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인텔 지분 인수로 ‘반도체 국가대표’ 직접 키운다? 기로에 선 K-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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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익 2025.08.15 15:38 PDT
백악관, 인텔 지분 인수로 ‘반도체 국가대표’ 직접 키운다? 기로에 선 K-반도체
(출처 : 그래픽=김현지)

트럼프 행정부, 자국 반도체 기업 인텔 지분 인수 검토
미국, 국가 전략 산업의 적극적인 참여자로 나서다
위기의 인텔: 추락한 거인… 오하이오 프로젝트 표류
반도체 지원법의 새로운 임무와 펜타곤의 전략
지정학적 미션, AI ‘컴퓨팅 파워’ 경쟁에서 승리하라
더밀크의 시각: ‘팀 아메리카’와 경쟁? vs 삼성 파운드리 가치 부각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반도체 기업 인텔 지분 인수 검토에 돌입했다.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자금을 활용, 미국 내 반도체 제조를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국가별 AI 인프라 경쟁이 전개되는 가운데, 미국 산업 정책의 역사적 전환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15일(현지시각)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반도체 지원법의 자금을 사용해 인텔의 지분을 인수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논의는 초기 단계에 있으며 다른 옵션도 고려될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의 지분 인수 논의 소식에 인텔의 주가는 이틀 동안 11% 상승, 지난 2월 이후 주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미국, 국가 전략 산업의 적극적인 참여자로 나서다

기업 구제 금융 차원의 공적 자금 지원을 넘어 정부가 반도체라는 국가 전략 산업의 적극적인 참여자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워싱턴에서도 AI 반도체, AI 인프라 이슈를 미국 기술 패권의 향방을 결정할 중요한 의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다. 미국 정부가 민간 기업의 지분을 직접 인수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제너럴 모터스(GM)와 AIG에 대한 구제 금융 사례가 있지만, 인텔의 사례와는 동기가 달랐다. 금융위기 때는 시급한 생존이 목표인 수동적 대응이었다면 인텔 사례는 보조금과 세금 감면만으로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지정학적 시급성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을 보여주는 능동적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2022년 제정된 반도체 지원법은 약 2800억달러(약 389조원) 규모의 막대한 예산을 편성해 민간 기업의 미국 내 공장(팹) 건설을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법안의 최대 수혜 기업 중 하나인 인텔은 계속해서 부진을 면치 못했고, 미국의 반도체 주권 회복의 상징이 돼야 할 오하이오 신규 공장 프로젝트도 난항을 겪고 있다. 

보조금이라는 당근만으로는 쓰러져가는 ‘국가대표’를 일으켜 세울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진 셈. 결국 정부가 직접 경영에 관여하는 주주가 돼 전략적 방향을 통제하고, 위험을 관리하겠다는 극약 처방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실제 지분 매입으로 이어진다면 미중 AI 패권 경쟁 시대의 지정학적 상황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 팀 쿡 애플 CEO(오른쪽)이 6일(현지시각) 애플 투자 및 반도체 관세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출처 : 백악관 Youtube 캡처)

위기의 인텔: 추락한 거인… 오하이오 프로젝트 표류

미국 정부가 과감한 개입을 고려하게 된 배경에는 인텔이 처한 심각한 재정 및 운영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인텔의 위기는 단순히 한 기업의 경영난을 넘어, 반도체 자급자족을 통해 기술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의 국가 안보 전략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야심 차게 추진되던 오하이오 공장 프로젝트 마저 표류하며 위기감을 키웠다.

재정적으로 인텔은 깊은 수렁에 빠져있다. 2025년 1분기에 8억8700만달러(약 1조2300억원)의 순손실, 2분기에도 29억달러(약 4조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연속적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3분기 매출액은 131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적자를 벗어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막대한 현금을 소진하며 적자를 키웠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를 자회사로 분리했지만, 아직 뚜렷한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재정난은 미국의 반도체 부활을 상징해야 할 오하이오 공장 프로젝트의 발목을 잡았다. 한때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 시설’이 될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이 프로젝트의 완공 목표 시점은 당초 2025년에서 2030년 이후로 연기됐다. 지난 7월에는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건설을 추진했던 최첨단 반도체 공장도 좌초됐다. 

인텔은 부진한 시장 상황과 자본 관리의 효율화를 지연 이유로 들었지만, 현실은 자재 수급난과 전문 인력 부족 등 미국 내 첨단 제조업 생태계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드러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립부탄(Lip-Bu Tan) CEO의 사임을 요구한 직후 백악관 회동이 이루어지는 등 기업의 위기가 정치적 이슈로까지 비화하는 모양새다. 

오하이오 공장 프로젝트는 수십 년간 위축된 미국의 첨단 제조업 생태계를 단기간에 복원할 수 없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대만과 한국이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전문 인력, 촘촘한 공급망 네트워크, 신속한 공장 건설 노하우에 비해 미국의 현실은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 유타주 리하이에 위치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연구원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 Apple)

반도체 지원법의 새로운 임무와 펜타곤의 전략

인텔은 이미 칩스 법의 최대 수혜자가 될 준비가 돼 있었다. 상업용 반도체 제조를 위해 79억달러(약 10조9800억원)의 보조금과 국방부의 ‘시큐어 엔클레이브(Secure Enclave, 국가 안보용 첨단 반도체 생산)’ 프로그램을 위한 30억달러의 추가 보조금도 받았다. 110억달러(약 15조3000억원)의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옵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행된 인텔 지분 인수 검토는 반도체 법의 목적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로 풀이된다. 앞서 미 국방부(펜타곤)는 미국의 희토류 채굴 기업 ‘MP 머티리얼스(MP Materials)’의 우선주 지분을 4억달러(약 5560억원)에 인수한다는 전례 없는 움직임을 보여준 바 있다. 이 거래가 완료되면 펜타곤은 MP 머티리얼스의 지분 15%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국가대표 기업을 육성하고, 첨단 전략 산업을 보호하는 미국 정부 주도의 새로운 산업 정책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정부 관료뿐 아니라 월스트리트 및 투자업계 관계자들의 통념까지 뒤집은 파격적인 행보다. 

