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상 싹쓸이 한국... 왜 여전히 CES의 주인공 되지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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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우 2025.11.26 07:50 PDT
혁신상 싹쓸이 한국... 왜 여전히 CES의 주인공 되지 못하나?
CES2026 전시 성공전략 세미나에서 패널토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동기 코엑스 상임고문, 김세황, 최형욱, 전진수 대표, 진형석 한국무역협회 팀장 (출처 : 더밀크 )

[CES2026] 더밀크-한국무역협회, 전시 성공전략 세미나
이동기 코엑스 상임고문, 손재권 대표, 혁신상 심사위원 출신 최형욱, 전진수 패널
"CES는 단순 전시 아닌 종합 플랫폼... 사전 준비와 현장 쇼맨십이 성패 가른다"
CES 성과는 부스 안이 아닌 '사전 준비'에서 결정
보도자료는 '스토리텔링'이 생명…"스토리 없으면 정크메일행"

CES는 쇼다. 쇼맨십이 없으면 눈에 띄기 어렵다. 일반 전시회와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 패널토의 중에서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인 CES를 단순한 '전시회'가 아닌 '글로벌 쇼'로 인식하고, 한국 스타트업의 참가 전략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밀크는 지난 24일 한국무역협회와 공동으로 서울 코엑스에서 'CES2026 전시 성공전략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10년 이상 CES를 경험한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의 대응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패널 토론에는 손재권 더밀크 대표를 비롯해 CES2026 혁신상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최형욱 퓨처디자이너스 대표, 전진수 볼드스텝 대표, 이동기 코엑스 상임고문이 참석했고, 한국무역협회 진형석 팀장이 모더레이터를 맡았다. 패널들은 전시자·참관자·투자자·심사위원 등 다양한 시각에서 CES 활용 노하우를 공유했다.

패널들은 전시 전략 성공을 위해 'CES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손재권 대표는 CES를 "사람들이 뛰어놀고, 홍보하고,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얻고, 제품을 판매하는 종합 플랫폼"으로 정의하며 단순 전시회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형욱 대표는 CES를 "산업 생태계의 축소판"이라고 표현했다. 핀테크, 푸드테크, AI 등 다양한 기술 변화가 전 세계 산업의 흐름과 관심사를 가장 압축적으로 반영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전진수 대표 역시 "미래에 일어날 몇 년을 미리 가서 지켜보는 느낌"이라며, CES 참관만으로도 1년 치 테크 트렌드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 스타트업의 뼈아픈 현실: '주인공'에서 '동원된 객'으로

전문가들은 한국 스타트업의 CES 활용에 '본말 전도' 현상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손재권 대표는 스타트업이 자비가 아닌 지자체나 기관의 스폰서를 받아 참가하다 보니, '스타트업 홍보'가 아닌 '기관 및 지자체 홍보'가 주가 되는 구조적 문제를 꼬집었다.

구체적인 문제점으로는 △획일적 방식으로 인한 스타트업의 개성 상실 △획일적인 부스 디자인 △대표가 부스에 묶여 세일즈 및 외부 활동 제약 △밤에도 네트워킹 대신 행사에 동원되는 상황 등이 거론됐다. 손 대표는 "이러한 구조는 스타트업의 자생력을 아예 싹둑 잘라버리는 결과를 낳는다"며, 미디어 입장에서도 흥미를 느끼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CES의 본질이 '보여주기'인 만큼, 한국 기업들의 '쇼맨십 부족'을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손 대표는 "세일즈 마케팅보다는 '나 왔다, 여기 있어' 식의 얌전한 태도" 때문에 혁신상을 다수 수상하고도 투자 유치나 미국 시장 진출로 잘 이어지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슬립테크 회사의 '잠옷 착용' 사례나 선박 SaaS 회사의 '마도로스 컨셉' 사례를 들며 "대표님들이 본인이 앞에서 기타를 치거나 노래를 부를 각오를 하지 않으면 회사가 절대 눈에 띄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유레카파크 한국관 (출처 : 더밀크 )

CES 성과는 부스 안이 아닌 '사전 준비'에서 결정된다

전진수 대표는 "CES 자체보다 그 전에 어떻게 준비했느냐가 성과를 결정한다"며 사전 준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CES 웹사이트와 앱을 통해 기업 및 주요 인물까지 검색 가능하기 때문에 최소 2~3주 전부터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우고 콜드메일로 약속을 잡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특히 콜드메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 대표는 "메일 10개를 보내면 하나 답변 온다고 생각하고 보내야 한다. 그런데 미팅 과정에서 우연한 발견(세렌디피티)이 일어난다. 상대방이 관련 업계의 다른 회사를 연결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최근 K-컬처 등으로 한국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콜드메일이나 세일즈 마케팅의 효과가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며 기회 요인을 짚었다.

