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광복 80주년과 AI 지정학의 부상 : 트럼프 독트린
역사적인 광복 80주년을 맞았다. 80년은 인간의 평균 수명과 거의 같은 기간이다. 광복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시점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단순한 시간의 경과가 아니라 기억의 전환점을 의미한다. '조선시대'를 이제 영화나 드라마로 알게되듯, 광복과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한 증언자들의 목소리가 점차 없어지고 이제 기록과 해석을 통해서만 그 경험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생생한 증언이 역사적 서사로 변환되는 과정이다.상징적으로 해석하면 4세대가 지나간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광복 세대, 전쟁 세대,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를 거쳐 이제 디지털 세대(한국의 X세대 이후)가 광복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재정의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는 뜻이다. 특히 미국에서 보는 한국의 ‘광복 80주년’은 의미가 더욱 새롭게 느껴지게 한다. 지금 미국에서도 넷플릭스 영화 ‘K팝 데몬 헌터스(케데몬)’가 미국 대중문화의 역사를 새로 쓰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쉽게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80년전 갓 ‘광복’을 맞이한 대한민국이 세계 문화의 중심부에 서 있다는 것은 놀랍고 자랑스런 일이 틀림없다. 하지만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의 운명을 걸고 일으킨 ‘관세 전쟁’과 ‘AI 패권 전쟁’을 보고 있으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내린 ‘선택’이 앞으로 80년, 미래 세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잠을 쉽게 청하지 못한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형성된 세계 질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새로 씌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발표한 'AI 행동계획'과 ‘인프라 투자 계획’은 새로운 형태의 세계 질서 재편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마치 1945년 광복 당시 미소 냉전의 시작이 한반도 분단으로 이어졌듯 2025년의 AI 패권 경쟁은 전 세계를 새로운 블록으로 나눌 조짐이다. 그러나 80년 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1945년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게임판 위에서 수동적으로 분할당하는 객체였지만 2025년의 한국은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을 갖춘 국가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광복 80주년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과연 우리는 80년 전의 수동적 운명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세계 질서의 주체적 설계자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