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저는 고등학생 때 가출을 한 적이 있습니다. 꾸깃꾸깃한 지폐 몇 장을 가지고 나와 시외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제가 정한 목적지는 화엄사 구층암. 당시 종교도 없었지만, 무작정 절이 가고 싶었습니다. 예전에 아빠랑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는데, 어린 마음에도 자연이 주는 위로를 어렴풋이 기억했기 때문입니다.안전한 울타리를 제 발로 나온 이유는 숨을 쉬고 싶어서였습니다. 수능과 내신 성적으로 날 증명해야 했던 입시 교육의 틀에서 잠깐이라도 나오고 싶었어요. 매일매일 똑같이 교실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 1교시부터 9교시. 1등급부터 9등급. 나만 빼고 모두가 '그러려니' 현실에 적응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질문 가득한 학생이 정답을 내놔야 했던 현실, 그 안에서 희석되는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게 괴로웠습니다. 모두가 맞다고 믿고 있는 세상 밖으로 나가 마음껏 달려보고 싶었습니다. 동물원 우리 안을 탈출한 세로의 마음이 저와 비슷했을까요? 처음 보는 도로, 자동차, 건물들 그 사이를 달리며 잠시 해방감을 느끼지만 세로는 곧 더 큰 인간 세상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밤늦게 구층암에 절 찾으러 오신 어머니의 붉어진 눈시울을 보며, 결국 내일 또 학교에 나가야 했던 무기력한 자신을 마주한 것처럼요. 전 세로의 뉴스를 접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동물원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가두는 '인간 동물원'을 짓고 있다'. 메타버스, AI(인공지능)의 엄청난 발전과 무한 경쟁들. 기술은 인간 지능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더 살기 편한 세상을 만들어줬습니다. 기술에 기대어 사는 삶을 누군간 '선택과 집중', '시간의 효율성'이라 말하지만, 인간의 기억력과 순수한 능력이 녹슬고 있는 사실도 무시할 순 없습니다. 더 이상 내가 직접 먹이를 구하러 가지 않아도 누군가 떠먹여준 음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세상으로 변했지요. 나중에 이곳에서 나오고 싶어도 이미 갇힌 세상이 돼버리면 어떻게 할까요?