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재편되는 SaaS 산업의 미래... SaaStr 2025에 가보니
[기고] 세계 최대 SaaS 컨퍼런스 ... 사스터2025 집중 분석
AI는 기능을 넘어 일하는 방식의 혁명 이끌어
현실의 문제 해결하려는 실용적(Pragmatic) AI 부상... 버티컬 SaaS도 주목
투자자들은 'AI 도입의 실질적 ROI'와 문화적 지능 강조
실리콘밸리의 SaaS 기업들이 AI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하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난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산머테이오에서 열린 사스터 연례 컨퍼런스(SaaStr Annual) 2025에 다녀왔다. 사스터(SaaStr)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SaaS(Software as a Service) 분야 커뮤니티이자 이 분야 창업자, 경영진, 투자자들이 모여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플랫폼이다.
글로벌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Software as a Service)'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엿볼 수 있었던 사스터2025에서 나타난 주요 트렌드와 한국 시장에 대한 시사점을 공유하고자 한다.
실리콘밸리의 SaaS 메카에서 본 AI 혁명의 현주소
올해 사스터2025에서는 실리콘밸리 유명 소프트웨어 회사인 오픈AI, 엔트로픽 , 박스(Box), 허브스팟(HubSpot)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대거 참여했다. 박스의 CEO이자 공동창업자인 애런 레비, 허브스팟의 CEO 야미니 랑간, 구스토(Gusto)의 CEO 겸 공동창업자 조슈아 리브스(Joshua Reeves), 퍼플렉시티(Perplexity)의 최고비즈니스책임자(CBO) 드미트리 셰벨렌코 등 업계의 거물들이 직접 발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어마어마한 인물들을 눈앞에서 보고 그들의 발표와 AI 시대를 대비하는 지혜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최소 유니콘부터 데카콘 규모의 기업들이 가득하며 네트워킹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이곳에 오니, 한국이라는 '농어촌 특별전형'으로 SaaS 업계에서 조금 인정받았던 우리 플로우 팀에게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래서 'SaaS 계의 대치동격'인 샌프란시스코/실리콘밸리에 진출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발표 기업들의 AI 중심 비즈니스 전환 속도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다. 특히 오픈AI의 GTM 리더 매기 핫(Maggie Hott), 앤트로픽의 스타트업 영업팀 리더 켈리 로프터스, 커서(Cursor) AI 리더이자 전 OpenAI 연구원인 제이콥 잭슨(Jacob Jackson) 등의 발표에서 AI 활용 전략과 시행착오까지 솔직하게 공유해주었는데, 이런 개방성이 이번 행사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AI는 기능을 넘어, 일하는 방식의 혁명으로
이번 사스터2025 연례 컨퍼런스(SaaStr Annual)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SaaS AI'였다. 한국이 AI 반도체나 인프라 측면에 관심을 두지만 이 자리에서 만큼은 'AI를 활용한 소프트웨어'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사용하는 모델(Claude, GPT, Llama 등)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로 고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다"고 입을 모았다. AI 모델 자체보다 그 모델을 활용한 비즈니스 가치 창출에 초점을 맞춘 변화였다.
초기 AI 도입 단계에서는 '우리 제품에 AI를 넣었다'는 마케팅 메시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AI가 어떤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앤트로픽의 켈리 로프터스는 특히 "AI 기능이 아니라 AI 솔루션을 판매하라"는 메시지로 많은 참석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사스터 2025에서 가장 주목받은 세션 중 하나도 '실용적(Pragmatic) AI'에 관한 것이었다. Box의 애런 레비는 "진정한 AI 혁신은 화려한 기술 시연이 아니라 실제 사용자의 고통 포인트를 해결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AI를 접근하는 방식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기술 자체보다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한국 기업의 실용적 접근법이 AI 시대에도 강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플로우도 이 흐름에 맞춰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협업툴로 성장하기 위해 AI 에이전트 기능을 적극 개발 중이다. 메신저, 업무관리(프로젝트관리), 팀커뮤니티, AI 기능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해 제공해서 더 편리하고 쉽게, 그리고 쌓여있는 데이터를 더 가치있게 쓰고자 노력 중이다. 연결의 힘으로 일을 쉽고 빠르고 가치있게! 라는 회사의 미션이 AI를 만남으로써 더 빠르게 실현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고 있는 요즘이다.
제품의 기능뿐만이 아니다. 박스(Box)나 아사나(Asana)와 같은 협업툴 기업들은 AI를 통해 콘텐츠 제작 최적화, 마케팅 페이지 자동 생성, 개발 생산성 향상 등 내부의 모든 업무 영역에서 혁신을 이루고 있었다.
리니터(Linear)의 파트너십 리더 크리스티나와 캔바(Canva)의 최고고객책임자(CCO) 롭 질리오의 발표를 들으며, AI는 단순한 기능 추가가 아닌 일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진정한 혁명의 촉매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실감했다.
또 다른 트렌드는 'AI 도입의 실질적 ROI'에 대한 강조였다. 단순히 AI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비용 절감과 새로운 수익 창출이라는 명확한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여러 사례를 통해 입증되었다.
허브스팟의 야미니 랑간 CEO는 "AI 도입 후 고객사의 마케팅 자동화 효율이 평균 37% 증가했으며, 세일즈 사이클이 22% 단축됐다"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공유하며 청중을 사로잡았다.
