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기업들 "어쩔 수 없었다" 지만... 미국서 '한국식'이 낳은 참사
"시간과 비용 압박이 불법체류 문제 불렀다"…현장 관계자 어려움 토로
프리패브·모듈 공법 등 새 기술도 한계…“산업플랜트엔 적용 어려워”
“터질 게 터졌다”…노동법 전문가, 한국 기업 불법 노출 지적
“트럼프 반이민 기조 지어질 것"... "더 큰 리스크 예방위한 장기전략 필요"
그간의 관행을 미국 당국이 모르고 있었을 리 없습니다. 눈 감아준 측면도 있어요. 이제서야 터진거죠.
4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배터리회사) 건설 현장에서 벌어진 불법체류자 단속과 관련, 현지 사정에 밝은 A씨가 입을 열었다.
A씨는 “조지아를 비롯해 테네시, 텍사스 등 중·남부 지역에서 한국 기업들의 대형 프로젝트가 잇따르며 건설업계가 호황을 누렸다”며 “한국 건설업체들이 몰려들면서 일감은 늘었지만, 비자 기간을 초과해 체류하는 사례도 빈번했다”고 전했다.
대규모 단속의 조짐은 이미 곳곳에서 감지됐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애틀랜타 하츠필드 국제공항에서는 미국 입국을 시도한 한국인 일부가 입국을 거부당하고 강제 추방되는 일이 발생했다. 특히 ‘한국인-사바나시-ESTA(전자여행허가제)’라는 조건이 겹칠 경우 입국 심사에서 제동이 걸렸다는 설명이다.
애틀랜타의 한 한인 노동법 변호사는 “이민법 관점에서 보면 불법 요소가 너무 많았다”며 “한국 입장에서는 억울해 보일 수 있지만 결국 터질 일이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로 한국인 입국자들 전반에 부정적 인식이 확산될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CNN 등에 따르면 이날 단속에는 미 국토안보수사국(HSI), 이민세관단속국(ICE), 마약단속국(DEA), 조지아주 순찰대 등이 참여해 브라이언 카운티의 현대차 배터리 공장 현장에서 대규모 이민 단속 작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475명이 체포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 가운데 47명이 자사 소속이며, 협력사 소속 인원은 약 250명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현대차·LG엔솔 공장 단속에 대해 보고받았다”며 “이민세관단속국이 제 역할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대차그룹의 미국 투자와 관련해 “그들은 미국에서 자동차와 제품을 판매할 권리가 있다. 이는 일방적인 거래(One-sided deal)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시간과 돈이 문제인데 기업 입장에선 어쩔수가 없어요.조지아주의 한인 건설업계 관계자. 더밀크와 인터뷰 중에서
미국에서 일을 하려면 합법적 '비자'가 필요하다. 아니면 현지인을 고용해야 한다. 상식이다. 그럼에도 미국에 진출해 공장을 건설하는 한국 기업들은 왜 큰 리스크를 지고 강행한 것일까?
더밀크는 최근 조지아주에서 잇따라 진행된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총괄했던 B씨를 인터뷰했다.
B씨는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결국 시간과 돈의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미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은 대부분 산업 플랜트에 속한다. 산업플랜트 프로젝트는 대부분 1년 반에서 2년 안에 공사를 끝내야 한다. 특히 배터리나 반도체 공장은 화학 물질이 다량 사용되기 때문에 배관의 웰딩 작업이 필수적이다.
그는 "이제 막 제조를 시작하려하고 경험이 없는 미국 건설 업체가 초기 계약 비용과 일정대로 완공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공장을 완공, 납품하기로한 제품의 오더를 받은 상태다. 공기에 맞춰야 했다, 이 때문에 비자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밀려드는 일감에 하청 업체들이 '한국식'으로 일하려 한 것도 큰 문제로 꼽았다. “제너럴 컨트랙터 경험이 없는 미국 내 한인 업체들이 일이 많다 보니 덤벼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기업은 그나마 낫지만, 1차·2차 협력사들은 비용 절감이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런 업체들을 쓰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됩니다.”
프리패브나 모듈형 등 같은 혁신적 건설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석유·가스·화학 플랜트처럼 원료를 처리해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대규모 화공 플랜트에서는 가능하지만, 산업용 플랜트는 건물 안에 설비를 넣어야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건물 외곽 파이프랙 정도만 모듈화가 가능한데, 경제성도 떨어지고 전체 일정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실제 미국 모듈 업체를 활용했던 경험도 전했다. B씨는 “해외에서 제작된 모듈을 들여오는 방식도 비용과 효율을 따져야 한다. 미국 내 모듈 업체를 활용한 적도 있었는데, 실력이 문제였다. 현지 업체에서 제작한 부품으로 공사를 진행하다가 일이 진척되지 않아 결국 모든 공정을 중단한 적이 있다. 그 뒤 단기간에 대규모 인력을 다시 고용해 겨우 일정을 맞췄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런 기조를 이어간다면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공장을 짓는 과정 자체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 겨냥 단속,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문제는 이번 단속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사바나 인근 현대차 협력업체들도 단속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 계열사에서 최근 단속이 있었고, 직원 전원을 차량에 태운 뒤 신분에 문제가 없는 사람만 내보내고 나머지는 곧바로 체포해 갔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특정 기업을 정조준한 표적 단속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다른 관계자는 “이번 단속 대상 기업의 계열사들도 압수수색과 불법체류자 단속으로 철저히 조사받았다”며 “최근 관세 협상에서 추가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체포된 근로자들의 처우와 안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다수의 한국인 근로자들이 양손을 머리에 올린 채 신체 검사를 받았으며, 일부는 손과 허리, 발목까지 수갑이 채워졌다. 케이블 타이로 손목이 묶인 채 호송차에 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인도 과정에서 발생한다. 자발적으로 불법 체류를 목적으로 미국에 입국한 이민자들과 동일하게 취급될 가능성 때문이다. 회사 요청으로 근무를 위해 미국에 왔다가 수갑을 차고 강제 추방을 당한다면 그 자체로 정신적 충격은 물론 이후 경력에도 큰 타격을 남길 수 있다. 실제로 불법 체류 단속 전력이 있으면 향후 일정 기간 미국 입국이 제한된다.
지역사회와 정치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시민단체 ‘아시안아메리칸 정의증진 애틀랜타’는 성명을 내고 “현대차 건설 현장에서 표적이 된 노동자들은 가족을 부양하고 지역사회를 지탱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샘 박 조지아주 민주당 하원의원도 성명을 통해 “이번에 검거된 다수의 한국인은 조지아의 청정에너지 미래를 건설하는 주역들”이라며 “우리의 번영은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데 달려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