를 ‘더 좋게’ 만드는 보조 도구를 넘어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자체를 아예 ‘불필요하게’ 만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이 거대한 공포는 일부 분석가들의 주장처럼 일시적 과민 반응일까? 아니면 SaaS 산업 전체의 를 붕괴시키고 디지털 경제의 지형을 영원히 바꿀 기술 지각 변동의 시작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에이전틱 AI’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에이전틱 AI란? 단순 챗봇을 넘어… 일하는 기계의 등장
챗GPT의 출현이 ‘사람처럼 말할 수 있는 AI’의 시작이었다면 에이전틱 AI는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는 AI’의 시작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인간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수립하며 실제 행동을 통해 과업을 완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하는 기계’의 등장, 즉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픈AI 역시 AGI(범용인공지능)를 향한 AI의 발전 단계 중 3단계로 에이전트를 제시한 바 있다. 1단계 챗봇(Chatbots), 2단계 추론자(Reasoners)’는 2022년 11월 챗GPT 출시 이후 우리가 지금까지 목격해 온 변화다. 다양한 챗봇에 이어 우후죽순 등장한 추론 모델의 성능은 어느덧 박사 수준에 도달했고, 이제는 추론자를 지나 에이전트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학계와 업계에서는 에이전틱 AI를 혁명적으로 만드는 핵심 능력을 다음 네 가지로 제시한다.
자율성과 목표 지향성 (Autonomy & Goal-Orientation): 에이전트는 단순히 명령어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넘어 “4분기 영업 잠재고객 확보”와 같은 추상적이고 높은 수준의 목표를 부여받으면 스스로 판단해 행동한다.
추론과 계획 수립 (Reasoning & Planning):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이를 여러 단계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분해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도구 사용과 실행 (Tool Use & Action): 에이전트는 디지털 공간에 갇혀 있지 않다. API(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호출하고,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하며 웹사이트를 탐색하고, 다른 소프트웨어를 제어하는 등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실질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다.
기억과 자기 성찰 (Memory & Self-Reflection): 과거의 상호작용을 기억하고, 장기간에 걸쳐 맥락을 유지하며 학습한다. 심지어 자신이 수립한 계획이 효과가 없을 경우 이를 스스로 수정하고 개선하는 원시적인 형태의 자기 성찰 능력까지 보여준다.
글로벌 리더들의 전망: AWS·MS·구글·엔비디아
이 거대한 변화의 의미에 대해 글로벌 기술 산업을 이끄는 리더들 역시 한목소리로 ‘혁명’이라고 외치고 있다. 스와미 시바수브라마니안(Swami Sivasubramanian) 아마존웹서비스(AWS) 에이전틱 AI 담당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7월 뉴욕 재비츠 센터(Javits Center)에서 열린 ‘AWS 서밋 뉴욕 2025(AWS Summit New York 2025)’ 기조연설에서 “에이전틱 AI는 인터넷의 탄생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변화”라며 “에이전틱 AI가 소프트웨어 구축, 배포, 운영 방식, 소프트웨어와 인간의 상호작용 방식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기존 SaaS에서 ‘소프트웨어형 서비스(service as a software)’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자율 시스템이 동적으로 서비스를 제공, 사용자가 앱과 상호작용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분석이었다. 퀵북(QuickBooks) 같은 SaaS 세무 앱 대신 AI 에이전트 회계사를 사용하는 그림을 떠올리면 된다. 전자는 고객이 소프트웨어를 사용, 직접 작업을 해야 하는 개념이라면 후자는 자동화된 에이전트가 마치 사람처럼 알아서 완결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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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이하 MS) CEO도 회사의 정체성을 ‘소프트웨어 공장’에서 ‘인텔리전스 엔진’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하며 에이전틱 AI가 기존 애플리케이션 스택을 붕괴시키고 새로운 운영체제(OS)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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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다 피차이 구글 CEO 역시 웹이 에이전트가 상호작용하는 데이터베이스의 연결체로 진화할 것이라며 에이전트를 컴퓨팅의 ‘강력한 새 폼팩터’로 규정했고,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역시 올해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 기조연설에서 AI의 발전 단계가 인식(Perception) AI, 생성(Generative) AI를 지나 에이전틱 AI로 발전할 것을 예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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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산업을 이끌어 가는 리더들의 공통된 비전은 에이전틱 AI가 단순한 기술 트렌드를 넘어 컴퓨팅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꾸는 거대한 물결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모델 바꾼다
에이전틱 AI가 가져올 가장 파괴적인 변화는 기술 자체보다 비즈니스 모델의 붕괴에 있다.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파운데이션 캐피털(Foundation Capital)은 이와 관련 ‘에이전트 시스템(System of Agents)’이 기존의 기업용 소프트웨어 스택과 경쟁하는 것을 넘어 아예 그 구조 자체를 붕괴시킬 것이라는 날카로운 분석을 제시했다.
파운데이션 캐피털에 따르면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구성하던 아래 세 개의 핵심 계층이 에이전트의 등장으로 무력화될 수 있다.
기록 시스템 (Systems of Record, 예: SAP, Oracle): 데이터베이스 위에 양식을 올려놓은 형태다. 에이전트는 이메일, 통화, 문서 등 비정형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직접 이해하고 관련 정보를 추출해 데이터베이스를 자동으로 채워 넣음으로써 인간의 수동 데이터 입력을 전제로 하는 이 시스템들을 불필요하게 만든다.