펜타곤은 중국이 독점하고 있는 희토류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시장 가격 이상의 가격 보장 및 신규 공장 생산 물량 전량에 대한 10년 구매 보증(offtake agreement)까지 약속했다. 민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장 위험을 국가가 제거할 뿐 아니라 특정 기업을 지정해 육성하는 명백한 국가주도형 산업 정책으로의 전환이다.

(출처 : Shutterstock)

지정학적 미션, AI ‘컴퓨팅 파워’ 경쟁에서 승리하라

미국 정부의 인텔 지분 인수 추진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구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최종 목표는 AI 시대의 핵심 자원인 ‘컴퓨팅 파워(compute)’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장기적인 AI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현재 AI 분야에서 중국의 가장 큰 약점은 첨단 반도체에서 나오는 막대한 연산 능력, 즉 컴퓨팅 파워에 대한 접근성 부족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대외 정책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중국보다 총 컴퓨팅 파워에서 10배 이상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 역시 자국산 화웨이(Huawei)의 어센드(Ascend) 칩 대신 성능이 저하된 버전이라도 엔비디아(Nvidia)의 H20 칩을 선호할 정도다. 문제는 이런 격차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란 데 있다. 

리서치 업체 세미애널리시스(SemiAnalysis)에 따르면 화웨이가 지난 7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서 공개한 ‘클라우드 매트릭스 384’는 컴퓨팅 파워, 메모리 대역폭, 통합(integrated) 네트워킹 등 측면에서 엔비디아의 최첨단 ‘GB200 NVL72’ 시스템보다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GB200 NVL72 대비 전력을 4.1배 더 소모한다는 큰 단점이 있지만, 기술적으로 빠르게 미국을 추격해 오고 있다.

👉관련 기사: 중국판 ‘AI 액션플랜’ 나왔다… 글로벌 협력 강조의 속내는?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및 미국 제품에 대한 규제도 강화되는 추세다. 미국 입장에서는 결국 근원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인텔 같은 미국 기업의 부활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텍사스 테일러시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출처 : Samsung)

더밀크의 시각: ‘팀 아메리카’와 경쟁? vs 삼성 파운드리 가치 부각

이런 변화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정부가 지분을 소유한 ‘인텔 주식회사’의 등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의 반도체 기업에 직접적이고 강력한 도전이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지원 아래 정치적 힘까지 등에 업은 ‘팀 아메리카’와 맞서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주주로서 인텔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 엔비디아, AMD, 퀄컴(Qualcomm)과 같은 미국의 팹리스(설계 전문) 기업들이 기술적 우위나 비용 효율성과 무관하게 자국 안보 논리에 따라 인텔의 생산 시설을 이용하도록 압박받을 수 있다. 

미국 정부가 국가 안보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내세운다면 파운드리 산업의 기준이 기술적 역량이 아닌 지정학적 동맹 관계로 재편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 한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사의 미국 내 사업, 공장이 사실상 ‘미국 기업’처럼 미국의 국익에 기여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반면, 세계 1위 파운드리인 대만의 TSMC에 대한 미국 정부의 견제가 강화되며 TSMC와 인텔 사이에서 제3의 파트너로 삼성전자가 포지셔닝 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삼성의 미국 오스틴 및 테일러의 파운드리 공장에서 진행되는 파운드리 사업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될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 애플은 트럼프 행정부와 진행한 미국 내 추가 투자 발표를 통해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공장에서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사용되는 혁신적인 새로운 칩 제조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아이폰에 들어가는 이미지 센서를 제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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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의 12단 적층 HBM (출처 : 더밀크)

메모리 반도체 영향 제한적... 장기적 기술 경쟁 격화할 듯

삼성젼자와 SK하이닉스가 강세를 보이는 메모리 반도체(DRAM, 낸드플래시) 시장 영향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이 분야는 인텔의 주력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텔이 살아나면서 AI 반도체 수요가 증가해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다만 격변하는 환경 속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통합 심화, 기술적 해자(moat) 구축, 전략적 다변화라는 축을 중심으로 생존 전략을 재편해야 할 필요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투자를 단순한 시장 진출이 아닌, 미국 정부의 정책 결정과 궤를 같이하는 포지션을 취하고, 대체 불가능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 

특히 HBM과 첨단 패키징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굳혀 ‘AI 메모리의 산유국 연합’이 된다면 엔비디아, AMD, 인텔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독보적인 공급자가 될 수 있다. 장기적 기술 경쟁 격화에 대비해 초격차를 유지하는 전략이 중요하다. 핵심 원자재 공급망을 다변화해 지정학적 위험에 대한 노출도를 줄이는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미국의 산업 정책이 동맹국인 한국에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도록 유도하는 한국 정부의 역할도 더 중요해질 전망이다. 고위급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메모리 반도체와 첨단 제조 분야에서 한국이 미국 공급망 전략에 얼마나 중요한 파트너인지, 그리고 삼성의 텍사스 공장과 SK하이닉스의 인디애나 공장 등 한국 기업의 대규모 미국 투자가 미국 경제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적극적으로 알려 협상의 지렛대로 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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