한편, 글로벌 SaaS 투자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문화적 지능(Cultural Intelligence)'의 중요성이었다.액셀파트너스(Accel Partners)의 파트너 리처드 웡은 "성공적인 글로벌 SaaS 기업은 기술적 우수성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문화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때 기술력 외에도 현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적응력이 필요하다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SaaS + AI의 시너지, 새로운 성장 동력
SaaS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전망과 달리, 이번 행사에서는 AI와의 결합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G2의 CMO 시드니 슬론과 연구 담당자 팀 샌더스가 발표한 2025 구매자 행동 보고서에 따르면, 고정비 부담과 다양한 툴 도입에 따른 비용 및 학습 부담이 있지만, AI가 이러한 문제들을 해소하면서 SaaS 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이 연사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번 SaaStr 2025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논의 중 하나는 'AI를 통한 SaaS 번들링과 언번들링'에 관한 것이었다.
세콰이어캐피털(Sequoia Capital)의 파트너 제스 리는 "AI는 한편으로는 여러 기능을 하나로 통합하는 '슈퍼 앱' 트렌드를 가속화하면서도, 동시에 초특화된 니치 솔루션의 가치를 높이는 상반된 현상을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시장이 앞으로 거대 플랫폼과 특화된 솔루션으로 양극화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중요한 통찰이었다.
이는 플로우가 추구하는 방향과도 일치한다. 여러 협업 도구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AI를 접목하여 고객의 비용 부담은 줄이면서 생산성은 높이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플로우의 미션이다. 슬랙과 같은 메신저, 아사나/트렐로 같은 업무관리 도구, 노션 같은 팀 커뮤니티 공간을 별도로 구매할 필요 없이 플로우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는 가치 제안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또한 '버티컬(수직형, 도메인 특화) SaaS'의 부상도 주목할 만했다. 일반적인 일반형(horizontal) SaaS가 다양한 산업에 범용적으로 적용되는 반면, 이제는 특정 산업에 깊이 특화된 수직형(vertical) SaaS가 AI의 힘을 빌려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특히 의료, 법률, 부동산, 금융 분야에서 AI를 활용한 버티컬 SaaS의 성공 사례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었다. 버티컬 AI의 선구자인 비바시스템즈(Veeva Systems)의 피터 개스너는 "AI가 산업별 특화 지식과 결합할 때 그 가치가 10배 이상 증폭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도약을 위한 제언
현장에서 아쉬운 점도 많았다. CES나 MWC 같은 가전·모바일 박람회에는 한국인들이 많은 반면, 이번 SaaS 행사에서는 한국인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는 점은 충격적이었다. 미국 시가총액 상위 기업 중 소프트웨어 기업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반면,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기반이 약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스터 2025에서 명확히 드러난 것은 소프트웨어가 단순한 디지털 전환의 도구가 아니라 모든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a16z의 파트너 데이비드 울레비치는 "앞으로 모든 기업은 소프트웨어 기업이 될 것이며, AI는 이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이 글로벌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것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특히 한국과 미국의 SaaS 시장 규모는 약 4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SaaS 시장이 수천억 달러 규모인 반면, 한국은 수십억 달러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시장 규모의 차이는 한국 SaaS 기업들이 국내 시장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 특히 미국 시장으로의 진출이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우리 기업들이 성장하려면 해외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이를 통해 국가 소프트웨어 산업의 위상을 높이는 국위선양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원천기술보다는 기존 기술을 활용해 고객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데 강점을 보여왔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야놀자, 토스 등은 스마트폰 OS와 스토어를 직접 만들기보다 그 위에서 고객의 문제를 혁신적이고 빠르게 해결했던 좋은 사례다.
AI 시대에도 원천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특성에 맞게 AI를 활용한 조직 문화 혁신, 업무 도구 개선, 그리고 무엇보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프트웨어 제품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한국 IT 산업의 위상을 높일 절호의 기회가 바로 지금이다.
사스터2025의 마지막 날, 줌(Zoom)의 에릭 위안은 "소프트웨어는 기술이 아니라 공감에서 시작된다"는 인상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슴에 새겨야 할 핵심 통찰이 아닐까 싶다. 사용자의 문제에 깊이 공감하고, 그 해결책을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통해 효과적으로 구현해낼 때, 진정한 글로벌 경쟁력이 생겨날 것이다.
이제 한국 소프트웨어 기업들도 글로벌 SaaS 시장에서 더 큰 존재감을 보여줄 때다. 내년 사스터2026에는 더 많은 한국 기업들이 참여해 실리콘밸리의 혁신 기업들과 교류하며 네트워크를 구축하길 기대한다. AI는 분명 한국에도 큰 기회를 주고 있다. AI가 가져올 변화의 물결 속에서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해야 한다.
이학준 플로우(마드라스체크) 대표는 누구?
이학준 대표는 협업툴 '플로우(Flow)'를 개발한 마드라스체크의 창업자이자 CEO다.
이학준 대표는 웹케시의 사내 벤처로 시작한 마드라스체크를 독립시켜 창업했다. 기업용 협업툴 시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와 강력한 기능을 갖춘 '플로우'를 개발했다. 플로우는 프로젝트 관리, 메신저, OKR(목표 및 핵심 결과) 설정, 화상회의 등 다양한 기능을 통합하여 제공하며, 국내 협업툴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삼성전자, 현대모비스, 미래에셋증권, 가스공사 등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포함한 5,000개 이상의 유료 기업 고객을 확보했다. 지난 2023년에는 글로벌 버전인 '모닝메이트(MorningMate)'를 출시하고, 영국과 멕시코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마드라스체크는 2025년 5월 27일, 창립 10주년을 맞아 '플로우 4.0'을 출시하고 AI 기반 협업툴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