참여 시스템 (Systems of Engagement, 예: Salesforce, Zendesk): 인간이 기록 시스템과 더 쉽게 상호작용하도록 돕는 도구들이다. 에이전트는 여러 백엔드 시스템을 넘나들며 과업을 조율하는 주된 인터페이스가 됨으로써 인간이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오가며 작업해야 했던 필요성 자체를 제거한다.
지능 시스템 (Systems of Intelligence, 예: Tableau, PowerBI): 인간의 해석을 요구하는 수동적인 대시보드다. 에이전트는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을 넘어 의도를 파악하고 행동을 실행하기 때문에 정적인 대시보드를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붕괴의 결과로 탄생하는 것이 바로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Service-as-a-Software)라는 새로운 개념이다.
기존의 SaaS는 인간이 일을 하기 위한 도구를 판매하는 것에 가까웠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에게 포토샵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월 구독료를 받고 제공하는 식이다. 하지만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는 도구가 아닌 결과물 또는 서비스 그 자체를 판매한다. 즉, 디자인 작업을 직접 수행하는 디지털 에이전트를 판매하는 것이다.
이 개념적 전환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다. 기존의 SaaS 업체들이 기업의 한정된 소프트웨어 예산을 놓고 경쟁했다면 인간의 업무를 대신하는 에이전틱 AI 서비스는 그보다 훨씬 거대한 수천조 원 규모의 인력 및 서비스 예산을 놓고 경쟁하게 된다. AI가 소프트웨어 비용에서 인건비로 재분류되는 순간, 시장의 규모와 가치 평가의 척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월가가 공포에 떠는 진짜 이유, 즉 가격 모델의 역설이 드러난다. 지난 10년간 SaaS 기업들이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던 이유는 '어카운트(account, 계정) 당 월/연간 구독료(MRR/ARR)'라는 예측 가능하고 반복적인 수익 모델 덕분이었다.
그러나 에이전틱 AI는 서비스 자체를 자동화함으로써 어카운드 개념을 불분명하게 만들 수 있다. 하나의 AI 에이전트가 5개의 SaaS 업무를 대체, 먼데이닷컴이나 아틀라시안 같은 서로 다른 기업의 5개 어카운트가 사라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로펌이나 회계법인, 경영 컨설팅 업체처럼 문제 해결 건당 과금과 같은 불확실하고 검증되지 않은 결과 기반 가격 모델로의 전환을 암시한다. 결국 SaaS 산업의 재무적 예측 가능성을 산산조각 내면서 투자자들에게 극심한 불안감을 안겨준 것이다.
더밀크의 시각: 한국 기업의 길, 파도에 올라탈 것인가 휩쓸릴 것인가?
이 거대한 변화의 파도는 한국 시장에도 예외 없이 밀려오고 있다. 국내 SaaS 시장은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성숙도나 생태계 발전 측면에서 글로벌 시장에 뒤처져 있다.
특히 양질의 데이터 및 전문 인력 부족, 보안 및 규제에 대한 우려는 국내 기업들의 에이전틱 AI로의 전환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는 실정이다.
그러나 더는 주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실리콘밸리 거인들도 생존을 위한 에이전틱 AI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 역시 이들을 벤치마킹해 단순한 기능 추가가 아닌, 기업의 정체성을 건 생존 투쟁으로서의 AI 전환, 특히 에이전틱 AI 관련 기술·비즈니스 모델 적용에 나서야 한다.
실제로 SaaS의 상징과도 같았던 세일즈포스는 이미 ‘에이전포스(Agentforce)’라는 AI 에이전트 플랫폼을 구축, 에이전틱 AI 기업으로의 완전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아직 시장은 냉정한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10억 개의 에이전트를 배포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우고 사용한 만큼 지불하는(pay-as-you-go) 모델로 전환하며, 자사 내부 업무에 에이전트를 적극 활용하는 등 기술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고객 서비스 분야 강자인 젠데스크(Zendesk) 역시 오픈AI의 최신 모델을 발 빠르게 도입, 일반적인 문의의 최대 80%를 자동 처리할 수 있는 AI 상담사를 구현했다.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인간 상담원들이 고도의 공감 능력이 필요한 복잡한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서비스 직무의 본질 자체를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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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국 기업이 글로벌 기술 거인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한국은 범용 에이전트가 아닌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첨단 제조업, 바이오, 금융, 디지털 콘텐츠 등의 산업에서 깊이 있는 도메인 지식과 데이터 우위를 활용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버티컬 AI 에이전트에 집중한다면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고 고도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AI 시대에 가장 강력한 방어벽은 양질의 독점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언어, 문화, 비즈니스 환경을 반영한 고유한 데이터셋을 수집, 정제, 보호하기 위한 인프라와 프로세스에 투자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빠른 AI 기술 발전에 대응하기 위해 전사적 통합, 신속한 실증(PoC, Proof-of-Concept) 문화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립된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아니라 기업의 모든 조직과 업무 프로세스를 유기적으로 통합하고, 작지만 파급력이 큰 실증 프로젝트로 시작해 빠르게 대응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