패널들은 효율적인 부스 운영 전략으로 '철저한 시간 관리'와 '30초 스크립트 트레이닝'을 꼽았다. 전진수 대표는 "CES에서의 10분, 1시간은 한국에서의 10분, 1시간이 아니다.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시자와 참관자 모두의 실수를 지적했다. "전시자 중에는 고객이 아닌 사람을 한 시간 동안 붙잡고 있는 경우가 있다"며 "진짜 고객이 될 방문객을 놓치게 된다. 참관자도 한 곳에서 시간을 너무 오래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전시부스 참가기업은 한 명은 트렌드 파악을 위해 전시관을 돌고, 다른 한 명은 사전 약속된 미팅으로 부스를 운영하는 이상적인 인력 배분을 통해 CES 현장에서의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스 디자인도 중요하다. 메시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브랜드명과 상품 설명을 한 줄로 요약하여 정면에 배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한 프레스 자료 등은 QR 코드로 준비해 부스 방문객이 쉽게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안내하면 정보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혁신상 수상 기업, 비용 대비 큰 홍보 효과"

혁신상 수상 기업들은 비용 대비 큰 홍보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패널들은 강조했다. 혁신상 심사위원인 최형욱 대표는 "지원 비용은 크지 않지만, 수상 시 기술력을 담보하는 로고를 사용할 수 있어 바이어들에게 신뢰를 준다"고 밝혔다.

특히 '언베일드(Unveiled) 행사'의 가치를 강조했다. CES 공식 오픈 전 6000개 미디어에만 공개되는 이 프라이빗 행사는 혁신상 수상 기업만 별도 부스에서 기자 및 유튜버들에게 제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최 대표는 "언베일드 행사 준비를 잘하면 최소 100~200개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혁신상 수상이 서류 심사 기반임을 언급하며, 수상 자체가 기술력이나 제품성의 검증은 아님을 인지하고, 이를 후속 투자 유치나 세일즈 리드 확보를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도자료는 '스토리텔링'이 생명…"스토리 없으면 정크메일"

지난 CES2024 언베일드 행사장으로 기자단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 맨 앞에 더밀크 어드바이저 그룹인 밀크셰이커 관계자들의 모습도 보인다. (출처 : CES)

기업 홍보를 위한 전략적인 보도자료 작성법에 대한 내용도 언급됐다.

손재권 대표는 스토리가 없는 보도자료는 기자들에게 '정크메일'로 취급된다며, 데이터 기반의 스토리텔링을 강조했다. 특히 '숫자나 데이터를 강조'한 문구를 포함하고, 사용자 입장에서 제품의 편의성을 핵심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월드 베스트' 같은 형용사 대신 숫자나 구체적인 연관성을 제시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투자자 유치에 대한 조언도 나왔다. 전진수 대표는 "CES가 투자자를 만나기 좋은 곳은 아니다"라고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투자자 유치를 우선순위에 두기보다는, 내 제품과 기술, 서비스를 구매할 '고객'을 만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대표는 "전 세계 고객들의 반응과 피드백을 압축적으로 받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며, 고객을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투자자나 미디어와 연결되는 흐름이 바람직하다"고 분석했다. 손재권 대표 역시 CES의 주된 방문객은 물건을 구매하고 검증하러 오는 '리테일러(아마존, 코스트코 등)'가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패널들은 글로벌 시장 진출의 '디딤돌'로 CES를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이동기 코엑스 상임고문은 CES를 "스타트업에게 글로벌 시장 진출의 디딤돌"로 정의하며,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자력갱생으로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으로는 혁신상이나 지자체 지원을 활용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전문 품목관이나 CES 외 전문 전시회로 확장하여 글로벌 공급망과 생태계에 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CES 혁신상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한 밴드 '넥스트'의 기타리스트 김세황 씨가 깜짝 등장해 "대한민국이 전 세계 문화대국"이라며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약진을 응원했다. 그는 벤처투자자이자 K팝 사업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올해 뷰티테크 분야 심사를 맡았는데, 콜마나 아모레퍼시픽 같은 한국 기업들이 로레알 등 글로벌 기업 대비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고 전했다.

패널들은 마지막으로 "기업들이 중심을 잡고 CES라는 쇼를 빛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돈보다 허슬이 중요한 시기"라고 당부했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가 전시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출처 : 더밀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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