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영 단장 "2026년, 정책의 모순이 시장을 뒤흔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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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우 2025.10.27 23:25 PDT
오건영 단장 "2026년, 정책의 모순이 시장을 뒤흔들 것"
오건영 단장이 트렌드쇼2026에서 발표하고 있다 (출처 : 더밀크)

[트렌드쇼2026] 오건영이 말하는 트럼프 2.0 시대 금융시장의 새로운 법칙
달러는 방향이 아니라 파동이다... 무역 적자와 패권 유지라는 미국의 이중적 목표가 달러를 양방향으로 움직일 것
양극화된 통화정책이 자산시장을 왜곡... 전망보다 ‘대응력’이 중요
과거 ‘강달러 vs 약달러’ 구도에서 벗어나 변동성 관리·포지션 유연성이 관건

2026년 금융시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하나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달러는 강한가, 약한가? 이 질문에 오건영 신한은행 WM그룹 부행장은 "둘 다"라고 답한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이것이 바로 트럼프 2.0 시대의 본질이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올해 달러가 약세를 보였다고 보도한다. 실제로 주요 6개 선진국 통화를 기준으로 한 달러 인덱스는 112에서 98로 하락했다. 유로화는 트럼프 당선 이후 원화 대비 10퍼센트 상승했다. 이런 지표들만 보면 달러는 분명 약해졌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원달러 환율은 1,390원에서 1,434원으로 올랐다. 불과 3퍼센트 상승에 그쳤지만, 체감하는 부담은 상당하다. 같은 달러를 놓고 유럽에서는 약세를, 한국에서는 강세를 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환율이 단순히 두 통화의 교환비율을 넘어 각국 경제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원화가 유독 약한 데는 세 가지 구조적 이유가 있다.

원화를 압박하는 세 개의 칼날

첫 번째 칼날은 미중 무역전쟁이다. 트럼프는 중국에 100퍼센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한국 경제는 중국과 깊이 연동되어 있다. 중국이 휘청이면 한국도 흔들린다. 이런 불확실성은 곧바로 원화 약세로 이어진다.

두 번째 칼날은 엔화 약세 경쟁이다. 일본의 새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는 '여자 아베'로 불린다. 2012년 아베 신조는 엔화를 100엔당 1,500원에서 940원까지 끌어내렸다. 13년간 엔화 장기 투자자는 절반의 손실을 본 셈이다. 만약 일본이 다시 엔화 약세 정책을 쓴다면, 한국은 수출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원화도 함께 약세로 가야 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세 번째 칼날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압박이다. 이 금액은 한국 외환보유고의 80퍼센트에 달한다. 만약 이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간다면, 국내 달러 수요가 폭증하면서 환율이 급등할 수밖에 없다. 환투기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거대한 달러 수요가 예정되어 있다면, 지금 달러를 사서 보유하고 있다가 나중에 비싸게 팔면 된다. 이런 기대만으로도 환율은 상승 압력을 받는다.

예측 불가능한 것이 유일한 예측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를 돌아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보인다. 2016년 11월 트럼프가 당선되자 원달러 환율은 급등해서 2017년 1월 1,209원까지 올랐다. 당시 시장은 "취임하기도 전에 이렇게 뛰었는데, 취임하면 1,250원까지 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그날이 고점이었다. 환율은 이후 1년 반 동안 1,050원까지 떨어졌다.

2025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트럼프 당선 후 환율이 1,470원까지 치솟았고, "취임하면 1,500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역시 그날이 고점이었다. 환율은 1,350원까지 급락했다가 최근 다시 상승했다.

이런 패턴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트럼프 시대의 환율은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협상과 정책 이벤트에 따라 급격하게 출렁인다. 오건영은 이를 "트럼프 2.0은 변동성"이라고 정의한다. 단기 환율을 예측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약한 달러인가, 강한 달러인가

이 질문도 "둘 다"가 답이다. 일견 모순처럼 보이지만, 미국의 입장에서는 완벽하게 합리적이다.

먼저 미국은 달러 약세를 원한다. 달러가 약해야 미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무역 적자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관세를 무기로 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입품을 비싸게 만들어 국내 제조업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동시에 미국은 달러 강세도 필요로 한다. 달러는 단순한 화폐가 아니라 패권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100달러 지폐를 만드는 원가는 0.2달러다. 99.8달러가 순이익인 셈이다. 영업이익률로 따지면 99.8퍼센트다. 엔비디아의 60퍼센트 영업이익률도 명함을 못 내민다.

이런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지키려면 달러에 대한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 만약 달러 가치가 계속 떨어진다는 기대가 형성되면, 사람들은 금이나 다른 자산으로 도피한다. 실제로 최근 금값이 급등한 것도 "달러 패권이 흔들린다"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미국은 이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자상하면서도 권위 있는 리더처럼, 달러 약세를 기본 기조로 가져가되 중간중간 강세 국면을 만들어 패권을 과시하는 것이다. 이런 이중 전략이 바로 환율 변동성을 키우는 핵심 요인이다.

중앙은행의 불가능한 선택

한국은행과 미국 연준은 비슷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금리를 올려야 할 이유와 내려야 할 이유가 동시에 존재한다.

한국의 상황을 먼저 살펴보자.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9퍼센트다. 2009년 금융위기 때 성장률이 0.8퍼센트였다.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성장률이 0.9퍼센트인데 기준금리가 3.0퍼센트라면, 기업들이 창출한 부가가치로는 이자도 감당하기 어렵다. 실물 경제를 살리려면 금리를 내려야 한다.

그런데 다른 한쪽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올해 크게 올랐다. 3.0퍼센트 금리로도 강남 부동산을 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면 가계부채가 폭증한다. 이를 막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

한국은행 총재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실물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내릴 것인가, 부동산 버블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릴 것인가? 정답은 없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물가는 목표치인 2퍼센트를 넘어 3퍼센트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4퍼센트 초반으로 매우 낮다. 나스닥과 S&P500은 연일 신고가를 경신한다. 엔비디아 같은 빅테크 기업은 60퍼센트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교과서적으로는 금리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연준은 금리를 내린다. 내년 말까지 3.0퍼센트까지 여러 차례 인하할 계획이다. 왜일까? 실물 경제가 빠르게 식고 있기 때문이다. 빅테크는 호황이지만, 전통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어렵다. 금리가 4.5퍼센트인 상황에서 실물 경기가 버티기 힘들다.

K자 회복의 함정

여기서 핵심적인 개념이 등장한다. 'K자 회복'이다. 코로나 이후 경기 회복 패턴을 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모든 섹터가 함께 떨어졌다가 함께 회복했다. V자 패턴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위와 아래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나스닥으로 대표되는 빅테크는 계속 상승했다. 반면 이머징마켓을 포함한 전통 산업은 코로나 수준에서 정체되거나 약간 회복하는 데 그쳤다. 알파벳 K자 모양처럼 한쪽은 치솟고 한쪽은 횡보하는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중앙은행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중앙은행은 선택적으로 정책을 쓸 수 없다. "착한 기업에는 낮은 금리를, 나쁜 기업에는 높은 금리를" 적용할 수 없다. 모두에게 똑같은 금리를 적용해야 한다.

이제 상상해보자. K자의 위쪽에는 60퍼센트 영업이익을 내는 AI 기업들이 있다. 아래쪽에는 간신히 버티는 제조업체들이 있다. 두 마리 토끼가 양쪽으로 뛰어간다. 중앙은행은 어디를 쏴야 하는가?

답은 아래쪽이다. 위쪽은 굳이 지원하지 않아도 잘 굴러간다. 하지만 아래쪽이 무너지면 경제 전체가 위험해진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린다. 문제는 이 정책이 위쪽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4.5퍼센트 금리도 부담스럽지 않던 빅테크가 3.0퍼센트 금리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 더 많은 자금을 빌려서 더 큰 투자를 한다. 주가는 더 오른다. K자의 상단은 더욱 가파르게 치솟는다. 동시에 하단은 여전히 부족한 지원으로 힘겹게 버틴다. 양극화는 더욱 심해진다.

그렇다면 중앙은행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오건영은 "시장이 원하는 것보다 늦게, 적게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금리는 내려야 한다. 실물 경제가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이 기대하는 만큼 빠르게, 많이 내릴 수는 없다. 자산시장 과열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한두 번쯤 인하를 건너뛰거나, 인하 폭을 줄이는 식이다. 시장은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완벽한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선책을 찾아 줄타기를 할 뿐이다.

2026년을 대하는 자세

오건영이 제시하는 2026년의 핵심 키워드는 두 가지다. 환율에서는 '변동성', 금리에서는 '양극화'다.

환율은 특정 방향으로 수렴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협상 전략, 돌발적인 관세 발표, 미중 무역협상의 진전 여부에 따라 급격하게 출렁일 것이다. 과거에 보지 못했던 패턴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단기 예측은 무의미하다. 대신 여러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빠르게 대응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금리는 K자 양극화 속에서 어정쩡하게 움직일 것이다. 실물 경제를 살리기에는 부족하고, 자산시장을 진정시키기에는 과한 정책이 반복될 것이다. 투자자들은 이런 불균형 속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사고방식이다. 과거에는 "강달러냐 약달러냐"를 놓고 베팅했다. 2026년에는 그런 이분법이 통하지 않는다. 달러는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하다. 시각에 따라, 시점에 따라 달라진다.

오건영의 표현을 빌리면, "달러는 방향이 아니라 파동"이다. 파도를 타려면 파도의 방향을 예측하는 것보다 균형 감각이 더 중요하다. 넘어지지 않고 버티는 것, 급격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 그것이 트럼프 2.0 시대를 살아가는 법이다.

확실한 것은 하나다. 불확실성이 유일한 확실성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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